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다수의 연약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방패 (G. 문유석 작가)
정말 힘 센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어요. 하지만 다수의 연약한 사람들, 하지만 자기만의 지킬 것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이런 방패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런 위기의 시기일수록 인류 문명의 기본 가치인 법질서의 근본 가치들에 대해서 한 번 짚어보고 공유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글ㆍ사진 임나리
2021.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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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ㆍ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서 제10조, 그리고 제11조 1항을 읽었습니다. 살기가 어려워질수록 무형의 가치를 말하는 일이 어렵습니다. 그런 가치를 입 밖에 내는 일조차 공허하고 지루하고 진부한 이야기라는 냉소를 만나기가 쉬운데요, 그럴수록 그 가치들이 중요하다고 말할 필요도 늘어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늘은 지구적 규모의 전염병 상황과 기후 비상사태로 모두가 힘든 때,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과 자유와 같은, 헌법적 가치를 중심으로 사고하자고 제안하는 저자를 만나 보겠습니다. <황정은의 야심한책> 시작합니다.



<인터뷰 – 문유석 작가 편>

오늘은 “공존을 위한 최소한의 선의”로써 법과 법치주의적 사고방식에 대해 쓰신 문유석 작가님을 모셨습니다. 

황정은 : 판사 생활을 마무리하시고 오늘로 얼추 2년쯤 지났는데요. 요즘 뭘 하며 지내시나요?

문유석 : 그러게요. 사실 그만두면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래도 가장 긍정적인 이유는, 저는 되게 옛날부터 『먼 북소리』에서 봤었던 하루키의 라이프 스타일-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평생 여행하듯이 사는 걸 굉장히 오랫동안 동경했었어요. 그런데 공무원은 그럴 수 없잖아요. 휴가철에만 몰아서 여행을 할 수 있거나 그걸 위해서 나머지 1년을 살아야 되는데. 이제부터는 다 필요 없고 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여러 곳에서 한번 살아보면서 살고 싶다, 그것에 대한 꿈을 많이 키웠었는데요. 제가 그만둔 지 일주일 만에 코로나가 전 세계로 퍼져서... 

황정은 : 그러게요.

문유석 : 사실 작년 여름에 이미 런던, 바르셀로나, 이런 데에서 한 달 살기 하려고 에어비앤비도 구해놓고 모든 걸 다 세팅해 놨는데 다 취소하고... (웃음) 지금은 편하게 하고 있는데, 처음에 정말 무서웠어요. 매일 출퇴근하면서 많은 사람과 어울려 살면서 대규모 조직 생활을 하던 사람이 그만두자마자 일주일 만에 그런 사건이 터지고 보니까, 오히려 더 겁을 먹었던 것 같아요. 물리적으로 생존의 위협을 느꼈다고 할까, 본능적으로. 그런 생각이 드니까 되게 무서웠어요. 매일 코로나 뉴스만 찾아보고 거의 두문불출하고. 그러다가 조금 풀리면서 뭐라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지런히 글을 썼던 것 같아요. <악마 판사> 대본을 열심히 쓰기 시작했고. 그 아이템에 대한 아이디어는 있었지만 나중에 하자 미뤄두고 있었는데, 바로 진행을 해서 드라마 작업을 제일 열심히 했고요. 『최소한의 선의』에 해당하는 내용도 문학동네 웹진에 연재를 시작해서 작년 연말에 어느 정도 기본 작업을 했고. 그거 말고도 리디북스에 ‘세컨드 라이프’라고 연재한 적도 있었고. 그러다가 연재 두 개는 그만두고 드라마 대본 집필에 전념을 해서 올 8월에 방송을 마치고 『최소한의 선의』 후반 작업을 해서 책을 내고. 그러고 보니까 꽤 바쁘게 글만 쓰면서 집필 노동자로 살았네요.

황정은 : 오늘 우리가 문유석 작가님을 모시고 같이 이야기할 책이 『최소한의 선의』입니다. 팬데믹을 겪으면서 법에 대해 뭐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책에서 말씀을 하셨는데요. 법의 어떤 점을 이야기하고 싶으셨나요?

