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에 관한 두 가지 이야기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하늘의 박꽃』
베르테르, 이 남자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한때 유럽에 ‘자살병’을 떠돌게 하였을 정도로 슬픈 짝사랑을 했고 결국에는 자살해버리고 말았던,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비운의 주인공 베르테르!
베르테르, 이 남자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한때 유럽에 ‘자살병’을 떠돌게 하였을 정도로 슬픈 짝사랑을 했고 결국에는 자살해버리고 말았던,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비운의 주인공 베르테르! 짝사랑의 열병에 빠졌던 이라면 누구나 베르테르를 알 것이다.
베르테르에 비하면 생소하지만, 베르테르 못지않은 짝사랑을 했던 『하늘의 박꽃』의 주인공은 어떨까? “그녀를 가슴에 새기는 운명을 짊어지게 되었습니다”라며 한 여자에게 생애를 걸었던 남자의 회상 또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못지않게 가슴을 울리고 있다. 하지만 결말의 분위기는 확연히 다르다. 주인공에게는 짝사랑의 결과가 베르테르와 달리 ‘생’으로 향해 있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사랑, 삶을 파괴하다
사랑 이야기가 담긴 소설들에서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만났는지는 소설의 향후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있어 꽤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짝사랑에 관한 소설에서만큼은 예외다. 여기서 중요한 건 단 하나, 어떻게 만났든 사랑의 등가법칙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베르테르, 그는 로테를 사랑한다. 하지만 이미 로테에게는 남자가 있다. 베르테르도 알고 있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사랑은 멈추지 않는 것을.
“아아, 사랑도 즐거움도 인정도 환희도 이쪽에서 주지 않는 한, 저쪽에서도 주려고 하지 않지. 그리고 자기의 가슴은 행복에 가득 차 있어도 눈앞의 상대방이 냉담한 얼굴을 하고 감동을 느끼지 않는다면 행복을 나눌 수는 없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베르테르가 로테를 짝사랑하지만 로테가 그 마음을 받아주지 않자 슬픔을 못 이긴 베르테르가 자살한다는 것이다. 줄거리는 정말 간단하다. 하지만 줄거리는 소설의 부차적인 요소일 뿐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위대한 작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짝사랑에 빠진 인간의 아픔과 슬픔을 적나라하게, 마치 현미경으로 마음속을 들여다보듯이 묘사한 덕분이다.
“아아, 이 공허! 내가 가슴 가득히 느끼는 이 무서운 공허! 한 번만이라도, 그래! 오직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그녀를 이 가슴에 끌어안을 수 있다면, 이 공허는 메워질 수 있으리라고 나는 때때로 그런 생각을 한다네.”
“나는 가끔 나에게 이렇게 타이른다네. ‘너의 운명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다. 남들이 아무리 불우하다고 하더라도 그나마 너보다는 행복하다. 너만큼 괴로움을 당하는 자는 이 세상에 아직 아무도 없다.’ 그리고 나는 옛 시인의 작품을 읽는다네. 나는 내 마음속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다네. 그러나 나는 많이 참고 견디어야만 한다! 아아, 인간은 옛날에도 이처럼 비참하였을까?”
짝사랑을 해본 사람들은 안다. 보고만 있어도 좋다는 감정과 이내 보는 것만으로는 허전해지는 감정의 변화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그 모든 것들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다. 소설은 짝사랑에 고민하는 이들이 하는 필연적인 갈등, 즉, ‘한번 고백을 해볼까? 만약에 안 되면 어떻게 하지? 그래도 될지도 모르는데? 안 되면 영영 못 볼 수도 있는데?’ 등등 짝사랑하는 이들이 하는 거의 모든 고민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은 짝사랑의 열병에 빠진 이들이 ‘읽으면 안 되는 소설 1호’로 꼽힌다. 베르테르와 자신을 동일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베르테르와 동일시한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짝사랑에 못 이겨 죽고 만다는 것이다. 일방적인 사랑에 삶이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당신을 위해 죽을 수 있는 행복을 누리다니!”라는 말을 외치면서.
