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 다르게 산책하는 법
매번 ‘궁궐을 걷는 시간’을 진행할 때면 함께 산책하는 분들에게 드릴 짧은 편지글과 코스 등을 정리한 리플릿을 준비하는데요. 여기에 꼭 싣는 문장이 있습니다. “‘궁궐을 걷는 시간’에는 가끔 역사가, 대개는 평온한 산책이 있습니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1.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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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우 작가

역사학 전공자이자 ‘문화유산교육전문가’이기도 한 이시우 작가는 궁궐 역시 인물이 나고 죽은, 과거의 ‘살아 있던’ 공간이라고 말한다. 궁궐에는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거나 유명한 장소뿐만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장소도 많다고 이야기한다. 작가는 사람들이 궁궐의 다채로운 모습을 발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궁궐 걷는 법』을 썼다. 



원래 직장에 다니다가 글을 쓰고 싶어서 그만두셨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작가가 되겠다고 다짐한 뒤 10년 만에 첫 단독 저서를 출간하게 되셨다고요. 소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첫 책을 출간한 소감이 어떠세요?

‘무언가 이루기 위해선 10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좋은 결과물이 나온 것 같아 뿌듯합니다. 스스로 충분히 기쁘고 대견해하고는 있지만, 한편 덤덤하기도 해요. 책 출간이 한순간 뻥 하고 터진 사건이 아니라, 오래 이어온 과정이기도 하고, 또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에서도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본인을 ‘역사문화 콘텐츠 작가’라고 소개하시더라고요. 문화유산교육전문가 자격증도 있으시고요. 글을 쓰시는 것 외에 역사문화 콘텐츠 관련해서 어떤 활동들을 하고 계신지 소개 부탁드려요.

‘역사 전문 작가’가 아니라 ‘역사문화 콘텐츠 작가’라고 저의 작업을 정의한 이유는 우리 문화재를 접근하는 방식인 ‘역사’라는 창문의 두께를 보다 얇게 하고 싶어서였어요. 우리나라는 역사가 깊은 만큼 유적지와 유물의 수가 상당합니다. 그런데 이런 콘텐츠에 접근하는 투시경의 수가 ‘역사’ 단 한 가지뿐이라면, 오히려 우리 문화재에 접근하는 통로가 비좁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런 생각은 이번 책 『궁궐 걷는 법』을 쓰는 내내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궁궐의 역사와 건물, 그곳을 거쳐간 인물들의 계보를 잘 정리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독자들이 궁궐에 쉽게 와서 즐기고 돌아가도록 도울 수 있는지가 책을 쓰는 동안 저를 괴롭힌(?) 숙제였거든요. 우선은 저부터가 궁궐을 천천히 걸으며 바람 소리와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모습, 흙 밟는 느낌과 어디선가 전해지던 꽃향기 등을 느낄 때 궁궐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거든요. 그러다 이런 느낌을 혼자만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즐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아이디어로 시작한 게 바로 ‘궁궐을 걷는 시간’입니다.

‘궁궐을 걷는 시간’은 SNS를 통해 모집한 3~5명의 사람들과 함께 궁궐을 산책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역사와 지식을 전달하기보다는, 궁궐을 조금 다른 방향으로 걷고 느끼는 시간이죠. 사람이 드문 장소에 찾아가 10여 분쯤 아무 대화 없이 앉아 있기도 하고요.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이파리를 가만히 보다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처음엔 제가 공부한 지식과 발견한 장소를 알리고 싶어 시작했는데, 오히려 깜짝 놀랄 만큼 제가 많이 배우고 깨달았던 시간이에요.

매번 ‘궁궐을 걷는 시간’을 진행할 때면 함께 산책하는 분들에게 드릴 짧은 편지글과 코스 등을 정리한 리플릿을 준비하는데요. 여기에 꼭 싣는 문장이 있습니다.

‘ 궁궐을 걷는 시간’에는 가끔 역사가, 대개는 평온한 산책이 있습니다.” 

『궁궐 걷는 법』에서 되도록 다른 책에서는 다루지 않은 장소와 코스를 다루려고 노력하셨다고 들었어요. 많이 알려지지 않은 궁궐 안 장소 중 여기는 꼭 가봐야 한다, 하는 한 장소를 골라주신다면요?

다섯 궁궐의 매력은 그곳에 자리한 건물과 나무의 수만큼 곱하고 다시 곱해야 할 만큼 많은 것 같습니다. 그중 한 장소를 고르자면 ‘경희궁둘레길’을 추천하고 싶어요. 애틋한 마음 때문이라고 할까요. 경희궁은 다섯 궁궐 중 유일하게 무료로 개방하고 있어요. 따로 홈페이지도 없고요. 평일, 주말 가릴 것 없이 언제 가든 좀 썰렁한 느낌이 드는 곳입니다. 분명 이곳도 한때는 조선 정치의 핵심 공간이었을 텐데, 지금은 왜 이렇게 소외되었을까 싶었어요.

