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한울의 그림으로 읽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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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주로 읽던 책은 만화책과 위인전, 문고판 형식의 세계문학전집이 전부였죠.
아버님이 쓰시는 책장에 꽤 많은 책이 꽂혀있었지만, 부모님께서 만들어놓은 팝송모음집을 감상하거나 낙서하는 게 너무 재밌었기에 그 곳에 있는 책은 신경도 쓰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도 오늘부터는 부모님이 가지고 계시는 책을 슬슬 읽기 시작해도 되지 않을까?' 란 생각에 서재에 들어가서는 무얼 읽어볼까 한참 고민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책장 앞에 우두커니 서서는 책 제목을 훑기 시작하는데 시선을 확 끄는 제목이 있었으니 그 책이 바로 『앵무새 죽이기』이었습니다. 뭔가 상당히 시니컬한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어린이용 문고판이나 위인전에서는 볼 수 없는 상당한 두께가 맘에 들었습니다. (사춘기 시절이었기에 야한 내용의 소설이길 바랐던 기억도 살짝 납니다만, 분명 잘못된 기억일 거예요. 정말이에요) 책상의 스탠드를 켜고 첫 페이지를 넘기면서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던 기분은 참으로 묘했습니다. 꼭 이 한 권의 책을 읽으면 어른이 될 것 같은 기분이랄까요? 제 또래의 친구들은 읽고 있지 않거나 제목조차 들어 본 적 없는 책을 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생겨난 긍지나 자부심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사실 『앵무새 죽이기』란 책의 내용을 전혀 몰랐기에 앞부분에 나오는 래들리 집 앞에서 벌어지는 아이들의 소동에 꽤나 흥분해서는 '우와 이거 왠지 내가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란 생각에 흐뭇해했었습니다만 50페이지를 지나고 100페이지를 넘어가면서는 하품이 잦아졌고, 200페이지를 넘어가면서부터는 이전 페이지에 무슨 이야기가 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 읽은 부분을 또 읽고 또 읽기를 반복했습니다. 만약 한 번 읽은 페이지는 조금씩 잉크가 증발해버리면서 책의 인쇄 상태가 옅어진다면 백지가 되어버릴 만큼 반복에 반복을 거듭했죠. 하지만 한 번 넘기기 시작한 책은 꼭 끝까지 봐야한다는 사명감에 300페이지를 넘기고 400페이지를 넘기며 결국은 아주 오랜 시간을 투자한 끝에 마지막 페이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다 읽고 나서는 마라토너가 골인지점에 도착했을 때처럼 많이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다 읽었다는 만족감은 상당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책 자체는 정말 따분하고 지루했었죠. '어른이 된다는 건 쉬운 게 아니다'란 생각이 들만큼 제가 읽기에는 너무 어렵고 심심했었습니다. 그 당시의 제가 미국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란 맛있는 과자와 초콜릿을 많이 팔고 평균 키가 굉장히 큰 나라랄까요? 인종차별, 사람에 대한 편견, 읽어버린 인권, 진실에 대한 추구 등등 이런 단어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때였으니까요. 뭐 여하튼 최근에 트루먼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 번역본을 읽으면서도 '하퍼 리'의 등장에 매우 반가워할 만큼 이제는 좋아하는 소설이 되어버린 『앵무새 죽이기』지만 처음 읽을 때의 그 당혹스러움과 지루함은 잊을 수가 없네요. 그나저나 하퍼 리 씨의 신작은 과연 읽어 볼 수 있기는 한 걸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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