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언커먼 갤러리에서 『괜찮아, 그 길 끝에 행복이 기다릴 거야』를 펴낸 손미나 작가의 북토크가 열렸다. 손미나는 13권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아나운서이며 알랭 드 보통의 인생학교 교장, 허프포스트 코리아 편집인을 역임했고 현재는 유튜브 크리에이터까지 다양한 타이틀을 지니고 있다. 그중에서도 자신의 유학 생활을 기록한 『스페인, 너는 자유다』를 시작으로 스페인에 대한 애정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심어준 바 있다.
최근 펴낸 책 『괜찮아, 그 길 끝에 행복이 기다릴 거야』는 스페인에 대한 애정의 연장선에 놓인 것으로, 스페인에 위치한 800km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스스로 던진 질문과 대답을 사진과 글로 묶은 결과물이다. 그의 이번 북토크는 마치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순례자를 대하듯 여행의 빛나는 순간들, 삶에 대한 태도의 변화 등에 대해 진솔하게 터놓는 자리였다.
손미나 작가는 다사다난했던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3가지를 꼽았다. 첫 번째는 새벽 산행길에서 마주한 해돋이였고, 두 번째는 산티아고에서 만난 마음이 활짝 열린 사람들이었으며 마지막은 단순성이었다. 산티아고에서는 먹고 자고 걷는 단순한 활동만으로 삶이 충만하게 차오른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일상을 단순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했다.
독자와의 Q&A
작가님께서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뾰족한 마음과 상처가 잘 받는 마음을 버리고 오겠다고 하셨는데, 그런데도 버리지 못한 것이 있나요?
많이 있겠죠. 사실 산티아고에 한 번 갔다 와서 현자가 될 수는 없을 거예요. 말씀하신 두 가지 마음 외에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헤어 나오지 못한 슬픔을 두고 오고 싶었는데, 실제로 한결 나아진 것 같아요. 산티아고에 다녀온 이후의 마음가짐을 유지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서울'이라는 도시가 가진 에너지는 뭔가 계속 달리게 되는 경향이 있어서 가끔 스스로 브레이크를 좀 걸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연결을 위한 단절이라고 할 수 있겠죠.
산티아고로 떠나기 전에 따로 체력 보강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체력적으로 준비를 하고 떠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한 달 넘게 시간을 비워야 하니 그 전에 해야 할 것, 준비할 것이 너무 많더라고요. 주변 친구들 말로는 도봉산 세 번 갔다 오면 된다는데 (웃음) 제가 등산을 즐기지 않는 편이에요. 그래서 한 번 정도 아나운서 동생이 훈련을 시켜주겠다고 해서 관악산에 한 번 다녀왔어요. 다만 제가 걷는 것은 좋아해서 산티아고 길고 잘 걸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거의 등산처럼 오르막길이 많을 줄은 가기 전까지 몰랐어요. 만약 산티아고에 갈 준비를 하신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에게 아주 익숙해진 신발을 신으시라는 거예요. 딱딱한 등산화는 오히려 물집이 더 많이 잡힐 수 있으니 부드러운 트래킹화가 좋더라고요.
산티아고에 간다면 작가님처럼 한 달 정도가 적당할까요?
그건 정말 본인 마음이에요. 저는 앞으로 또 갈 생각인데요. 만약 지금보다 나이가 더 들어서 간다면, 하루에 걷는 양을 줄이고 여유롭게 3~4달 정도 다녀오고 싶어요. 실제로 그렇게 하시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시간적 여유를 갖고 산티아고에 가서 순례자들이 묵는 숙소 '알베르게'에서 젊은 사람들이 오면 밥도 사주고 그들의 이야기도 듣고요.(웃음) 또, 누군가는 순례길의 특정 구간만 반복해서 걷는 사람도 있,고 누군가는 매해 목표를 정해두고 조금씩 걷는 사람도 있어요. 대체로 순례길을 걷다가 다쳐서 돌아갔다가 내년에 다시 그 자리에서 걷기를 시작하는 사람도 봤어요. 대체로 산티아고의 멋진 풍경에 정신이 팔려서 보다가 넘어져서 다친 사람들이 많거든요.
