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사회에 나오고 싶어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방학도 없이 학원에 다니며 실력을 쌓았고 꿈은 이뤄졌다. 방송 관련 디자인 일을 했는데 5년의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나는 사라지고 이뤄놓은 것은 꿈에 불과해 보였다. 직장인의 껍데기를 쓴 피곤에 찌든 한 사람이 있을 뿐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와 몸과 마음을 회복하던 시기,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곳에 새로운 빵집이 오픈을 했고 알바를 구한다는 문구를 보았다.
‘잘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과 함께 이력서를 냈더니 바로 합격했고 벌써 2년이 지나고 있다. 사람으로 인한 상처가 컸던 작가에게 언니가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그림으로 그려서 SNS에 올려봐!’라는 제안을 했고 그렇게 시작한 것이 ‘개띠랑 일기’였다! 그 시간이 쌓여 『회사 버리고 어쩌다 빵집 알바생』이 되어 책으로 나왔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마음 둘 곳이 없을 때, 작가의 이야기를 읽으면 실실 웃으며 공감하게 된다.
SNS에서 ‘개띠랑’이라는 필명을 보고 되게 신기하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의미인가요?
제가 94년 개띠인데요, ‘개띠’인 저의 이야기를 그려나간다는 의미와 개띠인 저와 제 이야기를 봐주시는 모든 분과 함께 가고 싶다는 의미를 담아 지었습니다. 이름 후보에는 ‘개띠94’, ‘개띠와’, ‘그냥 개띠’ 등 개띠와 관련된 모든 이름을 생각했었지만 ‘개띠랑’이 입에 착 붙으면서 찰떡이더라고요.
그림 그리기 전에는 디자인 일을 하신 것인가요?
산업디자인과를 나왔고 졸업 하자마자 방송 일을 했습니다. 처음에 회사 들어갔을 땐 제가 TV로만 보던 연예인들이 눈앞에 있어 신기했고, 더군다나 TV에 내 작업물이 나와서 일하는 게 재미있었어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고, 제 삶이 없어지면서 항상 무엇인가에 쫓기는 것 같은 시간적 압박을 늘 느꼈어요. 일이 힘들다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통해서라도 힘을 받았으면 했지만, 그것마저도 쉽진 않았죠. 격한 경쟁 관계, 괜한 이간질, 짓누르는 이기심 등등을 느끼며 회사 내에는 마음 붙일 곳 하나 없었고 점점 인류애마저 먼지가 되어 사라졌죠.
결국 저는 제 삶을 찾아보자는 생각으로 퇴사를 했습니다. ‘다른 회사는 다르겠지…’ 싶어서 이직했던 두 번째 회사까지 그만뒀을 땐 이제 뭘 해야 하나 싶고, 직장을 다니는 게 두려워지기까지 했었죠. 상처 받은 내 마음을 기댈 곳이 없다고 느꼈어요. 그림 그리는 게 마냥 좋았던 저는 쉬면서 이것저것 끄적이기 시작했고, 이제는 그림만 그리는 세상을 꿈꾸며 일러스트 작가의 꿈을 찾아 나가는 중이에요!
『회사 버리고 어쩌다 빵집 알바생』을 읽어 보면, 사람으로 인한 상처를 많이 받은 것 같더라고요. 어떻게 이겨내신 건가요?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이 있지만 그게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사람으로 받은 상처는 마음속에 남더라고요. 어떻게든 참아보려고 꾹꾹 담아두다가 결국에는 어떤 모습으로든 겉으로 표출되곤 하지요. 한 번은 상처받았던 일이 꿈에서 나온 적이 있었는데, 꿈에서만큼은 해결을 해 보려고 허공에 대고 주먹을 휘두른 적도 있었어요. 답답했던 마음이 무의식 중에는 거칠게 나왔나 봐요. 회사 다닐 땐, 가족들과 떨어져 살다 보니 누구에게도 내 힘듦을 속 시원하게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서만 끙끙 앓다, 울면서 잠들 때도 많았어요. 사실 빵집 알바생이 된 지금은 사람으로 받는 상처가 없을 줄 알았는데 또 다른 상처를 받게 될 때가 있더라고요. 지금은 저를 가장 잘 아는 가족들과 사는 만큼, 가족들과 많은 대화를 하면서 극복할 때가 많아요.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사회에서 상처받은 저를 품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가족이 저를 더 냉정하게 바라보고 다른 시선으로도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러다 보니 회사 다닐 때와는 다르게 저 혼자만의 생각에 갇히지 않는 것 같아요. 아직도 상처받는 일은 많지만, 요즘엔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려고 해요. 나부터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지 않고자, 하루하루 열심히 살며 어제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먼저 노력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어 보면, 결국 빵집도 작은 사회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나시죠?
