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중독자가 알려주는 일기의 모든 것
그냥 '불쑥불쑥 기록, '아무 때나 기록'이어도 좋아요. 누가 뭐라고 하나요? 자기 마음대로, 자기가 내키는 대로 하면 돼요. 살아간 흔적을 조금씩 남기는 것일 따름이에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3.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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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혜 작가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의 이경혜 작가가 50년째 150권이 넘는 일기장에 꾸준히 일기를 써 온 경험을 담은 첫 에세이집 『어느 날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를 출간했다. 소설가가 쓰는 일기는 어떤 일상을 기록하고 있을까? 한 달도 쓰기 힘든 일기를 어떻게 50년이나 꾸준히 일기를 쓸 수 있었을까? 이런 질문에 이경혜 작가는 일기를 날마다 써야 하는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이런 부담을 내려놓고 '거짓되지 않은 마음으로 진실하게 자기 이야기를 쓰는 글'이 일기라고 답한다. 나만의 기록 혹은 일기 쓰기를 결심해 봤다면 혹할 이경혜 작가의 일기 이야기를 만나보자!



50년이라는 시간 동안 150권이 넘는 일기장에 꾸준히 일기를 써 왔다는 말을 듣고 놀라움을 넘어 경이로웠어요. 어떻게 처음 일기를 쓰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처음 일기를 쓰게 된 건 '어느 날'부터였지요. 그전에도 물론 학교 숙제로 일기를 쓰고 있었지만 그건 제 마음에도 '일기'가 아니라 그냥 '숙제'였어요. 그러다 초등학교 6학년의 '어느 날', 어린이 신문에서 5년 동안 일기를 쭉 쓴 사람의 기사를 읽었어요. 5년이라니, 너무 굉장해 보였고, 그 사람이 부러웠어요. 그러면서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죠. '나도 그 사람처럼 일기를 꾸준히 써서, 이다음에 딸을 낳으면(저는 꼭 딸을 낳겠다고 결심하고 있었거든요) 그 딸의 나이에 맞춰 내가 그 나이에 쓴 일기를 보여 주는 거야' 하고요. 제가 좀 엉뚱하고 조숙한 문학소녀였어요. 딸에게 보일 일기니 온 마음을 다해 진실하게 적어야 된다고 비장하게 생각했지요. 그래서 학교에 내는 일기 숙제와 별도로 혼자 비밀 일기를 따로 쓰기 시작했어요.

150권이 넘는 일기를 종종 꺼내어 읽는다고요. 지나간 나의 기록들을 언제 꺼내어 읽는지, 읽으며 어떤 생각을 하시고 무얼 느끼는지 궁금해요.

일기는 언제든 읽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불쑥 꺼내 읽어요. 주로 손이 가는 대로 아무거나 꺼내 읽는데, 그럴 때마다 신기하게도 지금 내 마음이 가 있는 일들이 적힌 일기가 손에 잡혀요. 뭐, 어느 것이나 다 제 삶이니 연관이 있어서 그렇겠지만요. 읽으면서는 어떤 생각을 한다기보다 '그때로 확 돌아가 다시 사는 듯한 체험'을 주로 해요. 그러면서도 그때의 나보다 삶을 더 산 사람으로서 그 경험을 새로이 느끼고, 해석하게 되기도 하고요. 과거에는 몰랐던 내 속의 진짜 마음을 알게 되기도 하고, 그 경험이 뒷날 내 삶과 어떻게 연관이 되는지 깨닫게 되기도 하고요. 어떤 때는 일부러 특정한 날들을 찾아서 읽기도 해요. 문득 그리워져서 그러기도 하고, 현재 고민되는 문제들의 시초를 찾아서 그러기도 하고요. 그런가 하면 '3년 전 오늘 나는 어떤 나였지?' 하는 궁금증에 찾아 읽기도 하고... 한마디로 온갖 핑계를 대가며 일기를 읽고 있어요.

무려 150권이나 되는 일기장을 모으며 일어난 재밌는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아요.

