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평론가 미묘의 ‘언박싱 케이팝’ 칼럼이 격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최신 이슈부터 앨범 패키지에 담긴 이야기까지 지금 케이팝의 다채로움을 전합니다. |
샤이니의 15주년은 8번째 정규 앨범
'HARD'에는 샤이니의 시그니처 같은 유려한 화음의 자리가 그다지 없다. 사실 플레잉 타임의 상당부분이 비화성적인 루프에 기반해 있다. 또한, 굳이 말하자면 샤이니가 케이팝에서 대표적으로 랩을 하는 그룹은 아니라 할 것인데, 랩의 비중을 한껏 높이고 후렴도 랩으로 할당했다. 그것도 매우 1990년대 느낌의 랩으로. 뮤직비디오에서 디스토피아 세계 민병대의 신화적 인물 같은 장면들도 샤이니에게 익숙하게 기대한 모습은 아니다.(파시즘을 경계하는 내용을 표방하고 있음에도 'Everybody'(2013)에서 샤이니가, 수상쩍은 독해의 여지를 남기면서까지도, 게릴라가 아닌 제복남들이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다) 멤버들이 손에 든 캠을 향해 신나고 격렬하게 흔들어대는 장면은 또 어떤가.
그럼에도 재미있는 건, 일견 'NCT 127 곡이어야 했던 건 아닌가?'하고 갸우뚱하다가도, 어느새 '그래도 샤이니의 곡이구나' 하고 끄덕이게 되고야 만다는 점이다. 그건 고작 4마디씩 등장하는 프리코러스의 보컬이 주는 감질나는 안도감 때문은 아니다. 2절 끝에서 피아노와 스트링이 휩쓸며 혼란스러운 전환 끝에 도달하는 브리지에서 태민과 온유가 더없이 유려한, '샤이니다운' R&B 인서트를 펼쳐주기 때문도 아니다. 'SMP적인' 고음으로 마무리되는 이 대목이 이 곡의 백미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특히 뮤직비디오에서 가장 매력적인 감상을 제공하는 건 역시 후렴이다. 태민, 민호, 키의 순서로 각각 리드하는 세 번의 후렴은 매번 미니멀한 사운드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흐르다 후반에서 에너지를 끌어올린다. 멤버들의 서로 다른 음색과 퍼포먼스가 선명하게 제시된다. 병렬식으로, 마치 깔끔하게 그려놓은 표처럼.
그렇게 'HARD'는 샤이니의 것이 된다. 15년의 커리어 속에 청자에게 각인시키고, 또한 변신을 보여줬던 네 명의 음색과 캐릭터가 곡을 지배하고 있다. 그건 이유 모를 미로 속에서 샤이니의 목소리를 따라가는 여정 같기도 하다. 또는 이것이 샤이니에 관한 곡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래서 이 앨범 자체가, 멤버들 한 명, 한 명이 함께하는 존재로서의 샤이니를 피력하는 것만 같다.
패키징 역시 멤버들을 선명하게 강조한다. 특히 'Play Ver.'이 흥미롭다. 케이팝 패키징에서 보드게임 레퍼런스는 흔히 있었지만, 실제로 플레이 가능한 보드게임을 창작해서 패키지화한 것은 분명 이례적이다. 게임판 뒷면이 가사지로 기능하면서 아예 포토북마저 빠진, 정말 보드게임 패키지에 충실한 구성이다. 게임에는 각기 다른 이동 방식과 능력을 가진 다섯 명(!)이 참여한다. 룰북은 이 게임이 '상대의 기물을 잡아 승부'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케이팝의 멤버간 관계성이 드라마타이즈나 게임화를 추구할 때마다 미적지근하게 남거나 우회되고는 하던 '대결 구도'의 딜레마를 정면으로 언급하며 대안을 설계한 것도 재미있다.
인공적으로 설치된 자연물 세트가 펼치는 마치 표본 같은 질감으로 포토북이 구성된 'Runner Ver.'은 미로 속을 헤매는 멤버들을 보여준다. 'Play Ver.'의 보드게임 플레이를 이미지화한 것 같기도 하다. 게임은 앞을 알 수 없다. 그러나 'HARD'를 들으며 바라보는 이들의 모습은 불안해 보이지는 않는다. 지난 15년, 샤이니의 모든 것이 곧 산업이 뒤따라야만 하는 표준적 모델이나 대대적 유행의 시작이 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늘 가장 앞선 곳에서 걷고 있었고, 그 자체로 경탄을 일으키며 비전을 제공해온 것만은 사실이다. 'HARD'는 미로를 걸으며 길을 찾아내 온, 그것을 근거로 자신감에 찬 한 사람 한 사람을 다루며 그것이 샤이니라고 말하고 싶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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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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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