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 예고 한마디 없이 특집이 돌아왔습니다. 오늘 방송이 특집입니다. ‘여름 맛’ 특집!
단호박 : 저희가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이 특집이 나왔죠?
그냥 : 쉬고 싶다.(웃음)
한자 : 제가 휴가가 필요하다고 했더니 이렇게 특집 기회를 주셨어요. 고맙습니다. 덕분에 2주를 정말 소중하게 썼습니다.
단호박 : 가끔 쉼표를 찍는 느낌으로 진행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냥 : 맞아요. 우리는 평소에 밀도가 높은 방송이니까 가끔 쉬어가는 것도 밸런스가 맞습니다.(웃음)
단호박 : 그래서 이번 특집의 주제는 뭔가요?
한자 : 여름의 레시피!
그냥 : 처음에 이 기획을 의논할 때는 ‘여름에 우리가 먹는 음식 이야기하고 레시피 소개하고, 레시피 책을 간단히 언급하자’고 했잖아요. 그래서 저는 레시피 책을 가지고 왔는데, 두 분은 두껍고 진지한 이야기의 책을 가지고 오셨더라고요.
단호박 : 제가 들고 온 책, 레시피 책 맞아요.
그냥 : 아, 그렇습니까?
한자 : 레시피가 있던데요? 책의 절반이 레시피입니다.
그냥 : 그러면 단호박 님부터 시작할까요?
단호박 : 저는 책과 관계없이, 여름에 자주 먹기 시작한 메뉴가 하나 생겼어요. 작년에. ‘연두’ 아시죠? 콩을 발효해서 만든 조미료. 그분들이 SNS에서 레시피로 마케팅을 되게 열심히 하시더라고요. 거기에서 얻은 레시피인데 ‘오이 탕탕이’예요. 오이를 칼이나 둔탁한 막대기 같은 걸로 탕탕탕 쳐서 부순 다음에 연두 한 숟갈 들기름 한 숟갈 넣고 참깨를 손바닥으로 갈아서 넣으면 끝입니다. 엄청 간단해서 반찬이 없다거나 채소를 먹고 싶을 때 그럴 때 3분 만에 만들 수 있는 반찬입니다. 여름에는 그걸 자주 먹는 편이고요. 최근에 시작한 여름 메뉴로는 소면이 있죠. 소면을 삶은 다음에 (시판) 냉면 육수에 넣으면 한 끼가 됩니다. 그리고 김치랑 양념장이랑 넣고 비벼 먹기도 해요.
단호박의 선택
사민 노스랏 저 / 웬디 맥노튼, 황의정 그림 / 제효영 역 | 세미콜론
저는 진짜 이 책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식사에 대한 생각』을 소개할 때 언급도 했을 거예요. 저자가 요리를 오랫동안 해왔는데 ‘요리의 어떤 가장 기본이 뭘까?’라고 생각했을 때 총 네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고 주장을 하거든요. 그게 바로 '소금'과 '지방'과 '산'과 '열'이에요. 이 기본 관념이 저한테 굉장히 큰 도움이 됐던 게, 이 네 가지만 생각하면 레시피가 없어도 이론적으로 모든 종류의 요리를 할 수 있어요. 추천사에서도 요리사들이 ‘내가 10년 동안 생각해서 만들어낸 이 기본이 소금, 지방, 산, 열로 모두 정리되는 거였다니’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규정을 지었을 때 인식의 전환이 생기잖아요. 사람들이 ‘요리의 기본이 뭘까?’라고 생각하면 소금이나 지방이나 당분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생각하게 되는데, 그런 당분과 감칠맛과 향신료 같은 것들을 모든 원소로서 설명하는 게 아니라 간편하게 이 네 가지(소금, 지방, 산, 열) 안에 집어넣은 게 이 책의 아주 탁월한 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떤 음식을 봤을 때 ‘뭔가 모자란데? 뭐가 모자랄까?’라고 생각을 했을 때 향신료가 부족한지 설탕이 부족한지 모든 걸 다 해결하는 게 아니라, 그냥 ‘소금인가? 지방인가? 산인가? 열인가?’로 생각하면 훨씬 더 편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 네 가지 원소를 가지면, 음악으로 비유하자면 재즈식 요리를 할 수 있어요. 이제까지 레시피는 클래식이에요. 모든 것이 다 정해져 있어요. ‘이걸 두 큰술 넣고 저걸 한 큰술 넣고 15분간 끓인 후에 뜸을 10분 들인다’라고 모든 것이 다 적혀 있다면, (이 책은) ‘요리는 기본적으로 이런 요소가 있어’라고 보여주고 ‘이 안에서 네가 알아서 해봐’라고 하는 거죠.
