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잠들지 못할까?" 초딩 귀신의 저세상 판타지
가장 큰 잘못은 어른들에게 있죠. 그래서 아이들에게 많이 미안해요. 그럼에도 바랄 수 있다면 아이들만은 다른 사람과 경쟁하기보다 나 자신에게 눈을 돌렸으면 좋겠어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2.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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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혜영 동화 작가

동화 작가 백혜영의 신작 『스으읍 스읍 잠 먹는 귀신』이 출간과 동시에 2022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장편 동화 부문에 선정되었다. 어린이의 마음을 유쾌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들려주는 백혜영 작가가 이번에는 삶과 죽음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이야기를 아이들의 시선에서 '잠'과 '귀신'이라는 소재로 풀어냈다. 치열한 삶 속에서 잠 못 이루는 인물들의 모습은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사는지 돌아보고, 미처 몰랐던 가족의 사랑을 너무 늦지 않게 전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스으읍 스읍 잠 먹는 귀신』이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보이는 반응은 '독특하다'였습니다. 이 작품은 처음 동화를 쓰기 시작할 때 떠오른 이야기라고 하셨는데요, 잠귀, 잠밥, 잠빚 등의 소재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7년 전 이맘때였어요. 밤늦게 거리를 걷는데 불 켜진 곳이 정말 많더라고요. 24시간 식당, 편의점, 카페, 빨래방, 독서실까지... 평소 자주 보던 풍경이었는데, 그날은 새삼 낯설고 이상해 보였어요. 모두 잠들 시간에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깨어 있어야 하지? 의문이 든 거예요. 그때 문득 '인간의 잠을 먹어 치우는 귀신이 있는 것 아닐까'하는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죠. 그래서 언젠가 '잠 먹는 귀신'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렇게 마음속에 이야기 씨앗을 심어 놓았는데, 어느 날 '잠빚'이라는 말이 실제로 쓰인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순간 머릿속에 전구가 딸깍 켜졌어요. 먹고살기 위해 바쁜 어른들, 늦게까지 공부에 내몰리는 아이들은 대체 얼마나 많은 잠빚을 질까 싶더라고요. 그러면서 잠 먹는 귀신이 단순히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살아 있을 때 잠을 못 잔 사람이 죽어서 되는 안타까운 존재로 바뀌었죠. 잠으로 빚을 졌으니 잠으로 갚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잠을 밥처럼 먹는다는 뜻의 '잠밥'이란 말도 만들었어요. 죽음 이후의 세계를 제 나름대로 상상해 쓴 거라 독자들 반응이 궁금했는데, 많은 분이 독특하다고 말씀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동화의 주제는 꽤 무게가 있었습니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 택배 기사까지 잠을 못 이루는 사람들이 나오는데요. 문득 우리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먹고살기 위해 잠을 소홀히 여기는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면서 놓치는 소중한 가치는 무엇일까요?

책을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는 독자들 서평을 봤어요. 아마도 지금의 나, 혹은 우리 이웃의 모습과 이야기 속 인물들이 겹쳐 보였기 때문 아닐까 싶어요. 나이도, 성별도, 하는 일도 다 다르지만 비슷한 현실을 공유하고 있는 거죠. 우리는 종종 눈에 보이는 걸 얻기 위해 정작 소중한 걸 잃어버릴 때가 있는 것 같아요. 대표적으로 아이들에게는 100점짜리 성적표, 어른들에게는 돈이 될 텐데요. 이런 걸 얻기 위해 잠은 물론이고, 사랑하는 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포기하고, 때로 양심을 내던질 때도 있죠. 오로지 내 이익만 생각하며 주변은 돌아보지 않기도 하고요. 이러한 현실을 보면 많이 안타까워요. 우리 삶에서 눈에 보이는 것 못지않게 보이지 않는 가치도 무척 중요하니까요. 그래서 물질만을 쫓기보다 가족 간의 사랑, 친구와의 우정, 이웃과의 연대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들이 더 소중하게 지켜졌으면 좋겠어요.

생동감 있는 캐릭터에 비현실적인 공간을 설정하고 역동적인 전개로 이승과 저승의 이야기를 다룬 점이 돋보였습니다. TV 시리즈나 영화가 떠오르기도 했는데요. 어린이 동화로 풀어내기에는 쉽지 않으셨을 텐데, 그런 점에서 고민되는 부분은 없으셨나요?

아이들이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을까, 과연 관심이 있을까, 하는 점이 고민이었어요. 죽음은 아이들에게는 너무 먼 미래의 일로 느껴질 테니까요. 게다가 이야기에서 다루는 주제 역시 조금 무거울 수 있다는 걱정도 들었고요. 그래서 아이들이 이야기에 푹 빠져 영상을 보듯 책을 읽을 수 있게 신경 썼어요. 귀신이라는 소재는 물론이고, 잠귀 대왕과 현감, 악귀, 반인반호(반은 인간, 반은 호랑이)로 묘사한 악귀 사냥꾼 등 새로우면서도 재미있는 캐릭터를 많이 만들어 낸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죠. 또, 빠르게 사건을 전개하고 읽으면서 이미지가 생생하게 떠오를 수 있게 쓰려고 노력했어요.

이야기 중간중간 여동생과 엄마, 가족 이야기가 나올 때는 울컥하게 되는데요. 작가님에게 있어서 가족이란 어떤 의미와 존재인가요?

