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숲을 탐사하고 식물의 흔적을 기록하는 '초록 노동자' 허태임. 식물 분류학자인 그가 식물을 탐색하는 일상을 전합니다. |
2014년 봄이었던가. 한 다큐멘터리 감독이 DMZ자생식물원으로 날 찾아온 적이 있다. 이 소설 속 주인공이 혹시 당신 아니냐며 그는 내게 물었다. 그의 손에는 2010년에 나온 김훈의 소설책 『내 젊은 날의 숲』이 들려 있었다.
"정말 이곳이 실제로 있어서 너무 놀랐어요, 김훈 작가님이 국립 수목원 홍보 대사로 활동하던 시절에 비무장 지대의 수목원을 상상하고 소설을 썼다고 들었는데..."
다소 상기된 표정을 하며 그가 내게 책을 건네기 전까지, 나는 그 소설의 내용을 알지 못했다.
그에게 받은 책을 나는 식물원 초입의 호랑버들 아래에서 단번에 읽었다. 고개를 젖혀 나무를 올려다보며 소설이 꼭 이 호랑버들 같네, 생각했다. 민통선 안 국립수목원에 비정규직 세밀화 작가로 채용된 여주인공이 한 번의 사계절을 보내는 과정을 소설은 보여준다. 주인공의 아버지와 어머니, 수목원 연구실장 안요한, 소대장 김민수 중위, 이렇게 다소 단출한 등장인물의 설정이 내게는 마치 곧게 자란 나무의 외형처럼 단단해 보였다. 반면에 그들과의 관계와 얽힌 감정을 묘사하는 섬세한 문장을 읽을 때는 켜켜이 쌓인 나무의 내부, 나이테를 관찰하는 것만 같았다. 들여다보는 각도와 거리에 따라 때로는 느슨했다가 촘촘했다가 끈질기다가 처절하기도 한, 관다발이 이룩한 단면들 같은 그거. 특히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서로에게 스며드는 장면은 막 틔운 나무의 꽃눈처럼 환했고 지독하게 아름다웠다.
나는 식물 분류학을 전공했고, 지금은 경북 봉화에 있는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 일한다. 백두대간의 식물을 탐사하고 그곳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한 희귀식물에 대한 보전 연구를 담당한다. 이곳에 오기 전에 있었던 곳이 강원도 양구의 민간인 통제선 이북 지역에 위치한 국립 수목원의 분원, 국립DMZ자생식물원이다. 식물원의 연구원으로 비무장 지대에서 십 년의 절반을 살았다.
소설 속 여주인공은 정말이지 그때의 나와 너무 닮았다. 그곳의 유일한 여직원, 이십 대 비정규직, 선천적 내향인, 군인과의 교류, 식물 곁에서 보내는 나날들, 결국은 거길 떠나야 했던 것까지.
"하지만 제가 식물 세밀화가는 아니라서요..."
그가 나를 좀 찍어도 되느냐고 묻길래 나는 당황하면서 쭈뼛거렸다. 비무장 지대의 훼손되지 않은 생태를 기록하는 중인데 얼마간 따라다니며 내가 일하는 모습을 담고 싶다는 거였다. 업무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도 덧붙였다. 마침 개원을 앞두고 식물원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영상으로 남기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던 참이라 나도 그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렇게 비무장지대에서 감독과 나의 동행이 성사되었다.
