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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에게 더 추천하고픈 그림책의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크리스마스 이브의 오후, 무엇인가 혼자만의 특별한 추억을 만들고 싶어 집을 나섰습니다. 문화일보사 갤러리에서는 지금 조용히 우리에게는 낯선 폴란드의 그림책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Iwona Chmielewska)'의 원화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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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크리스마스이브의 원화전을 추억하며

이번 호에서는 어느 그림책 작가를 소개할까 고심하던 중, 저의 <그림책 일기장>을 펼쳐보았지요. 한 장 한 장 앞으로 넘기다보니 “한·폴 수교 15주년 기념 폴란드 어린이 그림책 원화전”이라고 빨간 글씨로 쓰여진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벌써 일 년 전 일이군요. 그 때를 추억하며 원화전 감상문을 다시 정리해서 소개해 볼까 합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오후, 무엇인가 혼자만의 특별한 추억을 만들고 싶어 집을 나섰습니다. 문화일보사 갤러리에서는 지금 조용히 우리에게는 낯선 폴란드의 그림책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Iwona Chmielewska)'의 원화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곧 방학을 하면, 아무래도 북적거릴 전시장을 생각하니 발걸음을 재촉해 다녀오는 편이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또한, 여러분들에게 비록 아직까지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구 동구권 그림책 작가를 소개하는 것도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라는 욕심도 있었습니다. 칼바람이 매서운 서대문 거리는 크리스마스 이브인데도 제법 한산했습니다. 나트륨 등불이 온화하게 조명되는 따사로운 갤러리로 들어서자마자,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이미 저처럼 성급했던 몇몇 분이 원화들을 감상하고 계셨습니다. 출판사에서 일을 하면서 어쩌다 삽화의 원화들을 접할 수 있는 저로서는 원화란 것이 낯선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일반인들에게는 삽화의 세계가 생소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괜한 우려로 일일이 사진을 찍었습니다.(사실 좀 심했죠.) 자, 이제 그녀의 작품을 소개하기에 앞서 그녀가 활동하고 있는 폴란드의 그림책 시장 환경과 그 속에서 그녀가 어떻게 작품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지 알아보도록 할까요?

동구권의 그림책 환경

사회주의 국가였던 폴란드는 문화 예술이 많이 발전한 나라였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사회주의 체제 시절, 폴란드는 국가가 우수한 예술가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주었다는 뜻입니다. 이는 동화 작품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폴란드는 지난 1960~70년대 시장 논리에서 벗어나 국가가 주도하는 출판 정책에 따라 우수한 동화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 풍토 속에서 예술성이 높은 훌륭한 아동 서적도 많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시장경제 체제로 변한 지금의 폴란드는 국가의 지원이 크게 줄어들어, 작가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폴란드는 우수한 문화의 맥이 끊어질 지경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동구의 자유화 이후 미국 디즈니 등의 삽화 등에 밀려서 폴란드 전통 삽화의 입지가 위태로워지고 그림책 출판물들 역시 예전처럼 독자들이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는 여백을 남겨두는 폴란드 삽화의 전통을 계승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죠.


