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단어들은 우리가 만든 것이지만 어느 정도는 우리를 만든 것이기도 하다. 유행이 지나 아무도 쓰지 않는다고 해도 그런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 단어들을 탄생하게 한 사람들의 마음과, 그 단어들이 사람들의 마음에 남긴 흔적 같은 것은. 그러니까 여기에 실린 글들은 최근 몇 년 동안 널리 사용되었던 말들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그 말들을 썼던 우리와 우리가 살았던 사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금정연 작가님의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습니다』에서 읽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소설 쓰는 황정은입니다. 오늘 <야심한책>에서는 유행어와 신조어를 다룬 책으로 대화를 나눌 텐데요. 남들이 다 써서, 재미가 있어서, 지금 딱 맞는 것 같아서, 우리가 사용하는 유행어나 신조어에는 사실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남들도 당연히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하며 어떤 신조어를 사용할 때 나는 ‘내 생각도 그러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라는 말을 간편한 말 몇 마디로 대신한 것과 같습니다. 저는 이것이 일종의 합의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습니다』를 지은 금정연 작가님은 이 합의의 배경을 스물네 개의 신조어를 통해 들여다봅니다. 어쩌면 들여다볼수록 사랑을 잃게 만드는 이 말들을 통해 인간을 계속해서 사랑하며 살아갈 방법과 인간을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계속해서 살아갈 방법을 고민한 작가, 이제 만나보겠습니다. <황정은의 야심한책>, 시작합니다.
<인터뷰 – 금정연 서평가 편>
오늘의 손님은 ‘서평 아닌 글을 더 많이 쓰는 서평가’입니다. 이번에는 우리가 만든 것이면서 동시에 “어느 정도는 우리를 만든 것이기도 한” 유행어와 신조어에 대한 이야기를 쓰셨어요.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습니다』의 저자 금정연 서평가를 모셨습니다.
황정은 :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습니다』는 금정연 작가님이 2년 동안 <독서평설>에 연재한 원고들을 묶은 책입니다. 처음에 연재 제안을 받으셨을 때 망설였다고 하셨는데요. 어떤 고민들을 하셨는지, 그래도 연재를 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금정연 : 저는 ‘서평을 쓰지 않는 서평가’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면서 책에 대한 이야기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 아니면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주로 쓰는 작가였잖아요. 그러면서 어떤 사회적인 이야기나 정치적인 이야기는 잘 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어요. 제가 비정치적이거나 비사회적인 인간이어서가 아니라, 뭐랄까요, 저한테는 약간 어려운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인데요. 제가 생각하기에 글을 쓰는 사람은 자기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항상 인식하고 글을 써야 된다고 생각을 해요. 자기가 딛고 선 자리가 분명히 있고 그 자리에서 어떤 사물이나 세상을 보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글에도 드러나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게 되고. 조금 비겁하게 말하자면 제가 서 있는 자리, 그리고 제가 여태까지 쌓아왔던 것들이 사회에 대한 발언을 하기에는 조금 부족하지 않나. 제 깜냥이나 소양이. 그러면서 ‘괜히 내가 섣불리 이런 이야기를 해서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사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솔직히 좀 있었던 것 같고요.
황정은 : 그런 이야기를 할 때 자격에 대한 고민도 하게 되는 것 같아.
금정연 : 그렇죠.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해보자면 어쨌든 저는 서울에서 태어난, 40대가 된 남성이고, 대학을 나오고, 가정이 있고, 그렇잖아요. 그렇다고 제가 대단한 걸 이루었거나 대단한 걸 가진 건 전혀 아니지만, 어쨌든 이 정도만 하더라도 말하자면 이 사회의 기득권층인 거죠. 기성세대이고. 이런 자리에 있는 사람이 사회에 대한 발언을 하는 거에 대한 제가 독자로서 가져왔던 어떤 불만, 불편함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아요. 보통은 두 가지 중 하나가 되기 쉬운 것 같은데요. 하나는, 자기가 가진 기득권을 생각하지 않고 하늘 위에서 모든 사태를 공평무사한 자리에서 조망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죠. 그건 말도 안 되고, 글을 보면 조금 역겹다고 느껴질 때가 많죠. 또 다른 방법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누구나 알고 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뻔한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 제가 어떤 이야기를 하려면 두 가지 방법 밖에 없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황정은 : 두 가지 말고도 길이 더 있을 것 같긴 하지만 금정연 작가님에게는 그렇다는 말씀이시네요.