강원도 고성에서 경기도 파주의 임진강까지 DMZ의 동단과 서단을 오가며 그 안에 어떤 종류의 식물이 사는지 일일이 밝히는 나의 그 길에 감독이 들어오니 어쩐지 전보다 덜 외로웠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지극히 원초적인, 화장실 때문이었다. 비무장 지대는 정원 20명 내외의 병사로 이루어진 소대들이 저마다의 구역을 관할한다. 그 당시만 해도 각 소대 어디서도 여군을 찾아볼 수가 없었고 그래서 당연하게도 여자 화장실이 없었다. 식물 탐사 중에 급한 일이라도 생기면 화장실 문 앞을 지켜주는 병사의 도움을 받아 허겁지겁 용무를 해결해야 했는데, 그 다큐 감독과 함께하고부터는 우리 여자 둘이 그 어려움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또 하나는 대중성과는 거리가 너무나 먼 나의 영화 취향을 공유할 상대가 생긴 것. 요르고스 란티모스, 자크 오디아드, 파벨 포리코브스키와 같은 감독들의 어떤 작품이 왜 좋은지를 내가 재잘재잘 말하면 그 비슷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감독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이따금 내가 식물의 세밀화를 그리는 게 포착된 날에는 "세밀화 안 그린다면서요"라며 감독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카메라를 켰고, 나는 "아, 세밀화가가 아니라고 했던 건데, 그러니까 이건 제가 좀 집요하게 관찰하는 분류군이라..."는 말로 얼버무렸다.
동료들과 함께 나는 비무장 지대에서 만난 식물의 씨앗을 한 톨 한 톨 받아 모으고 그걸 키워 식물원을 꾸미는 준비에 열중했다. 몇 개의 주제로 식물원은 공간이 구분되었는데, 그중 '미래의 숲'이 제일 마음에 든다고 감독은 콕 집어 말했다. 그 장소에 대한 소개를 내가 이렇게 썼다.
"과거 한 시절 이 땅은 거주민의 경작지였습니다. 돌담을 쌓아 만든 밭의 흔적이 그 역사를 말해주기도 하지요. 일찍이 사람은 떠나고 텅 빈 공간만 남은 이곳에 씨앗이 날아들었습니다. 바람이 일고 볕이 들고 비가 내리는 날들이 쌓였지요. 그렇게 세월의 더께는 숲을 만들었습니다. 그 숲을 DMZ자생식물원이 지키려 합니다. '미래의 숲'이라 이름 짓고 오랜 시간 가만히 지켜볼 생각입니다. 현재의 과거가 한때의 미래였고, 지금의 미래가 언젠가는 과거가 되듯 '미래의 숲'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넘나들며 DMZ의 다양한 나무와 풀꽃들을 품어갈 것입니다."
2016년 10월에 마침내 국립DMZ자생식물원이 문을 열었다. 정작 감독 자신의 DMZ다큐멘터리는 미완에 그쳤으나,(그는 지금도 여전히 촬영 중이다) 식물원 방문자 센터에서는 몇 년째 감독의 영상이 작자 미상으로 상영되고 있다. 얼마 후, 나는 식물원과의 계약이 끝나기 전에 정년이 보장되는 지금의 자리로 근무지를 옮겼다.
여기 온 지도 벌써 5년이 훌쩍 지났다. 비무장 지대에서 동과 서를 횡단했다면, 이곳에서는 설악산부터 지리산을 잇는 백두대간을 조금 더 치열하게 종단한다. 인간의 출입이 금지되어 다양한 생물이 비교적 안전하게 보전될 수 있었던 DMZ와 달리 개발의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곳이 백두대간이다. 난개발로 서식지를 잃은 식물을 구조해서 수목원으로 옮기는 일도 내가 하는 일 중의 하나다. 그들이 새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고 지켜보는 일은 삶이 내게 준 큰 선물이다.
그렇게 겨우 살아남게 된 식물들을 보며, 나는 전과는 또 다른 미래의 숲을 꿈꾸게 되었다. 아무도 가보지 못하고 상상하지 못한 숲, 각자의 마음속에서 꿈에 의해 설계되는 숲, 당장은 보이지 않지만 언젠가는 분명히 보게 될 숲. 지금은 나의 다정한 친구가 된 동갑내기 감독에게 그 꿈을 말했더니 그는 나를 쫓아다니며 또 기록에 담겠다고 한다.
그런데 감독님, 나와 백두대간을 함께 누비고 다니는 일은 좋지만 내가 카메라 속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은데 어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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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임(식물 분류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