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시아는 200개가 넘는 화분을 돌보는 집사다. 매일 물시중을 들면서도 “움직이는 명상”이라며 즐거워하는 식물 덕후이기도 하다. 초록의 기분 아래 나날이 행복한 그녀의 사생활을 인터뷰하며 흥미로운 단어들을 만났다.
식덕
식물을 키우는 많은 분들이 모두 식물 집사일 텐데요. 키우는 식물이 100개 이상 넘어가고 비 오는 날 빗물을 받고 있다면 식물 덕후, 바로 ‘식덕’의 조짐이 보이는 거랍니다. 저는 식물을 키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자다가도 일어나 튤립 구근을 살피러 갔어요. 자려고 누웠는데 눈앞에 식물들이 아른거리고 식물 꿈을 꾸기 시작했는데, 그때 ‘내가 식덕이 되겠구나.’ 깨달았답니다.
풀친
식물로 알게 된 친구들을 ‘식친’이라고 하는데 요즘엔 풀친구, 풀친이라는 말을 더 자주 쓰는 것 같아요. 트위터에는 ‘식물계’라는 세계가 있어요. 식물 계정을 따로 만들어 식물 얘기만 하는 곳인데, 이곳에선 정치나 현실 얘기를 하지 않고 식물 사진만 올리고 식물 얘기만 나눠요. 여기서 10년 정도 활동하다 보니 좋은 풀친들이 많이 생겼어요.
식물 나눔
가끔 풀친 집에 모여서 식물에 대한 수다도 나누고 식물도 교환해요. 풀친끼리는 식물을 나누는 문화가 있는데, 가지를 잘라 번식할 수 있는 식물들을 가져와 서로 교환하는 것이지요. 풀친이 생기면 키우는 식물 종류가 두 배가 된답니다. 내가 나눠준 식물을 잘 키워서 크게 만든 친구의 사진을 보면 뿌듯해요.
풀멍
퇴사 후 식물을 키우면서 본격적인 풀멍을 하기 시작했어요. 오전 햇빛이 거실 창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 창을 열어 환기를 하고 음악을 튼 채 식물들에게 물을 준답니다. 화분에 물을 쪼르르 주고 있으면 흙이 살짝 부풀었다가 가라앉는데 그걸 보고 있는 것도 좋고 이파리에 막 햇빛이 떨어지는 순간을 바라보는 것도 좋아요. 꼭 움직이며 하는 명상 같지요. 식물들은 물을 주자마자 달라져요. 저속 촬영으로 식물을 찍으면 식물들이 엄청나게 움직인다는 걸 알 수 있죠. 물을 주고 30분에서 1시간 정도 지나면 처졌던 이파리가 올라오고 생기가 돈답니다. 그렇게 관찰을 하다 보면 이 식물에게 부족한 게 뭔지, 뭐가 과한지도 알 수 있어서 건강하게 키울 수 있어요. 물론 저도 치유가 되고요.
식물맹
이탈리아의 식물학자가 만든 말이라고 해요. ‘식물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동물에 비해 무시하는 경향’을 뜻하는데, 경쟁 속에서 너무 바쁘고 팍팍하게 살다 보니 움직이는 동물만 인식하는 것이지요. 나를 공격할 염려가 없는 식물들은 쳐다보지도 않고요. 하지만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자연과 식물에 관심을 갖게 되겠지요. 우리는 식물에 둘러싸여 살고 있으며 식물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는 진실을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테니까요.
진취적 과습러
식물 친구가 저에게 붙여준 별명이에요. 과습이란 식물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정도로 많은 물을 준다는 의미인데, 식물에 자주 물을 주지만 죽이지 않으면서 빨리 키우는 제게 찰떡같은 별명 같아요. 식물은 많이 키워보면서 경험을 해야 자기에게 맞는 식물을 알 수 있어요. 빛이 그렇게 많이 들어오는 편은 아닌 저희 집에서 진취적 과습러인 저한테는 관엽식물이 잘 맞아요. 다육이를 키워보기도 했지만 물을 자주 주면 안 되는 식물이라 못생겨지고 안 맞더라고요. 궁합이 잘 맞는 식물을 알기 위해서는 식물을 들이기 전에 원산지를 알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원산지의 기후를 알면 자신의 집 환경과 비교해 볼 수 있으니까요.