이렇게 이야기하면 굉장히 제가 요리의 천재 같아 보이겠지만 늘 실패를 하고요. (웃음) 이 책은 ‘요리에는 왕도가 없고 맛을 보는 것을 습관화해서 계속 맛을 봐라’라고 이야기해요. 그리고 (요리가) 잘 안 될 경우에 대한 애프터서비스 방법도 알려주는데, 마지막은 ‘실패해도 상관없다. 그냥 저녁 한 끼가 잘못된 것뿐이다. 그냥 편하게 피자를 시켜 먹어라. 다음에 다시 하면 된다’라고 가볍게 이야기해줘요.
그냥 : 저는 우무를 되게 좋아해요. 우무 아시죠? 한천(우뭇가사리)으로 만드는 묵. 여름에 마트에서 자주 보이는데, 콩국도 이맘때 잘 보이죠. 예전에 식당에 갔다가 콩국에 우무채를 넣어서 애피타이저로 나온 걸 봤어요. 너무 괜찮더라고요. 그래서 종종 그렇게 해먹는데 최근에도 먹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름에 꼭 해먹는 음식이 있는데 미역오이냉국이에요. 제가 국이나 찌개가 있어야 밥을 먹는 편인데, 여름에는 뜨거운 국물 요리를 만들기도 힘들고 먹기도 힘들잖아요. 그래서 냉국이 필요한데, 오이지로 냉국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미역오이냉국도 먹습니다.
그리고 작년부터 해먹기 시작한 메뉴가 있는데 ‘고추장물’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고추다대기’라고 부르기도 하더라고요. 저는 이 음식을 모르다가, 예전에 친구랑 거창에 놀러갔는데, 음식점에서 이 반찬이 나왔어요. 맑고 자박자박한 국물에 다진 고추가 담겨 나오는데, 먹다 보니까 계속 들어가는 거예요. 이거 하나만 두고도 밥 한 공기를 다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래서 인터넷 검색을 해서 레시피를 찾았는데 만드는 방법이 굉장히 간단합니다. 청양고추하고 풋고추를 다져서 볶다가 육수나 채소를 넣고 같이 끓이면서 간만 맞추면 돼요. 그리고 식혀서 냉장고에 두고 차갑게 먹는데 정말 맛있어요.
그냥의 선택
백지혜 저 / 정멜멜 사진 | 세미콜론
많은 분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책이죠. 저는 레시피 책을 고르는 몇 가지 기준이 있는데요.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인가’가 굉장히 중요하고, 그리고 ‘내가 아는 맛인가’를 생각해 봐요. 전혀 모르는 식재료로 만든 맛본 적 없는 메뉴는 그 맛을 재현하기가 힘든 것 같거든요. 이 맛이 맞는 건지 틀린 건지 모르니까 따라하기가 힘든 것 같아요. 그리고 ‘일상에서 자주 해 먹을 수 있는 요리인가?’ 따져봅니다. 특별한 날 먹는 요리들의 레시피 책도 있지만 저는 자주 해 먹을 수 있는 레시피가 좋거든요.
『채소 마스터 클래스』는 이 조건들을 다 만족시킨 것 같아요. 일상에서 우리가 자주 먹고 그래서 항상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을 가지고 만든 요리들이 실려 있어요. 토마토, 당근, 호박, 양배추, 가지, 버섯, 파, 무. 이렇게 8가지 채소와 관련된 레시피가 실려 있습니다. 우리 집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로 만들 수 있는 요리들만 골라 봐도, '알배추 발사믹 볶음', '구운 가지 샐러드', '느타리버섯 유린기', '대파 수프' 같은 것들이 있었어요. 지금 당장 냉장고에 있는 것들로 시간만 내서 만들 수 있는 요리들이에요.
