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간 활동해온 인권운동가 박래군은 11년간 한국근현대사의 역사적 현장들을 직접 찾아 인권의 시각으로 답사기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제주 4·3, 광주 5·18, 세월호 참사 등 국가가 개인들에게 저지른 폭력과 범죄의 흔적을 낱낱이 보고하는 인권기행 시리즈 첫번째 『우리에겐 기억할 것이 있다』를 2년 전 출간했고, 최근 출간한 인권기행 시리즈 두번째 『상처는 언젠가 말을 한다』는 주로 현지인들도 잘 모르는 곳, 아예 길이 없는 곳에 남겨진 인권의 현장들을 이야기했다.
인권기행 시리즈 『상처는 언젠가 말을 한다』와 『우리에겐 기억할 것이 있다』는 제목에서부터 간절함이 느껴집니다. 인권기행은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고, 그 과정은 어떠했나요?
사람들은 너무 빨리 잊습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적 사실인데도 모르는 경우가 많고요. 인권의 역사란 과거 수많은 사람들이 아픔을 이겨내기 위한 과정, 스스로의 권리를 찾기 위한 지난한 싸움 속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렇게 남은 이 땅 곳곳의 상처들, 아픔을 딛고 용기 내 존재를 드러낸 사람들이 결국 세상을 변화시켜왔다는 내용을 담아 책을 만들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냥 얘기하면 재미가 없을 테니 현장성, 장소성을 활용해 좀 더 재밌고 쉽게 풀어보자 생각했습니다.
처음엔 ‘이 사건’ ‘이 장소’를 잘 이야기하고 보여주면 족하다고 생각했는데, 책 작업을 위해 현장을 여러 번 방문하다보니 이 사람들이 ‘그때 억울했던 것을 이야기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에 아찔할 때가 있었습니다. 혹자는 그 사람들을 두고, 그저 자기 문제를 풀기 위해서 싸운 건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막상 역사를 들여다보면, 거대한 권력으로부터 억압당하고 착취당하는 힘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위해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과정을 통해 인권을 진전시켜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관점이 변하면서 책 내용도 좀 더 풍성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스스로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과정을 위해 인권을 진전시켰다는 점이 멋있는 것 같으면서도 잘 와닿지 않아요. 예를 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거의 모든 현장, 모든 사건이 그렇지 않았나 싶은데, 대표적으로 병인박해를 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종교의 자유’를 너무 당연하게 이야기하지만, 그 시작점에 천주교 순교가 있었거든요. 조금 다른 결이지만 동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동학농민운동이라고 말하지만 원래 동학의 농민들은 한참 동안 반란군 혹은 폭도로 취급받았습니다. 1894년에 벌어진 이 일이 ‘동학농민혁명’으로 공인되기까지 무려 110년이 걸렸고요. 관계되었던 사람들의 노력, 대를 이어온 연구가 없었다면 동학은 어쩌면 지금까지도 반역이나 반란 사건으로 취급받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게 동학이 재조명되면서 우리나라 인권사에서도 큰 의미를 지니게 되었죠.
방금 얘기가 나온 동학이 이 책의 시작입니다. 그렇게 선정한 이유가 있나요?
인권이란 곧 근대의 산물인데,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언제 인권이란 개념이 처음 생겼나, 다시 말해 우리나라 역사에서 언제를 근대로 볼 것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동학이라고 봅니다. 보통 학교에서는 해방 이후 미국에 의해 우리나라에 처음 인권이란 개념이 도입되었다고 가르치는데, 절대 그렇지 않거든요. 게다가 동학은 근대 서양의 인권이론이나 개념보다 훨씬 진보적이고, 뛰어난 측면이 많았습니다. 모든 자연과 모든 사람의 마음에 ‘한울님’이 있다고 생각해 인간이 인간을, 인간이 자연을, 아끼고 지키고 모셔야 한다고 생각했던, 이런 사상을 무려 128년 전에 만들었어요.
소개된 모든 장소를 직접 다니셨다고 했는데, 특히 기억나는 장소나 일화가 있다면요?
