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휘 시인에게 김개미 시인이 묻다 - 『여름 아이』 인터뷰
한 작품 안에 '다정하고 발랄한 감성'과 '삶의 가혹함과 절망'을 함께 담아내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뜨끔하게 한 『여름 아이』는 동시 문학에 당당히 첫발을 내디딘 최휘 시인의 작품으로, 지금껏 본 적 없던 '선명하고 탄성도 높은 언어'로 가득 차 있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2.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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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휘 시인

제10회 문학동네동시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최휘 시인의 『여름 아이』가 출간되었다. 2012년 문학동네동시문학상이 시작된 이후 10년, 김개미, 김륭, 김준현 등 기수상자들이 동시단에서 주목할 만한 창작 활동을 이어가는 가운데, 독보적인 수상작으로 손꼽힐 또 한 권의 동시집이다. 

심사를 맡았던 김개미, 유강희, 이상교 시인은 "과장 없는, 그러나 충분히 드러난 아이의 천진함", "단선적이지 않고 심층적으로 대상을 파고드는 시선", "공들여 읽고 싶어지는 신선한 소재와 표현"을 이 동시집의 매력으로 짚어내며, 『여름 아이』를 145편의 응모작 중 대상작으로 건져 올렸다. 무엇보다 한 작품 안에 '다정하고 발랄한 감성'과 '삶의 가혹함과 절망'을 함께 담아내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뜨끔하게 한 『여름 아이』는 동시 문학에 당당히 첫발을 내디딘 최휘 시인의 작품으로, 지금껏 본 적 없던 '선명하고 탄성도 높은 언어'로 가득 차 있다.



첫 동시집 『여름 아이』로 문학동네동시문학상 대상을 수상하셨어요. 동시를 쓰기 전엔 시를 쓰셨다고 들었는데, 동시를 쓰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저는 시를 먼저 쓰기 시작했어요. 대학원에서 시를 공부하다 아동 문학에 관심이 생겨 교수님께 상의를 드렸는데, 교수님께서 시를 먼저 공부한 후에 아동 문학을 해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그때는 이해가 잘 안 되었지만, 우선은 시 쓰는 것이 재미있어서 시를 쓰고 시집도 내며 십 년 정도를 보냈어요.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잃어버렸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어느 순간 되살아나듯 동시가 다시 생각이 났어요. 그리고 동시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린이의 마음에 가닿는 것이 너무 어려웠어요. 이건 공부해서 될 일은 아닌 것 같았어요. 

어른인 제가 어린이의 마음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는 것이 모순이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그때의 나를 만나 보기로 했어요. 저는 여고 졸업 이후로 처음으로 고향을 찾아갔고,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어린 나를 만났어요. 참으로 아프고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고향에서 돌아온 저는 동시에 몰두하였어요. 동시는 아이디어나 문체의 섬세함만으로는 다가갈 수 없는 문학이며, 어린이라는 존재를 만나게 되면 희로애락의 모든 순간이 쾌활해지는 신비스러운 양면성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이렇게 하나하나 쓰다 보니 여기까지 걸어온 것 같아요.

『여름 아이』에는 다리가 아픈 아이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여름 아이』를 읽고 시인님이 용감한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동 문학에서는 무거운 소재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부모가 자녀에게 책을 사 주는데, 아무래도 밝은 내용으로 고르잖아요. 그럼에도 『여름 아이』를 써야겠다고 생각하신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이 동시집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궁금합니다.

아동 문학에서 피해야 할 소재는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어쩌면 잘 몰라서 용감했던 것도 같고요. 문학은 가장 낮은 곳의 이야기이며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그 아픈 것들을 하나하나 건져 올려 따듯한 이름을 붙여 주는 것이 문학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즐거운 소재는 읽고 나면 유쾌하지만, 무거운 소재는 읽고 나면 반드시 생각을 하게 만들잖아요. 

