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유수의 상을 받은 세계적인 자연 다큐멘터리스트이자 자연문학가 박수용이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 이후 10년 만에 『꼬리』로 돌아왔다. ‘꼬리’는 책 제목인 동시에 책에 등장하는 시베리아호랑이 왕대(王大)의 이름이다. 꼬리는 한때 시베리아 일대를 호령했지만, 이제는 노쇠하여 제 영역에서 밀려난다. 그 와중에 밀렵의 위협은 나날이 커져간다.
저자는 꼬리가 생을 자연스럽게 마감할 수 있기를 바라며 꼬리를 보호한다. 무인 밀렵총과 지뢰가 도사리는 영하 30도의 혹한에서 저자와 꼬리는 함께 생사를 넘나들며 우정을 나눈다. 꼬리는 과연 폭력과 굶주림이 엄습하는 겨울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저자는 노쇠한 호랑이의 마지막을 지킬 수 있을까? 『꼬리』는 영화보다 더 극적인 서사를 통해 종과 언어의 간극을 뛰어넘는 애틋한 생명애를 독자들에게 전한다.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 이후 10년 만의 신작을 출간하셨습니다. 전작이 국내에서도 호평을 받았지만, 해외에서 특히 엄청나게 주목을 받았다고요. 그동안 오랫동안 책을 내지 않으셨던 이유가 궁금합니다.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는 생애 처음으로 쓴 책인데, 러시아 푸시킨 문학상을 받을 뻔했어요. 최종 후보 세 작품 안에 들어갔으니, 첫 책 치고는 큰 영광이었습니다. 2011년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을 출간하기 전 방송국 PD를 그만뒀습니다. 그리고 러시아, 영국 등지에서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STPS(Siberian Tiger Protection Society)’라는 시베리아호랑이 보호단체를 공동 설립했습니다.
NGO 단체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게 처음이라 시행착오가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책을 쓸 시간이 부족했어요. 게다가 논픽션 문학은 픽션과는 달리 ‘겪어야만 쓸 수 있기에’ 시간이 더 오래 걸렸습니다. NGO 단체가 안정되어 가던 차에 코로나 사태가 터졌습니다. 그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이 좀 생기게 되었고, 그동안 미루며 숙고해왔던 『꼬리』를 쓰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다음 책은 더 이른 시간에 출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꼬리』라는 책을 '논픽션 자연문학'이라고 소개해주셨습니다. 사실 많은 독자분들에게는 생소한 장르일 것 같아요. 작가님께서 간략하게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픽션과 논픽션의 차이는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문학과 자연문학을 구분 짓는 일은 국내에서는 조금 생소한 일일 겁니다. 굳이 ‘자연문학(Natural Literature)’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 표현 대상의 차이 때문입니다.
문학은 주로 인문(人文), 그러니까 인간이라는 종족의 현상과 본질을 탐구하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에 서식하는 수많은 종족 중 하나일 뿐이지 않습니까? 인간과 자연을 떼어놓고 인간만을 표현한다면 더 진실한 무엇인가에 다가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연문학은 인간과 자연을 분리하지 않고 결합하여 이해하고자 합니다. 유럽 문명권에서는 자연문학이 문학의 한 장르로서 안착된 지 오래 되었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할 때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한 권씩 나눠줄 정도지요.
책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뭐랄까, 외롭고 쓸쓸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읽어보니 책 제목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호랑이의 이름이더군요. 이 호랑이에게 '꼬리'라는 이름을 붙여주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또 제목을 통해 말하고 싶으셨던 게 있었는지도 궁금합니다.
그 호랑이를 처음 보았을 때 사슴 사냥을 위해 수풀에 몸을 숨기고 꼬리만 팔랑거리고 있었기에 ‘꼬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한편으로 꼬리는 머리와 대비되는 의미를 가지기도 합니다. 인생의 전성기를 지난 말년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고, 사회의 상층이 아니라 하층을 이루는 소시민이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각자가 처해 있는 맥락에서 와닿는 의미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는 내내 저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오는 문장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작가님께서 특별히 애정하는 문장이나 표현이 있으신가요?