폴란드 어린이 책 삽화의 전통을 계승하는 작가

솔직히 말씀드려,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는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의 원화전을 계기로 처음 접하는 폴란드의 그림책 작가이자 삽화가입니다. 그녀는 1960년, 폴란드의 작은 중세 도시인 토루인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1984년 토루인의 코페르니쿠스 대학 미술학부를 졸업한 후,삽화가로 활동하면서 30권이 넘는 어른과 어린이 책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네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작가는 자기의 아이들에게 읽어 줄 책을 직접 만들면서 그림책 창작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그림책은, 질감과 문양이 다른 종이와 천을 이용한 콜라쥬와 다양한 채색 기법을 활용하여 기발한 아이디어로 가득 채웠져 있습니다. 또한 그녀의 그림책은 작은 에피소드나 이야기의 흐름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통해 깊이 있는 사색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녀는 그림책 창작을 위한 영감의 원천을 르네상스와 중세의 미술 작품 속에서 주로 찾았습니다. 때론 '낯설면서도 친밀한'(uncanny-프로이트가 이야기한) 느낌을 주는 그림책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작가가 추구하는 것인 듯합니다. 2000년 『아저씨와 고양이』로 ‘프로 볼로냐’상을 수상하였고, 2003년에는 야스노젬스카의 '시화집'으로 바르샤바 국체 책 예술제에서 '책예술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저는 존재합니다. 그림으로 사유하기 위해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열린 그녀의 원화 전시회를 돌면서 저는 그녀의 삽화를 느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상징으로 가득 찬 그녀의 삽화들은 ‘아하, 바로 이런 뜻이로구나!’라며 금방 금방 이해되지 쉬운 삽화들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마치 언젠가 보았던 러시아의 ‘이콘화’ 같다고나 할까요? 저는 그녀의 삽화를 보고 또 보고 하면서, 그녀는 어쩌면 그림으로 사유를 하는 철학자가 아닐까 감탄했습니다. 한 점 한 점의 삽화는 제게 긴 여운을 남겨주면서 “생각해봐요. 이렇게.... 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답니다. 당신은요?“ 이렇게 속삭이듯 제게 말을 걸어오는 듯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시관을 나서면서 그녀의 책 『생각』을 샀어요. 추운 몸도 녹이고 따듯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크리스마스 이브를 혼자 만끽할 분위기를 잡고 싶어서 멋진 카페에 앉아 그 책 『생각』을 펼쳤습니다. 그렇지만, 책을 보기 전에 간지부터 읽어보았습니다. 바로 이런 내용이 적혀있었지요.

“나는 언제나 그림은 어떤 중요한 사실들의 표현이라고 믿습니다. 모든 그림에는 의미가 있습니다..그래서 내 작업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것은 '생각'입니다. 여러 갈래의 생각이 사방으로 뻗쳐 나가도록 내버려 두었다가 그것을 모아 우리가 눈에 볼 수 있는 사물로 표현해 내는 것은 작가만의 고유한 즐거움일 것입니다. 단지 '예쁜 고양이의 산책' 같은 주제만 다루는 그림책이 아니라 우리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림책, 그것이 내가 만들고 싶고, 보고 싶은 그림책입니다. 그림책을 만들면서 어린 독자들뿐만 아니라 내 자신을 생각하고, 자신을 위해서 작업을 계속합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는 아직 어린이입니다. 장난과 농담을 좋아하고, 정해진 것과는 다른 생각, 규범을 벗어나는 태도, 유머 감각을 사랑합니다. 어린이 책 이외에 나는 여러 폴란드 시인의 시화집 작업을 했습니다. 시간이 날 때는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리기도 합니다. 사진을 보며 다른 사람들의 과거와 미래를 상상해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하 생략)2004년 2월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한국어판 『생각』(논장 출판사) 간지 중에서)

『생각』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다

저는 그날 카페에 앉아 아래의 질문들을 해보았습니다.

1. 오늘 ‘생각한다’란 단어를 몇 번이나 말하였나요?
2. ‘생각한다’란 단어는 어떤 의미로 사용될까요?
3. ‘생각한다’를 다른 단어로 바꾸어 사용한다면 어떤 단어를 쓰시겠어요?
4. 생각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들리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의
생각을 보이는 것, 들리는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그리고 다음과 같이 그 질문들을 확장시켜 작은 노트에 적어놓았습니다.

