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프리카요? 요리 관련 책이에요?”
소설집 이름을 들은 사람 중 열에 다섯은 이렇게 되묻는다. '파브리카' 라는 다소 생소한 이름의 이 소설집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까? 표제작 「파브리카」로 시작하는 김지현의 첫 소설집 『파브리카』 속에는 저자가 소설가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한 신춘문예 등단작인 「흰 콩떡」을 비롯해서 「누수」, 「방」, 「구인」 등의 작품이 실려 있다. 간결한 제목들만 봐서는 도저히 그 내용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궁금증으로 조바심이 나는 마음을 가까스로 추스르며 김지현 작가에게 질문을 던졌다.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2019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지현입니다. 2018년도부터 ‘네시오십분’이라는 1인 출판사를 운영하며, 에세이집과 독립 잡지 등 다양한 책들을 기획하고 출판하고 있는 새내기 출판인이기도 합니다. 소설을 쓰다가 넘치는 이야기들이 버거울 때면 숨통을 틔우는 기분으로 에세이를 쓰고 직접 편집 디자인을 하며 ‘부캐’로 독립 출판을 합니다.
소설가의 길을 걷게 되신 계기가 무엇인가요?
학창 시절 유행한 ‘인터넷 소설’이 소설 쓰기의 시작이었어요. 90년대생들은 비슷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을 텐데요. 밤을 새우며 즐겁게 읽었던 인터넷 소설들을 따라 여러 편의 로맨스 소설을 지어 친구들에게 보여 주었고, 친구들의 열띤 감상평이 창작의 즐거움을 심어 주었어요. 그때부터 진짜 하고 싶은 말, 현실에서는 해소되지 않는 궁금증과 질문들을 ‘이야기’를 통해서 하기 시작했어요. 소설이 무엇인지, 어떻게 쓰는 것인지 전문적으로 배워 보기 전에 친구들과 장난치듯 쓰고 읽으며 즐거운 과정으로 익혔고 이후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깊은 생각들을 이야기로 풀어내며 삶의 의미를 찾는 통로로 자연스럽게 제 삶에 녹아들게 되었습니다.
책 제목을 ‘파프리카’로 착각하는 분들이 많을 듯한데요. ‘파브리카’의 의미가 무엇인지, 또 왜 이 작품을 표제작으로 삼았는지 궁금합니다.
‘파브리카(Fabrica)’는 근대 해부학을 확립한 ‘베살리우스’가 쓴 『사람 몸의 구조(De Humani Corporis Fabrica)』(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 글, 엄창섭 감수, 도서출판그림씨, 2018)라는 책의 약칭에서 가져온 제목입니다. 스페인어로 ‘제조’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해부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책으로, 베살리우스가 직접 인체를 해부하고 그린 해부도가 상세하게 수록되어 있어요.
국내에 출판된 책을 보고 영감을 얻어 「파브리카」라는 단편을 썼습니다. 「파브리카」는 태어날 때부터 확정된, 대물림되는 유전적 특질을 통해 감지되는 가족이라는 굴레 또는 운명에 맞서 ‘새 얼굴’을 찾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다른 작품들 역시 각기 다른 이야기지만, 어쩔 수 없는 운명 앞에 ‘새 얼굴’을 갖기 위해 자기만의 방식으로 나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파브리카」를 표제작으로 삼았어요. 그런 의미에서 소설집의 대표 문구인 “새 얼굴을 드릴게요.”는 소설 속 인물들을 향한 목소리이기도 합니다.
한 작품집 안에 '초단편 소설', '가족 소설', '심리 소설', 'SF 소설' 등 다양한 성격의 소설들이 함께 있는데요. 이렇게 다양한 소설을 시도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일상의 지극히 사소한 부분들에서 이야기의 영감을 얻는데요. 평범하고 특별할 것 없다고 여겨온 일상을 새롭게 보기 시작하면서, 주위의 사소한 것들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이야기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삶의 의미와 특별함이 지극히 일상적인 부분들에 녹아 있는 것 같은 순간들을 만나면 그런 사소한 것들을 어떻게 ‘사소하지 않게’ 이야기해 볼 수 있을지 늘 고민하게 됩니다. 소중한 이야기는 ‘소재’가 아니라 그 이야기를 바라보는 방식, 풀어내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저의 삶이 무난하고 평탄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요. 밋밋한 삶을 특별하게 들여다보려는 오랜 노력이 자연스럽게 작품에 대한 고민과 새로운 시도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이번 소설집 속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 혹은 독자분들이 유심히 읽어 주시면 좋을 것 같은 장면을 골라 주세요.
각각의 작품마다 좋아하는 장면이 있지만, 마지막 작품인 「구인」의 마지막 장면을 특히 좋아합니다. 재난 상황 같은 소설 속 세계와 고통스러운 일들의 마지막에 주인공이 하는 선택이 결코 긍정적일 수 없겠지만, 저는 그 장면을 미약한 희망이 담긴 이미지로 그려 보고 싶었어요. 모든 것을 포기해버린 비관적인 의미가 아닌, 아주 연약한 빛을 향해 새롭게 나아가 보는 그런 의미로요. 저에게는 그 장면이 삶과 운명을 견디는 생명력을 품고 있는 이미지로 남아 있어요. 「구인」 마지막 장면을 천천히 그려 보며 읽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어떤 시선으로 읽어도 좋습니다.
특히 어떤 분들께 『파브리카』를 추천해 드리고 싶으신가요?
살아내는 게 막막한 순간들을 만나게 될 때 읽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늘 애쓰며 살고 있는데 나의 의지나 노력과 무관하게 힘겨운 순간들을 만날 때, 일순간 무력해질 때, 나만의 안전한 공간에서 한 발짝도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을 때 『파브리카』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겨낼 힘이나 답을 주진 않는데, 이상하게 인물들이 알 수 없는 위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런 시간을 한 번이라도 겪어 본 적 있으시다면 누구나 조금쯤 공감하며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소설을 쓰고 싶으신가요?
인물을 구상할 때면 늘 ‘지켜보는’ 인물일 때가 많더라고요. 사건을 만들고 생동하는 인물보다 조용히 지켜보고 따라 걷는 인물이 저에게 편안한 자리라고 여겨온 것 같습니다. 더불어 각각 다르게 구상하고 발표했던 작품들을 한데 모아 놓고 보니,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소 비관적인 것 같기도 하고요. 소설집 작업을 하며, 세상을 어떻게 지켜보고 있었는지 스스로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어요. 앞으로는 조금 더 살아 움직이는 인물로 삶의 생생함과 관계의 역동이 느껴지는 이야기를 빚어 보고 싶습니다.
*김지현 1991년 부산에서 태어나 북쪽 끝 동네에서 살고 있다. 2019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여행 에세이 『덴마크 우핑 일기』 등을 독립 출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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