경희궁둘레길은 경희궁을 반 바퀴쯤 빙 둘러볼 수 있는 산책길인데요. 궁궐과 도시 풍경이 가장 근사하게 보이는 절묘한 위치에 돌벤치가 있습니다. 어떤 공간을 제대로 보는 장소는 때로 멀찍이 떨어진 곳이라는 사실을 이곳에 가서야 비로소 깨달았어요. 그 이후부터 경희궁둘레길은 다섯 궁궐에서도 제가 가장 사랑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궁궐 산책을 굉장히 자주 하신다고요. 한 번 가면 5~6km씩 걷고요. 궁궐에 대한 애착이 매우 크신 것 같은데요. 글을 쓰며 지칠 때 궁궐 산책으로 힘을 많이 얻으셨겠어요. 궁궐은 선생님께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만 해도 궁궐은 신비한 곳이었어요. 다섯 궁궐의 면적도 무척 넓고, 건물도 많은 데다가 길도 복잡해서 한동안은 우왕좌왕 헤매고는 했죠. 그러다 보니 봤던 건물도 다시 확인하기 위해 되돌아가기 일쑤였고요. 궁궐이 특별히 예쁘게 보이는 날엔 사진을 찍기 위해 이곳저곳을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하루에 5~6㎞씩 걷다 오는 날도 많았습니다. 

그런 시기를 보내고는 마음을 느긋하게 할 필요가 있겠다 싶었어요. 궁궐이란 공간을 정복하려는 마음으로 대해서는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그때부터 궁궐이 조금씩 달리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루에 많은 곳을 둘러보려고 하기보다는 한두 곳만을 자세히 보다가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걷다 보니 궁궐은 무척 근사한 산책 장소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휴식처가 되기도 했어요. 봄, 가을 날씨가 좋을 땐 햇볕이 좋은 곳에 앉아 책을 보고 오기도 했고요. 어려운 역사를 꼭 알아야 한다는 부담에서 조금만 해방된다면, 궁궐은 무척 근사한 여행지가 될 겁니다.

워낙 자연을 좋아하셔서 여행도 자주 다니시는 것 같아요.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도 일부러 찾아가시는 것 같고요. 위드코로나로 조금씩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추천하고 싶은 우리나라의 숨은 여행지가 있을까요?

섬 여행을 추천하고 싶어요. 섬은 거리상 일상에서 멀리 떨어졌다는 느낌과 함께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묘한 고립감도 즐길 수 있어 좋아합니다. 일상에서는 항상 무언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는데, 섬에서만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며칠을 보낼 수가 있어 이 또한 무척 좋더라고요. 아침에 일어나 산책하고, 밥 먹고, 멍하니 바다 보면서 막걸리 한 잔 마시고, 그러다 해가 지면 잠드는…. 그런 무용한 시간을 보내다 돌아오고는 했습니다.

올가을엔 『궁궐 걷는 법』 최종 교정지를 출판사에 넘기고 통영 사량도로 떠났어요. 오래전부터 한 번쯤 가고 싶었는데, 아내와 여행지를 고민하면서 지도를 보다 선택한 섬이었어요.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이름도 예쁘네’ 정도가 사량도로 떠난 이유였습니다. 운 좋게 싱싱한 해산물도 맛봤고, 밤에는 별도 실컷 봤어요. 산에 올라 두려움이 생길 만큼 드넓은 바다도 보고요. 다섯 궁궐 각각 다른 매력이 있듯, 우리나라 섬들도 그 수만큼 특유의 매력이 있으니 섬 여행을 추천합니다.

QR코드에 연결된 블로그에 들어가니 궁궐의 멋진 사진들이 많더라고요. 사진도 굉장히 잘 찍으시는 것 같아요. 역사, 궁궐, 사진, 여행 이외에 선생님이 또 열정을 갖고 있는 주제나 취미가 있으실까요?

산책을 즐깁니다.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한 건 작년쯤부터였는데요. 건강을 위해 시작했는데, 지금은 즐거운 취미가 되었어요. 지금 동네에서 산 지 20년이 넘었는데 걷기 전에는 보지 못하고 지나친 것들이 참 많더라고요. 지하철역 두세 정거장 거리는 당연히 전철을 타거나 택시를 이용했는데, 지금은 그냥 걷습니다. 1년 전쯤만 해도 ‘거기를 어떻게 걸어가?’라고 말하던 제가, ‘그 정도면 걸어가도 되겠네!’라는 태도로 바뀌었어요. 우리 ‘동네’라는 개념도 더 넓어져서 저의 행동반경이 넓어진 듯한 뿌듯함도 있습니다.

독자분들에게 선생님 앞으로의 계획을 소개 부탁드려요. 계속 글을 쓰고 우리 문화유산을 알리실 예정인가요?

궁궐은 이야기를 품은 보물 창고 같아요. 궁궐의 역사와 이곳에 머물렀던 인물과 건물, 자연 등 할 얘기를 찾으면 끝도 없지요. 그런 면에서 『궁궐 걷는 법』은 궁궐이 간직한 바다와도 같은 거대한 콘텐츠의 자물쇠를 연 정도이지 않을까 싶어요. 굳게 잠겼던 자물쇠를 열었으니 이제 그 안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 하나하나 꺼내보려고요. 궁궐뿐 아니라 역사문화 콘텐츠가 담긴 수많은 장소로 저의 호기심과 흥미의 안테나를 조금씩 뻗어갈 생각입니다.




*이시우

역사문화 콘텐츠 작가.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입학하자마자 떠난 답사 때 수백 수천 년 동안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던 유적 사이를 걷는 경험은 지금까지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 있다. 역사문화 콘텐츠 중심으로 여행지를 소개하는 작업을 해 오다, 서울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다섯 궁궐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옮겨갔다. 본격적으로 궁궐 공부를 시작해 ‘문화유산교육전문가’ 자격도 얻었다. 궁궐의 느린 풍경을 즐기며 함께 걷는 산책 프로그램 ‘궁궐을 걷는 시간’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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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