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만 로맨스> 꼭 이뤄져야만 사랑이고 인연인가요?
힘들어도 경험이 쌓이면서 한 명의 인간으로 독립하고 나와 다른 상대를 인정할 줄 알게 된다. 그렇게 세상은 여러 가지 감정의 색이 섞여 다양성을 이룬다. ‘장르만 로맨스’인 영화가 끝내 말하고 싶은 바다.
글ㆍ사진 허남웅(영화평론가)
2021.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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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장르만 로맨스>의 한 장면

‘장르만 로맨스’라는 제목은 로맨스 장르처럼 진행하다 관객의 예상을 배반하는 결말로 귀결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듯하다. 이 장르의 전형적인 공식이라면 맺어질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연인이 되거나 결혼에 성공하는 결말을 맞이하는 것인데 <장르만 로맨스>는 설정부터 이미 헤어진 관계의 두 사람이 등장한다.

한때 소설가로 잘 나갔던 김현(류승룡)은 쓰라는 신작은 나 몰라라 낚시질이나 하고 있다. 책상에 앉아도 단 한 문장도 진도가 나가지 않을 정도로 아이디어도, 의욕도 없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재혼한 아내는 딸의 공부를 이유로 현만 한국에 남겨두고 해외로 떠났다. 할 줄 아는 게 글쓰기밖에 없는 현의 생활은 그때부터 엉망이다.

전처 미애(오나라)와의 사이에 낳은 아들 성경(성유빈)은 부모의 이혼으로 마음을 못 잡고 있다. 학교에 빠지기 일쑤다. 미애는 현을 불러 이참에 성경에게 아빠 노릇 좀 하라고 집으로 불러들인다. 실은 미애의 의도는 다른 데 있다. 성경을 현에게 맡겨 두고 현의 친구이자 출판사 사장인 순모(김희원)와 재미를 보기 위해서다.

성경은 엄마가 순모 아저씨와 몰래 바람(?)피우는 걸 진작에 눈치챘다. 아빠 현이 바람을 피워서 엄마에게 이혼당한 것도 기억하기 싫다. 아빠와 엄마 둘 다 똑같이 못났다. 이 기회에 나도 삐뚤어질 테야, 성경은 피우지도 못하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가 고등학생이 무슨 담배냐며 뺏어 피는 옆집 유부남 누나 정원(이유영)과 인연을 맺는다.

그러니까, <장르만 로맨스>에는 관계에 있어 실패했거나 삐걱거리거나 미숙한 인물들만 등장한다. 사랑 경험이 초보자 수준인 고등학생 성경이야 갈팡질팡하는 게 당연한 듯해도 결혼과 이혼의 대사(大事)를 겪은 현과 미애와 순모 등과 같은 어른이라고 해서 짝짓기에 능수능란한 건 아니다. 여전히 사람에 대해, 사랑에 대해 모르는 것투성이라 새로운 관계 혹은 상황을 맞닥뜨릴 때면 실수 연발이다.

아들의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보겠다고 찾아간 전처의 집에서 현은 왜인지 미애와 눈이 맞아 침대로 향한다. 그때 마침 학교에서 돌아온 성경은 막 관계를 시작하려는 엄마와 아빠를 보고는 경악을 금하지 못한다. 엄마와 그러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문을 잠그고 방 안에 틀어박힌 성경에게 변명하던 현은 ‘감정의 이자’ 같은 거라고 설득하지만, 자신도 그 뜻이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다.


영화 <장르만 로맨스> 공식 포스터

관계는 무를 써는 단칼과 달라서 이별을 선언하고 끝을 맺어도 둘 사이에 피어난 복잡한 감정의 여진이 오래 남아 상대에 관한 기억을 떨치기 어렵게 하기도 한다. 그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 없어 헤어진 사이라도 두 사람의 관계를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끌고는 한다. <장르만 로맨스>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랑의 잔존 감정을 코미디 삼아 웃음을 주면서도 이들과 다르지 않은 우리의 관계를 반추하도록 해 묵직한 한 방을 던지는 작품이다.

현이 말한 ‘감정의 이자’는 영화의 결말에 이르면 파악할 수 있는 개념이다. 각각의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상대를 향한 감정의 이자에 관해 영화는 그 또한 인정해야 하고 존중해야 할 가치라고 정의한다. 줄거리 부분에서 소개하지 못한 인물 중에는 현의 소설이 좋아 현을 사랑하는 성 소수자 유진(무진성)이 있다. 현의 대학 강의를 듣고 현과 신작 소설 공동작업을 하는 유진은 주변에 현과의 관계를 오해받기도 한다.

편견에 상관없이 좋아하는 대상에 애정을 드러내는 것, 결과 여부와 주변 여파에 상관없이 유진은 부끄럽지 않은 자신의 행동으로 성장하고 그로 인한 희로애락의 감정으로 더욱 성숙해진다. 처음에는 유진을 피하던 현은 그의 진심을 이해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현을 떠난 유진을 찾아가 이런 요지의 얘기를 한다. 

“몇 가지 색이 섞여 다른 색이 된다고 해도 색의 본질은 남아 있다. 나는 색의 본질을 보고 싶다.”

모든 인간은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호모 로맨티쿠스’다. 로맨스가 품은 사랑의 의미는 우리 삶과 관련한 모든 사람 사이에 피어나는 감정을 포함한다. 그 감정은 긍정적인 관계만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를 속일 때도 부지기수라 그 때문에 힘들어도 경험이 쌓이면서 한 명의 인간으로 독립하고 나와 다른 상대를 인정할 줄 알게 된다. 그렇게 세상은 여러 가지 감정의 색이 섞여 다양성을 이룬다. ‘장르만 로맨스’인 영화가 끝내 말하고 싶은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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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웅(영화평론가)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요즘에는 동생 허남준이 거기에 대해 그림도 그려준다. 영화를 영화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