식태기
식물 집사의 현생이 바쁘면 식태기가 온다고 말해요. 바쁘면 관리를 덜 하게 되고 식물은 바로 시들해지죠. 마음처럼 되지 않는 식물을 보며 책임감이 엄습하고 버거워지기도 하면서 권태기가 찾아올 수 있어요. 해충이 찾아와서 식물이 죽거나 힘들어할 때도 식태기가 올 수 있고요. 장마철에는 실내도 어두컴컴하고 빛이 부족한 데다 습도가 높아져서 식물에게도 좋지 않은데, 이럴 때 식태기가 오기도 해요. 식물도 햇빛이 넘치고 예쁘게 성장할 때 더 사랑스러우니까요. 하지만 요즘에는 이 말을 쓰지 않으려고 해요. 부부에게도 권태기가 오지만 평생 좋은 친구로 지낼 수 있잖아요. 식물도 언제나 처음 같은 열정으로 사랑할 순 없겠지만 꾸준히 관심을 갖고 좋은 관계로 지내면 되지 않을까요?
요양 보내기
저희 집은 확장형이라 베란다가 안방에만 작게 있어요. 광량도 좋고 습도도 높은 편이라 거실에서 상태가 안 좋아진 식물들의 요양처가 돼요. 중환자실이라고 하는데 거기서 요양을 하고 치료를 받은 후에 다시 건강해지고 예뻐지면 거실로 데려와 기념사진을 찍어주죠. 식물 상태가 안 좋으면 환경을 한번 바꿔주는 것도 좋답니다.
식물 유치원
작은 식물을 가져와서 크게 키우는 걸 좋아해요. ‘유묘’라고 부르는데 나눔 받은 이파리 하나를 작은 콩분에 심어 모아놓고 키우죠. 이런 아기 식물들을 모아놓은 곳을 식물 유치원이라고 불렀는데 유튜브 구독자분들이 좋아하더라고요. 식물마다 자라는 속도가 다른데 보통 6개월 이상은 지나야 유치원을 졸업하는 것 같아요. 지금 저희 집엔 필로덴드론과 안수리움 유치원이 있답니다.
식물과 고양이
많은 식물 집사들이 식물과 고양이를 함께 키워요. 식물 중에는 독성이 있는 것들도 있어서 처음에는 그런 식물을 베란다에 가둬놓고 키우기도 했어요. 한데 신기하게도 저희 집 고양이 ‘양파’는 냄새를 맡아보고 그런 식물은 건드리지 않더라고요. 천재인가 싶었는데 다른 분들도 같은 얘기를 하세요. 사실 엄청 많이 먹어야 치명적인 해가 되기도 하고요. 아직까진 고양이가 독성이 있는 식물을 먹어 사고가 났다는 얘긴 들어보지 못했어요. 고양이들은 ‘숨숨집’처럼 식물 사이에 숨어 있는 걸 좋아하는데 양파가 풍성하게 자란 아디안텀 뒤에 숨어 있으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더라고요.
*신시아 출판사에서 10년 넘게 마케터로 일했다. 퇴사 후 식물의 세계에 빠져들어 덕후가 되었고 유튜브 채널 <신시아TV>를 운영하며 식물 집사의 일상과 기쁨을 전하고 있다. 식물에게 받은 위로와 행복을 나누기 위해 『내 기분이 초록이 될 때까지』를 펴냈다. |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기낙경
프리랜스 에디터. 결혼과 함께 귀농 했다가 다시 서울로 상경해 빡세게 적응 중이다. 지은 책으로 <서른, 우리가 앉았던 의자들>, <시골은 좀 다를 것 같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