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시 앞에서 마주한 삶의 얼굴
나이가 들어가며 살아온 삶의 시간보다 남아 있을 시간이 더 짧게 여겨지면 어쩔 수 없이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나이에 이른 분들이라면 문학이 죽음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지, 시가 그려내는 죽음의 풍경이 어떤 모습인지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2.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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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호 저자

죽음은 살아 있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삶이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순리이지만 어쩐지 잔인하게 느껴져 외면하곤 한다. 그래서인지 많은 살아 있는 자들이 죽음을 쓰고, 그리고, 노래해 왔다.

『시간을 물고 달아난 도둑고양이』의 저자 송기호는 이러한 필연적인 운명을 “생명의 탄생과 더불어 삶이 시작되면 거꾸로 세워진 모래시계에서 자그마한 시간의 알갱이들이 쉼 없이 쏟아져내린다”와 같이 아름답게, 때로는 “심장이 한 번 뛸 때마다 모든 생명은 죽음을 향해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간다”처럼 날카롭게 표현한다. 

저자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죽음을 다룬 영시를 선별하여 소개한다. 죽음이 사랑하는 이를 더이상 볼 수 없게 되는 슬픈 사건이라는 단편적인 인식에서 나아가 죽음을 입체적으로 조망함으로써 죽음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통찰이 곳곳에서 빛난다. 마치 길처럼 펼쳐진 영시에서 만나는 죽음의 풍경은 죽음이 두렵고 슬프기만 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그때 진실한 삶의 얼굴이 드러난다.



작가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한남대학교에서 영시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 19세기 영국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의 『The Ring and the Book(반지와 책)』이라는 아주 긴 시(23,000여 행)를 읽게 되면서, 소설보다는 시에 더 큰 매력을 느끼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시를 읽고 있습니다. 저는 학생들과 함께 좋은 시를 읽는 일을 할 수 있어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에는 영미 문학에서 널리 알려진 시인들의 작품을 많이 읽었지만, 요즘은 그동안 소홀히 다루어진 작가들의 시를 자주 읽고 있습니다.

『시간을 물고 달아난 도둑고양이』의 제목이 무척 흥미로워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을까요? ‘죽음’이라는 키워드로 책을 쓰시게 된 계기도 궁금합니다.

『시간을 물고 달아난 도둑고양이』라는 제목은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소개한 클림트의 그림 〈죽음과 삶〉에서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 그림에서 죽음은 환하게 불 켜진 삶의 창을 몰래 들여다보고 있는데, 그 모습이 때가 되면 삶의 시간을 훔쳐 달아나려는 도둑고양이를 떠올리게 합니다. 요즘은 '도둑고양이'라는 말 대신에 '길고양이'라는 말을 많이 쓰지요. 죽음이 삶의 시간을 훔쳐가는 존재라는 것을 제목에 담고 싶은데, ‘고양이’라는 표현은 밋밋하고, ‘길고양이’는 그러한 뜻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기에 불가피하게 '도둑고양이'라는 표현을 쓰게 됐습니다.

이 책은 죽음을 다룬 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영미 문학에는 좋은 시들이 아주 많은데, 그 시들을 특정 주제에 따라 선별하여 묶어, 전공자가 아닌 일반 독자들에게 소개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랑에 대한 시, 해와 달과 별에 관한 시, 바람과 나무에 관한 시, 사계절에 관한 시를 선별하여 묶는 것도 흥미롭겠지만, 이번에는 죽음에 관한 시를 한 권의 책으로 묶었습니다. '죽음'이라는 주제야말로 삶을 가장 깊이 그리고 넓게 들여다보며 성찰하게 하기에,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책에 실린 사진을 모두 작가님께서 직접 찍으셨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보통 묘지는 으스스한 느낌이 들어 피하게 되는데 그곳에 방문하는 이유가 있으실까요? 

제가 자란 시골에서는 마을 주변에서 무덤을 흔히 볼 수 있었는데, 어린 시절의 제게 무덤은 그저 마을을 감싼 풍경일 뿐이어서 특별하게 눈여겨보지 않았습니다. 무덤이 모여 있는 묘지를 자세히 보게 된 것은 미국에서 유학하던 때였습니다. 그리 크지 않은 대학 도시였는데,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묘지가 있었습니다. 잘 정비된 공원 같은 묘지에서 제 눈길을 끈 것은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묘비들이었습니다. 묘비들을 보면서 그 아래 묻혀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모든 생명 있는 존재의 보편적 운명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묘지를 둘러보는 일은 느리고 깊어지는, 기울어진 물속을 걷는 것과 같아서, 묘지는 언제나 삶에 대해 천천히 그리고 깊게 성찰하게 하는 곳입니다.

