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주 수요일, <채널예스>에서 대한민국 검찰청의 귀퉁이에서 이끼처럼 자생하던 18년차 검사 정명원이 지방 소도시에서 일하며 만난 세상 사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
"검사가 되려면 어떤 공부를 해야 해요?"
검사와의 대화 시간에 청소년들이 묻는 단골 질문이다. 검사가 되기까지 아주 많은 공부를 했다. 일단은 법 공부다. 시골집에 가면 예전에 내가 공부했던 책들이 보관되어 있는데, 그걸 보고 있자면 나조차도 저 많은 걸 어떻게 다 공부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법서 아닌 책도 제법 읽었다. 중학생 때 다니던 복지 센터 도서관에서는 그곳 서가에 있는 문학책을 한 권도 빠짐없이 모조리 읽었다. 검사가 되어 세상의 범죄들을 가르고, 이해하고, 파헤쳐 나가기에 제법 준비가 되었다고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검사가 되어 막상 마주한 범죄의 세계는 이제까지 내가 취득한 지식의 세계와 다른 문법이 적용되는 곳이었다. 공부 좀 하고, 문학책 좀 읽고 시험 좀 치고 올라온 인간으로서는 미처 상상해보지 못한 형태의 삶들이 기록 안에 있었다. 그것들은 흥미롭기도 구태의연하기도 한 이야기들이었으나, 아주 많은 경우는 내가 잘 모르는 영역에 대한 것이었다. 이제 겨우 시험에 합격했을 뿐인 인간이 검사로서 세상의 이야기를 읽어내기 위해 알아야 하는 지식은 무궁무진했다. 지금까지 알고 있는 것은 기본일 뿐이고, 지금부터 진짜 게임의 시작이라는 듯, 새롭게 알아야 할 세계가 나날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초임 검사는 먼저, 도박의 룰을 알아야 했다. 타고난 모범생의 품성으로 고스톱조차 제대로 쳐 보지 않은 애송이는 '하이로', '도리짓고땡', '섯다'가 각각 무엇인지, 판돈이 어떻게 모이고 돌아가는지를 알아야 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유흥 주점의 생리와 문화를 알아야 했으며 그 세계에서 통용되는 각종 은어들도 알아야 했다. 이런 것도 모르냐고 핀잔을 들으며 책에는 나오지 않는 세상의 온갖 잡지식을 취득했다. 이제까지의 모범적인 삶이 보잘것없이 여겨졌다.
그 허둥대던 초임검사 시절의 한중간에서 만난 일명 '씨닭 사건'이란 것이 있다.
절도 사건이었는데, 어떤 이가 키우는 닭 한 마리를 도둑맞았다는 것이다. 범인은 금방 추적되어 잡혔다. 경찰이 얼마나 기민했는지, 범인은 닭을 잡아 털을 뽑고 먹기 위해 솥에 넣고 끓이다가 잠시 잠이 든 사이 검거되었다. 애써 훔친 닭을 다리 한쪽도 먹어보지도 못하고 잡힌 것이다. 기록에는 먹음직스럽게 푹 삶긴 닭 한 마리와 그 옆에서 잠이 덜 깬 얼굴을 하고 있는 범인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범인 입장에선 다소 불쌍하게 되었지만, 훔친 닭이 증거물로 떡 하니 있으니 자백할 수밖에 없었고, 사건은 쉽게 종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공소장을 써서 결재를 올렸는데 기록이 금방 반려되어 돌아왔다. 반려 취지를 적은 메모지에는 '닭값이 20만 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절도 사건에서는 절취품의 시가를 산정하여 적어야 한다. 이 사건에서는 범인이 닭 한 마리를 훔쳤으니 닭 한 마리의 시가를 적으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범인이 훔친 닭이 그냥 닭이 아니고 종계, 즉 씨닭이라는 것이다. 피해자는 그 닭이 얼마나 훌륭한 씨닭이었는지를 설파하며 그 닭의 시가는 못해도 20만 원은 된다고 주장했다.
"부장님, 그 닭이 그냥 닭이 아니고 씨닭이라 비싼 거랍니다."
"뭐라고, 씨닭?"