1. 우리는 의식하지 않는 순간에도 생각합니다. 순간순간 우리의 뇌는 다양한 지각을 통해 전달된 정보를 생각합니다. 그런데 ‘생각’한다는 것은 정말 무엇일까요?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타이프처럼 ‘타닥타닥’새겨지는 것일까요? 아니면, 무성영화의 그림들처럼 연속되는 프레임들?
2. 여러분은 생각을 잡아보려고 허공에 떠다니는 생각을 향해 손을 뻗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허공 속에 떠다니는 생각, 혹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유영하고 있는 생각을 손으로 잡을 수 없다면, 이럴 때마다 여러분은 자신의 생각을 어떤 방법을 통해 표현하셨나요? 말로서, 글로서, 아님 그림으로서, 아님 다른 작품을 통해?
3. 여기서 잠깐만요. 그렇다면 말로서, 글로서, 그림으로서 표현이 된 자신의 생각은 머릿속에 있던 그대로의 그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생각 그 자체라기보다는 생각을 담고 나르는 ‘그릇’이 않을까요?
4. 많은 예술가들은 ‘생각하는 인간’을 표현하려 노력했습니다. 17세기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고 극명하게 존재를 의식하게 해주는 동력이야말로 ‘생각하기’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만이 생각하는 것일까요?


처음에 저는 『생각』의 책장을 넘기면서 삽화만을 보았습니다. 글을 보지 않은 채, 삽화?만을 보았을 때, 독자들에게 작가가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모호했습니다. 그러나 계속 등장하는 꼬마의 머리를 통하여 아마 머리와 관련된 어떤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지요. 그리고 나서 『생각』이란 그림책의 글만을 보았습니다. 글을 통하니,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주제가 무엇인지 그제서야 또렷하게 전달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그림책이란 하나의 이야기가 풀롯을 가지고 전개되는 것에 비해, 이름조차 제대로 발음하기 어려운 이 폴란드 여류 그림책 작가는 낯선 전개 방식으로 그림과 글을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생각을 생각하게 만드는 그림책을 보면서 거듭 생각했습니다. 왼쪽에는 글이, 오른쪽에는 그림이 배치되어 있는 이 그림책은 머리 맡에 두고 아무 때나 생각날 때면, 어느 쪽이나 펼쳐봐도 되는 편리한 그림책이라구요. 그리고 다시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늘 생각하며 살아가는 저는 제대로 생각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요.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에 의하면, 생각은 가지고 놀 수도 있고, 쓸 수도 있고, 그릴 수도 있는 것이지만, 저는 생각하기를 귀찮아하며 생각에 대한 생각을 피해왔음을 시인하게 되었죠.

무엇이 무엇이 다를까요? 발가락 열 개가 다르지요

잠들기 전에 발치를 내려보면, 발가락들이 보입니다. 꼬물꼬물 발가락들을 움직여봅니다. 발가락은 도대체 무엇과 닮아있는 것일까? 생각을 해봅니다. 흐미엘레프스카는 단순히 그림만을 그리는 그림책 작가는 아닌가보네요. 그녀의 작품에서 구상 단계에서부터 그림과 글은 똑같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만, 서로 다른 음역의 이중창같이 서로 상보적입니다. 그림은 글을 설명하지 않고, 글은 그림을 지시하지 않은 채 말이죠. 『발가락』의 한 행은 ‘먼 수평선을 보며 잠시 쉬어갈까?’하고 말하고 있지만, 그림 속에서 독자들이 보게 되는 것은 무자를 쓰고 어두운 영화관에서 스크린을 보고 있는 열 명의 사람들, 아니 발가락들입니다. 발가락들이 이불 밖에 삐죽 나와 까무룩 잠이 들것 같은 꼬마의 눈에게 말을 겁니다. “너 그거 알아? 우리가 침대에 가만히 누워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그리고 발가락들이 변모하기 시작합니다. 열 개의 발가락은 각기 다른 높이의 계단이 되었다가, 태평양의 섬들이 되었다가, 둥근 아치를 이루는 다리로 둔갑합니다. 이렇게 발가락들의 다양한 변모를 따라 독자들은 멈춰있는 시간동안 많은 곳을 여행하게 됩니다. ‘겨우 발가락인데, 발가락을 가지고도 이렇게 행복한 상상을 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다 그만 저는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상상력과 창조력에 질투를 느끼고 말았습니다.


