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은의 인생책] 페미니즘으로의 부드러운 초대 – 그레이슨 페리 『남자는 불편해』
10대 후반, 페미니즘 서적들과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한다. 보이지 않던 많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고, 생각지 못했던 수많은 문제를 사고하게 되었다.
글ㆍ사진 정아은(소설가)
2021.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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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한 남성 인사가 열변을 토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남성 페미니스트로 불리는 그는 청중들에게 깨어나길 촉구하고 있었다. 청중석에는 남녀가 7:3 정도의 비율로 섞여 있었는데, 표정이 굳었거나 입가에 싸늘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그의 연설 내용을 요약하자면, “원래 나도 남성 중심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런 사고방식이 내게도, 내 여자친구에게도 해롭다는 걸 깨달았고, 그때부터 페미니즘을 공부해 지금에 이르렀다, 지금은 내가 하는 말이 껄끄럽게 들리시겠지만 여기 계신 분들도 마음을 열고 시도해보면 이 길이 나아가야 할 길임을 금방 깨닫게 될 것이다” 정도였다. 말을 마친 뒤 그는 페미니즘 입문서 두 권을 추천했고, 준비해온 책 꾸러미를 청중 일부에게 선물했다. 열성적인 그의 말과 확신에 찬 표정, 휘두르는 손동작을 지켜보는 동안 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남성이라는 외피만 두르고 있을 뿐 그의 언행은 평소 내가 하고 다녔던 말과 행동, 몸짓과 다르지 않았다.

10대 후반, 페미니즘 서적들과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한다. 보이지 않던 많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고, 생각지 못했던 수많은 문제를 사고하게 되었다. 그때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왔다고 느낄 만큼 그 책들과의 만남은 강렬했다. 그때부터 부단히 그쪽 계통 책들을 파고들었다.

틈만 나면 주위 사람들에게 권했다. 읽어봐! 세상이 완전히 다르게 보일 거야! 주위 사람들은 시큰둥하거나 냉소적으로 반응했고, 그런 경험을 몇 번 한 뒤 나는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아직 뭘 모르는구나!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자신이 잘 못 된 길을 걸어왔다는 걸. 그때가 올 때까지, 기회가 되면 깨달음을 흘려 넣어주거나, 그게 안 된다면 조용히 기다리자. 그 후로 주욱, 세상에는 올바른 길과 올바르지 않은 길이 있고, 나는 올바른 길로 들어선 선각자이며, 내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저 사람들도 언젠가는 내가 들어선 길로 들어오게 될 거라 확신한 채 인내하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그 남성 페미니스트의 모습과 조우한 것은 그런 내 모습에 슬며시 회의를 품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그동안 세상을 흑백으로 나누어 왔고, 내게 ‘완전히 깨어난 자’라는, 다른 이들에겐 ‘미처 깨어나지 못한 자’라는 불변의 정체성을 부여해 생각해왔다는 데 인식이 미치면서, 내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남성의 영상은 그런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냉철하게 직시하게 해주는 기폭제로 작동했다. 새로운 각도에서 내 모습을 바라본 뒤 좁은 우물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끙끙거리게 만들었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세상은 남성 중심적으로 돌아가고 있다. 또한 페미니즘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절실히 필요한 학문이자 운동이다. 그러나 세심히 살펴야 할 것은, 세상이 남성 중심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꼭 남성에게 유리하거나, 모든 남성이 여성에게 해로운 존재라는 결론으로 귀결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세상은 남성을 ‘기본값’으로 설정해 돌아가고 있지, 남성을 모든 면에서 ‘우대’해주고 있지는 않다. 공적인 문서와 정책, 교육제도의 주체가 모두 남성을 주체로 상정하고 설계되어 있는 사회에서 살면서 여성은 언제나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게 되지만, 그것이 곧 남성이 언제나 우월한 존재로 취급받고 특권을 누린다는 뜻은 아니다.