한자 : 제가 식사를 주로 집에서 하거든요. 그런데 요리 과정이 거의 없습니다. 가급적 그냥 먹을 수 있는 것 위주로 먹다 보니까 별로 조리를 하지 않아요. 예전에 비해서는 뭔가 조리 과정이 많고 조미료가 많이 들어가는 음식을 먹으면 몸이 좀 힘들어요. 가급적 조미료, 소금, 깨 정도만 사용하는 요리를 해먹는데, 그래서 레시피랄게 딱히 없어요.
그리고 제 레시피를 소개하려면 특정 두부 가게가 꼭 있어야 합니다.(웃음) 두부를 파는 집이 언제부터인가 동네에 존재하고 있었더라고요. 그 집에서 두부하고 콩국물 하고 콩나물을 사서 매일 먹고 있어요. 저는 밥 대신에 두부를 먹습니다. 그리고 콩나물 무침 반찬해서 먹고, 두부 구워서 먹고, 콩국물에 콩국수를 해먹죠. 오이 잘라서 넣고 굵은 소금 넣고 깨 넣고.
그런데 이 ‘깨’가 중요해요. 화곡동 남부시장에 있는 방앗간에 정말 깨를 맛있게 볶는 집이 있는데, 그 집에서 산 깨만 먹습니다. 아무튼 그러하고. 저는 레시피라고 할 게 딱히 없는 게, 밥을 먹을 때도 그냥 맨밥을 먹어요. 양을 많이 먹긴 하는데 그냥 밥만 먹습니다. 밥 자체로 너무 맛있지 않나요? 제가 ‘수향미’를 먹는데 정말 맛있어요.
한자(황정은)의 선택
비 윌슨 저 / 김하연 역 | 어크로스
제가 레시피 책을 좀 찾아서 읽는 편이거든요. 예를 들어서 프랑스 과자 만드는 법이라든지 초콜릿 만드는 법이라든지. 제가 만들거나 먹는 건 아닌데, 그냥 맛있는 게 묘사된 문장을 읽고 싶어서 레시피가 수록된 책을 찾아서 읽거든요. 오늘 방송을 앞두고 레시피 북을 찾으려다가 방송 취지에 맞춰서 너무 열심히 찾지 말자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내가 해먹지 않는 음식이 실린 레시피를 소개를 할 수는 없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레시피 말고 식사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을 가져오자고 생각했습니다. 책의 내용은 이미 단호박 님께서 (<삼천포책방>에서) 소개한 내용으로 대신하고요.(웃음)
제가 비 윌슨 저자가 쓴 전작 『포크를 생각하다』를 너무 재밌고 맛있게 읽었어요. 모든 문장을. 그래서 이 저자의 책을 찾다가 『식사에 대한 생각』을 발견하고 읽기 시작한 책입니다. 포도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이 되는데, 포도가 참 달다는 이야기부터 시작되거든요. 그런데 정말 단맛밖에 없다, 사람들이 단맛을 좋아하기 때문에 단맛이 강화된 품종으로 개량된 포도를 우리가 먹고 있다는 이야기부터 시작이 됩니다. 프롤로그에 이런 내용이 있어요.
전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삶은 점점 더 나아지고 있지만 식단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우리 시대의 식생활에 담긴 씁쓸하고도 달콤한 딜레마다. 몸에 해로운 음식을 허겁지겁 먹는 것은 자유로운 현대사회에서 살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처럼 보인다. (...) 하지만 이런 자유롭고 안락한 생활방식은 우리가 먹는 음식이 우리를 죽이고 있다는 사실에 힘을 잃는다. 음식은 부족해서가 아니라 흘러넘쳐서 우리를 괴롭힌다. 속이 텅 빈 풍요다. _『식사에 대한 생각』, 「프롤로그」중에서
우리의 식문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그런 책이에요. 이 책에서 또 인상 깊었던 내용이 있는데요. 어떤 한 가지 식재료가 건강식품으로 알려지고 전 세계에서 그 소비가 폭증하면서, 정작 그 식품을 주식으로 먹는 산지의 시민들이 그 가격이 너무 비싸져서 그걸 먹지 못하게 되고, 그리고 간편한 정크 푸드를 먹게 되면서 저소득 국가 어린이들의 비만으로도 연결되는 사회 현상도 짚고 있어요. 사회학서인데 문장들이 대단히 맛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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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