결혼 초에, 지방에서 늦게 대학을 다니는 친구가 있어서 일기장을 싸들고 놀러 간 적이 있어요. 저는 일찍 결혼을 해서 그때 이미 몇 년째 결혼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한번 그 시간을 돌아보고 싶어서 결혼한 뒤의 일기장을 다 들고 갔던 거예요. 그런데 그 친구가 학교 친구들한테 그런 내 얘기를 했더니, 다들 '자살하려는 게 분명하다고 잘 살펴보라'고 진지하게 걱정을 한대서 웃음을 터뜨렸던 기억도 나네요. '일기장을 싸들고 어딘가로 가는 여자는 자살할 위험이 있다'는 인식이 있었던 때였어요. 

또, 중학교 때 담임 선생님이 절대로 읽지 않는다고, 단지 썼는지 안 썼는지만 검사하겠다고 해서 일기를 낸 일이 있어요. 그때는 일기가 숙제가 아니어서 이중 일기를 쓰지 않았고, 또 그 선생님을 마음 깊이 존경하고 있어서 망설이다가 그냥 냈지요. 그런데 우연히 교무실 앞을 지나가다가 선생님이 바로 내 일기를 읽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기억도 있어요.

새해마다 일기 쓰기에 도전하지만 하루나 일주일이라도 못 쓰면 실패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일기를 꼭 매일매일 쓰지 않아도 괜찮을까요?

당연하죠. '일기(日記)'라는 말 때문에 그런지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월기(月記)면 어떻고, 연기(年記)면 어때요? 그냥 '불쑥불쑥 기록, '아무 때나 기록'이어도 좋아요. 누가 뭐라고 하나요? 자기 마음대로, 자기가 내키는 대로 하면 돼요. 살아간 흔적을 조금씩 남기는 것일 따름이에요. 마음의 흔적이든, 생각의 흔적이든, 관계의 흔적이든, 일의 흔적이든. 일기장을 읽다 보면 적혀 있지 않은 날들은 그냥 날아가 버린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그렇다고 날마다 꼬박꼬박 써야만 좋은 건 아니에요. 

평생 세 번만 일기를 썼다 하더라도 거기에 자기 삶의 가장 핵심적인 것을 담을 수도 있지요. 그런 흔적조차 언젠가는 바람처럼 날아갈 거고요. 일기는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것'이에요. 일기에 무게를 느끼는 건 학교 다닐 때 숙제였던 부작용일 수도 있고, 일기가 무언가 좋은 역할을 한다는 — 반성을 통한 인격 수양, 기록을 통한 삶의 정리, 집필을 통한 문장력 증진 같은 — 생각 때문일 수도 있어요. 일기는 아무 역할도 안 해요. 적어도 그런 '역할'을 바라지 말아야 해요. 

저도 일기 쓰기의 좋은 점을 여럿 적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기를 써 보니 재미있고, 즐거웠다는 얘기일 뿐이에요. 물론, 결과적으로 좋은 영향을 끼치는 점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생각을 버려야 편하게 일기를 쓸 수 있어요. 일기는 그렇게 가볍고, 쓸모없고, 의미도 없는 놀이일 뿐이에요.



작가님은 "진실하게 쓰는 것이 일기의 전부"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자기 속의 진실만을 일기에 쓰는 걸 어려워해요. 누가 볼까 두렵고 부끄러운 마음이 많아서일 거예요.

'진실'은 '사실'하고는 좀 다르죠. 그래서 없는 일을 상상해서 써도 좋다고 말씀드리기도 했고요. 누가 보는 게 걱정되면 첫째는 안전하게 숨기는 장소를 확보해야 하지만, 그게 어렵다면 아예 허구 속에 숨을 수도 있어요. 소설이나 드라마처럼 전혀 다르게, 남의 얘기를 하는 것처럼 자기 이야기를 숨겨서 쓸 수도 있어요. 제 큰 아이는 고등학교 때 아예 자기만의 암호문을 만들어서 일기를 쓰더라고요. 그건 저로선 흉내 낼 수 없는 일이라 저는 그저 악착같이 숨겼어요. 남들이 상상할 수 없는 장소에 숨기려고 엄청나게 고민했지요. 나중엔 열쇠로 잠그는 일기장을 구입해서 편해졌고요. 인터넷에서 쓴다면 비공개로 하면 되니까 훨씬 쉽게 쓸 수도 있지요.