일방적인 사랑, 삶을 소생시키다
그런? 짝사랑이 『하늘의 박꽃』에서는 그 의미가 다르게 나타난다. ‘당신을 위해 죽겠다’라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위해 살겠다’라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는 180도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하늘의 박꽃』에서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인은 다른 남자의 부인이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사랑하는 마음을 감출 수 없다. 그래서 주위를 맴돈다. 그런데 여인도 주인공에게 마음이 있는지 다가올 여유를 보인다. 이때 주인공은 얼마나 기뻤을까? 허나 슬프게도 여인은 금방 작별을 고한다. 자신이 힘이 들어서 실수했다는 식으로 말을 하고는 연애감정이 아니라 우정이었다며 ‘더 이상 만나지 말자’라고 말한다.
주인공은 거부당한 것에 슬퍼한다. 베르테르처럼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주인공은 도리어 그것을 생과 바꿔치기하고 있다.
“그녀를 만난 이래, 처음 거부당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저는 오늘에 이르는 20 몇 년 동안 그녀를 가슴에 새기는 운명을 짊어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생애를 걸었습니다. 뭐라 말씀드리면 좋을지. 저는 그녀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지금도 견디기 어려운 생을 살고 있습니다.”
베르테르에 비하면 주인공의 마음은 확실히 긍정적이다. 이 책을 짝사랑의 열병에 빠진 이들이 ‘읽어야 할 소설 1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렇다. 그랬다. 주인공은 여자를 보고 기다리는 기쁨에 삶을 산다. 거짓말 같지만 정말 그렇게 살게 된다. 친구로서 한번이라도 볼 수 있다는 마음으로 그녀 곁에 있는 것이다. 설사 볼 수 없으면 어떤가? 주인공은 군대에 있는 동안에도, 먼 곳에 있는 동안에도 여인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삶을 움켜쥘 수 있다.
물론 이것이 쉽지는 않다.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짝사랑의 위기는 보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도 그런 적이 있었다. 그래서 주인공은 고행을 하는 마음으로 2년 동안 텐트 생활을 하고 마침내 산 속으로 들어간다. 이때만 해도 주인공의 모습은 흡사 베르테르의 뒷모습을 닮았다. 방법은 다르지만 주인공의 말처럼 “사람으로 태어나 지상의 운명을 만나지 못한 짜증스러움”이 주인공을 “끝내 그쪽으로 몰아”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학대해도 주인공은 어쩔 수 없다는 걸 안다. 마음속에 남는 것은 그녀뿐이라는 것을. 또한 기대한다. 그녀와 한순간만이라도 평화롭게 살 수 있다면 어떤 슬픔이든 어떤 외로움이든 다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런 마음으로 주인공은 여인에게 돌아간다. 그리고 여인에 대한 사랑으로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 베르테르의 달리 결국 그의 사랑은 이렇듯 생명의 힘을 제공한 것이다.
“그 겨울에도 저는 긴긴 눈의 계절을 같은 오두막에서 지냈습니다. 그러나 뼛속까지 스미는 듯한 추위도 이는 모두 그녀를 사모하는 간절한 제 마음 탓이라고 생각하니 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 생각해보면 너나 할 것 없이 외로운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서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제게는 고마운 일이고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짝사랑에 빠진 이의 감정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한 것일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하늘의 박꽃』을 본다면 충분히 그렇다고 여길 만하다. 그러나 결과까지 같은 건 아니다. 감정을 소화해내는 방식은 이렇게 다르다. 짝사랑에 빠진 이여, 그리고 짝사랑에 빠질 이여, 그대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시작은 같지만 전혀 다른 길로 발걸음을 돌리는 두 권의 책에서 그 의문에 답을 얻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