어느 쪽부터 봐야할까? 『파란 상자 파란 막대』

어라, 어느 쪽부터 봐야하지? 엄청나게 길고 부피감이 느껴지는 그림책 『파란 상자 파란 막대』를 양 팔에 껴안고 저는 ‘파란 막대’쪽의 표지에 실린 가족사진들을 보았습니다. 파자마를 입은 소녀가 파란 막대를 무릎께에 쥐고 얌전히 소파에 앉아 있습니다. 이번에는 책을 뒤집어 반대쪽의 ‘파란 상자’쪽의 표지를 살펴봅니다. 역시 가족사진이 걸려있는 응접실인 듯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남자아이가 길다란 파란 상자를 무릎 위에 올린 채 소파에 앉아 있습니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순간적으로 번뜩 떠올랐습니다. 대단한 발견을 한 마음으로 재빨리 다시 책을 ‘파란 막대’쪽으로 뒤집어 봅니다. ‘어, 여기에 있는 사진 속 인물들은 전부 여자쟎아.’파란 상자‘쪽에는 남자들뿐이었는데! 어느 쪽부터 보아야 하는 거지?’그리고 공평하게 한가운데를 펼쳤습니다. 얇고 투명한 기름종이에 파란 막대와 파란 상자가 놓여있고, 여자아이와 남자아이의 손이 마치 악수라도 할 듯이 서로를 향해 가까이 다가서고 있는 그림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파란 상자에 어떤 막대가 딱 맞게 들어간다는 사실을 아시나요?”란 글이 왼쪽에, “그런데 여러분은 파란 막대가 어떤 상자에 딱 맞게 들어간다는 사실을 아시나요?”란 글은 오른쪽에 대칭이 되어 실려 있습니다.


아홉 살 생일에 여자아이 클라라는 막대 하나를 선물로 받습니다. 아름다운 무늬가 새겨진 파란색 막대지요. 한편 남자아이 에릭도 아홉 살 생일에 파란색 상자를 선물로 받습니다. 클라라의 엄마는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고조할머니, 증조할머니, 이모할머니들, 그리고 엄마, 그리고 클라라의 언니가 모두 아홉 살 생일 선물로 이 막대를 선물로 받았다는 이야기를 해줍니다. 또한 에릭도 아버지로부터 파란 상자가 고조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큰할아버지들,그리고 아버지, 그리고 에릭의 형 미토와이의 것이였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클라라도 에릭도 선물들과 함께 공책을 받았습니다. 공책에는 각각 막대와 상자의 주인들이었던 선배들이 어떻게 그것들의 쓰임새를 생각하며 놀았는지 적혀있었습니다.

