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에 대한 나의 사랑과 열정은 중학생 때부터 시작됐다. 그때 한창 성시경씨의 노래를 즐겨 듣던지라 성시경 씨가 라디오 DJ로 발탁됐다는 소식과 함께 나의 라디오 인생이 시작됐으니 말이다. 성시경 씨는 '푸른밤, 성시경입니다.'(이하 <푸른밤>)라는 제목으로 매일 자정부터 새벽 2시까지 두 시간 동안 라디오를 진행했다. 그리고 나의 취침 시간도 자정에서 새벽 2시로, 두 시간이 밀려났다.
라디오라는 매개체는 묘한 매력이 있다. 내가 듣던 FM 라디오를 위주로 적을 설명이지만, 우선 언제나 누군가가 그곳에 있다는 것이 신기하며 어쩐지 안정감을 준다. 언제 어느 때라도 라디오를 켜면 그곳엔 늘 이야기를 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나도 언젠가 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일게 한 원인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라디오 DJ가 되고 싶다고 늘 꿈꾸며 살아왔고, 기약 없는 미래를 위해 공책에는 빼곡히 청취자들과 들을 만한 노래들을 적었다. 그 '연결'돼있다는 느낌 때문에 아무래도 나는 반드시 라디오 DJ가 될 것만 같았다. 과연 나는 라디오 DJ가 될 수 있을까?
FM 라디오 타이틀 중에서는 전에 언급한 <푸른밤>과 인연이 깊다. 몇 년을 걸쳐 빠짐없이 들은 유일한 라디오이기도 하지만 사춘기 시절 흘러넘치던 새벽감성을 보듬어주던 라디오기 때문이다. 몇 번 보낸 사연이나 신청곡이 채택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어찌나 심장이 터질 것 같던지.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은, 가수가 된 후 팬분들께서 내 노래를 <푸른밤>에 신청해주셔서 실제로 내 노래가 선곡된 것이다. 그때는 샤이니 종현 씨가 DJ를 맡아서 해주던 때였는데 '샤이니 월드'였던 나는 그야말로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그의 입에서 내 예명이 나오고 그가 듣고 있을지도 모르는, 아니 듣고 있는 시공간에 내 노래가 흘러나오는 경험은 아직도 나만이 가지고 있는 정말 특별한 경험 중 하나이다. 아직도 그날의 라디오 녹음본을 가지고 있고, 종종 듣기도 한다. 들을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도 여전하다.
그리고 나는 정말 라디오 DJ가 되었다! 시간이 많이 흘러 20대 중반 쯤, <랏도의 밴드뮤직>이라는 인디 라디오 채널에서 DJ로 섭외가 들어왔다. 처음에는 대타 DJ로 한 번 방송을 대신해주는 역할이었지만 내 가슴은 터질 것 같았다. 기계를 잘못 만져 방송이 끊어지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말실수를 해서 방송 사고가 날 것 같은 불안감도 전부 설렜다. 약속이나 한 듯 기계를 잘못 만져 방송이 끊어졌고 끊임없이 말해야 하는 상황에 마가 뜨기도 했지만 그 날의 방송은 내게 최고의 경험이었고 나는 곧 정규 방송 DJ가 되었다.
