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평론가 미묘의 ‘언박싱 케이팝’ 칼럼이 격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최신 이슈부터 앨범 패키지에 담긴 이야기까지 지금 케이팝의 다채로움을 전합니다. |
트리플에스(tripleS)의 첫 유닛 Acid Angel of Asia(이하 'AAA')의 타이틀곡 'Generation'과 그 뮤직비디오에서 중점이 되는 두 가지 주제는 메타버스와 세대론이다. 가사에서도 이미 '스와이프', '틱톡' 등이 언급된다. '거짓도 Healing', '나를 비춘 넌 Mirror' 같은 대목은 휴대폰을 매개로 한 가상 세계가 '진짜'이든 아니든 '자신을 반영한 또 다른 자아'의 활동 공간임을 말하고, 그것이 이 '세대'의 것이라고 은은하게 주장한다.
트리플에스의 전용 어플인 '코스모'에는 독점 공개 사진이나 아티스트와의 소통, 팬 이벤트 등의 기능과 함께, 포토카드('오브젝트'라는 표현을 쓴다) 컬렉팅이 포함됐다. 음반 구매시 포함된 포토카드를 이곳에 등록하면 자신의 컬렉션을 시각화해 보여준다. 카드 컬렉팅을 핵심으로 하는 모바일 게임과도 같은 UX다. 포토 카드에 '클래스'가 있다는 점도, '레어', '슈퍼 레어' 등으로 분류되는 게임상의 수집품 같은 인상을 준다. 예약 판매 특전 외에도, 기념할 일이 있을 때 발행되는 '오브젝트' 등 가상 포토 카드도 지급하는 모양이다. 오래 활동한 팬들에게 주는 보너스이자, 실물 수집의 차원이던 포토 카드에 일종의 가상성을 더하는 장치다.
또한, 팬이 포인트를 획득해 새 유닛 구성에 투표할 수 있다고 한다. 트리플에스는 24인으로 구성된 그룹 안에서 유닛을 구성해 각기 한시적으로 활동한다고 하니 말이다. 가상 자산을 통해 팬이 아티스트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케이팝 산업에서 황금 열쇠처럼 여겨져 온 몇 가지 것들, 그러니까 활발한 소통, 플랫폼 사업, 팬 참여, 메타버스, NFT 같은 개념들을 그럴싸하게 하나로 꿰어낸 모양새다. 가만히 들여다 보면 그리 어렵지만은 않은 기획이지만, 마감에 쫓기는 필자처럼 정신 없는 와중에 보면 조금 겁에 질리기도 한다는 점은 조금 아쉽다.
사실 'Generation' 뮤직비디오에서 가상 세계는 그렇게까지 두드러지지 않는다. 초반부 플롯은 숨 막히는 학교를 벗어나 분방한 옷을 입고 모바일 어플을 사용하며 거리로 나가 춤추는 AAA를 보여준다. 케이팝의 시각 언어 세계에서 모바일 동영상과 필터, 스티커 등은 이미 '기성세대와는 다른 우리'의 표상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이제 와서 가상 세계의 기호로 사용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뮤직비디오는 2절 후렴 후반에서야 현실과 유리된 공간으로 진입하는데, 그마저 검은 날개가 배경으로 자리한 '무대'로 표현된다. 역시나, 스튜디오 배경이 깨끗하게 지워진 무대 공간은 케이팝 뮤직비디오에서 너무나 흔한 것이라 '와, 가상 세계 속 아이돌이네!'하는 감상을 주지는 않는다. 물론 가상 세계를 전면에 내세울 필요는 없지만, 표방하려는 의지가 엿보이는 데 비해 효과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재미있는 것은 세대론이다. 메타버스가 케이팝에서 최근의 붐이라면, 세대론은 1세대부터 이어진 고전 중의 고전 아이템이다. '어른들은 몰라요', '우리는 달라요' 같은 내용을 가사로, 뮤직비디오로 얼마나 많이 접해 왔나. 그런데 AAA는 그 판타지적 과장에서 뛰쳐나와 가상 세계를 눈부시게 탐험하지는 않는다. 아파트 외벽 너머 골목길이나 스크린 도어의 시가 선명하게 보이는 7호선 전철역에서 휴대폰을 설치하고 춤추다 도망친다. 엘리베이터 속 매우 평범한 직장인 무리도 이를테면 케이팝에서 흔히 보이는 디스토피아적 풍경으로서의 검은 수트 군단과 아득히도 다르다. (중반부에 등장하는 다락방이 바이닐과 CD, 영국 밴드 오아시스의 포스터, 바비 인형, 재봉틀, 레트로 풍의 TV, 천장형 선풍기 등의 오브제로 가득한 것도, 과거의 것들이 혼재한 세계로서의 현실을 케이팝적인 팬시함으로 묘사하는 듯하다)
그렇다 보니 이들은 스터드와 신호탄으로 무장하고 봉기를 일으키거나, '신경 쓰지 않아'라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모습보다는, 애교스러울 정도로 장난끼 어린 표정으로 사과하고 물러서는 무해한 인물로 선보여진다.(데뷔부터 '민폐돌'로 보일 수야 없으니) 그러나 '어차피 이해받지 못한다, 우리끼리 즐거우면 그만'이라는 주제 의식만큼은 더 구체적으로 와닿는다.
더 '옆집 소녀'처럼 느껴질까? 그보다는, 현실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해프닝 같은 사건으로 묘사함으로써, 어플을 이용해 가상 세계를 경유하며 연결되는 팬-아티스트 관계 속 AAA를 보다 '있음직한 존재'로 자리하는 역할을 하는 듯하다. 역설적이지만 이것이 이 가상성을 더 강조하기도 한다. 휴대폰을 조작해 어플 속에서만 사건이 벌어질 때보다, 어플을 통해 어딘가의 화분에 물을 주거나 스타에게 선물을 배달할 때 그 초연결성이 더 실감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트리플에스의 첫 선을 보이는 플래그십 같은 의의가 있는 AAA다. 케이팝의 클리셰들을 조금은 비딱한 시선으로 가져오면서 새로운 시도를 선보이려는 의도가 역력히 엿보인다. 떠들썩한 사업 아이템인 메타버스나 NFT를 기획의 부가물보다는 기획의 근간에 접붙이는 점도 흥미롭고, 그것이 지나치게 복잡한 외형을 가져 진입 장벽을 높이는 일은 피하고자 살짝 톤다운 한 듯한 기색도 있다. 트리플에스는 이 산업에서 수없이 주장된 '새로운 세대'를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구현해내는 존재가 될까? 비트 위에서 흐드러지는 'La la la...' 리프레인이 우수와 낙천 사이에 걸쳐질 때면 질문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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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