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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다워, 『엘리자베스 타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할 정도로 거대한 실패를 거두었다면 당신은 무엇에서 생존의 의미를 찾을 것인가 ? 수년간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매달린 프로젝트가 사실은 자신의 경력을 끝장냈다면 당신은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 ?
인생은 아름다워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할 정도로 거대한 실패를 거두었다면 당신은 무엇에서 생존의 의미를 찾을 것인가 ? 수년간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매달린 프로젝트가 사실은 자신의 경력을 끝장냈다면 당신은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 ?
<엘리자베스 타운>은 이런 질문에 대한 카메론 크로우 감독의 답변이라고 할 만한 영화다.<엘리자베스 타운>의 도입부는 카메론 크로우의 전작 <제리 맥과이어>(1996)와 유사하게 시작한다. 잘 나가던 스포츠 에이전트 제리 맥과이어(톰 크루즈)가 어느날 갑자기 '인간 경영' 팜플렛을 돌리다가 '거대한 회사'에서 떨어져 나가듯이 <엘리자베스 타운>의 주인공 드류 베일러(올란도 블룸) 역시 수년간 매달린 창의적인 신발 디자인이 결국 거대한 '참패'로 돌아온 것을 확인하게 된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제리 맥과이어가 겨우 해고(?)라는 '위기'를 맞는 데 비해, 드류 베일러에게 닥친 현실은 업계에서 거의 '회생 불능'이라는 점에 있다. 무려 10억불짜리 '참패'... 스스로 아무리 "I'm Fine"을 외쳐봐도 자신의 나레이션처럼 '실패와 참패는 의미가 천지 차이'인 것이다.
'운동 기구'를 통해 창의적(?)인 자살을 시도하기 직전, 한 통의 전화가 그의 생명을 '유예'시킨다. 그건 '아버지의 죽음'을 전하는 전화였고, 이로 인해 그가 해야할 여행은 그의 삶을 업그레이드시킨다.
■ 스위트 홈 켄터키
이 영화의 감독 카메론 크로우가 10대 시절부터 미국의 대중 음악 잡지 '롤링 스톤'에 칼럼을 썼던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는 각본가로 헐리우드에 데뷔하기 전, 유명 팝 칼럼리스트였으며 8,90 년대의 유명 여성 록 그룹 '하트'의 낸시 윌슨과의 결혼 생활을 계속 이어오고 있어 여전히 공사(公私) 모두 음악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그의 두 번째 감독 작품 <싱글즈>(1992)가 90년대 초반의 얼터너티브 씬을 배경으로 하고 있을 뿐 아니라 펄 잼(Pearl Jam)을 비롯한 여러 아티스트들이 출연한 것도 그런 크로우의 출신 배경에 기인한다.
그의 이런 이력은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세계에 대한 열쇠를 제공해주는데, '록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 6,70년대를 관통한 그에게 있어서 '순수한 공동체의 가능성'을 보여준 6,70년대의 '히피 공동체'가 그런 '이상향'에 근접한 무엇으로 보는 것이다. '사랑'과 '음악'이면 모든 것이 해결되었던 시절. 불완전하지만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듯한 그런 시절에 대해 따뜻하게 묘사한 작품이 그의 최고작인 <올모스트 페이모스>(2000)다. 어린 시절 팝 칼럼리스트로 데뷔한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올모스트 페이모스>는 그런 록 공동체에서 어떻게 록 음악이 탄생하는가에 관한 이야기이자 음악적으로, 정신적으로 풍요로웠던 6,70년대의 록 정신을 향수어린 시선으로 담고 있는 것. 그의 이런 시각은 다른 작품들을 통해서도 볼 수 있는데, 가령 <제리 맥과이어>와 본작 <엘리자베스 타운>에서 묘사되는 '자본주의적인' 현대 기업에 대한 삭막한 묘사와 그 반대의 모습으로 담겨진 미국 소도시 공동체에 대한 묘사는 그런 그의 인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엘리자베스 타운>의 미국 동중부 켄터키주에 위치한 소도시 '엘리자베스타운'은 바로 그런 곳이다. 아직까지 '대가족'의 흔적이 남아있는 정겨운 곳. 거기서 추수감사절에도 일 때문에 가족을 등한시한(초반부 추수감사절 식탁에서 그의 사진이 그의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회사형 인간' 드류는 '가족의 일원'임을 확인하게 된다. 또 이 영화의 주인공 드류 베일러는 잊어 버린 '아버지의 존재'를 '엘리자베스타운'에서 복원하고 자신의 '성장'을 완성한다. 그러니까 이 영화 속에서 '아버지의 존재'는 이미 '물리적 죽음'을 맞이한 상태지만, 오히려 '죽음'으로 인해 '드류'라는 미숙한 '아들'의 성장을 완성해 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 삶과 죽음
이렇듯 <엘리자베스 타운>은 동전의 양면처럼 맞닿아있는 삶과 죽음을 드류라는 청년의 성장과 함께 다루고 있다. 아버지는 '사랑'을 찾기 위해 고향을 떠났지만, 그는 아버지의 '죽음' 때문에 자신의 '죽음'을 유예(애초 그는 아버지의 장례식 후 자살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하고 오히려 '삶'을 얻게된다.
