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발렌타인 데이에 저는 여자친구로부터 초콜릿 대신에 초콜릿 색깔의 표지를 가진 작은 양장본 동화책을 한 권 선물로 받았습니다. 발렌타인 선물로 초콜릿보다 센스있군... 하고 생각하면서 읽은 짤막한 그 동화가 올 가을에 영화로 개봉할 줄은 상상하지 못했었지요. 책 속에 등장하던 초콜릿 강과 신기한 노래들이 영화로 나오면 볼만하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게 팀 버튼 감독의 손에서 나오리라고는 더욱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어쨌든 조니 뎁이 공장장 윌리 웡카로 열연한 영화가 추석 연휴에 놀라운 흥행을 기록했고, 더불어 원작 동화책도 각 서점에서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오늘 채널 포커스에서 함께 살펴볼 그 책은 바로 『찰리와 초콜릿 공장』입니다. 주인공 찰리는 무척 가난한 집에서 삽니다. 하나 있는 침대에는 찰리의 할머니/할아버지, 외할머니/외할아버지 네 분이 오손도손 누워 계십니다. 치약뚜껑을 끼우는 단순노무직으로 근무하는 아버지 외에는 수입이 없는 일곱 식구는 매일 똑 같은 양배추 수프로 살아갑니다. 어느날 찰리네 집 앞의 커다란 초콜릿 공장의 주인 윌리 웡카씨는 광고를 내, 5장의 황금 티켓이 웡카 초콜릿 속에 숨어있다고 알려줍니다. 상품은 세상 누구도 구경해보지 못한 세계 최대의 초콜릿 공장 웡카 초콜릿 공장을 견학할 수 있는 권리! 찰리도 황금 티켓을 꿈꿔보지만, 1년에 한번 생일날에나 맛보는 웡카 초콜릿에서 황금 티켓이 나올리는 만무합니다. 남들은 금속탐지기로 티켓을 찾거나 아예 초콜릿 가게를 통째로 사버리면서 티켓을 찾는 상황에서요. 하나둘씩 당첨자가 뉴스에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식탐이 온몸에서 배어나는 아이, TV에 미쳐있는 꼬마, 뭐든 해달라고 하는 떼쟁이 아이, 하루종일 껌만 씹어대는 아이… 어딘가 모르게 이상한 아이들이 연이어 당첨되고 마지막 남은 한 장의 티켓에 전 세계가 긴장하고 있을 때, 기대반 포기반으로 가게에서 구입한 찰리의 초콜렛 속에서 한 장의 티켓이 나타납니다. 기가막힌 확률의 벽을 넘고 찰리는 마지막 다섯 번째 당첨자가 되어 할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웡카의 공장으로 견학을 떠납니다. 초콜릿이 흐르는 큰 강과 폭포, 마시맬로우 풀과 나무열매로 가득한 공장 안에서는 소인국 움파룸파 사람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공장장 윌리 웡카 씨와 함께 공장을 둘러보는 다섯 명의 아이들은 웡카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딴짓거리를 하다가 하나씩 사라집니다. 먹보 아이는 손대지 말라는 초콜렛에 손을 대었다가 파이프에 빨려들어가고, 껌씹는 아이는 제멋대로 실험중인 껌을 씹어 온몸이 블루베리가 됩니다. 떼쟁이 아이는 호두까는 다람쥐를 사달라고 떼를 쓰다가 불량호두로 분류되어 소각장에 버려지고, TV매니아 소년은 TV속에서 그만 작아저버리는 등 난리 법석입니다. 그 모든 와중에 결국 혼자 남게 된 찰리에게 웡카 씨는 초콜릿 공장을 통째로 물려준다고 선언해 버립니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대단한 설득력이 있거나 하지 않지만, 이 작은 동화책은 놀라울 정도의 시각적 상상력으로 읽는 이를 자극하는 맛이 있습니다. 진한 갈색 초콜릿이 묵직하게 흐르는 초콜릿 강과 그 위를 떠다니는 배, TV속에 갇히고 거대한 블루베리로 부풀어 오르는 아이들, 끊임없이 잔혹한 노래를 불러대는 움파룸파 사람들 등은 책을 읽는 것 이상의 상상을 머릿속에 만들어 주는 책 속의 요소들입니다. 그냥 상상만 해도 즐거운 웡카의 초콜릿 공장은 조니 뎁 주연의 영화로 거듭나면서 그 시각적 상상력들은 이제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영화화된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원작과 다른 부분이 많습니다. 원작 동화에는 윌리 웡카 씨에 대한 과거는 등장하지 않지만, 영화에서는 어린시절 치과의사인 아버지 때문에 기괴한 교정기를 쓰고 초콜릿은 입에 대지도 못했던 웡카씨의 어린 시절을 볼 수 있습니다. 원작의 찰리는 공장을 물려주겠다는 제의를 냉큼 받지만, 영화에서는 가족을 버리고 공장에서 혼자 살 수 없다며 거절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두 가지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팀 버튼의 영화는 원작보다 ‘가족애’에 대한 부분을 보다 보강한 형태로 구성되었습니다. (참고로 움파룸파 사람들의 노래는 원작의 가사를 살려 디스코, 헤비메탈, 펑키 등 다양한 장르의 합창으로 뮤지컬처럼 등장합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전체적으로 전형적인 서양 동화의 면모들을 제대로 갖추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달콤한 먹거리가 소재이고, 동서양을 넘어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권선징악의 교훈도 아이들의 안좋은 습관을 중심 소재로 들어있습니다. 