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롭게 여행을 떠난 어린 혜성은 거침없었다. 드높이 자란 꿈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길을 내기로 한 아이의 계획은 철저했고 모험마다 깊은 발자취를 새겨 넣었지만, 여정이 길어질수록 조금씩 틀어지는 방향에 싹튼 의심은 목적지를 잃고 방황하게 했다. 궤도에서 이탈한 그는 구조 신호를 보냈지만 동굴을 뚫고 나가기엔 한없이 미약했고 오래도록 고립된 채 단절됐다.
'오직 내가 나를 구할 수 있다.'
존재조차 희미해졌을 때 비로소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 윤하는 자세를 고쳐 잡았다.
외면하고 싶은 슬럼프를 마주해 안정을 되찾은 그는 불안에 작별을 고하며 이윽고 갇혀 있던 울타리까지 무너뜨린다. 뒤를 보지 않게 된 아티스트가 내디딘 발걸음은 굳건했고 힘이 넘친다. 지난 우울과 고민을 머금었던, 사랑해 마지않은 별에 종말을 내릴 수 있는 용기로 창조해낸 우주. 정규 6집
첫 번째 트랙 'P.r.r.w.'부터 강렬하다. 퓨처 베이스 장르로써 '그때 내가 아니니'라며 묵직하게 변화를 선언한 곡은 그 결말에 비극이 있더라도 나아가겠다는 의지이다. 이어지는 일렉트로니카 팝 '나는 계획이 있다'에서도 조급해진 마음마저 설렘으로 치환할 수 있다는 그의 달라진 태도를 되짚으며 굳은 결심을 증명한다.
전작
'반짝, 빛을 내'까지의 격정적인 흐름은 기후 위기를 다룬 알앤비 '6년, 230일'로 반전을 맞으며 두 번째 테마의 시작을 알린다. 성숙해진 시선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주변을 바라볼 여유를 제공했고 개인에서 확장된 서사로 향한다. 어반자카파의 권순일이 작곡한 발라드 '별의 조각'은 의도적으로 반복되는 멜로디에 오케스트라 편곡을 더해 삶의 순환 과정을 장엄하게 녹여낸다. 상처를 이겨내고 어느 때보다 단단해진 위로가 세상을 크게 감싸 안는다.
스페이스 오페라의 절정을 기록하는 앰비언트 '하나의 달'의 반주를 덜어낸 공간 속에서 가창하는 그가 고독하지 않은 근거는 분명하다. 'Savior'.
처음엔 끝이 있다. 그리고 모든 끝엔 처음이 있다. 2006년 한국 데뷔. 어느덧 많은 세월이 지나 저물어가고 있던 터다. 다만 차분히 새벽을 기다린 이 순간 결국 태양은 떠오른다. 결과엔 이유가 있다. 수많은 시도와 실패 후에 도달한 빛은 윤하에게 자생할 기회를 주며 그와 대중을 다시 묶을 희망이란 이름의 매개가 된다. 그렇게 어떤 역경에도 흔들리지 않을 견고한 은하가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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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