『어느 날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를 읽어 보면, 150권이나 일기를 쓴 작가님이 대단하게 느껴지면서도, '일기 쓰기, 나도 해볼만 한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바로 그거예요. 일기에 대한 부담을 없애 주는 것, 그게 제 목표였어요. 일기는 날마다 쓰지 않아도 된다, 공책이나 컴퓨터에 쓰지 않아도 된다, 좋은 문장이나 깨끗한 글씨로 쓰지 않아도 된다, 심지어는 사실을 적지 않아도 된다. 그냥 오늘 한 번 툭, 써 보시고, 3년 뒤에 생각나면 또 툭, 쓰셔도 저는 좋다고 생각해요. 저는 비밀 일기가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조차도 깨뜨려도 좋아요. SNS에 과장된 허세의 기록을 남겨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자신은 진실을 아니까 설사 그것이 세상을 조금 속이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에게는 뜻깊은 일기가 될 수 있어요. 나중에 돌아보면 자기가 왜 그렇게 행복한 척, 부유한 척 했던가 하는 진정한 이유를 알게 되고, 그렇게 산 한 시절을 돌아볼 수 있지요. 단지 그럴 경우엔 남에게 피해를 주는 면이 없는지 조심해야겠지요.

이 책을 읽고 일기 쓰기를 시작한 분들에게 꾸준히 이어갈 수 있도록 응원의 말 한마디 부탁드려요.

일단 마음에 꼭 드는 일기장을 마련해 보세요.(꼭 공책이 아니어도 돼요. 블로그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에 공개나 비공개로 공간을 마련해도 좋아요. 포스트잇 한 뭉치도 좋고, 관제엽서 한 묶음도 좋고, 녹음기라도 좋아요) 그런 다음 이렇게 마음먹으세요. 예를 들어 일기장이라면 '쓰고 싶을 때 띄엄띄엄 써서 평생 동안 이거 한 권이나 채워 보자!' 하고요. 일기장 한 권을 평생 동안 쓴다고 하면 마음에 부담이 없잖아요? 1년에 한 줄만 써도 좋고, 한 달에 한 장만 써도 좋은 거예요. 가볍게, 편하게, 마음 내킬 때만 쓰세요. 날짜를 걸러도 상관없고요. 글씨, 문장 엉망이어도 상관없어요. 일기의 주인이 여러분 자신이란 것만 꼭 기억하세요!



*이경혜

일기 쓰는 인류이며, 일기 중독자이다. 책을 비롯한 모든 종이, 바다를 비롯한 모든 물, 고양이를 비롯한 모든 동물, 산신령을 비롯한 모든 신, 만년필을 비롯한 모든 문구류, 폭풍을 비롯한 모든 바람, 바흐와 신해철을 비롯한 모든 음악가를 좋아한다.




어느 날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어느 날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경혜 저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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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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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혜

진주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교육과를 졸업했고,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에 「과거순례」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2001년 「마지막 박쥐 공주 미가야」로 어린이 단행본 부문 한국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같은 해 「우리 선생님이 최고야!」로 SBS 미디어 대상 그림책 번역 부문에 선정되었다. 그림책부터 소설까지 다양한 글을 쓰며, 불어와 영어로 된 책들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하고 있다. 이야기란 어떤 영혼이 작가의 몸을 통로로 삼아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믿으며 글을 쓴다. 『새를 사랑한 새장』, 『행복한 학교』, 『구렁덩덩 새 선비』, 『이래서 그렇대요』, 『용감한 리나』, 『사도 사우루스』, 『유명이와 무명이』, 『귀신 친구 하나 사귈래요?』,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그들이 떨어뜨린 것』 등을 썼다. 그 밖에 『심청이 무슨 효녀야?』, 『바보같이 잠만 자는 공주라니!』 등의 패러디 동화책을 썼고, 『가벼운 공주』, 『무릎딱지』, 『공룡 사진첩』 등을 번역했다. “어렸을 때 몹시 외로웠던 탓에 책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책이 아니었다면 괴상한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책의 은혜를 많이 입은 덕분에 은혜를 갚는 마음, 빚을 갚는 마음으로 글도 쓰고, 그림책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책 말고도 바다를 포함한 모든 물, 고양이를 포함한 모든 동물, 산신령을 포함한 모든 신, 만년필을 포함한 모든 문구류를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