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민 : 오늘 산책할 길은 어떤 길인가요?
상훈 : 오늘의 산책길은 '가족구성권, 자유롭게 유대할 권리'라는 산책길이에요. 오늘도 질문 드려볼게요. 혜민님은 파트너와 가족을 구성해서 살고 계시잖아요. 혹시 가족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혜민 : 일단 같이 살기로 결심했던 건, 서로 삶의 지향점이 비슷했기 때문이에요. 이 사람과 오래 좋은 친구처럼 함께 지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데요. 가족, 그러니까 법적으로 결혼을 선택하기로 한 것은 함께 지내기 위해서 법적인 안전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우리나라에서는 결혼이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죠.
상훈 : 맞아요. 그런 사회이기 때문에 오늘의 주제를 정한 것인데요. 모든 사람이 원하는 유대 공동체를 구성하고 제도적으로 보호받고 사회 문화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길이에요.
혜민 : 오늘의 지도는 어떤 것인가요?
상훈 : 오늘 지도는 가족에 대한 생각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통계들인데요. 2020년 통계청이 13세 이상 인구 3만 8000명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해서 작성한 <2020년 사회조사 보고서>라는 것이 있어요. 여기에 따르면, 미혼 남성의 40.8%는 결혼이 필수라고 답했는데, 미혼 여성은 22.4%만이 그렇다고 답했대요. 필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적어지고 있고 그 중에서도 여성들이 훨씬 더 적게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예요. 많은 것들이 읽히죠? 결혼하지 않고 같이 살 수 있냐는 질문에는 59.7%가 그렇다고 답해서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요. 여성 가족부가 진행한 '비혼동거 실태 조사'라는 자료도 있는데, 현재 동거 혹은 과거 동거 경험 있는 국민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동거 사유로 '별다른 이유 없이'를 가장 많이 꼽았다 해요.
이제 결혼 아닌 채로 함께 사는 일은 별 이유가 없는 당연한 선택지인 거예요. 그리고 비혼 동거 비율이 30대가 33.9%로 가장 많은데 40대, 50대, 60대 역시 많고 전 연령대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해요. 결혼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거기에 기반한 국가 시스템이 변화하고 있는 거죠. 언론 혹은 국가에서는 이것을 자꾸 위기라고 이야기하는데 과연 누구의 위기일까요? '정상 가족' 혹은 '정상 생애 주기', 즉 때 되면 결혼하고 아이 낳고 4인 가족 구성해서 사는 삶의 위기 아닐까요? 남성은 생계를 부양하고 여성은 돌봄을 책임지는 삶과 같은 기획되고 만들어진 시스템 혹은 허구의 위기는 아닐까요?
혜민 : 오늘의 산 책은 무엇인가요?
상훈 : 제가 앞에서 소개한 지도가 담겨 있는 책이기도 한데요. 제목은 『가족을 구성할 권리』예요. 모든 사람이 원하는 유대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어야 하고, 그 공동체 혹은 가족이 제도적, 사회적으로 차별 없는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혜민 : 저자는 어떤 사람인가요?
상훈 : 김순남 저자로, 가족구성권연구소라는 연구소의 대표라고 해요. 가족구성권연구소는 가족상황 차별을 해소하고 시민적 유대가 가능한 사회를 모색하는 연구소라고 해요. 김순남 저자는 여성학자로서 페미니즘, 퀴어 관련 분야에서 다양한 강의와 활동, 저술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는 분이에요.
혜민 : 구체적으로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나요?
