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라파치니의 정원>은 나다니엘 호손의 단편소설 『라파치니의 딸』을 원작으로 한다. 소설은 독초를 연구하는 의사 라파치니와 ‘보호’를 명목으로 실험 대상이 되어 버린 그의 딸 베아트리체의 이야기를 담는다. 베아트리체는 세상과 단절된 라파치니의 세계에서 그 자체로 독이 되어 버렸다. 그는 낯선 이방인 지오반니를 만나 진짜 세상에 눈을 뜨지만, 결국 그 사랑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다. 미스터리한 소재는 『드라큘라』나 『프랑켄슈타인』을 떠오르게 하고, 선악에 관한 질문은 작품이 발표된 지 180년이 지난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구체적인 묘사보다는 상징성이 강한 소설의 스타일은 또 다른 창작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라파치니의 정원>은 원작의 빈틈을 인물의 구체적 욕망으로 채우며 뮤지컬만의 서사에 도전한다. 납득하기 어려운 라파치니의 독성 연구는 아내가 마녀사냥으로 희생되었다는 설정을 추가해 그를 향한 그리움과 인간에 대한 증오로 설명한다. 라파치니의 잘못된 실험을 세상에 알리는 발리오니에게서는 열등감과 정의감이, 유모이자 관리인인 리자베타에게서는 연민과 소유욕이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변화는 베아트리체다.
원작 소설 속 단 한 번도 집 밖을 벗어난 적 없는 베아트리체는 뮤지컬에서 정원 밖의 세상을 경험하며 주체성을 획득해 간다. 이러한 베아트리체의 변화는 언어를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베아트리체는 지오반니를 마주한 후 “저 어딘가 찾아야만 해”라고 노래한다. 그의 노래에는 ‘어딘가’, ‘이를 모를 감정’, ‘설명할 수 없어’, ‘채워지지 않는’ 같은 모호한 가사로 가득하다. 베아트리체에게는 낯선 세상과 감정을 표현할 언어가 없어서다. 순간의 감정을 무엇으로 부를 수 있는지, 얻은 게 없으니 잃은 게 무엇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처한 현실에 슬퍼하거나 이런 상태를 만든 이들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대신 적당한 협상으로 원하는 것을 쟁취해 낸다. 지오반니를 만난 뒤 베아트리체의 삶은 구체적인 감각들로 채워진다. ‘따뜻한’, ‘시들었었나 봐’, ‘별빛’, ‘가슴이 벅찰 때까지’ 같은 가사가 그의 상태를 묘사한다. 라파치니의 가치만을 강요받아 온 베아트리체는 스스로 감각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간다.
<라파치니의 정원>이 베아트리체의 선택을 통해 그에게서 ‘피해자’의 흔적을 지워나간다는 점 역시 인상적이다. 베아트리체는 엄마의 무덤과 그가 겪었던 혐오의 정체를 직접 경험하며 혼란 속에서 고민한다. 세상은 왜 누군가를 배제하는가, 인간의 증오는 어디서부터 비롯되는가, 무엇이 용서를 가로막는가. 베아트리체는 스스로 이런 결론을 내린다. 엄마의 죽음은 비극이었으나 그로 인한 분노가 폭력이어서는 안 된다. 이후 베아트리체는 기꺼이 아버지의 의견에 반기를 들고, 자신이 타인을 해쳤다는 객관적인 사실에서도 도망가지 않는다. 그러나 베아트리체의 비극은 그의 힘이 여전히 미비하다는 것에 있다.
원작 소설에서도 뮤지컬에서도 베아트리체는 결국 죽음에 이른다. 그러나 뮤지컬의 베아트리체는 죽음을 선택한다. 그의 죽음은 인물의 주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지만, 그것이 폭력에 대한 책임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라파치니는 인간과 사회를 증오하고, 딸을 위한다는 잘못된 부성으로 세상을 파괴한다. 모두를 지옥으로 몰아넣은 가해자는 그것이 새로운 삶임을 확신하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한다. 하지만 베아트리체의 경고는 여전히 무시된다. 그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것이 자신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 베아트리체는 폭력으로 인한 고통과 비극을 온전히 자신이 책임지기로 결정한다. 그는 라파치니와 접촉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라파치니 연구의 정수와도 같은 자신을 죽인다. 베아트리체의 죽음은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심판이며 구원인 셈이다.
베아트리체가 죽지 않고 지오반니, 발리오니와 함께 해독제를 연구해 노년의 삶까지 경험하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그러나 내가 상상한 베아트리체의 미래는 그의 선택보다 더 환상에 가까워 보인다. 현실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사건들과 반성 없이 책임 떠넘기기에 여념이 없는 가해자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책임이 유예되는 현실을 지속적으로 마주하며 분노가 냉소로, 다시 슬픔으로 이어진다.
베아트리체의 죽음이 던지는 질문이 깊고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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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진(공연 칼럼니스트)
엔터테인먼트 웹매거진 <매거진t>와 <텐아시아>, <아이즈>에서 10년 동안 콘텐츠 프로듀서와 공연 담당 기자로 일했다. 공연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무형의 생각을 무대라는 유형의 것으로 표현해내는 공연예술과 관객을 잇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