흔히 민주주의를 일컬어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고 하잖아요. 인권도 그래요. 피를 먹고 생겨났고, 피를 먹고 자랐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흘린 피가 너무 많은 거죠.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터인 거창 지역의 박산골을 방문했을 때, 안내해주시던 선생님의 설명 중 한 대목이 잊히지 않습니다. “여기서 죽은 사람들의 피가 도랑을 타고 박산교 아래 중유천으로 흘러들었는데 물고기들이 얼마나 살이 올랐는지 사람들이 몇 해 동안 이곳의 물고기를 잡아먹지 않았다.” 좁은 골짜기에서 500명이 넘는 민간인들이 총탄에 맞아 죽어갔는데, 물고기들이 그 피와 살을 먹고 살을 찌웠다는 거죠. 그 이야기를 들으니 골짜기가 더 서늘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역사적인 장소들이 폐허로 남아 있는 곳이 많나요?
여성들의 감금 시설이었던 동두천 성병관리소나 울산 형제복지원 건물 같은 곳은 그 동네 사는 사람들도 잘 모르는데, 막상 가보면 쓰레기가 한가득 버려져 있고, 벽에 스프레이로 온갖 낙서가 되어 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이곳이 유튜버들의 ‘야방(야간방송)’ 장소로 사용되고 있었던 거예요. 폐가 체험, 공포 체험한다고 그랬던 거죠. 정말 너무 한심하고 화나는 일입니다.
이걸 무조건 철없는 유튜버들의 잘못이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는 것이 국가와 지자체가 이런 아픈 역사의 공간을 방치하다 못해 오히려 지우고 치워버리려고 해서예요. 기억은 점점 희미해져가는데, 기록은 남기지 않는 거죠. 어떤 장소 하나가 제대로 남는 것과 남지 않는 것은 차이가 커요. 제 책과 인터뷰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있겠냐마는,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어 이런 역사적 장소들을 제대로 보존하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은 장소가 아닌 인물,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을 다뤘습니다. 이유가 있을까요?
첫번째는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사를 이야기할 때 전태일과 함께 이소선이라는 이름도 빼놓아선 안 되기 때문이고, 두번째는 ‘어머니’라는 이름에 가려진 운동가로서의 면모를 제대로 조명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노동운동사는 남성 중심으로만 다뤄지고 있는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1970년대 노동운동은 봉제공장, 방직공장, 섬유산업 공장들에서 시작됐고, 이때 80퍼센트 이상이 여성 노동자들이었거든요. 그분들이 정말 치열하게 싸우셨어요.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소선이 있습니다. 전태일 사망 이후에 사건을 덮기 위해 어머니인 이소선을 향한 온갖 회유와 협박이 있었어요. 중앙정보부 같은 곳에서 돈을 보따리로 싸오기도 했죠. 그때 이소선은 보따리를 찢어 돈을 공중에 뿌려버린 인물이에요.
당시의 이소선은 노동 사안이 있는 곳마다 거침없이 연대했고,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의 든든한 버팀목이기도 했습니다. 아들이 죽은 후 41년간 노동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곁을 지키며 250여 차례가 넘는 체포, 180여 번의 구류처분, 그리고 3년여의 옥살이를 했고요. 유가족이면서도 노동운동가였고 인권운동가였던 사람, 누구보다 철저한 평등주의자였던 운동가 이소선의 진면목을 세상 사람들이 더 많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우선 이 책은 인세 전액이 4.16재단과 인권재단 사람에 기부됩니다. 제가 가져가는 건 하나도 없어요. 하지만 그걸 떠나서 열심히 만들었고, 우리나라의 중요한 역사를 담은 책이니까 많이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처음 『우리에겐 기억할 것이 있다』을 냈을 때만 해도 독자들과 함께 책에 나오는 장소를 다니고 싶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아직도 그 계획을 이루지 못한 게 너무 아쉽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기회가 되면 두 권의 책에서 소개하는 장소들을 한번 찾아가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때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여주시면 하고요. 그래서 나중에라도 다들 어떻게 느끼셨는지 꼭 듣고 싶습니다.
*박래군 인권운동가. 4 ·16재단 상임이사로 일하고 있다. 1988년 광주학살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분신하고 세상을 떠난 동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일을 하면서 인권운동을 하게 되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인권을 옹호하는 다양한 활동을 경험했으며, 주요 현안들이 발생할 때 연대기구들을 구성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활동도 많이 했다.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사무국장, 인권운동사랑방 사무국장과 상임활동가, 재단법인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와 소장, 서울시 인권위원회 부위원장, 4월 16일의 약속 국민연대(4 ·16연대) 공동대표,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 공동대표 등을 역임했다. 현재 인권재단 사람 이사, 4·9통일평화재단 이사,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대표, 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잡고(손잡고) 운영위원, 생명안전시민넷 공동대표,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 등을 함께 맡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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