금정연 :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하기로 마음을 먹은 거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나이도 많이 먹었고 (웃음) 너무 (몸을) 사리고 있기보다는 이제는 이런 말을 해야 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청탁이 곧 재능’이라는 블랑쇼가 한 말이 있거든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재능이라는 게 어떤 사람 안에 잠자고 있다가 밖으로 표출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우연한 계기를 통해 와서 그 사람을 알 수 없던 상상하지 못했던 곳으로 데려가는 것이 재능이다’라는 식의 말을 블랑쇼가 발레리의 예를 들면서 했는데요. 어쨌든 지금 이 시점에서 이 청탁이 나한테 온 건 내가 이런 걸 한 번쯤 시도해볼 때가 되었다는 뜻일 수도 있고, 더불어 아이와 함께 살면서 고민했던 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될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황정은 : 책에는 신조어 스물네 개의 기원과 배경을 살피는 글들이 실려 있습니다. 존버, 금수저/흙수저, 취준생, 국룰, 손절, 많관부, 노키즈존 등등의 단어들이 실려 있는데, 이 단어들을 고를 때 기준이 있었을까요?
금정연 : 처음 연재를 하기로 하고 제가 아는 신조어들을 써봤어요. 제가 사실 신조어를 많이 사용하는 편이 아니고 제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제가 아는 신조어가 그렇게 많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가짜 뉴스, 틀딱, 맘충, 존버, 손절, 한남, 이 정도만 정해놓고 시작을 했는데. 글쎄요, 특별한 기준이라고 한다면, 일단 넓은 계층에서 혹은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거나 들어봤거나 이렇게 널리 알려진 단어들을 고르려고 노력을 했고요. 예를 들면 ‘버카충’ 같은 건 옛날 단어이긴 하지만 중고등학생들이 쓰는 거잖아요. ‘버스 카드 충전’의 약자인데, 그런 걸 쓰기에는 약간 협소하다는 생각이 있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단어의 두께라고 해야 될까요. 사회적으로 이야기할 거리가 많은 단어들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야 제가 글을 쓰기도 편한 부분이 있으니까요.
황정은 : 이 책에 실린 말들이 이른바 신조어인데, 저는 이 말들이 그다지 새롭지 않다는 느낌이 드는 게 좀 이상했습니다. ‘취준생’ 꼭지에도 쓰셨지만, 그런 느낌은 ‘생각보다는 꽤 오래 우리 곁에 이미 있던 말들이라서’일까요?
금정연 : 맞아요. 취준생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늦깎이 신조어죠. 굉장히 오래전에 시작했지만 조금씩 조금씩 쓰이기 시작하다가 어느 순간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되는, 그러면서 이제는 신조어라는 말을 벗고 그냥 일상 단어 사전에 등재를 해도 되지 않나 싶을 정도의 단어가 된 경우인데. 그것도 우리의 긴 언어생활 중에서 보면 신조어죠. 21세기에 태어났으니까. 약간 신조어라는 범위를 좀 넓게 잡았어요.
황정은 : 그래야 층이 쌓이는군요.
금정연 : 네.
황정은 : 그런 것도 있지만, 저는 ‘이 말이 굳이 없던 시기에도 이런 태도들이 이미 있던 태도들이라서 기시감이 드는가 보다’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래서 작가님이 이번 책을 읽으면서 유행어라는 게 사실 우리의 진부함을 정말 잘 짚어내는 말인 것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금정연 : 아, 네.
