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에서 화자들은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뿐 아니라 타인의 자리까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내 이야기의 출발점은 누구인가. 옆에 있는 이들과 함께 어떻게 말할 것인가. 이들은 자신을 뜯어낸 흔적을 여미고 타인이 머물렀던 자리를 응시하며, 신중하게 용기 내어 나아간다. 소설과 삶 사이의 복잡한 긴장을 버티려 노력한다는 소설가 김병운의 더 깊어진 진실들이 세련된 문체와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에 담겨 있다.
2년 만에 출간한 첫 소설집이에요. 책을 낸 소감이 어떠신가요?
첫 장편을 출간했을 때와는 기분이 사뭇 달라서 이 기분의 정체는 무엇인지 자꾸 생각해 보게 되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요. 첫 장편 때는 '후련에 가까운 시원'이었다면, 이번 책은 '섭섭에 가까운 시원'인데, 어쩌면 저는 출간을 지연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출간을 기다릴 때만 가능한 기대와 가능성을 가급적 오래 품고 싶어했던 것 같거든요. 그간 여러 권의 저서를 출간한 동료들로부터 출간 이후의 멜랑콜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왔는데, 이제야 드디어 그게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첫 장편 소설이 나를 드러내는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있다면, 이번 소설에서는 한 발짝 더 나아가 다른 이들의 삶에 대해 말하는 어려움까지 다루고 있는 듯해요.
자신을 드러내는 어려움이나 타인에 대해 말하는 어려움 이전에 제가 맞닥뜨리는 어려움은 쓰는 일 자체에 대한 어려움입니다. 어째서인지 해를 거듭할수록 쓰는 일만큼은 익숙해지질 않아서 망연해지곤 하는데, 아마도 그건 생각과 말과 글이 모두 저라는 한 사람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에도 서로 어긋난다는 불협의 감각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좀처럼 해소되질 않아서인지, 쓰는 일은 저에게 늘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곤궁에도 아직도 쓰고 싶다는 열망이 그 무엇보다도 크고, 그렇기에 저는 다시금 저 자신에게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되묻게 됩니다. 어차피 무엇을 쓰더라도 쉽지 않을 것이란 전제를 염두에 두면, 굳이 내가 쓰지 않아도 되는 것보다는 써야만 하는 것을 쓰는 쪽이 더 나을 테니까요. 요즘 소설을 쓸 때 반복하는 고민은 이런 것입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형식적으로 재미있다 생각했던 작품이 「윤광호」와 「9월은 멀어진 사람을 위한 기도」였어요. 「윤광호」는 인물의 일대기를 다루는 전기 소설처럼 시작해서 편지로 끝나고요. 「9월은 멀어진 사람을 위한 기도」는 일기 쓰기 워크숍으로 시작하는데, 읽다 보니 소설 전체가 주인공의 일기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두 편 소설이 이런 형식으로 쓰인 이유가 있을까요?
말씀해 주신 두 작품은 모두 구상 단계에서부터 내용만큼이나 형식이 중요했는데요. 우선 「윤광호」의 경우는 떠올린 메시지가 선명하고 직접적이었기 때문에, 드러내기와 감추기를 끊임없이 조율해야 하는 보통의 소설 형식보다는 부고나 에세이 같은 논픽션 형식이 더욱 적합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픽션이지만 논픽션처럼 보이기를 원했고, 그것이 언제나 죽음과 인접해 있는 성소수자들의 일상을 환기하는 데도 효과적일 것이라 판단했고요.
「9월은 멀어진 사람을 위한 기도」는 2020년 가을,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보안책방에서 제가 기획하고 진행했던 '9월의 일기'라는 쓰기 워크숍에서 모티브를 얻었습니다. 워크숍은 아홉 명의 참가자가 9월 한 달간 날마다 일기를 쓴 다음, 월말에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일기를 묵독하는 것이었는데, 제가 새로이 구상한 이야기 속 주인공이 만약 이 워크숍에 참가했다면, 어떤 내용의 일기를 썼을지를 상상해 보다가 지금의 형식이 갖추어졌습니다.
엄마와 가족이 등장하는 소설이 눈에 띄어요. 「11시부터 1시까지의 대구」나 「알 것 같은 밤과 대부분의 끝」, 「어떤 소설은 이렇게 끝나기도 한다」 같은 작품들이요. 유쾌하게 웃으면서, 또 가족의 징글징글함에 공감하면서 읽었는데요. 여러 작품에서 가족에 대해 다루게 된 배경이 궁금했어요.