상훈 : 앞에서 '가족구성권'이라는 표현을 썼는데요. 이 가족구성권이 뭔지를 살펴볼까요? 가족구성권은 '다양한 가족의 차별 해소와 모든 사람이 원하는 가족 공동체를 구성하고 차별 없는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고 해요. 이 말은 현재는 다양한 방식의 가족 공동체들이 차별 없는 지위를 보장받고 있지 못하다는 뜻이겠죠? 먼저 이 책은 현재를 냉철하게 진단하고 있는데요. '그 가족'의 위기라고 말합니다. '그 가족'은 앞에서도 이야기한 정상 가족이에요. 이미 우리 주변에서 그 가족은 생각보다 찾기가 어려워지고 있고요. 다양한 방식의 관계성이 가시화되고 있고, 1인 가구도 증가하고 비혼도 증가하고 있어요. 또 하나의 위기는 사회적 재생산의 위기입니다. 저출생과 함께 고독사가 증가하고 돌봄 공백 등이 벌어지고 있는데요. 이것은 사실 한국 사회의 누적된 불평등과 차별, 구조적인 문제들의 결과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책이 가장 근본적인 전제로 삼고 있는 것은 '가족 문제는 절대 개인적이고 사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의제'라는 것인데요. 비혼, 저출생 문제만 해도 우리 또래의 청년들은 이성애자라고 해도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다 공감할 거예요. 이런 세상에서 결혼하고 아이 낳으라고? 이런 얘기를 일상적으로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제도적으로 우리 사회는 결혼 중심의 가족들에게만 사회적 안전망이 주어져요.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주거, 의료, 경제 정책들 안에서 보호받는 이들은 결혼 중심의 가족들이고요. 거기에서 이탈된 사람들, 1인 가구 혹은 다른 형태의 가족들은 제대로 작동하는 안전망을 얻기가 힘듭니다. 그리고 이건 제도에만 머물지 않죠. 사회적, 문화적으로도 아직 결혼하지 못한 상태, 혹은 제대로 된 하나의 가족을 이루지 못한 상태로 재단을 당해요. 결혼할 수 있고 아이를 낳을 수 있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이들만이 한국 사회에서는 이상적인 시민으로 상정되어 있어요. 이성애자 비혼인 경우는 그나마 덜하겠지만, 퀴어이거나 장애를 가졌거나 빈곤하거나 이주민이거나 하면 더욱 더 체감하는 차별이나 불평등이 클 거예요. 원하는 사람과 가족을 이루고 싶어도 가족으로 인정받기가 어렵고 차별의 시선을 받을 거니까요.
그런데 또 웃기는 것은 아까 사회적 재생산의 위기라고 했는데 왜 그럴까요? 우리나라는 돌봄, 경제적인 협조, 정서적 유대 등을 전부 다 가족에게만 일임해요. 결혼해서 가족을 구성하라는 얘기는 "이제 됐지? 안전망과 유대와 돌봄을 너희들이 알아서 해결해! 국가나 사회에 요구하지 마!" 이런 말이랑 다를 바가 없는 거예요. 그런 채로 오래 지속되다 보니까 비혼이 조금만 증가해도 바로 안전망과 돌봄 등에 구멍이 생기고 사회가 총체적으로 위기가 오는 거죠.
그래서 이 책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선 '가족구성권'이라 말하는 것이고요.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만의 유대 방식을 만들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개인이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안전망들이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 이것이 결국 개인의 존엄한 선택에 관한 문제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여러 갈래의 복합적 차별 해소를 이야기해요. 앞에서 말한 퀴어, 장애, 빈곤, 이주민 등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곧 가족구성권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다시 정리하자면, 핵심은 정상, 비정상 가족을 나누지 말자는 것이고, 정상 가족만을 보호하고 안전망을 만들어주는 제도와 그 바깥에 대한 상상을 불온한 것으로 여기는 문화를 바꾸자는 것이에요. 그리고 무엇보다 '개인의 존엄성'을 지키자는 것이죠.
* 책읽아웃 오디오클립 바로 듣기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혜민(크리에이터)
밀레니얼 인터뷰 채널 '요즘 것들의 사생활'을 운영하며 『요즘 것들의 사생활 : 먹고사니즘』 등을 썼다. 나다운 삶의 선택지를 탐구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