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선란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 <천 개의 파랑>은 폐기를 앞둔 휴머노이드 기수 로봇 콜리, 안락사 위기에 처한 경주마 투데이, 각자의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세 모녀 연재, 은혜, 보경의 이야기다. 지난해 초연 당시 LED 패널을 활용한 무대미술, 퍼펫과 로봇, 배우들이 어우러지는 연출 등으로 호평받았고, 올해 두 번째 시즌으로 돌아왔다. 초연에서 활약했던 펜타곤 멤버 진호, 오마이걸 멤버 효정이 각각 콜리, 연재 역을 맡아 다시 한번 <천 개의 파랑> 무대에 서고 있다. <천 개의 파랑>을 만나 ‘행복’이란 무엇인지 확실히 느끼고 있다는 두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해 초연 이후 약 1년 만에 다시 <천 개의 파랑> 무대에 서게 됐어요. 작품을 다시 만난 소감이 어떤가요.
효정 <천 개의 파랑> 초연이 제 첫 뮤지컬 도전작이었다 보니 긴장도 많이 했었고, 적응하는 데 시간도 조금 걸렸거든요. 조금 더 성장한,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재연에도 꼭! 참여하고 싶었습니다. (웃음) 특히 이번 시즌에는 연재라는 인물의 다양한 감정선을 잘 보여주고 싶어서 연출님, 같은 역할을 맡은 서연정 배우와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연재의 감정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진호 초연 때는 아무래도 퍼펫과 함께 연기를 해야 한다는 점이 가장 어려웠는데,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어요. 퍼펫 자체도 구동하기 편리하게 수정이 된 부분도 있고요. 연출이나 대사, 넘버에 약간씩 변화가 생겨서, 캐릭터를 표현할 때도 조금의 변화가 생겼어요. 초연 때보다 조금 더 열려있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요. 이번 시즌에는 조금 더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천 개의 파랑>을 다시 만나게 되면서, 작품과 캐릭터에 대해 새롭게 깨닫게 된 부분이 있다면요.
진호 초연을 올리고 1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그 짧은 사이에도 AI가 많이 발전하고, 상용화되었잖아요. 챗지피티와 대화를 할 때는 정말 사람과 대화를 하는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고요. 그래서 콜리를 표현할 때도 기존의 로봇의 틀을 조금 더 깨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로봇은 이래야 한다‘는 편견에서 벗어나서, 조금 더 인간과 닮은 모습으로 표현해도 되겠구나 생각했어요.
효정 연재가 은혜를 대할 때, 보경을 대할 때, 콜리를 대할 때의 마음이 조금씩 다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 조금씩 다른 부분이 더 잘 보여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이번에 다시 연재를 만나면서, ’이 부분은 조금 더 표현해도 되지 않을까‘ ’여기서는 감정을 더 드러내도 되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더 많이 한 것 같아요. 그러면서 저 스스로도 어느 순간 제가 진짜 연재가 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고요. (웃음)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에게 특히 공감되는 점은 무엇인가요?
진호 제 MBTI가 ISTP예요. 가장 로봇과 흡사한 성향이죠. (웃음) 극 중 콜리가 악의 없이 솔직한 질문을 해서 등장인물의 어려움을 은연중에 해소해 주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모습을 보다 보니 말이 주는 따스함이 무엇인지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이 작품을 하고 나서 말이 많아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부드러워졌다는 얘기도 듣고요. 콜리를 연기하면서 사람한테 상처를 치유 받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어서 그런지 마음이 많이 열렸나 봐요.
효정 처음 연습을 하면서, 연재의 결핍은 무엇인가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가정 환경에서 느끼는 결핍이 클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제 가족을 돌아봤어요. 연재가 그랬듯이, 저희 아버지도 제가 어린 나이에 돌아가셨고, 언니와 엄마, 저, 세 모녀가 같이 살았어요. 그러다 보니 극 중 연재가 느끼는 감정들이 제가 느끼는 것과 비슷한 점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언니와 엄마도 서로에게 토로하지 못한 각자의 외로움과 답답함이 있었을 거고요. <천 개의 파랑>을 통해서 저를 돌아보게 됐고, 엄마와 언니를 좀 더 이해하게 됐어요.
그럼 가족분들도 효정 씨의 <천 개의 파랑> 공연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드셨겠어요. 공연을 보고 어떤 이야기를 하시던가요.
효정 극 중 보경은 딸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데, 저희 엄마도 그러셨어요. 그래서 언니는 보경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엄마도 저런 마음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눈물이 났다고 하더라고요. 엄마도 과거 자신의 모습이 기억나시더래요. 하루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엉엉 우신 적이 있대요. 혼자 딸 둘을 책임져야 한다는 현실이 힘들어서요. 그 얘기를 듣고 정말 놀랐어요. 제게 저희 엄마는 강철과 같은 존재였거든요. 이번 작품을 통해 제가 몰랐던 엄마의 마음을 알 수 있게 되어서 참 감사해요.
사진: 서울예술단
<천 개의 파랑>에서 가장 마음이 동요하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진호 콜리가 투데이의 등에 올라타서 좋다, 아름답다, 행복이 이런 거구나 하는 마음을 느끼게 돼요. 그래서 아무래도 콜리로서는 투데이를 바라볼 때 감정이 가장 많이 동요되는 것 같아요. 콜리는 투데이를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할 정도로 투데이를 아꼈으니까요.
효정 은혜가 휠체어에서 벗어나 하늘을 날면서 자유를 만끽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연재가 꿈에 그리던 모습이 그 장면에서 펼쳐지는 것 같아서 마음이 따뜻해지더라고요. 또, 보경이 ’현재에서 행복을 느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해주는 장면도 마음에 남고요. 작품이 지닌 섬세하고 따뜻한 감성을 이번에 많이 발견하게 된 것 같아요.
두 사람은 살아가면서 어떤 순간에 행복을 느끼나요?
진호 <천 개의 파랑>이 주는 메시지 중 하나가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천 개의 파랑>을 만난 후로 행복이 무엇일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전 하루 일정을 마치고, 샤워를 한 다음 침대에 누울 때가 가장 행복하거든요? <천 개의 파랑> 덕분에 이런 일상 속 소소한 행복의 소중함을 더 크게 느낄 수 있는 힘이 생긴 것 같아요.
효정 전 어렸을 때는 ‘행복’이라는 감정을 스스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커가면서 가족, 친구 등 주변 사람들이 안겨주는 행복이 크다는 걸 더 많이 느껴요.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 그런 순간들이 제게는 행복이에요.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이솔희
뮤지컬 전문 매체 <더뮤지컬> 기자. 좋아하는 건 무대 위의 작고 완벽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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