외형상 <엘리자베스 타운>은 올란도 블룸과 커스틴 던스트라는 젊은 스타들의 로맨틱 코미디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 속에서의 관계의 핵심은 이미 사자(死者)가 되어 버린 아버지와 아들 드류와의 관계다. '엘리자베스 타운'에서 드류는 '아버지의 죽음'과 호텔에서 벌어지는 흥청거리는 '결혼 파티' 그리고 스튜어디스 클레어(커스틴 던스트)와의 만남이라는 동떨어진 듯한 일들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이 영화 속에서 '죽음'이란 전혀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다.'드류'가 시체가 된 아버지를 만나서 연상하는 단어는 'whimsical'(변덕스러운,묘한,별난,기발한,한글 자막은 '천진난만한')이다. 너무나 편안한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의 이별은 자연스럽다. 오히려 남은 가족들이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은 다른 가족들을 한 단계 성장하게 해 준다. 아버지의 죽음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은 어머니 홀리(수잔 서랜든)와 딸 헤더(주디 그리어)가 더 심하지만, 결국 부성의 부재는 다시 채워진다. 이런 성장의 징후를 보여주는 것은 요란스러운 추도식 장면이다.
■ 아버지와 아들
크로우는 전작 <올모스트 페이모스>에서 보여주었던 꼼꼼한 캐릭터 구성을 이 작품에서도 훌륭히 표현해내고 있는데, 드류와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한 묘사는 마치 거울처럼 그려진 사촌 제시와 그의 아들과의 관계로 직접적으로 묘사된다. 삼류 서던 록 그룹 출신의 제시(폴 슈나이더)는 그의 아들을 '친구'처럼 대하려고 노력하지만, 주변으로부터 '아버지는 친구가 아니다'라는 비난을 듣는다. 이런 설정은 드류 자신이 잊어 버린 자신과 자신의 아버지와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사랑'과 '가족'을 선택한 그의 아버지를 회상하는 그의 아련한 플래시백은 매우 짧게 3번 정도 묘사되지만 제시 부자의 모습에서 우리는 '친구 같은' 드류 부자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
결국 <엘리자베스 타운>은 미숙한 존재인 아들이 온전한 하나의 '성인'으로서 커가지까지의 과정을 다루고 있는 영화이며 그 '사랑'을 아버지로부터 공인받는다라는 이야기를 그린다. 예를 들어 바로 위의 사진의 장면을 살펴 보면, 드류가 호텔 결혼식 커플의 피로연장에서 클레어와 키스를 하고 있는데 아버지의 납골함이 마치 그들을 지켜보는 듯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으며 둘의 의상은 모두 검은색 정장으로 장례식으로 가는 것이 더 어울릴 듯한 모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추도식장'을 하나의 '축제의 장'으로 그려낸 후반부의 장면과도 연결된다.
따지고 보면, 영화 속에서 드류와 클레어의 사랑이 커가는 공간들은 꽤 부적절하다.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난 둘은 밤새 전화를 한 후 데이트를 하게 된다. 하지만 데이트 장소가 영 심상치 않다. 묘지와 납골당 그리고 추도식장이다.
■ 카메론 크로우식 이별 여행
한 편의 드라마로서의 완성이라면 모든 화해가 이루어지는 추도식 장면에서 끝을 내도 좋으련만 카메론 크로우는 후반부의 15여분의 러닝 타임을 유예한다.(상업 영화의 적절한 상영 시간이 100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후반부는 분명히 감독의 야심이 들어있는 장면들이다.) 아버지의 납골묘를 옆 좌석에 모시고 클레어의 자작 지도책을 따라 고향까지 돌아가는 길은 (클레어가 준비한) 배경 음악이 준비되어 있으며, 엘비스 프레슬리와 블루스의 도시 멤피스를 거쳐 오클라호마와 미시시피를 경유하는 '돌아가는' 길이다. 그 속에서 드류는 아버지의 유골을 마틴 루터 킹이 목숨을 잃은 로레인 모텔과 미시시피 강, 볼품없는 공룡 인형과 도로에 뿌린다. 음악적인 이 후반부는 사실 내러티브로서의 필연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할 정도로 아름답다. 이 여행 장면들은 켄터키를 여행했던 크로우의 경험이 그대로 담겨있는 장면들이며 일종의 영적인 여행으로서, 드류는 이 여행을 통해서 온전히 아버지와 이별하며 자신의 성장을 완성한다.