신데렐라 원작에서 불에 달군 구두를 신고 죽어가던 계모 이야기처럼 서양 동화의 특징인 잔혹한 묘사도 움파룸파 사람들의 노래에서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지나치게 ‘서양 동화’ 스럽다는 점이 한국의 어린이들에게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당장 찰리를 제외한 네 아이들의 행동 패턴은 왜 징벌받아 마땅한 것인지를 한국적 문화 배경에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뚱보 아이의 식탐은 서양에서 죄악시되는 것과 달리 동양에서는 언급도 잘 되지 않는 덕목이며, 껌씹던 여자 아이의 경우 껌씹는 버릇과 지나친 승부욕이 그렇게 한국 아이들에게 ‘하지 마라’라고 가르칠 만한 버릇은 아님에도 크게 벌을 받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는 인종주의적 관점일 것입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움파룸파 사람들은 아프리카 오지에서 맛없는 쐐기벌레를 억지로 먹다가 초콜릿을 주겠다는 웡카 씨의 말에 공장으로 와 일하고 있는데, 이들에 대한 묘사는 분명 인종차별적 요소를 감지할 수 있는 무언가가 존재합니다. 서양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프리카인은 왜소하고 공장장의 말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단순노동 종사자로 등장합니다. 웡카 씨가 그들을 대하는 태도는 조금 무례하며, 전에는 서양인을 고용하다가 그들이 기밀을 빼낸다는 이유로 ‘말 잘 듣는’ 움파룸파들을 데려다가 고용한다는 것은 ‘비서구인 = 말잘듣는 인종’이라는 개념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다행히도 최근 개봉한 팀 버튼의 영화에서는 그 점이 위험하다는 것을 감지한 듯, 대단히 조심스럽게 인종문제를 비껴 나가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아름다운 상상력과 달콤한 초콜릿으로 가득한 어린이들의 환상 동산이 될 법한 이 동화는 한국 어린이들에게는 몇 가지 문제점으로 인해 그렇게 편하게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건 어린이들에게 해당되는 문제이지, 어느 정도의 분별력을 갖춘 성인들에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닙니다. 저는 오히려 이 동화가 어른들에게 알맞다고 생각합니다. 그 풍부한 상상력은 어른들에게 달콤한 과거의 기억(그것이 초콜릿이든, 달콤했던 불량식품이든)을 다시한번 부각시켜주고, 추억에 빠질 수 있는 기회를 주니까요. 게다가 연인에게 발렌타인 데이 선물로는 초콜릿보다 오히려 더 기품있고 특별하지 않겠습니까? ---------------------------------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어떤 책? '가장 대담하고, 신나고, 뻔뻔스럽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보내온 세상에 단 다섯 장뿐인 황금빛 초대장! 윌리 웡카의 초콜릿 포장지 속에 들어 있는 이 초대장을 찾은 어린이는 아무도 들어가 본 적이 없는, 비밀에 싸인, 전설적인 윌리 웡카의 초콜릿 공장을 견학하고 평생 먹을 수 있는 초콜릿과 사탕을 선물로 받는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초콜릿을 소재로 한, 상상을 초월한 기막힌 사건들을 읽다보면 시종 터져나오는 웃음, 과연 다섯 명의 행운의 어린이들 앞에 어떤 모험이 기다리고 있을까? 작가 ‘로알드 달’은 누구? (1916-1990) 영국 웨일즈에서 태어나, 잉글랜드에서 교육을 받았고, 쉘 석유회사의 아프리카 지사에서 일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영국 왕립 공군의 전투기 파일럿으로 참전했다가 이집트에서 격추당해 '머리에 기념비적인 한방을 얻어맞고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로알드 달은 현대 동화에서 '가장 대담하고, 신나고, 뻔뻔스럽고, 재미있는 어린이책'을 만든 작가라는 평을 받고 있으며, 구미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손꼽히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제임스와 슈퍼 복숭아』, 『내 친구 꼬마 거인』, 『찰리와 초콜릿 공장』, 『마틸다』 들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고 그 외에도 『멍청씨 부부 이야기』, 『창문닦기 삼총사』, 『아북거, 아북거』,『할머니를 삼켜버린 마법의 약』 같은 동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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