황정은 : 책의 첫 꼭지를 ‘존버’로 시작하는 것이 저한테는 대단히 의미심장했습니다. 금정연 작가님과 같은 원고 노동자로서 제가 무언가를 짐작하고 미리 공감을 했나 봐요. (웃음) 산문 작업이라는 게 일단은 존버이잖아요. (웃음)
금정연 : 그렇죠. 엉덩이로 쓴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황정은 : 그건 아니에요. (웃음) 등 근육과 복근으로 씁니다. 엉덩이 못지않게 그게 되게 중요하고...
금정연 : 아, 그렇죠. 코어라고 하죠.
황정은 : 네, 코어가 중요하죠. 엉덩이도 중요하지만. (웃음) 저는 작가님이 이 스물네 개의 말들이 생겨난 배경 때문에 서글퍼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이 말들은 금정연 작가님이 싫어하는 말들이라는 게 티가 나기도 했거든요.
금정연 : 아, 그렇습니까. (웃음)
황정은 : 네, 고충이 느껴져서 정말 존버하면서 이 원고들을 모으셨다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너무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신 거 아닌가요?
금정연 : 글쎄요, 저는 이 책을 굉장히 좋은 마음으로 썼고요. (웃음)
황정은 : 네, 좋은 마음으로 쓰셨군요. 진심이세요? (웃음)
금정연 : (웃음) 그런데 쓰기가 진짜 쉽지 않았어요. 좋은 말도 있지만, 어쨌든 좋지 않은 뜻을 담고 있는 말들이 많고, 그것이 우리 사회를 비춰주는 어떤 거울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단순히 단어 자체가 싫다기보다는 그것들이 떠올리게 하는 사회적인 문제들이 저를 괴롭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황정은 : 그 말에 대해서 생각을 한다는 건, 그 싫은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나 그들의 생각을 골똘하게 생각하는 과정이잖아요. 그래서 고생을 하셨겠다 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가장 다루기 힘들었던 말은 뭐였는지 궁금하기도 하네요.
금정연 : 이 책의 마지막 장으로 분리된 틀딱, 맘충, 노키즈존, 민식이법 놀이, 한남... 이런 혐오 표현들이죠. 이런 것들을 쓰기가 제일 힘들었죠.
황정은 : 그렇군요. 저한테도 고통스러운 말들이 그 챕터에 모여 있더라고요.
금정연 : 사실 이건 연재 순서는 아니고 편집부에서 이렇게 모아주셨어요. 연속해서 여섯 달 동안 이 원고를 썼다면 저는 아마 그전에 연재를 때려치우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드네요. (웃음)
황정은 : 이 책의 본래 제목으로 ‘미래 사어 사전’을 생각하셨다고 쓰셨어요. 저는 그 제목도 좋았습니다. 언젠가는 사라질 말을 생각하면서, 스물네 개의 말 중에 특별히 더 빨리 사라졌으면 하는 말도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떠셨어요?
금정연 : 네, 그렇죠. 마지막 장에 몰려 있는 혐오의 표현들, 그런 단어들이 쓰이지 않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글을 썼습니다.
황정은 : 말이 나온 김에, 스피드 퀴즈처럼 말을 좀 골라볼까요? 가장 가슴 아픈 말 두 개를 꼽자면?
금정연 : 민식이법 놀이와 맘충.
황정은 : 동감입니다. 저도 그랬거든요. 둘 다 ‘우리가 만든, 우리를 만든’이라는 마지막 챕터에 실린 말들이죠.
*금정연 서평을 쓰지 않는 서평가. 그전에는 온라인 서점 인문 분야 MD로 일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출근하기 싫어서 아침마다 울었고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한 뒤로는 원고를 쓰기 싫어서 밤새도록 울었다. 마감과 마감 사이, 글감을 떠올리는 고통스러운 시간과 허겁지겁 초침에 쫓기며 밤새 자판을 두드리는 시간을 단순 왕복하며 살던 중 일상을 이루는 최소한의 리듬, 반복되고 예측 가능한 하루의 회복을 꾀하며 일상기술 연구소의 고문연구원으로 합류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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