227쪽의 문장입니다. 이 문장을 제일 좋아합니다. “죽음과 슬픔과 사랑은 동의어일지도 모르겠다.”이 문장이 제가 생각하는 이 책의 주제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무無 속에 홀로 있는 기분이 들었다. 심연이라도 빨아들일 듯한 슬픔이 깊은 곳에서 솟아올라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측은함으로 바뀌어 갔다. 흐르는 시간과 광막한 공간 속에서 내가 꼬리의 손을 놓든 태양이 지구의 손을 놓든 소멸은 슬픔과 교접하고 슬픔은 사랑을 잉태한다. 어쩌면 죽음과 슬픔과 사랑은, 동의어일지도 모르겠다. 어딘가에선 꽃이 피고 또 어딘가에선 꽃이 지고 있다.”
이제까지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수많은 명작 다큐멘터리를 남겨오셨는데요, 앞으로도 다큐멘터리 촬영을 계속 해나가실 건지, 아니면 다른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STPS 설립 이후 다큐멘터리 제작은 부업이 되었고 야생호랑이 보호와 연구하는 일이 본업이 되었습니다. 다큐멘터리 제작은 저에게 도움이 되었지만 호랑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제 책보다는 다큐가 더 인지도가 높고 더 큰 명예를 안겨주었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다른 생명들에게 실제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제작은 가능한 한 줄이고 STPS를 꾸준히 그리고 잘 운영하고 싶습니다. 또 제가 겪은 일들을 책으로 남기고 싶습니다. 비록 지금은 영상의 시대지만 영상은 그 표현의 한계가 뚜렷합니다. 인류가 만들어 낸 표현 수단 중 글만큼 그 한계가 깊고 넓은 수단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작가는 자신의 문학적 세계관이 있을 텐데요, ‘자연문학가 박수용’이 글에 담아내고 싶은 주제의식이나 문학적 지향이 있을까요?
저는 인간만을 다루는 문학은 피하고 싶습니다. 그런 문학은 이미 넘치니까요. 저는 자연 속에서 먼지 같은 존재인 개체의 의미를 담아내고 싶습니다. 또한 개체가 마주친 사건이나 상황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태어나서 고민하다 죽는 생명이라면 결국 마주칠 수밖에 없는 본질적인 요소들을 표현하는데 집중하고 싶습니다. 시대에 따라 현실의 모습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생명의 본질은 늘 같은 곳으로 귀결되니까요.
그러자면 과학과 인문의 결합, 자연과 문학의 결합이 필요하겠지요. 지구 밖에서 지구를 보고 자연 속에서 인간 개체를 바라봐야 자신의 미소(微小)함을 깨닫고 덜 이기적이고 더 객관적인 상황인식이 가능합니다. 그래야 더불어 사는 것의 참의미를 몸으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꼬리』를 어떤 분들이 읽으면 좋을까요? 이 책을 추천하는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이 책은 한 생명의 말년을 다루고 있습니다. 생의 말년이 되면 한편으로 먹고살아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그 삶의 균형을 맞추는 일은 점점 힘들어지지요. 인간을 비롯해 살아있는 생명이라면 누구든 이 갈림길 앞에서 서성이게 됩니다.
젊은 시절, 저는 생의 끝은 결국 다가온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았지만 몸으로 느끼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장례식장에 가도 죽음은 나의 죽음이 아니라 남의 죽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영원히 살 듯 방종하고 오만했습니다. 고대 로마인들이 “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를 끼고 살았듯, 저도 생이 기나긴 세월의 먼지 같다는 사실을 일찍이 알았더라면 훨씬 더 좋은 삶을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이따금 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생을 미리 반추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래서 저는 생의 말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분들, 청장년들이 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합니다.
*박수용 자연의 내면을 기록해 온 자연 다큐멘터리스트이자 자연문학가. 1964년 경남 거창 출생. 서울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EBS에 입사했다. ‘긴 시간과 광막한 미지의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 이끌려 자연 다큐멘터리스트가 되었다. 생명 하나하나의 일상을 내밀하게 담아낸 수십 편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2011년에 국제 NGO인 ‘시베리아호랑이보호협회(STPS)’를 설립, 시베리아호랑이 보호 및 연구 활동에 힘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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