회사생활 하면서 온갖 종류의 사람을 다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빵집에서 알바하며 손님들을 보면 정말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루는 손님이 원하는 빵을 찾았는데, 그 빵이 다 팔려서 없었던 적이 있는데요. 빵이 다 나가서 없다고 말하자 다짜고짜 화부터 내는 분이 있었지요. 처음에는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그런데 같은 상황에서도 특유의 유머로 ‘허허’ 웃으며 넘기는 분도 계시고요. 『회사 버리고 어쩌다 빵집 알바생』 181쪽 보시면 나와요! 결국은 회사가 문제가 아니라, 그런 세상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어떤 삶의 태도를 갖고 사는가가 가장 큰 문제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회사 버리고 어쩌다 빵집 알바생』을 보면 ‘속도’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더라고요. 작가님은 자신만의 속도를 찾으셨나요?
저는 사회생활을 빠르게 시작하고 싶어, 무조건 ‘빠르게’ 속도 내며 살았어요. 그런데 그렇게 살아 봐도 제가 계획한 대로 ‘빠르게’만 갈 수는 없더라고요. 회사생활을 하다가 알바생이 되었을 때는 앞으로 잘 가고 있다가 다시 거꾸로 역주행하는 느낌이었어요. 제 머릿속에 있는 잘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미지는 ‘제때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번듯한 직장을 얻고, 늦지 않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해 아이를 낳고, 화목하게 살며 늙어가는 모습’이라 더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회사생활하는 직장인이나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는 알바생이나 단지 업종의 차이, 혹은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의 차이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위치만 바뀐 것일 뿐 하루하루 헛되지 않게 살아가고 있거든요. 모두 본인의 속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지금은 나만의 속도에 맞춰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니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내 속도대로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살아가려고요. 제가 잘살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마다 이 말을 되새기려고 합니다.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아!’
인스타그램에 그림을 그려 올리시면서 어떤 변화가 생기셨나요?
제가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 있었을 때 언니가 볼 때에는 굉장히 무기력해 보였던 것 같아요. “너, 그림 그리는 거 좋아했었잖아. 회사에서 있었던 일 같은 거 그려서 SNS에 올려 봐”라고 했었을 때는 ‘그래. 집에서 노느니 그냥 한번 그려보자!’ 이런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그리다 보니까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사회생활 시작한 후 오랜만에 ‘재밌다!’라는 감정을 느낀 순간이었어요. 그러면서 점차 제가 뭘 하고 싶었는지를 알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동안 회사원에서 알바생이 되며, 어떻게 보면 사회적으로는 뒤쳐졌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지금 제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그리고 나만 힘들고 답답한 줄 알았는데, 제 그림을 보면서 많은 분이 공감해 주시는 점에 굉장히 놀랐거든요. 많은 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하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어서 그 점도 좋아요. 감사함을 많이 느낍니다.
어떤 분들이 『회사 버리고 어쩌다 빵집 알바생』을 읽으면 좋을까요?
취업을 앞두고 알바를 하고 있는 분들, 직장 생활을 하고 계신 분들, 저처럼 ‘회사를 버리고’ 나오신 분들, 그리고 그 후에 ‘어쩌다 알바생’이 된 분들, 자신만의 속도로 꿈 찾아 나아가고 있는 분들, 모두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빠름을 추구하던 저도 ‘회사 버리고 어쩌다 빵집 알바생’이 되어 저만의 속도로 나아가고 있으니, 모두 함께 재밌게 봐주세요!
*개띠랑 (글·그림) 개같은 사회를 경험한 후 회사 버리고 빵집 알바생이 되었다. 개띠가 보낸 오늘의 이야기를 매일매일 그림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림만 그리는 세상을 꿈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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