가족이 등장할 때마다 어쩐지 소설이 속절없이 K스러워지는 것 같아서 한때는 일부러 가족을, 특히나 엄마를 등장시키지 않으려 노력해 보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그렇게 시작하더라도 쓰다 보면 어떤 식으로든 엄마가 등장하거나 직접 등장하진 않더라도 유사 엄마를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아서 요즘에는 제약 없이 그냥 써지는 대로 쓰려고 합니다. 자꾸만 등장한다는 건 그만큼 아직 써야 할 것이 남아 있다는 신호 같기도 하고요.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을 소개할 때 유머를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다루는 가운데 산뜻하고 유머러스한 장면들이 등장해서 피식 웃었던 기억이 나요. 쓰시면서도 '이건 재밌다!'했던 장면이나 문장이 있을까요?
이 소설집에서 유머를 감지하실 수 있다면 아마도 그건 「11시부터 1시까지의 대구」와 「9월은 멀어진 사람을 위한 기도」, 이 두 편에 담긴 소소한 대화들 때문일 것 같습니다. 「11시부터 1시까지의 대구」에서는 주인공인 '나'가 사촌인 '은미 누나'와 대화를 나누다가 '돌아가신 할머니 말로는 김가는 대대손손 족보도 없는 쌍놈이라고' 투덜거리는 장면, 그리고 「9월은 멀어진 사람을 위한 기도」에서는 주인공인 '나'를 따라서 봉안당을 방문하게 된 연인 '흙'이 '나'의 할머니가 원 씨라는 걸 확인하자마자 '원할머니였네. 보쌈을 좋아하셨나?'라고 묻는 장면을 꼽아보고 싶은데요. 그러고 보니 모두 할머니와 성 씨를 소재로 한 농담이네요.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 「한밤에 두고 온 것」, 「윤광호」의 경우 문학상 수상작 혹은 후보작으로 수상 작품집에 수록되어, 독자분들께 미리 선보인 적 있는 작품들이에요. 독자분들의 반응이나 감상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으신지 궁금해요.
단편을 읽고 작가의 다른 저서를 찾아보게 되었다는 감상만큼이나 소중한 감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독자로서 저 또한 어떤 글을 읽고 나서 그 작가가 쓴 다른 글을 읽고 싶어질 때가 종종 있는데, 그것이 얼마나 큰 호감이며 응원인지를 알기에, 그런 감상을 발견할 때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힘을 얻습니다. 어딘가에 나와 주파수가 맞는 사람이 정말로 있다는 사실이 감동적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정체성 같은 것 고민하는 애들은 12시간씩 죽도록 일을 해 봐야 정신차린다'는 감상도 기억에 남는데요. 생각할 가치도 없는 악플이었기에 당연히 보자마자 웃어넘겼지만, 어째서인지 아직도 잊히지 않는 걸 보면, 역시 혐오는 잘 지워지지 않는 독성 물질 같다는 씁쓸한 생각도 듭니다. 어떤 혐오는 작가에게 도리어 계속 쓰게 만드는 오기를 심어 주기도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서 굳이 여기에 적어 봅니다.
끝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겨 주세요.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을 이렇게 읽어 주시면 좋겠다 하는 바람도 좋고요.
'쓰면 좋겠어요. 우리에 대해 쓰면 좋겠어요.'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의 뒷면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는데요. 이 대사는 원래 동명의 단편에서 '인주'라는 인물이 화자인 '나'에게 하는 말이지만, 이번 가을부터는 작가 김병운이 언제 어디선가 이 책을 집어 들지도 모를 독자 여러분들에게 건네는 초대의 말이 되었습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진짜 내 이야기를 하고 싶게 만드는, 모종의 이유로 그간 참아 왔거나 숨겨 왔던 이야기를 비로소 꺼내 놓고 싶게 만드는 소설들에 매료되어 왔는데요. 저 역시 그런 소설을 쓰고자 했고, 그런 소설이 되었거나 되지 못한 글들이 모여 이렇게 한 권의 책이 되었습니다. 이 책 또한 제가 사랑하여 닮기를 원했던 어떤 책들처럼 누군가에게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하고 싶어지는 그런 책이기를, 소설이든 에세이든 편지든 일기든 진짜 내 모습이 담긴 것이라면 그 무엇이든 한 줄이라도 더 쓰고 싶게 만드는 그런 책이기를 바라봅니다.
*김병운 2014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장편 소설 『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와 에세이집 『아무튼, 방콕』이 있다. 제13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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