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감각』은 단어의 차이점을 조목조목 짚어 설명하는 책이 아니다. 소설 속 이야기를 따라가며 등장인물들이 상황과 상대와 의도에 맞게 사용하는 언어의 질감과 표현의 감각, 대화 속 언어에서 느끼는 청자와 화자의 마음을 전달하는 책이다. 이야기 속 인물들이 주고받는 말로 야기되는 갈등과 마찰, 더 진해지는 호감과 매력, 보이지 않게 상대를 배려하거나 마음 상하게 하는 말의 질감들이 바로 그것이다.
언뜻 비슷해 보이는 표현도 유심히 살펴보면 저마다의 얼굴과 표정이 있다. 미묘하게 다른 말의 표정을 알아차리면 자신의 감정을 좀 더 정련된 언어로 표현하게 되고, 이는 상호 소통에서 빚어지는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고 감정을 과함이나 모자람 없이 정확하게 표현하는 데 도움이 된다. 세심하게 고른 단어는 말의 품격을 높이고, 말하는 사람을 매력적으로 만든다. 국내 최고 가수들의 곡에 글을 입힌 한경혜 작사가가 일상의 언어를 톺아 건져 올린 표현들을 소설 속에 녹여냈다.
<벌써 일 년>, <아름다운 구속> 등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한 노래 작사를 많이 하셨는데요, 노랫말 하나를 고르는 데에도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표현의 감각』을 집필하시면서 작사가로서 당시의 고민들이 떠오르기도 하셨나요?
가사는 음악을 언어로 해석해서 전달하는 일이라 당연히 음악에 집중합니다. 음악의 틀에 맞춰 써야 하는 제한된 글쓰기라 자유가 없어요. 반면 『표현의 감각』은 글만 쓸 수 있는 매우 자유로운 작업이었습니다. 작사가로서 당시 느꼈던 고민이 떠올랐느냐고요? 제 대답은 “아니요!”입니다. 장르가 달라서 언어 체계 자체도 다르게 쓰거든요. 자유를 만끽하느라 떠올릴 틈이 없었어요. 물론 두 장르는 모두 저에게 매력적인 글쓰기의 시간을 줍니다. 앞으로도 여전히 그럴 거고요.
소설 속 인물 간의 대화나 상황 묘사를 통해 ‘표현의 미묘한 차이’를 풀어내셨는데요, 이렇게 ‘언어와 표현’에 대한 이야기를 서술하는 방식에서 소설을 차용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시다고 들었습니다.
처음 기획 원고를 제안 받았을 땐 거절했어요. 매우 쉬운 단어조차 틀리게 사용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고는 있었죠. 일상에서 거의 매일 마주치니까요. 그들에게 수정하여 사용하도록 말하곤 했는데요, 그때마다 ‘꼰대’라는 말을 들었어요.(웃음) 그런 ‘꼰대’가 되었음을 책으로 남길 자신이 없더라고요. 저 또한 알게 모르게 잘못 사용하는 단어도 꽤 많았으니까요.
거절하고 돌아섰다가 오래전에 읽은 책이 떠올랐어요. 철학을 소설 형식으로 풀어낸 책인데요, 그 책을 읽으면서 나도 이런 형식의 책을 쓰고 싶다는 욕구를 느낀 적이 있었거든요. 이 기억은 ‘소설 속 주인공을 통해 일상의 올바른 언어 습관으로 풀어가면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졌어요. 작가는 글 밖에 있고, 소설 속 주인공이 말하는 방식이라면 화자와 청자의 표현과 심리까지 세밀하게 묘사하는 것이 가능할 테니까요. 곧바로 소설 형식으로 샘플 원고를 써서 보냈죠. 처음 이 책을 기획하셨던 에디터님은 원고를 검토하고선 바로 ‘좋아요!’를 외쳐주셨어요.
소설 속 핵심 관계는 어설픈 아포리즘보다는 사랑과 연애로 끌어가는 설정이 좀 더 흥미를 높일 거라 생각했어요. 가르침은 따분하고 멀지만, 소설 속 주인공들의 사랑을 엿보는 건 흥미진진한 일이잖아요. 그들이 일상에서 나눈 대화들이 우리의 일상으로 건너오길 바랍니다.
본문 내에서는 많은 사람이 적재적소에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단어나 문구, 표현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도 소개하고 있는데요, ‘올바른 표현을 제대로 사용하는 것’과 ‘매력적인 사람이 되는 것’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적확한 단어를 사용하여 상황에 맞게 표현하는 사람은 똑 부러지는 인상을 주죠. 만약 그가 가진 가치관이 건강하다면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일 것입니다. 물론 배타적 가치관을 행하고 산다면 안 좋게 보이기도 하겠죠. 중요한 것은 (희생까지는 아닌) 적당한 이타심을 담은 태도와 표현으로 나와의 관계에 성실하게 임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기란 쉽지 않죠. 존중과 배려를 담아 적확한 표현을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말은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축적되는 것이라 믿어요. 올바른 표현을 때와 상황에 맞게 제대로만 말해도 매력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이 이런 사람들과 만나며 나의 에너지를 그 관계에 모으는 데 집중해보시길 응원합니다.
