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집 『세 자매』 주영선 작가 인터뷰
어느 순간 처음의 단계로 돌아가 버리거나 불현듯 끝나버리는 실뜨기처럼, 주영선의 소설은 위태롭게 흔들리고 그렇기에 흥미롭게 전개된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2.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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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선 저자

상습적으로 가정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와 그것을 바라보는 '나', 거짓말로 서술자를 학교 폭력의 가해자로 만드는 '우혜'와 그로 인해 정신적인 충격을 받는 엄마, 자폐성 발달 장애를 진단 받은 딸을 꼭 껴안다가도 어디엔가 버리는 상상을 하는 '나'와 같이, 어딘가 기울고 삐뚤고 연약한 존재들이 이뤄내는 관계와 연대는 음울하고 우울한 담벼락을 닮아 있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기 다른 모습이라는 어떤 소설의 도입부처럼, 우리가 정서적으로 기대는 관계들이 『세 자매』에서 가지각색으로 각자에게 벽처럼 현전하는 모습은, 현실의 우리가 서로에게 남긴 상처나 흔적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어느 순간 처음의 단계로 돌아가 버리거나 불현듯 끝나버리는 실뜨기처럼, 주영선의 소설은 위태롭게 흔들리고 그렇기에 흥미롭게 전개된다.



작가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태백에서 태어나 강릉에서 38년째 살고 있어요. 20대 초반부터 글쓰기와는 무관한 직장에서 일하며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4년 뒤에 <문학수첩> 장편 공모에 당선되어 첫 책을 내게 되었죠. 5년 전부터 가족과 함께 지내는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작업실을 두고 단순한 삶을 살고 있어요. 여자 작가에게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버지니아 울프의 말이 제 젊은 날부터 각인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소설집 『세 자매』 속 다섯 편의 이야기에는 다양한 주제가 녹아있지만, 그중에서 공통점을 찾자면 모두 타인과 맺는 관계를 그려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작가님께서 지향하시는 관계의 모습이란 어떤 걸까요?

저는 우연한 관계에 호기심이 많아 낯선 곳의 사람들과 잘 지내는 편이에요. 비행기 옆자리의 타인과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할 때까지 쉬지 않고 대화했을 정도입니다. 그게 인연이 되어 그 친구는 정동진행 기차를 타고 저를 만나러 오기도 했고요. 저는 사람을 좋아해서 다른 사람이라면 피해갈 위험 앞에 그대로 서서 인간, 혹은 관계를 제 시각으로 바라봅니다. 처세나 전략이라기보다는 사람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에서 출발한 관계가 좋은 결실이 되길 바라고, 이게 제 관계에의 지향점입니다.

작가의 말에서 '문밖 어딘가에 있을 내 편'에게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편지를 쓴다'는 말씀이 인상적이었어요. 구체적으로 작가님께 소설이란 어떤 의미인지 들어보고 싶어요.

직장을 다닐 수밖에 없던 20대에는 산골에서 혼자 문을 열고, 일하고, 셔터를 내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어떤 날은 그런 삶 속에서 글을 쓰는 제 모습이 마치 먼 곳에 있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모습으로 느껴졌어요. 어느 날, 제 사무실 앞 계단에서 유명 소설가 분을 뵙게 됐어요. 문학상 심사를 위해 서울을 떠나 당분간 여기에 머물 요량이었는데, 나중에 듣기로 심사를 마치고 서울을 막 빠져나오면서 얼핏 원고에 있던 주소가 떠올라 서둘러 담당자에게 주소를 확인해 달라고 했대요. 우연히 그분이 방을 얻어놓은 마을과 가까운 곳에 당선자인 제가 살고 있었던 거죠. 그때부터 소설로 문밖 어딘가에 있는 내 편을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어요. 만약 그런 믿음이 없다면 '소설 쓰기'라는 쉽지 않은 노동과 일상에서의 소외를 극복하지 못했을 겁니다.

폭력에 담담하다 못해 무감해진 '윤수'나 친구의 거짓말에 삶이 흔들리는 '다미'와 같이 소설집 『세 자매』 속에는 다른 이에게 상처받은 존재들이 빈번히 등장하는데요. 혹시 이 중 특별히 애착이 있는 인물과 그 이유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데스 레시피」의 '윤수', 「내 이웃의 하나뿐인 존재」의 '다미'는 모두 제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두 인물 모두에게 큰 애착을 가지고 있어요. 덧붙여 말하자면, 질문에서 말씀하신 '거짓말에 삶이 흔들리는 상황'에 이제는 다른 관점으로 접근해 보고 싶습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고 대상을 가리는 걸 보면, 거기에 휘말리는 사람은 피해자가 아니라 같은 부류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거짓말을 잘하는 게 능력으로 인정받고 또 추종자들도 있는 세계를 알아보고 싶어요.

귀꽃에서 '다른 세계에의 진입은 모멸감과 패배감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라는 문장이 기억에 남았어요. 사람에 대한 애정과 경멸이 동시에 느껴지는 느낌이랄까요. 이 문장이 쓰이게 된 작가님의 경험이나 생각이 궁금합니다.

경험, 있죠(웃음). 아이 둘을 키우고 직장생활을 하며 등단을 하고 40대에 책 몇 권을 내게 됐어요. 목욕탕에 갈 때도 책을 비닐에 넣어 탕에서 읽을 정도로 시간을 쪼개어 살았죠. 그러면서 간혹 예술가나,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분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기회가 있었고, 기꺼이 어울렸어요. 왜냐하면 제가 가고자 했으나 가지 못한 세계에 산 그분들과 교류하고 싶었기 때문이죠. 제게 그분들은 젊은 날 부모에게 경제적 지원을 해도 되지 않는, 저보다 우월한 조건에서 자신만의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런 경험으로 「귀꽃」을 구상했다고 봐도 될 것 같아요.

작품을 읽다보면 작가님의 독서 취향이 곳곳에서 발견되는 것 같아요. 특별히 애정하시는 장르나 작가가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세요.

장르를 특별히 가리지는 않고, 읽고자 하는 모든 책을 사서 개인 서재에 꽂아두고 틈틈이 읽는 편이에요. 작가의 말에도 언급했듯, 프랑스 소설가 아니 에르노의 작품은 국내에 번역된 모든 작품을 노벨 문학상을 받기 전에 이미 애독하고 구판으로 소장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입주 작가 레지던스에서 만난 번역가를 통해 니콜 크라우스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고, 『사랑의 역사』라는 책에서 울컥함을 여러 번 느꼈어요. 그 외에도 산도르 마라이의 『열정』,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무라카미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틈이 날 때마다 다시 읽곤 하는 책이에요.

『세 자매』를 만나볼 독자 분들에게 한 말씀 하신다면요?

문밖을 나가도 갈 곳 없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에서 출발해서,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싶은 열망으로 쓴 작품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어려운 상황이지만 이 겨울에 제 책이 조금이라도 온기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



*주영선

2008년 장편 소설 「아웃」으로 제6회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았다. 『모슬린 장갑』, 『얼음왕국』 , 『최고운전』, 『우리가 사는 이곳이 눈 내리는 레일 위라면』을 썼다.




세 자매
세 자매
주영선 저
문학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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