그렇게 2년 정도 라디오를 진행했다. 이름은 <잔다는 카톡은 해버렸지만, 슬릭입니다.>(이하 <잔카해>) 내 입으로 말하기 좀 그렇지만 나는 진행에 꽤 소질이 있었다. 두시간을 내리 떠들고 나면 온몸이 땀으로 다 젖곤 했지만 일주일에 하루 두시간의 밤은 내 세상이었다. 나는 내가 자라면서 들었던 공중파 라디오 코너들을 살짝씩 베껴 따라 했다. 오프닝 멘트와 클로징 멘트를 정하고 중간에는 로고송까지 만들었다. 인디라디오 특유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더불어 재미있고 신선한 코너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이를테면 시청자의 타로점을 봐주는 코너를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을 계기로 오프라인 행사에서 실제로 사람들의 타로점을 봐주었다. 어찌 보면 2년간의 내 라디오 생활은 작고 소소한 도전의 연속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게 2년 동안 일주일에 한 번, 두시간은 세계 곳곳에 있는 '잔디'들과의 만남이었다. '잔디'는 애청자분들과 내가 함께 정한 <잔카해> 애청자 닉네임이다. 서로의 신청곡을 들으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다가 눈물을 쏟으며, 그렇게 정이 많이 쌓였다. 주변 친구들이 게스트로 출연해주기도 했을 만큼 <잔카해>를 풍성하게 만들기 위한 내 노력은 계속되었다. 어찌 보면 접근성조차 높지 않은 인디라디오이기도 했지만 시청자들과 전화연결을 할 정도로 우리의 유대감은 끈끈했다. 말주변이 좋지 않은 내가 2년이라는 시간동안 무사히 매주 두 시간을 재미있게 보낼 수 있었던 것도 애청자 분들의 관심과 사랑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내가 고양이를 잃어버렸을 때, 잔디 분들은 내가 사는 동네까지 와주셔서 함께 전단지를 붙여주시고 고양이를 찾아주시기도 하셨을만큼 나와 잔디 분들은 <잔카해>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다. 지금도 그 시기를 생각하면 정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시간이 흘러 EBS의 팟캐스트 한 꼭지를 맡아서 진행하기도 했다. 이름은 <남는 게 사랑, 슬릭입니다.> 퀸와사비와 함께 만든 '잘나가서 미안'이라는 노랫말 중 '서로 미워하는 애들은 다 미워하게 둬, 너무 많아 사랑할게 아직도'라는 곳에서 착안했다. 정말, 남는 게 사랑이다. 매번 녹음을 하러 머나먼 일산으로 출근을 하는 것도, 길고 긴 스크립트를 씹지 않고 - 수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 읽어내리는 것도, 퇴근길의 멀미와 함께 보이는 아름다운 석양도 나에게는 다 라디오고 사랑이다. 인디 라디오를 그만 둔 지 2년 만에 머나먼 나의 수신인들과 연결되어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마이크 너머로 안부를 묻고, 농담을 하고, 걱정과 위로를 건네며 사랑과 감사를 받는다.
원고를 작성하는 지금은 EBS 팟캐스트의 마지막 화가 업로드됐다. 꾸준히 들어오는 사연은 나의 지친 일상에 큰 힘이 되었고, 세상에 존재하는 수천 수만가지 사랑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는 사랑이 고픈 내게 깊은 위로를 주었다. 이제 또 언제 라디오 컨텐츠를 진행하게 될 지 모르겠지만 EBS <남는 게 사랑, 슬릭입니다>는 여러가지 이유로 사랑이 부족했던 나에게 말 그대로 전국에 남아도는 사랑을 연결해 준 고마운 연결점이 되어주었다. 사랑은, 사랑을 담은 사연은 언제나 거기에 있어주었고 나는 늘 두근대는 마음으로 사랑을 읽으러 떠났었다. 이 자리를 빌려 사랑을 듬뿍 알게 해주신 EBS 윤영은 PD님께 감사 인사를 표한다.
문득 연결되어있다는 느낌을 받은 지 너무 오랜시간이 지났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가 우리 삶을 덮친 후, 우리는 말 그대로 서로의 얼굴도 볼 수 없게 되었다. 함께 모여 서로 온기를 나눌 수도, 다같이 한 시공간에서 같은 경험을 하기도 너무나 힘든 상황이다. 이런 시기에 다시 한 번 라디오가 부흥한다면 어떨까. 물론 철저히 청인 위주의 컨텐츠이기도 하지만 요즘 같은 시대의 기술력으로는 실시간 자막 정도의 서비스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서로가 거기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인사를 건네는 라디오야말로 코로나 시대에 참 필요한 컨텐츠인 것 같다. 바이러스는 '전파'를 타고 전염되지는 않으니 말이다. 동영상 컨텐츠가 지배적으로 주류를 이루는 시대가 된 지 꽤 되었지만 나는 아직도 라디오의 힘을 믿는다. 늘 그 자리에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할 수 있는 라디오야말로 이 재난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전국에 계신 라디오 제작 관련자 여러분께 한 말씀 드리고자 한다. 저는 라디오 진행에 아주 관심이 많은 프리랜서입니다. 라디오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어드는 이 시기에 아직도 라디오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몇 안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전파 너머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청취자분들께 끝없이 이야기를 전하고, 또 이야기를 전해 듣는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부디 저를 DJ로 고용해주세요. 누구보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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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 작가. 누구도 해치지 않는 노래를 만들고 싶다. 『괄호가 많은 편지』를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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