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튈르리 공원의 태양은 지나가는 그늘에 선잠에서 깨어난 금발의 소년처럼 몽롱한 모습으로 돌계단을 한 칸씩 올라간다. _프루스트, 『쾌락과 나날』 중
마르셀 프루스트가 쓴 튈르리의 한 문장으로 글을 시작한다. 지금은 4월이고, 잠에서 깬 금발의 소년처럼 몽롱한 태양이 내 머리 위를 한 칸씩 올라가고 있으니까. 나는 책을 펼치고 잠시 튈르리 공원에 다녀온다.
프루스트의 튈르리에는 고운 봄바람과 릴라꽃 향기가 있고, 나의 튈르리에는 녹색 철제 의자 위로 길게 뻗은 다리와 배 위에 덮어 놓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있다. 4월에는 튈르리에서 프루스트를 읽었다. 그곳이 스완네 집 쪽으로 가는 길 같았다.
문득 프루스트가 떠오른 것은 방금 파리행 비행기 티켓을 끊었기 때문이다. 3년 만에 여권을 재발급 받았고, 옷장 속에 처박아 둔 여행 가방을 꺼냈다. 파리에 가면 무엇을 할까 계획을 적다가 꼭 해야 할 일 중에 프루스트 150주년 전시회 보기를 목록에 넣었다.
“언제부터 프루스트를 좋아했어?”
마르땅(반려인)이 내 다이어리를 슬쩍 훔쳐보다가 말했다.
프루스트의 산문을 번역하면서 “도대체 이 문장은 가고자 하는 곳이 어디야?”라고 마르땅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그때 그는 얄밉게 태연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없어, 어디를 가고자 하면 안 돼. 그냥 그 안에서 길을 잃어야지.”
독서할 때는 그의 긴 문장 속에서 길을 잃는 경험이 아름답지만, 번역할 때는 구글맵이라도 켜고 가장 빠르고 정확한 길을 묻고 싶다. 그날 나는 프루스트의 긴 문장을 붙들고 “이건 일이 아니라, 벌이야. 나 지금 벌 받는 중이야.”라고 말했고, 그러니 언제부터 프루스트를 좋아했느냐는 그의 놀림에 딱히 할 말이 없다.
고백하자면 나는 프루스트를 봄에만 사랑한다. 꽃다발을 안겨 주듯 달콤함을 한 움큼 안고 내게 달려드는 봄바람이 불어야 그의 문장의 향기가 맡아진다. 그러니 지금만큼 프루스트를 읽기에 알맞은 계절은 없다. 릴라꽃은 잘 몰라도 릴라꽃의 슬픔은 알 것 같다. 마들렌을 먹으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책장에서 꺼낸다. 1편부터 다시 읽을까, 3편부터 시작할까.
‘오랜 시간’으로 시작하는 그 책은 온통 과거형이다. 언젠가 문학과 친하지 않은 친구가 문학이 과거 시제를 유독 편애하는 이유를 물은 적이 있었다. “그래 봐야 아무것도 바뀌는 것 없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분명 기억은 문학의 단골 소재고, 기억을 미래형으로 쓰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정말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까?
친구의 질문을 받은 이후로 프루스트의 책을 펼칠 때마다 ‘우리는 왜 나의 과거를 쓰고 남의 과거를 읽을까’를 생각했다. 물론 정답을 찾진 못했지만, 설득력 있는 남의 가설을 몇 개 발견하긴 했다. 그중에서도 내 눈을 가장 환하게 해주는 것은 질 들뢰즈의 해석이다.
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중요한 것은 기억의 탐색이 아니라 배움이라고 말한다. 그 어떤 순간에 몰랐던 것을 나중에서야 배우게 되는 이야기라고. 그래서 이 책은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라 ‘찾아서’, 그러니까 ‘찾기’에 방점을 찍고 읽어야 하며, 배우는 것은 다시 기억하는 일이고, 배움을 위한 ‘찾기’는 과거가 아닌 미래를 향한다고 주장한다.
들뢰즈의 글을 읽으며 병약한 몸으로 방에 갇혀 침대에 누워 대작을 쓴 프루스트를 상상해 본다. 그의 모든 문장이 기억을 복기하며 아쉬운 과거로 돌아가는 걸음이었다면, 이 작품을 13년 동안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아픈 사람에게만큼 소중한 현재와 내일은 없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 과거형의 문장들이 현재 또는 미래의 시제로 읽힌다. 잃어버린 시간은 과거에 있지만, 그걸 찾아내는 일은 지금 이곳의 일이자 미래를 위한 것이니까.
프루스트의 회고전을 보러 갈 것이다. 그곳에서 무언가를 찾을 수 있다면, 누군가의 과거가 나의 현재와 미래에 아주 작은 변화를 가져다주지 않을까?
릴라꽃의 슬픔을 상상하며 프루스트의 책을 펼치고 이 글을 쓴다. 봄은 너무 짧고, 그는 너무 긴 글을 남겼지만, 내게는 아직 많은 봄이 남았으니 조급할 이유는 없다. 이제 여행 가방에 프루스트의 책을 담을 차례다. 150년 전에 태어난 나의 봄의 연인을 만나기 위해, 파리로! 튈르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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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진(작가, 번역가)
파리의 오래된 극장을 돌아다니며 언어를 배웠다. 산문집 『열다섯 번의 낮』, 『열다섯 번의 밤』,『몽 카페』를 썼고, 아니 에르노의 소설 등을 번역했다.
woojukaki
2022.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