문유석 : 작년 2~4월 정도에 (팬데믹) 초반에 한참 폭발적일 때 뉴스를 보면 거의 전 세계가 폭동 일보 직전인 분위기였는데, 이 바이러스 하나로 인류가 정말 오랫동안 쌓아온 문명이 한순간에 무너지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문명이라는 건 여러 가지 있겠지만, 가장 대들보에 해당하는 게 법이라고 생각했어요. 문명 세계에서 통용되어 온 법질서라는 것이 있는데, 팬데믹 상황이라든지 유사한 상황이 언제든지 올 수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는 이게 한순간에 무너질 만큼 되게 의외로 허약한 거였구나 싶더라고요. 저는 그걸 공부하고 적용하면서 살아온 사람인데 그만두자마자 보란 듯이 무너지는 느낌이 나니까 한 개인으로서 너무 무력한 느낌이 들었어요. 

더구나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벌이고 있는 방향 자체가 크게 다르지 않고, 전 세계 곳곳에 그런 형태의 독재자들이 기존의 문명세가 발전시킨 법질서를 되돌리는 방향으로 하고 있는데 대중들은 열광하고, 어떤 흐름이 있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무서웠던 거죠. 정말 힘 센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어요. 하지만 다수의 연약한 사람들, 하지만 자기만의 지킬 것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이런 방패(법질서)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우리는 평소에 그 중요성을 잘 인식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위기의 시기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자, 그러려면 우리 법질서의 근본 정신, 전체주의 반지성주의 극단주의의 흐름 속에서 자꾸 우습게 생각되거나 폄하되는 인류 문명의 기본 가치인 법질서의 근본 가치들에 대해서 한 번 짚어보고 공유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생각에 쓰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황정은 : 자유, 평등, 존엄성 같은 헌법적 가치를 중심으로 사고하자는 제안을 하신 거죠.

문유석 : 그렇죠. 모든 법질서의 가장 출발점이 인간의 존엄성, 거기에서 파생된 자유와 평등에서 나와서 여러 가지 가치들이 나오는 건데. 이것이 되게 공허하고 추상적인 개념 같은데 오랜 역사 속에서 여러 함의를 가지고 발전한 개념들이고, 구체적인 제도와 법질서 문화 속에서 체화되어 있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우선은 가장 기본 출발점부터 한번 다져보고 거기서부터 한번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었어요. 여러 가지 기준으로서 서로 싸우는 시대인데, 사실은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들한테 가장 보편적으로 공유되는 가치라는 것은 뻔해 보이지만 그런 헌법적인 가치들이거든요. 인간의 존엄성, 자유, 평등. 그런데 평소에 인간의 존엄성, 자유, 평등을 말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황정은 : 말을 해도 되게 공허한 이야기라고 냉소 당하기도 하죠. 

문유석 : 저는 그게 되게 이상한 거라고 생각해요. 전선이 그어지는 어떤 쪽이 다른 개별 분야에서의 그 시대의 핫한 이념들이라든지 구호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걸 통해서 생명력이 발생하는 건 맞지만, 가장 기본적으로는 인간의 존엄성, 자유, 평등으로 다 번역이 가능한 거라고 생각해요. 

이 기본을 다 같이 공유하면서 개별적으로 갈라진 가지들에 대해서 논의하는 건 되게 풍성한 것인데, 사실은 이 기본적인 가치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도 없고 깊이 생각해 보거나 그 함의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각자 가지를 가지고 싸우니까, 그러면 평행선인 거죠. 왜 그런가 생각해 보니까, 남의 걸 수입한 나라이기 때문에. 몇 백 년씩 칼 들고 혁명했던 프랑스 시민들이나 미국이나 영국이나, 우리가 수입한 것의 원조들의 나라에서는 그게 자기들이 총 들고 칼 들고 싸워서 쟁취한 것들이거든요.

황정은 : 그러네요. 

문유석 : 그러니까 우리가 보기에는 과할 만큼 자유에 집착하잖아요. 자유 때문에 싸워서 죽었던 사람들이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외국이 다 만들어 놓은 거를 해방 이후에 수입했는데 그것도 일본을 통해 수입했거든요. 그러니까 우리에게 피상적이고 남의 것일 수밖에 없어요. 그렇긴 한데 벌써 해방된 지 70년이 지났잖아요. 이제는 두 세대가 지났고, 그리고 우리도 나름의 시민혁명을 통해서 어떤 민주주의 질서를 이루었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도 남의 걸 수입한 단계를 벗어나서 헌법적 근본 어떤 이념들에 대해서 우리의 것으로 녹여내고 체화할 시기가 된 거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안 그러면 다른 걸로 대체되거든요, 그런 것들이. 민족주의라든지 어떤 특정 이념이라든지 종교라든지. 그런데 지금은 공유되는 것도 별로 없잖아요. 그러니까 사실은 우리도 민주공화국으로서 우리 헌법의 근본 가치들에 대해서는 시민의 상식이 되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늘 하고 있어요. 제가 법을 공부하고 적용하는 일을 평생 했기 때문에 그런 걸 수도 있어요.

