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오랜만에 컴백한 아이돌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다. 요즘 음악 방송을 하러 가면 대기실 복도마다 챌린지 찍는 그룹으로 인산인해라는 말이다. 특정 미션에 도전한 사진이나 영상을 SNS에 올려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챌린지 문화가 케이팝 필수 요소가 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보는 음악으로서의 다채로운 매력은 물론 대중이 가지고 노는 데 최적화되어 있는 케이팝의 특징은 챌린지라는 시대의 새로운 부름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파트너였다. 여러 호흡으로 분절되며 진행되는 독특한 곡 구성, 신곡이 나오면 어딜 가도 꼭 소개해야 하는 포인트 안무,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중독성 있는 후렴구에 대한 집착까지, 케이팝은 챌린지 문화가 탄생하기 전부터 이미 챌린지와 가까워지기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물론 가까워진다고 모두가 행복해질 리는 없다. 케이팝과 챌린지는 기본 상성이 맞는 좋은 파트너였지만, 행복을 찾는 건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심지어 이제 막 시작된 유행이니만큼 성공 사례를 분석할 만한 객관적인 메타 데이터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데도 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전부를 거는 데 이미 익숙한 케이팝은 주저하지 않았다. 신곡과 챌린지는 세트 상품이 되었다. 틱톡을 비롯한 쇼츠, 릴스 같은 숏폼 콘텐츠가 유행을 타면서 이러한 흐름에 더욱 가속도가 붙었다. 이제 챌린지는 기본 중의 기본, 여기에 화제성을 위한 인맥 총동원과 챌린지 품앗이까지 일상화되었다. 케이팝신 내부에서 챌린지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도 이즈음이었다. 너도 하니 나도 하는 무의미한 챌린지 남발과 집착 속에 챌린지를 노린 음악과 안무에 대한 압박이 창작자들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주객이 전도된 게 아니냐는 말도 쏟아졌다. 그러나 누구도 챌린지를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포기하지 못했다. 1%의 가능성도, 네가 하면 나도 해야 하는 업계 공식도 여전했기 때문이다.
이채연의 'KNOCK 챌린지'는 이렇게 다소 계륵처럼 전락해 버린 케이팝 챌린지의 올바른 활용의 예로 기억될 만하다. 2018년 방송된 엠넷 서바이벌 프로그램 '프로듀스 48' 출신 그룹 아이즈원의 메인 댄서로 활동한 그는, 2021년 역시 엠넷의 댄스 크루 서바이벌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에 출연했다. 프로그램을 위해 만들어진 댄스 크루 '원트(WANT)'의 멤버로 출연자 가운데 유일한 아이돌 출신이라는 점이 큰 화제를 모았다. 열기는 긍정적이기도 부정적이기도 했다. 아이돌 중심이 아닌 서바이벌에 출연한 아이돌 출연자가 대부분 그렇듯, 굳이 받지 않아도 될 질타와 비난의 시선을 어렵게 지나 2022년 10월, 대망의 첫 솔로작
짧지 않은 시간 담금질을 거친 이채연의 안에 숨어 있던 불꽃 같은 에너지는 'KNOCK 챌린지'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한 일등 공신이다. 무려 10년 전인 2014년 SBS <케이팝스타 시즌3>에 함께 출연했던 동생 채령(ITZY)과 합을 맞춘 챌린지 영상이 대표적이다. 노래 제목 'KNOCK'을 떠올리게 하는 이채연의 귀여운 노크에 채령이 등장하며 시작되는 영상은 유튜브 기준 1천만 회에 가까운 조회수를 올리며 사랑받고 있다. 불과 20여 초에 비롯한 영상 속에는 춤과 끼, 노래로 대중 앞에 자신을 드러내 온 두 자매의 지난 시간과 넘치는 자신감이 흘러넘친다. 'KNOCK'의 안무가이자 <스우파>에서 같은 크루원으로 활약했던 로잘린과의 챌린지도 마찬가지다. "무조건 파워풀하게 만들어 달라"는 채연의 부탁에 따라 휘몰아치는 절도로 완성된 퍼포먼스는 챌린지 영상은 물론 두 사람의 안무 영상을 따로 편집한 팬들의 2차 창작 콘텐츠까지 인기를 얻을 정도다. 유명인과의 협업도, 누구나 따라 할만한 쉬운 동작도 없지만 'KNOCK 챌린지'는 20초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믿고 10년을 꾸준히 갈고 닦아온 한 사람의 근성과 재능. 채연의 'KNOCK' 챌린지를 보며 챌린지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상상해 본다. 노래는 챌린지 흥행에 힘입어 5월 초 현재 국내 주요 음원 차트 20위권까지 역주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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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하(대중음악평론가)
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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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