'제 인생의 0순위'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동화 쓰는 일도 저에게 중요하지만 가족의 건강, 그리고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더 소중하거든요. 제가 서른 살 때 아버지께서 갑자기 돌아가셔서 가족의 소중함을 더 일찍 깨달은 것 같기도 해요. '옆에 있을 때 더 잘할걸'하고 나중에 후회해 봤자 소용없다는 걸 아니까요. 책 속에서 어린 딸을 떠나보내고 뒤늦게 자기 행동을 후회하는 혜령이 엄마처럼요. 무엇보다 제가 이렇게 계속 행복하게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가족의 응원과 지지 덕분입니다.


『스으읍 스읍 잠 먹는 귀신』 본문 132~133p.

작가님은 지금 삶에서 부족한 게 뭐라고 생각하세요? 혹시 목표를 위해 포기하는 무언가가 있나요? 그래서 주인공 혜령이처럼 죽어서 빚을 지고 귀신이 된다면 무슨 귀신이 될 것 같다는 상상을 해 보셨나요?

제 삶에 부족한 걸 꼽자면 '규칙적인 생활'과 '건강'이에요. 직장인처럼 날마다 출퇴근하는 직업이 아니다 보니 아무래도 생활이 불규칙해질 때가 많아요. 워낙 게으르고 움직이는 걸 귀찮아해서 낮에 혼자 있으면 끼니조차 안 챙겨 먹을 때도 있어요. 운동도 잘 안 하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건강에 대한 걱정도 많죠. 이런 걸 미뤄 볼 때 저는 죽어서 '재깍재깍 움직이는 귀신'이 되지 않을까요? 살아 있는 동안 안 움직이고 게으르게 생활했으니 죽어서 그동안 못다 한 활동량을 다 채워야 저승에 갈 수 있는 거죠. 어후,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네요.(웃음)

편집자로 일하다 작가가 되셨다는 이력이 눈에 띕니다. 편집자로서 책을 만들 때와 작가로서 책을 쓸 때는 많이 다를 것 같은데요. 더 좋거나 힘든 점이 있다면, 또는 어린이책을 보는 시선이 어떻게 달라지셨는지 궁금합니다.

어린이 잡지 기자를 하면서 동화 작가의 꿈을 키우다가 책을 만드는 과정이 궁금해져서 편집자로 일했는데요. 2년 좀 넘게 했으니 그리 오래 경험한 건 아니지만 어린이책을 만드는 동안 참 재미있었어요. 좋아하는 작가의 원고를 맨 처음 받아 본다는 설렘, 그 원고가 더 빛날 수 있게 애쓰는 모든 과정이 신기하면서도 뿌듯했거든요. 남의 원고를 검토하는 기쁨이 컸지만, 동시에 제가 직접 쓰고 싶다는 마음도 더 커졌어요.

작가가 돼서 좋은 점은 제가 상상한 이야기를 오롯이, 내 손으로 직접 써서 책으로 낼 수 있다는 점이에요. 물론, 글을 완성하는 것도 온전히 제 몫이기 때문에 더 부담되고 힘들기도 하지만요. 또, 편집자로 일할 때는 책으로 낼 만한지, 아닌지 비판적인 눈으로 원고를 봤다면 지금은 모든 작가가 쓴 글이 다 소중하고 재미있게 느껴져요. 그 작품을 쓰기 위해 얼마나 애썼을지 잘 아니까요. 글에 정답은 없고, 저마다의 장점이 있다는 생각을 작가가 된 뒤, 좀 더 많이 하고 있어요.

일찍부터 과도한 경쟁에 내몰리는 요즘, 어린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한 말씀 해 주세요.

우리는 어려서부터 늘 남과 비교하고, 경쟁하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라는 것 같아요. 학교에 들어가면 그런 비교가 더 심해지고, 자연스레 경쟁에 내몰리죠. 누구네 집 딸은 영어를 원어민처럼 한다더라, 누구네 집 아들은 수학 경시대회에서 상을 받았다더라... 그런 말속에는 "그런데 너는 도대체 뭐 하고 있니?"라는 말이 숨어 있어요. 굳이 뒷말을 덧붙이지 않아도 아이들 역시 느낄 거예요.

그런 면에서 가장 큰 잘못은 어른들에게 있죠. 그래서 아이들에게 많이 미안해요. 그럼에도 바랄 수 있다면 아이들만은 다른 사람과 경쟁하기보다 나 자신에게 눈을 돌렸으면 좋겠어요.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나를 위로하고, 돌보는 거죠. 그리고 긴 인생에서 누가 잠깐 앞서고, 뒤서는 건 큰 의미가 없다는 걸 알고 나만의 속도로 인생을 꾸려 나가면 좋겠어요. 굳이 무언가와 경쟁해야 한다면 남이 아니라, 어제의 나보다 조금은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애썼으면 좋겠습니다.



*백혜영

경희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공부한 뒤 기자와 편집자로 일하다 작가가 됐다. 『귀신 쫓는 비형랑』으로 제10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동화부문 우수상을 받았고,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2022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사업에 선정됐다.




스으읍 스읍 잠 먹는 귀신
스으읍 스읍 잠 먹는 귀신
백혜영 글 | 박현주 그림
우리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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