황정은 : 저희는 그런 가치를 생각할 기회 자체도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문유석 : 사실은 그렇죠.

황정은 : 그런 걸 생각할 기회보다도 먼저 냉소하는 법부터 학습하는 것도 문제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저는 이번에 문유석 작가님의 책을 읽으면서 오랜만에 헌법을 다시 읽었습니다. 예전에 한번 읽을 기회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사실은 그런 계기가 마련되지 않으면 잘 안 읽잖아요. 왜 안 읽을까요? 왜 읽을 기회가 그렇게 없을까요? 

문유석 : 창피한 자기 고백을 해야 되는데, 20년 전쯤에 재미교포로서 미국에서 국회의원이 되신 분이 방문하신 자리에 같이 한 적이 있었는데, 저희 동문 모임이었을 거예요. 그 대선배님께서 칭찬의 말씀을 해 주시더니 ‘대한민국 헌법은 총 몇 조인가?’ 물어보시는 거예요. (웃음)

황정은 : 대답을 못 하셨군요. 

문유석 : 못 했죠. (웃음) 지금도 몇 조인지 정확히 모르겠어요. (웃음) 그리고 솔직히 몇몇 유명한 조문 말고는 사람들에게 그 문구가 익숙하지도 않아요. 저도 못 외우거든요. 그런데 그분은 줄줄 외우더라고요. 제가 미국에서 만나본 사람 중에 미국 수정 헌법의 권리장전에 해당하는 부분은 성경 외우듯이 몇 개의 대표적인 거는 알아요. 그러니까 그 분에게는 판사가 헌법이 몇 조까지인지 모른다는 거는 너무나 당혹스러운 일인 거예요. 그래서 순간 분위기가 싸했어요. (웃음) 

황정은 :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웃음)

문유석 : 그래도 그 분이 능숙하게 ‘모를 수 있지’ 웃으면서 말씀해주셔서... (웃음) 너무 창피해서 그때는 집에 가서 몇 조인지 다시 다 읽어봤거든요. 그런데 또 잊어버렸어요. 10년이 지나니까. (웃음) 헌법재판소에 다니고 있으면 그러지 않겠지만, 일반 판사들도 파생된 많은 법을 적용하는 일을 하지만 기본법인 헌법을 직접 보고 적용하거나 써먹지는 않거든요.

황정은 : 그렇군요. 

문유석 : 그 근본 정신이 이렇게 가지를 쳐서 나온 몇 단계 가지의 끝을 가지고 하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자꾸 근본을 잊어버리는 거예요.

황정은 : 물을 마시는데 그 물이 어디서 샘 솟는지 모르는 상황 아닙니까?

문유석 : 상수원은 잊어버리는 거죠. 법조인조차 판사조차 종종 잊어버리고는 하다 보니까 심지어 반헌법적인 판결이 나올 수도 있는 거예요. 항상 합헌적 해석을 하라고 하거든요. 헌법에 근거해서 해석을 하라. 결국 존엄성, 자유, 평등을 가장 보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해석해야 되는데, 가지를 몇 단계 가다 보면 잊어버리고. 테크니컬한 문구 때문에 어느 쪽으로 가면 가장 근본 가치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는데 거기까지 생각이 못 미치기 쉬워요.




*문유석

소년 시절, 좋아하는 책과 음반을 쌓아놓고 홀로 섬에서 살고 싶다고 바랐을 정도로 책 읽기와 음악을 좋아했다. 1997년부터 판사로 일했으며 2020년 법복을 벗고 사임했다. 책벌레 기질 탓인지 글쓰기도 좋아해 법관으로서, 한 시민으로서,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틈나는 대로 기록해왔다. 칼럼 「전국의 부장님들께 감히 드리는 글」로 전 국민적 공감을 불러일으킨 바 있으며, 자신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JTBC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의 대본을 직접 맡아 다시 한번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 『개인주의자 선언』 『미스 함무라비』 『쾌락독서』 『판사유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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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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