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개의 마지막 겨울일까 싶어 분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견일기』는 제주에 눈이 많이 온 날 시작됐다. 풋코는 그날도 ‘샤박샤박’ 걷고 ‘뽀드득뽀드득’ 뛰었다. 네이버 동물공감판에 ‘노견일기’ 0화가 올라왔을 때, 어떤 사람은 작가를 알고 어떤 사람은 작가를 몰랐다. 2004년부터 ‘올드독’이라는 수다스러운 캐릭터로 영화, 책, 세상, 기타 등등을 말하고 그려온 작가는 『노견일기』에서 풋코의 동거인으로 등장한다. 독자들은 풋코와 2003년부터 2014년까지 살았던 좋은 개이자 풋코의 엄마인 소리 그리고 소리를 그리워하고 풋코를 사랑하는 한 남자의 순간들을 밤마다 내 것인 양 껴안고 휴대폰의 블루라이트를 촛불 삼아 ‘내 늙은 강아지’, 혹은 ‘내 늙었던 강아지’를 향한 사랑과 그리움을 고백했다. 2018년 겨울, 열다섯 살이던 풋코는 이제 열아홉 살이다. 눈이 보이지 않고 듣지 못할 때도 많다. 곧잘 걷는 날도 있지만 서클링(빙글빙글 돌기)을 자주 한다. 그래도 『노견일기』에 우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연재가 이어지면서 더 좋아진 장면이 있다. 제주 바다를 바라보는 두 존재의 뒷모습이다. “어어, 풋코. 또 겨울이 왔네, 그치?” 하고 묻는. 그 모습을 보면서 두 존재가 함께 살고 있음을 실감한다.
연재를 시작한 지 4년이 되어갑니다. 그사이 책도 다섯 권이 나왔고요. 처음 연재를 결심할 때의 마음을 기억하세요?
제 삶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존재와의 이별 과정을 가능한 한 상세히 기억하고 싶었어요. 어떤 이유로든 자세히 기록해둔 일들이 훨씬 생생한 기억으로 남는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리지 않을 수 없었다는 편이 더 맞겠네요. 사실 『노견일기』를 연재하는 동안 제 개는 제 예상보다 느리게 늙어왔어요. 이렇게 길게 그리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때때로 ‘여기까지만’이라고 선을 긋는 순간들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대개의 일기가 그렇듯, 미리 원칙을 정하지는 않았어요. 다만 『노견일기』의 경우에는 개를 의인화하는 것에 대한 저항감이 깔려 있었던 것 같아요. 저와 제 개는 19년 내내 붙어 살았으니, 아마도 제가 그 개에 대해 제일 잘 아는 존재이겠죠. 그렇더라도 개의 생각이나 입장을 제멋대로 추측해서 표현하고 싶진 않았어요.
『노견일기』는 올드독이 아니라 정우열로 등장하는 두 번째 작품입니다. 첫 작품은 소리를 키운 지 10년 되던 해에 출간한 『개를 그리다』이고요.
‘올드독’이라는 캐릭터로 이야기할 때는 저 자신을 일정 부분 감추게 돼요. 하지만 제 개들과 제 이야기를 할 때는 어딘가에 숨을 수가 없어요. 그럼에도 『개를 그리다』 속의 저는 실제의 저와 다른 점이 많아요. 『노견일기』에 와서 비로소 제 모습과 닮게 그릴 수 있게 됐는데, 연재가 길어지면서 자꾸 저를 미화하게 되네요. (웃음) 캐릭터가 점점 예뻐진다는 핀잔을 듣고 있습니다.
1권은 “개와 함께 사는 일은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글로 시작해요.
다른 사람들이 다른 과정을 통해 배우는 것들을 저는 개를 통해 배웠어요. 이를테면 다른 존재와 소통하고 공존하는 삶, 동물권, 환경문제 같은 것들이죠. 풋코는 산책도 많이 요구하고 그 밖에도 맛있는 음식이라든가, 공놀이라든가 원하는 것이 아주 많아요. 그런가 하면 어디가 아플 땐 또 통 얘기를 하지 않아서, 이번엔 제 쪽에서 개를 한참 쳐다보고 만져보고 차에 태워서 병원에 데려가야 하죠. ‘아아, 번거로워’ 소리가 절로 나고, 때로는 왜 이런 북실북실한 짐승을 집에 데려다 놓고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러다가도 금세 이런 생각에 도달합니다. 다른 존재랑 산다는 건 원래 이런 거지, 다른 존재를 이해한다는 건 이런 과정을 통해 간신히 도달하는 무언가이겠지.
읽으면서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자주 떠올랐습니다. 산책길마다 단골 빵집에 들르는 풋코, 빵을 미리 구워두지 않았다고 당황하는 빵집 누나들, “만져도 돼요?” 하고 묻는 아이들, 표현에 서툴 뿐 사실은 개를 아끼는 어르신들. 『노견일기』에는 그런 사람들이 정말 많이 등장합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제 주변엔 좋은 사람들이 평균보다 훨씬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은 뭘 그릴까?’ 하고 생각하다 보면 그 사람들이 자꾸 떠올라요. 『노견일기』는 주제를 정하고 시작하지 않았지만, 귀납적으로 정리해보면 ‘우리 모두는 사랑하는 존재와 이별하게 돼 있고, 그걸 받아들인 채 살아갈 수밖에 없다’가 아닐까 생각해요. 자연스럽게 ‘어떤 태도로 슬픔을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질문이 따라오고요. 도망치려 애쓰거나 징징거릴 수도 있겠죠. 그보다는 담담하게 서로 위로하고 연대하는 편이 좋지 않은가, 하는 결론에 도달하게 돼요. 만화에 등장하는 제 친구, 아이, 노인, 동물 모두 그렇게 살아가는 존재들인 것 같아요.
늙은 개와 함께 사는 일이 슬픈 일일까요?
흠, 복실복실한 아기였던 내 강아지가 어느새 훌쩍 나를 앞서 늙어가고 고통스러워하다가 먼저 떠나버린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도 슬프지요. 늙은 개와 함께 사는 일은 슬픈 일입니다. 다만 늙은 개가 어느 날 내 앞에 주어진 게 아니라, 그 개와 내가 함께 오랜 세월을 살아왔고 많은 것을 공유해왔다는 사실은 행복한 일이죠. 그 개와 함께했기 때문에 내 삶이 더 풍요로웠노라고 말할 수 있을 테니까요.
1화에서 ‘어떤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풋코 앞에서 하셨어요.
그 생각은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어요. 세상엔 개를 잘 알지만 자신의 개는 없는 여분의 인간이 필요하지요.
다행히 다른 종과 함께하는 삶이 더 나아지도록 돕는 책이 점점 더 많이 쓰이고 있어요. 이 책들이 널리 읽히기를 바라는 사람 중 한 명일 것 같습니다. 추천을 부탁드려도 될지요?
레이첼 카슨의 바다 3부작 『바닷바람을 맞으며』, 『우리를 둘러싼 바다』, 『바다의 가장자리』를 좋아합니다. 이 책들은 바다에 관한 『코스모스』가 아닐까 합니다. 제주도에 사는 저는 매일 바다가 병들어가는 것을 목격하고 있어요. 바다와 지구와 모두를 위해 목소리도 높여야 하고 해야 할 일도 너무 많지만, 그런 일을 하고 밤에 잠자리에 누워 매우 과학적이면서도 더없이 시적인 이 책들을 읽으며 위로를 받는 분들이 많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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