작가님의 책 『내가 가는 길이 꽃길이다』를 보고 저의 육아 모토를 작가님의 아버지로 삼았을 만큼 인상 깊었어요. 이번에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힘겨운 순간에 아버지가 주셨던 신뢰가 작가님께 어떻게 작용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책에 담은 진실을 다 느끼신 것 같아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이번 산티아고 여정뿐만 아니라 제 인생 전반에 걸쳐 아버지는 엄청난 힘의 원천이에요. 이번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엘 카미노>를 보시면 벨기에의 젊은 여성 한 분이 등장해요. 그녀가 아버지 얘기를 하면서 둘이 껴안고 한참을 울었어요. 그녀의 어머니를 여읜 상처를 서로 보듬은 것도 있었죠. 우리가 산티아고에서 험난한 여정을 보낼 수 있던 것을 부모님의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이 세상 모든 부모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험한 세상에서 자기 아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을 늘 안고 살면서도, 동시에 아이가 여러 일을 스스로 해낼 수 있도록 믿고 힘을 실어줘야 하잖아요. 나이가 들어갈수록 저에게 무한한 신뢰를 주셨던 아버지께 점점 더 감사함을 느껴요.
저는 책을 읽다가 산티아고의 매력에 빠져서 하던 일을 그만두고 알베르게 호스트가 된 한국인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어요. 이번 여정에서 호스트, 식당 주인 외에 또다른 에피소드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저희는 그 알베르게에 한국인 호스트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갔어요. 여러 숙소 중에서도 깨끗한 알베르게를 찾아서 간 거였는데, 들어서자마자 수납장 한쪽에 신라면이 막 쌓여 있는 걸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나요. 제가 여쭤보니 한국인 여성 분이 운영하는 알베르게였고, 한국에서 유명 대기업의 광고 회사를 다니다가 산티아고 길을 걷고 나서 스페인 현지 사람과 같이 알베르게를 열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날은 비빔밥부터 시작해서 신라면 등 한국 음식을 소처럼 먹었어요.(웃음) 또, 어떤 숙소의 한 호스트에게 이곳에서의 삶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여쭤봤는데, 아직도 그 대답이 기억에 남아요. 좋은 직업을 두고 이곳에 정착했고, 이런 결과가 너무 당연하다는 대답이었죠. 산티아고 길을 걷고 나서 우리 삶이 얼마나 단순해질 수 있는지, 그 단순성 속에서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지 알게 됐다고요.
책 내용 중에서 "희망의 씨앗을 심는다"는 구절이 와 닿았어요. 작가님께서는 산티아고에 어떤 씨앗을 심고 오셨는지요?
눈에 보이는 씨앗도 있고 보이지 않는 것도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제가 한 알베르게의 메뉴를 한국어로 번역해 드린 건 눈에 보이는 씨앗일 것이고요. 산티아고 길에서 마주쳤던 수많은 사람들, 그들의 얘기를 각각 길게 듣지는 못했지만 그 만남을 통해서 제 가슴에 변화가 생긴 건 안 보이는 씨앗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또한,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을 담은 제 영화 <엘 카미노>와 이 신간의 독자들은 그곳에 등장한 다양한 사람들의 에피소드 중에서 자신과 닮은 점을 하나씩은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그들과 제가 나눈 대화를 통해 여러분들에게도 어떤 변화와 자극이 있겠죠.
*손미나 KBS 아나운서, 알랭 드 보통의 인생학교 서울 교장,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인, 여행 작가, 번역가, 소설가, 유튜브 크리에이터 등 수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2006년에 스페인 문화 홍보대사로 임명된 후 스페인과 한국을 잇는 민간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해온 손미나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23년에는 스페인 국왕 펠리페 6세에게 시민십자훈장을 받았다. 얼마 전에는 스페인어권 시청률 1위 프로그램인 스페인 공중파 방송 <국민의 거울>에 출연, 유창한 스페인어 인터뷰로 국내외에서 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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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경
프리랜스 에디터로 일하지만 시를 자주 쓰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