이 책은 앞뒤가 없이 똑같은 비중의 이야기를 양방향에서 시작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마치 같은 멜로디를 낮은 음자리와 높은 음자리에서 동시에 치는 ‘피아노 연탄곡’ 같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궁금한 점이 또 생겼습니다. 왜 여자아이들에게 전해지는 선물은 막대이고 남자아이들에게는 상자인지가 우선 궁금했습니다. 그 반대여도 될턴데 말이예요. 뭔가 비밀스런 의도가 숨겨있는 것은 아닐까요? 상자의 주인이었던 레오나르도 할아버지는 상자 속에 다섯 개의 거울을 붙여 두고 놀았다고 했고, 레오나르도 할아버지의 아들인 빈첸티는 튤립을 그 안에 심어 키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티모테우스는 그 안에 부드러운 솜조각과 깃털을 깔고 달걀을 부화했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에릭의 형은 상자 안에 여러 가지 실험 재료와 도구를 보관했다고 합니다. 공책은 그렇게 마지막 주인이었던 에릭의 이야기로 끝나있고, 아직 공책에는 여백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에릭이 이제 그 이야기를 써야할 차례가 된 것이죠. 대칭적인 구조에서 이번에는 클라라의 고조 할머니 클레멘티나가 막대를 어떻게 썼는지 살펴보았습니다. 클레멘티나 할머니는 생쥐를 훈련시키는데 막대를 썼고, 클레멘티나의 딸인 로잘리아 할머니는 감자와 헝겊을 붙여 인형을 만들어 연극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로잘리아 할머니의 딸인 테클라는 모래밭이나 눈밭 위에 여러 가지 크기의 원을 그리는데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클라라의 언니 주자의 이야기가 쓰여 있습니다. 언니는 커다란 붓을 매달아 천장에 그림을 그렸던 것입니다. 이제 클라라도 자신이 막대를 어떻게 쓸 것인지 연구하고 공책에 자신만의 비밀을 기록해야겠지요. 이 그림책을 만든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는 제 궁금증에 대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책은 두 개의 세상이 서로 만나는 이야기입니다. 여자아이의 세상과 남자아이의 세상이지요. 두 세상은 똑같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책은 두 방향에서 대등하게 읽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좀 더 깊이 생각하자면, 남자아이들의 상자는 그들의 내면을 상징하고 여자아이들의 막대는 구체적인 활동을 상징합니다.”

한글 자음 글자와 뛰어난 상상력의 만남

글자는 상징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쳬계입니다. 그러나 그런 상징들이기 이전에 하나의 의미를 약속하고 있는 기호이기도 합니다. ‘ㄱ, ㄴ, ㄷ, ㄹ.....,ㅎ ’우리말 자음 14자는 폴란드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이보나 gm미엘레프스카에게는 어떤 상상력을 불러일으켰을까요? 그녀가 생각하는 ‘ㄱ’의 모양은 개미를 들여다보는 김씨 아저씨의 구부린 등과 같은가 봅니다. 그럼 ‘ㅁ’은요? 그것은 활짝 열린 여닫이 문 한 짝과 같은 모양이구요. 이 책은 폴란드어를 전공한 이지원씨의 기획과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상상력으로 한글의 조형적인 미를 시각적 이미지로 해석한 그림책입니다. 우리말의 자음을 중심으로 엮은 우리 작가의 그림책은 몇 권이 있습니다만, 이 책은 외국인인 삽화가에 의해 재조명됨으로서, 우리 한글의 우수성 속에 다양한 상징적 기호로 변주될 수 있는 가역성에 다시금 주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녀의 그림책을 덮으며, 지난 한 해를 생각해보다

비록 사회주의 시절의 아동 서적의 황금기가 시들고 시장 경쟁의 칼 바람 앞에서 폴란드 어린이 책들이 맥없이 무너져버렸다고 하지만,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처럼 전통을 계승하여 자연스럽게 낡은 인형, 손뜨개 레이스, 예사 지도 등의 오래된 물건들을 이용하여 기발한 연상과 유머가 담긴 이미지로 변화시키는 삽화들은 1920~1930년대 러시아와 동유럽 작가들의 단순하고도 명쾌한 그래픽을 연상시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즈음 그림책을 소개하면서, 그림책이 아이들만을 위한 책이 아님을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그림책 속에서는 어른들이 간과하고 있던 많은 질문이 있고, 어쩌면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그 질문의 답변을 찾아내는데 더욱 쩔쩔매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지난 한 해를 생각해보고 다가올 새해를 생각해야하는 이 세모에, 생각을 생각하도록 자극하는 그녀의 책들을 아이들에게 보다는 우선 저와 같은 어른들에게 추천해 드리고 싶네요. 그럼 남아있는 2005년도의 나날들을 차분하게 정리하시기를 바라면서 책을 요리하는 마녀 Oracle the Miracle이 여러분에게 미리 신년 인사를 전합니다. “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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