생각을 시작하면 이해를 해야 하고, 이해를 하게 되면 삶에 균열이 일어나거든요. 저는 진정성을 실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가장 적확한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퇴고에 오랜 시간을 들였습니다. 지금도 어두운 시간을 지나가고 있는 어린이들이 많을 거예요. 그런 어린이들을 한 편 한 편의 시로써 공감해 주고 위로해 주고 싶어요. 그렇게 어린이에게 편이 되어 주는 작가가 된다면 참 행복할 것 같아요.

'온몸에 빨강을 칠해 놓고', '하얀 구름 떼가 저수지 안에서 헤엄을 치고', '분홍이 금화당 유리창을 톡톡 두드리는' 등 리드미컬한 색감이 재미있는데요. '겨울 아이'가 아니라 왜 '여름 아이'인지 궁금합니다. 사계절 중에 왜 여름이죠?

이 시집은 한 아이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시간을 건너왔고 공간도 떠나왔지만 여전히 내 몸 속에 고스란히 살아 있는 원체험에 대한 기록이기도 해요. 어린 시절, 아침 일찍 복숭아 과수원 안으로 들어가면 다 익은 복숭아들이 여기저기 툭툭 떨어져 있었어요. 커다랗게 잘 익은 과육의 아랫부분에는 허옇게 곰팡이가 피어 있었지요. 그 복숭아를 만지면 흐물흐물하고 물컹물컹했어요. 밤새 피워 올린 곰팡이 냄새와 과육의 단내가 뒤섞여 야릇한 냄새가 훅 끼쳤어요. 어린 저는 그 복숭아들을 발로 툭툭 차며 걸었어요. 하루만 늦게 따도 물러 버리는 예민한 복숭아를 생각하면 골수염을 앓던 어린 나의 육체적 고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어요.

김개미 선생님의 해설 중 '여름'에 대해 쓰신 부분이 있는데 여름의 정확한 의미라고 생각했어요. 여름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무성해지는 계절이지만, 노동의 현장인 복숭아 과수원에는 혼자 복숭아뼈를 앓고 있는 아이가 있어요. 다디단 맛으로 익어 가던 과일들이 툭툭 떨어져 곰팡이를 피우는 것 또한 여름 그늘의 모습입니다. 생명들이 왕성한 계절에 성장의 고통을 겪는 아이는 '양지와 음지를 품은 여름이 키워 낸 여름 아이'라고 답변 드리고 싶어요.

시인님도 『여름 아이』에 나오는 아이처럼 골수염을 앓았던 거군요. 투병 중이었던 그 시절 그 아이, 혹은 지금도 아픈 시간을 건너고 있는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 주고 싶으세요? 그때 듣고 싶었는데 못 들었던 말이라든지, 해 보고 싶었는데 못 한 일이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아픈 시간을 건너는 아이들에게 쾌활함을 잃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쾌활함을 간직하다 보면 모든 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흐를 거라고요. 걷다 보면 알게 돼요. 인생은 공평해서 기쁨이 앞서기도 하고 슬픔이 앞서기도 한다는 걸요. 그러니 하루하루를 명랑하게 지내면 된다고 말해 주고 싶어요. 그리고 저는 어린 저에게 묻고 싶은 말도 듣고 싶은 말도 많았지만 이제는 없어요. 『여름 아이』를 쓰는 동안 다 해소가 된 것 같아요. 들추고 싶지 않았던 제 어린 시절이 자꾸 아름다워지고 있어요. 이것이 다 『여름 아이』를 만나면서 일어난 일입니다.



'온다'로 시작해서 '간다'로 끝나는 동시집 『여름 아이』. 해설을 쓰면서 여러 번 읽었는데, 처음에는 투병에 대한 동시집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읽을수록 시간에 대한 책이더라고요. 맞게 읽었나요? 결국, 시기 혹은 시점의 문제일 뿐 시간은 공평한 것 아닐까요?