누군가에게 ‘다시 만나고 싶은 매력적인 사람’으로 기억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책에서 말하는 부분 외에, 작가님이 생각하는 ‘매력적인 사람의 품격’이란 어떤 것일까요?
누군가 안다면 저에게 답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웃음) ‘저 사람 참 괜찮다.’라고 생각한 제 경우를 짧게 예로 들자면 ‘배려’였어요. 듣는 자세에서 나오는 배려는 좋은 말을 하게 만들더라고요. 다른 하나는 ‘신뢰’였어요. 친한 후배들이 있는데요, 저는 그들을 볼 때마다 신뢰와 품격을 떠올려요. 잘못한 점은 짚어주고, 제가 당한 부당한 일엔 대신 분노하고 억울해하죠. 언제나 내 편이라는 한 마디 말로 저에게 신뢰를 가득 안겨주기도 해요. 누군가에게 신뢰를 준다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인데도 가능하게 만드는 것, 그 사람의 품격을 느끼게 되는 이유 중 하나인 것 같아요.
같은 말을 해도 기분 좋아지게 만드는 사람이 있고, 상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요?
뉘앙스 차이가 아닐까요? 말에 함의된 의미 역시 기준이 될 테고요. 작사가 지망생 시절에 들은 말이에요. 되지 않을 일에 매달리지 말고 다른 일을 찾아보라며 조심스럽게 충고한 사람이 있었어요. 정중했고 예의 바르게 제 꿈을 꺾은 거죠. 반면에 한 사람은 “고민할 시간에 써!”라며 다그쳤죠.
거칠게 말했지만 절 쓰게 한 사람은 후자였어요. 스승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요. 반면 전자의 사람과는 달랐죠. 제가 쓴 노래가 지속적으로 좋은 결과로 이어지니까 제 가사 받는 게 소원이라며 요청했을 때 거절했어요. 가늘고 긴 뒤끝이었네요.(웃음) 뉘앙스와 말이 품은 의미 모두를 상대가 느끼고 알 수 있게 표현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느낀 경험이었습니다.
많은 분이 어떻게 말하는 게 잘 말하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일상에서 끊임없이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말 잘하는 것’과 ‘잘 말하는 것’은 어떻게 다른 걸까요?
본문에 ‘제대로 사는 것’과 ‘제대로 된 삶을 사는 것’에 관한 내용이 나오는데요, 그것과 같은 맥락으로 대답할 수 있겠어요.
주변만 둘러봐도 말을 잘하는 사람 아주 많죠. 근거를 제시하며 논리적으로 끊어지지 않게 말을 하면 보통 ‘말을 잘한다’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러나 ‘잘 말하는 것’은 다르겠지요. 주변 상황과 존중과 배려, 이타심이 필요해 보여요. 가까운 언니들과 만나면서 깨닫게 된 부분이 있는데요, 그들에게선 단 한 번도 불편한 질문을 받지 않았어요. 저는 그것이 ‘나는 마음을 열었고, 네가 말할 수 있는 만큼만 들려줘.’라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들은 저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하니까 비로소 그 말에 호응하여 질문을 하더라고요. 참 좋았어요.
그때부터 사람을 사귈 때 질문하는 대신 듣고 싶은 말을 들려주려 노력해요. 제가 이런저런 질문을 하지 않으니 자신에게 관심이 없냐고 하는 사람, 자기 얘기만 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고, 제 말에 귀기울이고 있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도 있었어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긴 힘들겠지만 저는 상대가 불편해 할 만한 상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 ‘잘 말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상대가 들려준 이야기 안에서 질문하고, 답을 듣고 대화를 하는 것이 ‘잘 말하는 것’에 가장 가깝지 않을까요?
『표현의 감각』은 어떤 분들이 읽으면 좋은 책인가요?
우선 저부터 읽어야 할 책이에요. 저는 여전히 사람들과 만나고 돌아서면 제 하루를 톺으면서 실수한 말과 하지 말았어야 할 말들을 놓고 반성하거든요. 이 책으로 실수 한 번만 줄여도 좋을 것 같아요. 많은 분이 저와 같은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계시겠죠? 그런 분이 계시다면 함께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이 세상에 ‘완벽한’ 말과 표현은 없겠지만 ‘제대로’ 표현하는 약속된 방식은 존재하니까요. 말, 왜 이렇게 어려울까요?
*한경혜 작사가, 소설가. 드라마 ‘종합병원’의 주제가인 <혼자만의 사랑>으로 작사가의 길로 들어선 후, 브라운 아이즈, 신승훈, 김건모, 김종서, 쿨, 임창정, 박효신 등 국내 최고의 가수와 작업했다. 1997년 <아름다운 구속>으로 SBS가요제 최고작사가상, 2001년 <벌써 일 년>으로 SBS가요제 최고작사가상과 서울가요제 올해의 작사가상을 수상했다. 서울디지털대학교 초빙교수, 서울호서예술실용전문학교 초빙교수를 역임했고, FNC아카데미에서 강의했다. 2004년 단편소설 『비행』으로 한국소설 신인상에 당선, 소설가로 등단한 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2006), 『엄마에겐 남자가 필요해』(2007), 『어쩌면 사랑』(2009), 『켈리키친』(2018), 『작사가가 되는 길』(2019)을 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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