이를테면 여성인 나는 소설을 쓸 때 남성을 ‘그’라고 칭하고 여성을 ‘그녀’라 칭할 때마다 슬픔을 느낀다. 마음 같아선 여성을 ‘그’라 칭하고 남성을 ‘그남’이라고 칭하고 싶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철저히 남성을 ‘사람’의 기본값으로 설정해 돌아가고 있으며, 내가 ‘그’와 ‘그남’이라는 인칭대명사를 사용한다면 내 소설은 가독성을 잃고, 언어 평등을 부르짖는 산문이라는 정체성만 부각된 채, 본래 전달하고자 했던 핵심 메시지들을 전달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기본값으로 설정되어 있지 않은 성별에 속한 자로서의 억하심정을 꾹 눌러 삼킨 채 ‘그녀’라는 말을 써 가독성을 높이고, 우리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편안히 받아들일 만한 용어들을 선택해 소설을 써나간다. 원래 내가 목적했던 메시지가 무사히 가 닿기를 기원하면서.

그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는 번번이, 글을 쓸 때마다 출현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안다. 남자를 기본값으로 설정해 돌아가는 사회를 설계한 것이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내 주위 남성들이 아니며, 그 남성들의 마음 속 어느 구석에는 성평등한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리라는 것을(물론 남성으로서의 기득권을 유지하며 이득을 취하려는 마음 또한 버젓이 공존하겠지만). 또한 내가 페미니즘 책들을 평균치보다 많이 접하고 그 분야를 꾸준히 공부해왔다고 해서 ‘나=완벽한 페미니스트’이고 ‘나처럼 사고하지 않는 이들=안티 페미니스트’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일정량의 독서와 글쓰기와 말하기를 통해 내 안의 일부 자아가 남성 중심적 사고에서 탈피했을지라도 여전히 내 안의 다른 많은 자아들은 사십여 년 동안 남성을 기본값으로 하는 사회에서 사회화를 받으며 자란 후과로 상당한 남성 중심적 사고를 하고 있을 것이며, 역으로 나처럼 글쓰기와 말하기를 통해 페미니스트임을 천명하지 않은 다수의 사람들도 어떤 면에서는 나보다 훨씬 더 성평등적인 사고를 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분야를 통해 남성을 기본값으로 삼는 관례를 공기처럼 받아들이고 살아왔기 때문에 모두 일정 부분 남성 중심적 사고를 하며 살 수밖에 없다. 그러니 노력해 그것을 깨고 나오려고 하는 만큼 그 사고에서 빠져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의 골격이라는 철통같은 제한이 있기에 부단히, 계속해서 노력하지 않으면 다시 자석처럼 남성 중심적 사고에 빨려 들어가게 된다. 그러므로 세상에 흠결 없고 완벽한 페미니스트는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다만 ‘진행 중인’, ‘되어 가고 있는’ 페미니스트로 설 수 있을 뿐이다. 남성이건 여성이건 모두 피부 밑으로 너무나 다른 역사와 경험과 사고를 가지고 있기에, 저마다 다른 함량과 방식으로 ‘새로운 사고’를 습득해가고 있기에, 누구도 다른 누군가가 체화한 ‘새로운 사고’의 정도를 평가하거나 가르칠 수 없는 것이다.