내 어설픈 발음이 욕처럼 들렸을까봐 다급히 더듬거리며 말을 보탰다.
"그러니까... 씨를 퍼트리는 닭이라는 뜻인데... 모든 닭의 아버지 같은... 종계라고도 하고요..."
부장님은 당황하는 나를 보며 잠시 재미있어하더니 다음 순간 표정을 단단히하며 말했다.
"정 검사님, 절취품인 닭이 씨닭이라 20만 원이라는 것은 피해자의 진술일 뿐인데, 그것을 공소장에 쓰려면 그 씨닭의 시가를 확인할 객관적 자료가 필요합니다. 검사의 공소장에 들어가는 한마디 한마디에는 모두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갑자기 존댓말을 쓴다는 건 지금 부장님이 진지하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내가 찾아야 하는 것은 씨닭의 시가를 확인할 객관적 자료라는 건데... 그런 걸 도대체 어디서 찾지? 그때까지 닭이라고는 양념반 후라이드반만 알았지 씨닭이라는 것이 따로 있는 줄도 몰랐던 꼬마 검사는 앞이 막막했다. 축산물 도매 시장과 양계 협회와 전국의 양계 농장에 전화를 걸어, 특별히 출중한 능력을 가진 씨닭의 거래가를 물었다. 반나절은 전화통을 붙들고 씨닭 씨닭 거렸다. 그러나 그 어느 곳에서도 대답을 듣지 못했다. 모두들 씨닭 같은 것은 유통하지 않으며 그래서 시가를 알지 못한다고 했다.
너는 검사가 되어 닭값 하나 특정하지 못하느냐고 혼이 날 것을 생각하니 잠도 오지 않았다. 도대체, 피고인이 털을 다 뽑고 삶아 버린 씨닭의 객관적 가치는 얼마일까, 그걸 누구한테 물어 어떻게 특정할 수 있을까. 그것은 정말이지 내가 모르는 세계였다. 하루 종일 닭 생각을 했다. 좋아하던 치킨을 마음 편히 먹을 수도 없었다.
"저는 아무래도 검사로서의 자질이 부족한가 봐요..."
며칠이 지나도록 씨닭의 값을 특정하지 못하고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을 때, 선배 검사가 다가와 한 수 가르쳐 준다는 듯 조용히 말했다.
"그럴 때는 그냥 '시가 불상'이라고 쓰면 되는 거야."
아, 진짜! 이 사람들이... 그런 것이라면 진작 알려주지. 역시 이 바닥엔 알아야 할 것투성이였다.
아무튼 그 일을 계기로 나는 세상에는 다양한 닭들이 있으며, 닭마다 다른 유통 구조와 시가가 있고, 양계 협회에서는 씨닭의 값을 모르고, 검사란 이런 것조차 객관적인 자료로 확인해야 하는 존재이며, 해도 해도 모르겠는 때는 모르겠다고 쓰는 방법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검사란 이렇듯 세상에 분명히 존재하나, 좀처럼 확인하기 어려운 것들을 알아내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골머리를 앓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애송이 검사의 가슴에 두렵고도 뻐근한 무엇으로 차올랐다.
그 이후로도 내가 새로 알게 된 것들은 무수히 많다. 검사가 되지 않았다면 굳이 들여다보지 않았을 세상에 대한 것들이다. 지구별에 와서 한번 살다 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이 세계의 구성 요소에 대해 최대한 많은 것을 알아가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검사라는 직업이 꽤나 적합하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검사 생활 18년, 이제 제법 세상의 구성 요소에 대해 알게 되었냐고 물으면 그건 또 아니다.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뿐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알지 못하는 문법의 일들이 세상 어디선가 태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세상은 그 가치를 특정할 수 없는 상태로 무수히 씨를 뿌리는 씨닭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이런 씨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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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원(대구지방검찰청 상주지청 검사(지청장))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을 썼다. 대한민국 검찰청의 귀퉁이에서 이끼처럼 자생하던 18년차 검사가 지방 소도시에서 일하며 만난 세상 사람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다.
jmpark26
2023.06.22
7화도 역시 기다린 보람있게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씨닭~씨닭~씨~~~닭 하면서요..^^
8화는 또 어떤 재미난 얘기를 들려주실지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