묘지는 죽은 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지만, 살아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보다 삶에 관한 이야기를 더 많이 듣게 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낯선 곳을 혼자 여행할 때면, 묘지를 둘러보며 그곳에 묻힌 사람들과 우리 모두를 기다리는 보편적 운명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가끔 모든 것이 느리고 고요한 묘지의 풍경을 사진으로 담으면서요.



『시간을 물고 달아난 도둑고양이』에는 많은 시가 실려 있는데요, 시를 어려워하는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팁 같은 게 있을까요?

많은 분이 시가 어렵다고 합니다. 사실 저도 시가 어렵습니다. 시는 소설이나 드라마보다도 언어를 더 함축적으로 부리는 문학 장르이기에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좋은 시를 읽는 것은 분명 큰 즐거움이지만, 아쉽게도 시를 쉽게 이해하는 비법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깊이 생각하며 천천히 여러 번 자주 읽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시에 친숙해지면서 나름대로 시를 읽는 법을 깨닫게 되겠지요. 대부분의 시는 처음 읽을 때 자신의 의미를 다 드러내지 않습니다. 하지만 좋은 시는 언제나 독자가 시를 읽는 일에 기울인 노력을 충분히 보상해줍니다. 인내심 있게 천천히 말의 그물망을 헤치며 시의 안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시는 마침내 정교하게 지은 언어의 구조물 속에 감추어둔 삶의 의미를 모두 드러내 보여줄 겁니다. 그러니 열심히 시를 읽어야겠지요.

유달리 쓰기 힘들었거나, 기억에 남는 내용이 있을까요?

제일 어려웠던 점은 이 책에 적합한 시를 고르는 일이었습니다. 영미 문학에는 죽음을 다룬 좋은 시가 많지만, 너무 길거나 난해한 시는 일반 독자를 염두에 둔 이 책의 성격과 맞지 않기에 제외했습니다. 우리 정서와도 공명할 수 있으며, 짧으면서도 좋은 시를 고르는 일이 쉽지 않았고, 이런저런 이유로 소개하지 못한 시들이 있어 아쉽습니다.

어떤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으신가요?

우선 중년의 나이에 이른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며 살아온 삶의 시간보다 남아 있을 시간이 더 짧게 여겨지면 어쩔 수 없이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나이에 이른 분들이라면 문학이 죽음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지, 시가 그려내는 죽음의 풍경이 어떤 모습인지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한편,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사는 것이 지혜롭게 사는 길이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아마도 세상에 대한 불필요한 집착을 버리고 가벼운 몸으로 삶의 길을 걸을 수 있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가능하면 일찍 죽음에 대해 사유하면서 사는 것이 지혜롭게 사는 방법이 될 수 있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젊은 독자들이 읽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다음 행보도 궁금합니다. 혹시 집필 중이신 원고가 있을까요?

나무에 관한 글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나무는 우리에게 친숙한 존재이면서도 언제나 신비한 존재입니다. 나무는 상반되는 속성을 한몸에 품고 있습니다. 해를 향해 발돋움하며 빛과 하늘을 향해 자라면서도, 동시에 저 깊은 대지의 어둠에 뿌리를 내리는 존재입니다. 몸의 절반은 중력을 거스르며 자라지만, 나머지 절반은 중력에 몸을 맡기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나무는 언제나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오래전부터 문학에 자주 등장했습니다. 식물학적 관점에서 나무의 속성을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적 관점에서 과거부터 사람들이 나무에 부여해온 문화적 의미를 체계적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송기호

충북대학교와 서울대학교 대학원, 미시간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현재 한남대학교에서 영시를 가르치고 연구하고 있다. 비정전(非正典) 작가와 주변부로 내몰린 사람들의 삶을 다룬 문학 작품에 관심이 많으며, 영국의 여성 노동자 시인들에 관한 논문 여러 편을 썼다. 역서로 『대단한 모험』이 있다.




시간을 물고 달아난 도둑고양이
시간을 물고 달아난 도둑고양이
송기호 저
싱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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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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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negold

2022.07.20

'도둑고양이' 덕에 죽음을 친구처럼 옆에 끼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삶의 순간이 곧 죽음의 순간이 되는 삶의 경계가 마당의 한구석에서 무심코 발견하는 부드러운 이끼처럼 느껴집니다. 언젠가는 나의 시간도 화들짝 물고 달아날 도둑고양이와 가까워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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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