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가 얼룩 개를 기른다고요? 정이현 소설가에게 어느 날 찾아온 강아지, 그 작은 돌봄과 애쓰는 마음을 연재합니다.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강아지, 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서로 적응해가는 이야기, <채널예스> 격주 월요일을 기대해주세요. |
동그랗고 하얀 털 뭉치 같았다. 눈도 채 뜨지 못한, 아주 어리고 작은 강아지였다. 안전하고 따뜻한 곳, 예를 들어 인큐베이터 같은 곳에 넣지 않으면 오늘 밤 당장 어떻게 되어버릴 것처럼 보였다.
"아, 어떻게 하니."
그런 말이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특별한 의미는 없었다. 보편적인 정도의 인류애를 지닌 인간의 발언일 뿐이었다. 물론 강아지 얘기라면 단칼에 자르던 내 평소 모습과 사뭇 달랐음을 인정한다. 아이들은 그것을 엄청난 청신호로 받아들였다. 오해의 시작이었다.
그들은 꿈에 부풀었다. 남편인 E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일찍부터 자신이 개라는 종과 몹시 가깝다고 주장해온 사람이었다. 미취학 시절부터 마당에서 개를 키웠는데, 여섯 살 무렵엔가 갑자기 집 안에서 실종된 자신이 개집에서 개밥을 나눠 먹고 있다가 발견된 적도 있다고 했다. 견종과의 친연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게 요점이었다. 이 집의 구성원 네 명 가운데 세 명, 무려 75%가 반려견 입양을 강력하게 원하고 있었다. 그들이 25%의 철벽에 생긴 얄따란 틈을 놓칠 리 없었다.
75%들은 날이 밝으면 보호소에 연락해 강아지를 데려올 수 있는지 묻기로 한 눈치였다. 그런데 다음 날, SNS에 새 피드가 올라왔다. 그 강아지의 입양 확정 공고였다. 다른 분이 데려간다고 했다. 너무나 다행이지만 한편으론 너무나 슬프다며 아이들이 울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서둘렀으면 우리와 함께 살 수 있었다는 거였다. 우리와 함께, 라니. 그게 누구지. 나는 멍하니 생각했다.
"울지 마. 우리 도움이 필요한 다른 강아지가 또 있을 거야."
E가 아이들을 달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긍정의 형태도 부정의 형태도 아닌 그저 침묵이었다. 75%가 '도움이 필요한 다른 강아지'를 찾아내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세상에는 그런 개들이 매우 많으니까.
이번에도 그 보호소의 다른 강아지였다. 역시 형제들은 다 입양이 결정되었고, 곧 혼자 남게 될 예정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눈앞에 들이미는 사진을 얼결에 보았다. 검은색과 흰색 털이 섞인 얼룩 강아지였다. 특별하달 것은 하나도 없는, 어릴 적 동네에서 많이 보았던 흔한 바둑이었다.
녀석의 보호소 시절 이름은 따로 있지만 이 글에서는 '바둑이'라고 부르고 싶다.
모든 존재에게는 사연이 있다. 바둑이에게도 그랬다. 3개월령 추정, 3킬로그램 추정. 입양 홍보 계정에 올라온 바둑이에 대한 짧은 설명 뒤에는 '추정'이라는 단어가 꼬리처럼 붙어 있었다. 인간이 모르는,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어떤 시간에서 도착했다는 의미인 것만 같았다. 바둑이는 수컷이었고, 험준한 명산 자락의 한 마을에서 모견과 남매들과 함께 있다가 발견되었다. 아마도 엄마는 산과 들을 떠돌아다니는 개였을 것이고, 아빠도 그랬으리라 추정할 수 있었다. 엄마는 흰털의 중소형 믹스견이고 아빠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유기견 보호소에 들어왔을 때 바둑이네 식구들의 건강 상태는 모두 양호했다고 한다. 특이점이라면 엄마를 포함한 네 마리의 생김새가 제각각이라는 것. 넷이 함께 찍은 사진을 봐도 서로 닮은 데라고는 없어 보이는 가족이었다.
남매들 사이의 유일한 여아이자 가장 작은 강아지가 제일 먼저 입양되어 떠났다. 그리고 두 번째 강아지도 이미 입양처가 확정되어 있었다. 우리 집 아이들이 한시라도 빨리 바둑이를 데려와야 한다고 난리인 이유였다. E가 보호소의 담당자와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일이 그렇게 쉽겠어, 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살면서 발등에 불 떨어진 줄도 모르고 있다가 큰일났던 경험이 한두 번도 아닌데 말이다.
"입양 신청서를 쓰면 바로 데려올 수 있다는데?"
아이들의 환호성이 내 귓가에 먹먹하게 부서졌다. 입양 과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렇게 걸릴 것 없이 진행되어도 되나 의아스러울 정도였다. 보호소 SNS에 새 피드가 올라왔다. 바둑이 사진에 '입양 확정'이라는 글씨가 박혀 있었다. 모든 존재에게는 사연이 있다. 그게 당연했다. 그렇지만 바둑이가 아니라 내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그것이 생판 남의 사연일 때와 그렇지 않을 때는 명백하게 달랐다. 나는 이미 나이가 많았고, 지금까지 맺어온 인연들로도 삶은 충분했다. 충분하고도 넘쳐서 자주 버거웠다. 버거워서 도망치고 싶은 날이 많았다.
내 탄식과는 무관하게 바둑이가 오는 날이 정해졌다. 며칠 뒤 이동 봉사자님이 네 시간 거리를 운전해 바둑이를 우리 집 앞까지 데려다준다고 했다. 통제할 수 없는 어떤 일 앞에서 다른 사람들은 맨 먼저 뭘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방공호에 숨으러 가듯 서점으로 달려간다. 우선 '개'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을 닥치는 대로 샀다.
강렬하게 이끌린 제목은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 된다』였음을 밝혀두며, 그 외에 구입한 책들의 목록은 『개의 마음을 읽는 법』, 『그 개는 정말 좋아서 꼬리를 흔들었을까?』, 『개,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우리 개 명견 만들기』, 『당신의 몸짓은 개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개와 나』 등등이다.
무심코 캐럴라인 냅의 『개와 나』를 펼쳤다가 화들짝 놀라서 닫았다. '나는 이 개를 사랑한다'라는 문장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종이 상자에 담긴 바둑이가 도착했다.
정현종 시인의 시 「방문객」을 처음 알게 된 건 오래전 누군가의 결혼식이었다고 기억한다. 주례를 맡은 분이 그 시를 낭송했다. 조금쯤 떨리는 음성으로, 나지막하게.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라고. 바둑이가 집에 온 첫 밤, 나는 그 시를 이렇게 고쳐 읽을 수밖에 없었다.
개가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개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중략)
_정현종, 『광휘의 속삭임』(문학과지성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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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소설가)
1972년 서울 출생으로 단편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2002년 제1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왔다. 이후 단편 「타인의 고독」으로 제5회 이효석문학상(2004)을, 단편 「삼풍백화점」으로 제51회 현대문학상(2006)을 수상했다. 작품집으로 『낭만적 사랑과 사회』『타인의 고독』(수상작품집) 『삼풍백화점』(수상작품집) 『달콤한 나의 도시』『오늘의 거짓말』『풍선』『작별』 등이 있다.
몽몽
2023.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