'시간에 대한 책'이라는 말이 멋져서 '예'라고 대답할게요. 여름이라는 계절과 아픈 시절이 만나 여름 아이의 시간을 만들어 냈어요. 우리는 모두 시간 앞에 선 존재자들이잖아요. 어떤 사건과 마주치더라도 시간은 우리가 그것을 극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온다'로 시작해서 '간다'로 끝나는 흐름은 문학동네 편집부의 힘이었습니다. 순서나 배치의 효과를 극대화하여 '여름 아이'를 더 선명하게 표현해 주었습니다. 시간은 지나고 나서야 자신의 얼굴을 보여 주는 것 같아요. 우리는 그것을 추억이라고 부르지요. '여름 아이'를 소환할 수 있어서, 그때 그 시절로 가 볼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시간은 화살표처럼 앞을 향해 달리는 것이 아니었어요. 구불거리며 제각각의 무늬를 만들어 가는 것 같아요.

문학동네동시문학상이 벌써 10회를 맞았어요. 여러 문제작들이 출간됐지요. 수상하게 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어떠셨나요? 그때 저도 잠깐 통화를 했었는데 울먹이시는 것 같았어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세요? 새롭게 관심을 가지고 쓰시는 소재도 있을 텐데요. 

수상 소식 전화를 받았던 그날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12월 말이었는데 제 생에 기적이 일어난 순간이었습니다. 그해 봄, 여름, 가을이 머릿속에 환하게 스쳐갔어요, 온통 동시에 푹 빠져 살았던 시간이었어요. 기적이란 오랜 시간 성실하게 쓰며 살아가다 보면 어떤 지점에서 만나는 응답 같아요. 그 응답을 받고 많이 울었습니다. 올 한 해는 동시를 쓰기보다는 동시의 마음을 모으는 일에 집중하며 지냈습니다. '여름 아이'가 스스로 힘차게 걷기를 기원하기도 했고요. 또, 문학동네 편집부와 교정지를 주고받으며 보낸 시간도 소중했습니다. 작가로서 더 단단해지고 싶은 한 해였습니다. 새로운 주제에 대한 고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요. 어떤 세계에게 어떤 질문을 던질까, 내가 작가로서 쓰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고민을 하며 동시를 쓰고 있습니다. 이렇게 쓴 동시들이 한 줄에 꿰어지는 날을 기대하면서요.

마지막으로 모든 동시를 다 아끼시겠지만, 그래도 가장 애정하는 동시가 있다면 어떤 동시인지 소개해 주세요. 고양이와 한집에 살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저는 「묘안석 반지」를 가장 좋아해요. 그걸 읽으면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문이 열리는 것 같아요. 제가 고양이처럼 가볍고 유연한 존재가 되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요.

「여름, 비틀비틀」이라는 시를 요즘 애정하고 있어요. 동시집을 읽은 독자 분께서 전해 주신 이야기 때문인데요. 그분의 아버지는 병원 의사로부터 '술 담배를 끊으시면 몇 년 더 살 수 있고 안 그러면 일 년을 못 넘깁니다.'라는 말을 들었대요. 그러나 아버지는 "술이고 담배고 먹고 싶은 거 먹고 하고 싶은 거 하다 죽을라요."라고 대답하셨답니다. 그런 아버지를 지금껏 무책임하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 동시를 읽으며 "아버지는 자신의 죽음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 남겨진 자식들 걱정을 하며 '조금만... 더... 살게... 해주시오'라고 중얼거리지는 않으셨을까?" 생각하며 많이 울었다고 해요. 한 존재자로서의 아버지를 온전히 이해하게 된 거지요. 시간은 이렇게 우리를 상처의 그늘 속으로 데리고 갑니다. 그리고 상처와 마주서게 해요. 시간이 흐르고 어른이 된 우리는 상처가 삶의 필요충분조건이라는 걸 물리적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그분의 이야기를 듣고 저도 한참을 울었습니다. 함께 울어 주는 독자 한 명을 만난 것이 이 동시의 존재 이유가 되었습니다.



*최휘 (시인)

2012년 『시로여는세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여름 아이』로 제10회 문학동네동시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김개미 (인터뷰·정리)

2005년 『시와 반시』에 시를, 2010년 『창비어린이』에 동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어이없는 놈』으로 제1회 문학동네동시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여름 아이
여름 아이
최휘 글 | 김규아 그림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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