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 사물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밀도 높은 아름다움과 희미하지만 분명한 낙관을 발견해내는 작가, 색채의 정서를 눈부실 정도의 해상도로 그려내는 작가 박선우의 두번째 소설집 『햇빛 기다리기』가 출간되었다. 다채로운 사랑의 모델을 제시하며 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물들인 첫번째 소설집 『우리는 같은 곳에서』 이후 2년간 한 편 한 편 자신의 페이스로 소설을 써온 그는 집필한 순서, 또한 발표한 순서 그대로, 그러니까 마음이 움직인 궤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모양으로 한 권의 소설집을 묶어냈다.
두번째 소설집을 내는 소감이 궁금합니다. 첫 소설집과는 또 다른 느낌이 있을까요? 더불어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현재까지 소설 쓰기에 있어 변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습작 시절과 첫 책에 실린 단편들을 쓸 때에는 글을 통해 저 자신을 얼마나 드러낼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 고민이 매번 좀 걸리적거리는 느낌을 주었기에 두번째 책에 수록될 단편을 쓸 때에는 일부러 저 자신에 가까운, 어떤 부분은 명백하게 교차되는 글을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제약을 모래주머니처럼 장착하고 시작한 셈인데요. 그래서 지금은 그게 걸리적거리더라도 거의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게 좋아졌다고 혹은 단련되었다고 판단할 부분인지는 모르겠으나 앞으로의 글쓰기가 어떻게 변화할지는 차차 알게 되겠지요.
『햇빛 기다리기』는 일곱 편의 연작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일곱 개의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아무래도 모두 1인칭인 화자가 한 사람처럼 보여서 그렇기도 할 듯합니다. 소설 속의 화자가 될 때 작가님에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나요? 소설을 어떻게 시작하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받아들여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1인칭으로 쓸 때 특히 이번 소설집처럼 1인칭 남성 퀴어 화자로 정해놓고 쓸 때에는 내면을 파고들어가는 기분이 강합니다. 장면을 그리거나 서사를 직조하는 공력보다 제 마음속에 어떤 상흔과 결락이 있는지를 면밀히 살펴보게 되는데요. 그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덮어두었던 감정들을 뒤늦게 감득하기도 합니다. 글쓰기를 통해 혼자서만 앓던 통증 같은 것을 발견하고 비로소 공유하는 체험도 이뤄지고요. 결과적으로는 저 자신을 조금이라도 달래고 해방시키기 위해 소설이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한 편의 소설을 완성했을 때는 어떤 마음이 되나요?
며칠 정도 삶이 충만해집니다. 너그러워지고, 웃음이 많아지고, 조금 더 살고 싶어집니다. 사랑이 주는 기쁨과 유사한 효과를 보이죠. 그리고 며칠이 지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적당히 우울하고, 매사에 피곤하고, 너그러움을 잃지 않으려 애써야 하고, 다정을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기본 상태라는 것을 알기에 다시 돌아왔구나, 할 뿐입니다. 다음에는 무엇을 쓸 수 있을까, 궁리하게 되고요.
등장인물들이 스타벅스에서 클라우드치즈케이크를 먹는다든가, JW메리어트호텔에 간다든가, SBS에서 방영하는 <미운 우리 새끼>를 본다든가 식으로 소설에서 묘사되는 공간이나 사물이 굉장히 구체적입니다. 많은 소설들이 구체적인 명칭을 언급하기를 꺼린다는 것을 생각하면 조금 남다른 지점이라는 느낌도 드는데요. 이러한 표현 방식에 어떤 의도가 있을까요?
스타벅스의 클라우드치즈케이크도 동대문의 JW메리어트호텔도 <미운 우리 새끼>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입니다. 사람들은 방금 언급한 세 가지가 언제 우리 삶에 기입되었는지 모릅니다. 일단 큰 관심이 없지요. 그저 어느 틈엔가 지척에 놓여 있으니까 그것들을 의식할 뿐입니다. 그러니 언제 사라졌는지도 짐작건대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더 쓰고 싶었던 걸까요? 어느 작가들은 특정 시간대를 드러내는 요소들을 일부러 지웁니다. 먼 훗날에도 자신의 소설이 현시점의 것처럼 읽히기를 바라니까요. 저는 딱히 그런 바람이 없습니다. 2022년을 살아가고 있기에 2022년의 소설을 쓰고 싶었습니다. 몇 년 후에 제 소설을 보든 2022년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그때에만 있으니까요.
『햇빛 기다리기』를 읽다보면 묘사들이 굉장히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쩐지 화자들에게는 아름다운 것을 실감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아름다운 것을 묘사하는 것은 작가님에게 무슨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작가님에게 소설 쓰기란 그럼에도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일까요?
살다보면 아름다움을 간혹 발견하게 되니까 그걸 좀 남겨두고 싶다는 갈망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그런 순간을 사진으로 찍게 마련인데 저는 글로 써서 간직하고 싶은 것 같아요. 따라서 '그럼에도'라기보다 '그러니까'에 가까운 듯합니다. 삶이 누추함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삶이 누추하기도 하지만 아름답기도 하니까 그걸 쓰고, '씀'으로써 실감하고 일체화되고 싶은 것 같습니다.
언젠가 꼭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다음에 만나볼 수 있는 작품에 대한 예고를 해주셔도 좋겠습니다.
언젠가 꼭 쓰고 싶은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런 상태로 글을 썼던 적이 한 번도 없는 듯해요. 물론, 글을 쓸 때마다 비슷한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이건 내가 쓰고 싶었던 이야기라고요. 글을 쓰는 도중에 혹은 다 쓰고 나서야 잠시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다음에 쓸 작품에 대한 예고는 현시점에서 불가능한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인사말 또는 당부를 남겨주세요.
이번 소설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퀴어 문학이라 생각하고 썼습니다. 그런데 다 쓰고 나니 퀴어 문학이 뭐지? 싶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기존에 배운 '문학' 안에 '퀴어 문학'이 소분류되는 것인지, 적어도 나한테는 '문학=퀴어문학'인 것인지 '문학/퀴어문학'인 것인지 '문학-퀴어문학'인 것인지 '문학(퀴어문학)'인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 쓰면서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으면 합니다. 『햇빛 기다리기』를 읽어주시는 독자분들도 모쪼록 그런 궁금증을 조금쯤 품어주셨으면 좋겠어요.
*박선우 198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대학원 서사창작과를 졸업했다. 2018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을 통해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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