그레이슨 페리의 『남자는 불편해』를 읽는 것은 내가 그동안 일부(전부가 아니라) 남성 페미니스트들을 보면서 왜 불편하고 낯 뜨거웠는지 그 연유를 차근차근 깨달아가는 과정이었다. 그레이슨 페리는 자신을 완전무결한 남성 페미니스트로 상정하고 아직 그 경지에 오르지 못한 다른 ‘무지한’ 남성들을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얼마나 마초적인 환경에서 자란 마초인지, 성장기 이후 마초성의 늪에서 빠져나오려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매번 실패로 돌아가는 바람에 아직도 얼마나 많은 경우에 ‘남성성부’의 일원으로 으스대고 싶어 하는지를 적나라하게 고백한다. 다른 남성들이 왜 ‘남성성’이라는 허망하고 유동적이며 일종의 사회적 환상에 지나지 않는 낡은 가치에 집착하게 되는지를 자신의 지나온 인생을 들추어가며 섬세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작가가 『남자는 불편해』를 통해 전달하려는 내용은 사실 내가 그동안 읽어왔던 일부 남성 페미니스트들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경쟁과 성과와 권력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으면 결국 남성 자신이 가장 불행해질 거라는, 백인남성 중심적인 사고에서 빠져나오지 않으면 혼자만의 동굴에 갇혀 외롭고 피폐하게 살아가게 될 거라는 무시무시한 경고를 던진다는 점에서. 그런데 일부 남성 페미니스트들의 저서들을 읽으면서 민망하고 걱정스러웠던(아아, 이런 식으로 말하면 독자들이 오히려 페미니즘에 거부감을 가질 텐데!) 것과 다르게, 이 저자의 책을 읽으면서는 안심하면서,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엔 이 저자가 뭔가 특별한 주장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읽어나가면서, 저자가 말하려는 게 그동안 내가 접해왔던 다른 남성 페미니스트들의 주장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리고 책의 끝부분을 향해갈 때쯤, 퍼뜩 깨달았다. 이 저자에게 있는 것, 분명히 옳은 말을 하고 있음에도 어쩐지 껄끄러운 느낌을 주었던 여타의 남성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것은 ‘자기성찰’이었다. 그레이슨 페리는 인간이 선이나 악, 둘 중의 하나를 선별해 일관되게 그 한 가지 성분만 지니고 다니는 동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정확히 꿰뚫고, 자신 역시 그런 인간 중 한 명이라는 걸 한시도 잊지 않는다. 그렇기에 세상을 ‘깨달은 남자인 나’와 ‘미처 깨닫지 못한 너희 어리석은 남자들’로 나누어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시종일관 제 안에 남아 있는 마초적인 기질을 파고들며 그 마초성이 왜 그리 징글징글하게 자신을 떠나지 못하는지를 해박한 지식을 동원해 분석한다. 이러한 태도 덕에 독자는 그가 독자들을 내려다보고 훈계하고 있다고 느끼지 않으며, 어느 순간부터 경쟁적이고 치졸한 특성을 다 떨쳐내지 못했지만 그래도 새로운 시대의 남성상을 어떻게든 만들어내고 실천해가려 하는 그의 필사적인 몸짓에 응원을 보내게 된다. 현실을 부정하거나 이상화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기반으로 새로운 남성상을 구축해가자고 외치는 그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철저한 자기성찰에 기초한 그의 시선에서 다른 남성들을 비난하고 가르치려 하기보다는 연민하고 감싸 안으려는 기운이 스며나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것이 이 책이 특별할 것 없는 주장을 하는데도 특별하게 느껴지고, 여기저기 권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는 연유다.

저자는 다가오는 시대의 새로운 남성성의 핵심은 부드러움과 적응 능력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름난 도자기 공예가이자 크로스드레서인 저자는 수상자로 초대받은 으리으리한 시상식에 완벽한 여장을 하고 나타나 체면치레를 중시하는 영국인들을 기함하게 만들기도 했고, 『미술관에만 가면 머리가 하얘지는 사람들을 위한 동시대 미술 안내서』라는 책을 통해 현대 예술계의 병폐와 고질적인 문제들을 촌철살인의 유머를 깃들여 예리하게 꼬집기도 했다. 폭력적인 계부 밑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저자가 제 과거를 극복하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을 그린 성장담으로도 읽히는 이 책을 나는 남성이 쓴 탁월한 페미니즘 입문서로 분류하고 싶다.



남자는 불편해
남자는 불편해
그레이슨 페리 저 | 정지인 역
원더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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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은(소설가)

장편 소설『잠실동 사람들』등과 에세이 『엄마의 독서』,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