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수요일, 김지은 아동청소년 문학평론가, 한미화 출판평론가, 이상희 시인, 최현미 기자가 ‘이토록 다정한 그림책’을 소개합니다. |
얼마 전 구포에 갔다. 가족과 언성을 높여가며 신경전을 벌인 후였다. 부산 바닷가 마을이야 여러 번 다녀왔지만, 구포는 처음이었다. 구포 범방산은 나무 데크 길이 잘 다듬어져 있는데, 이 길을 따라 정상에 오르면 낙동강이 보인다. 1,300여 리에 이르는 낙동강의 유장한 강물을 한참이나 바라보다 내려왔다. 아주 멀리까지 간 것치고는 멋쩍다 싶을 만큼 단조로운 일정이었다. 게다가 그날 머문 구포의 숙소는 꿉꿉하고 잠자리가 불편했다. 쉽사리 잠들지 못하며 "왜 내가 여기까지 와있나?" 혼잣말을 했다. 다음날 서울에 도착한 후에야 이유를 알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너무도 익숙한 이 길이 낯설었고 반가웠다.
공간을 바꾼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새삼 생각하게 된 건 그림책 작가 비올레타 로피스 때문이다. 그는 말 그대로 여기저기 떠돌며 산다. 스페인의 작은 섬 이비사에서 태어난 작가는 마드리드, 베를린, 리스본, 뉴욕, 서울, 쿠스코 등 다양한 도시에서 살며 활동했다. 그의 페이스북에 들어가 지금은 어디에 살고 있는지를 살폈다. 아주 멀리 있었다. 페루 쿠스코였다. 새로운 도시에 있다면 새로운 작업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마음의 지도』를 작업할 때 포르투갈어로 쓰여진 텍스트를 받아들고 작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리스본으로 이사를 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다행스럽게도 비올레타 로피스의 그림책은 국내에 여러 권이 소개되어 있다. 그의 그림책을 보고 있노라면 어떻게 한 작가가 책마다 전혀 다른 스타일로 작업을 할 수 있을까 경이로울 정도다. 작가의 이름을 가리고 책을 본다면 같은 작가가 그렸다고 알아차릴 수 없는 만큼 완전히 새롭다. 아마도 공간 이동이 한몫을 하지 않을까 짐작할 뿐이다.
인간의 몸은 오묘하여, 처음에는 그토록 낯선 일도 금방 적응해 익숙한 것으로 만든다. 그렇지 않다면 만성 스트레스 상태로 지낼 터이니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적응은 필수다. 새로운 동네가 눈에 익고 직장에 적응하는 일뿐 아니라 창조 행위 역시 익숙해진다. 이를 의식한 듯 로피스는 새로운 텍스트를 받아들고 낯선 도시로 간다. 컴퓨터를 리셋하듯 익숙해진 몸을 처음부터 다시 새롭게 만든다. 『섬 위의 주먹』에서 『마음의 지도』로 다시 『할머니의 팡도르』로 또다시 『고양이와 결혼한 쥐에게 일어난 일』로 모험을 떠난다. 새로운 도시마다 새로운 작가가 탄생한다.
『마음의 지도』가 태어난 리스본에서 로피스는 클라우지우 테바스의 짧은 시를 읽고 또 읽었을 테다. 이렇다 할 줄거리도 없고, 주인공이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조차 말해주지 않는 아주 짧은 시다. 시는 나의 독백으로 이뤄져 있다. 나는 시종일관 얼마나 친구가 많은지를 자랑처럼 이야기한다.
“학교가 끝났어요. 오늘도 루시아랑 집에 갈 거예요. / 루시아는 내 친구고요. 모퉁이 집에 살아요. / 루시아한테는 오빠가 있는데 그 형아도 내 친구예요. 당연하잖아요.”
이 글을 받아들고 비올레타 로피스는 리스본의 어딘가에 ‘내’가 사는 동네를 만들었다. 그림책의 면지에 그 지도가 있다. 펠트펜으로 나와 친구들이 사는 도시의 이런저런 건물들을 그려냈다. 그 건물들에는 나를 기다리는 친구들이 있어야 한다. 글에서 나는 계속에서 친구들의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그림에서 나는 친구 없이 홀로 거리에, 익숙한 장소에 있다. 심지어 나는 친구들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태다. 그곳에 가면 당연히 친구를 만날 수 있었는데 약속이나 한 듯,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개 한 마리가 홀로 된 나를 따라다닐 뿐이다. 겨우 28쪽밖에 되지 않는 이 짧은 이야기는 그림을 마주할 때 긴장감이 대단하다. 『윌리를 찾아라!』는 아니지만, 그림책을 보는 내내 강박적으로 그림 속 어딘가에 친구들이 숨어 있는 건 아닌가 찾게 된다(여러분도 찾아보시라). 나만 버려두고 대체 친구들은 모두 어디에 있는 걸까 하는 마음에 눈물이 날 즈음 진실이 밝혀진다.
익숙한 장소에는 대개 잘 아는 사람들이 있다. 지겨운 장소만큼이나 지루한 사람들이다. 갑자기 그들이 떠날 때 그 익숙했던 장소는 세상에서 가장 낯설고 기이한 곳이 되어버린다. 함께 있을 거라고 여겼던 장소에 나 혼자 남겨졌을 때, 언제나 둘이 가던 중국집에서 홀로 짬뽕 한 그릇을 시킬 때, 훌쩍 떠나버린 그의 방에 들어갈 때, 그 익숙하고 친근한 장소는 말할 수 없이 낯설다. 그때야 비로소 알게 된다. 이 장소가 지겨울 만큼 친근했던 건 그곳에 있던 사람들 때문이다. 친구들이 사라지면 장소의 익숙함과 정겨움도 사라지는 거였다. 존재하지 않음이 존재함을 깨닫게 하는 순간이다. 어디 있는지를 알아야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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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화(어린이책·출판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