로맨틱 드라마로서는 작은 규모라고 할 수 없는 5000여만불의 제작비가 투자된 <엘리자베스 타운>의 흥행은 그리 좋지 못했다. 물론 영화에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올랜도 블룸은 인생의 쓴 맛을 본 사람으로 보기에는 너무 말끔하고 커스틴 던스트가 연기한 클레어의 캐릭터는 아무래도 불분명하게 보인다. 그럼에도 <엘리자베스 타운>은 꽤 근사한, 영락없는 카메론 크로우의 영화다. 템테이션스와 엘튼 존, U2와 'Moon River'가 한 영화의 사운드트랙으로 녹아들 수 있는 것은 누구보다 팝 음악에 대한 감각이 뛰어난 감독 카메론 크로우와 음악을 맡은 그의 아내 낸시 윌슨의 솜씨에서 기인한다. ★★★
메뉴 화면
사진이 쏟아지는 듯한 메뉴는 화려하지는 않아도 깔끔한 느낌을 준다.
해상도 자체가 그리 높지는 않지만 <엘리자베스 타운>의 영상은 매우 깔끔하다. 최신작답게 잡티는 전혀 찾아볼 수 없으며 화사한 색감으로 경쾌한 분위기의 영상을 선보인다. 블록버스터 수준의 날카로움을 지니고 있지는 않지만, 필름 소스의 드라마 장르 영화로서는 매우 안정된 화면을 구현하고 있다. ★★★★
영어와 태국어 돌비 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음악을 중시하는 영화답게, 영화 속의 팝 넘버들이 훌륭히 표현되고 있다. 챕터5의 매미 소리처럼 배경음이 부드럽게 서라운드로 재생되고 있으며 추도식에서 펼쳐지는 'Freebird'의 격렬한 후반부 록 사운드는 매력적이다. 아쉽다면 누구보다 음악을 잘 활용하는 카메론 크로우의 영화에서 삽입곡의 가사가 전혀 번역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극장과 타국어 자막에서도 번역되지 않아 마냥 투덜거릴 일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아쉽다. ★★★★
스페셜 피쳐 메뉴
Training Wheels (02:17)
배우들의 카메라 테스트 장면을 음악과 함께 담고 있는 메뉴.
Meer The Crew (02:35)
위의 메뉴와 마찬가지로, 인터뷰 없이 영화에 참여한 제작진들의 모습을 나열식으로 담고 있다.
Extended Scenes : Rusty's Learning to Listen part 8 (03:34)
Extended Scenes : Hanging with Russel in Memphis (07:26)
아쉽게도 별다른 서플먼트를 수록하고 있지 않은 DVD에서 가장 볼 만한 메뉴로, 본편에서 축소된 장면들을 볼 수 있다. '러스티의 아이 달래기'는 영화 속 말썽꾸러기들을 한 방에 말 잘 듣는 아이들로 만드는 문제 비디오(?)로 좀 더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두 번째 확장 장면은 멤피스의 카페를 운영하는 러셀이라는 사람의 인터뷰 클립으로, 영화 후반부에서 드류가 만나는 인물이다. 그는 BB 킹을 비롯한 수많은 블루스의 명인들을 직접 만났던 경험을 들려준다.
그 외 서플먼트로는 포토 갤러리와 두 개의 극장용 예고편이 수록되어 있다. 아쉽게도 <엘리자베스 타운>에는 헐리우드 작품들이 기본적으로 수록하고 있는 메이킹 필름이나 감독, 배우 등의 인터뷰 등이 수록되지 않아 아쉬움을 준다. 북미판과 동일한 사양이기는 하지만 작품과 두 장의 OST가 나온 음악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점은 아쉬움을 준다. ★★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엘리자베스 타운>은 꽤 매력적인 영화다. 더욱이 팝 음악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적어도 음악 선곡에 있어서는 최상의 수준을 보여주는 카메론 크로우의 영화이기에 그 매력은 더 하다. DVD로서도 헐리우드 최신작답게 부드럽고 화사한 영상과 훌륭한 사운드 표현력으로 합격점을 줄 만하다. 하지만 부실한 서플먼트는 다소 아쉬운 것이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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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스틴 던스트>6,100원(75%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