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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은의 인생책] 수명연장의 일등공신인가, 치명적인 위험 물질인가 - 『두 얼굴의 백신』

<월간 채널예스> 2021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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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스 코로나 바이러스2라는 전대미문의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휩쓸었을 때에야, 백신 접종이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2021.09.01)


독감 백신를 맞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던 적이 있다. 두 번의 겨울을 맞지 않고 지나갔으니 대략 2년 정도의 기간이었을 것이다. 주위에 말하고 다니기도 했다. 효과보다 유해성이 높으니 안 맞는 편이 나을 거라고. 반응이 썩 좋지 않아 이내 말하기를 그만두었지만,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 좋은 정보를 사람들은 왜 그냥 흘려들을까?

사스 코로나 바이러스2라는 전대미문의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휩쓸었을 때에야, 백신 접종이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것은 나를 포함한 공동체 전체의 문제였다. 백신을 맞을 여건이 되는 이들이 최대한 백신을 맞아야 백신을 맞을 수 없는 약자들을 보호할 수 있고, 백신의 장막을 두르지 않을 경우 ‘나’라는 육신이 전달체가 되어 주위 사람들에게 병원체를 퍼뜨릴 가능성이 있었다. 『면역에 대하여』의 저자인 율라 비스는 이런 집단면역을 “모두가 함께 가꾸는 정원”이라 표현했고, 『보이지 않는 침입자들의 세계』의 저자인 신의철은 이를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환경”이라 표현했다. 사스 코로나 바이러스2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인간들의 일상을 모조리 잡아먹은 상황에서 맞았던 첫 겨울에, 나는 2년 남짓 지켜왔던 ‘소신’을 접고 독감백신을 맞았다.

그러나 전염병 정국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내 마음은 희망을 주는 소식을 찾아 희번덕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유튜브에서 한 영상을 발견했다. 코로나는 과장된 것이며 실은 그리 위험한 바이러스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영상을. 무서운 것은 코로나 자체가 아니라 과한 격리 정책과 무차별 약 투약이라는 영상 속 의사의 말을 들으며 나는 환호했다. 그렇지! 치명적인 바이러스라면 이렇게 오래 존속할 수가 없지! 분명 저 의사 말이 맞을 것이다! 영상을 몇 번 돌려본 뒤 나는 비슷한 논조를 펼치는 콘텐츠를 찾아 헤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 미스터리』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책을 만나게 되었다.

『코로나 미스터리』를 읽던 기간 동안, 내 마음은 굉장한 평안을 누렸다. ‘코로나는 별 거 아니야. 나는 알지.’ 생각하며 과감히 밖에 나갈 수 있었고, 어쩌다 마스크를 벗은 상태에서 낯선 사람과 스쳐가도 예전처럼 공포에 질리지 않았다. 우리는 수많은 바이러스에 둘러싸인 채 살아가기 때문에 어차피 바이러스가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은 막을 수 없다, 그러니 바이러스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려하기 보다 몸속에 들어온 바이러스가 살아남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면역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 『코로나 미스터리』의 요지였다. 면역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 건강한 호흡을 하며 바깥출입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것. 책 속에는 백신에 대한 설명도 나오는데,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백신 또한 그다지 효용성이 없다는 취지로 읽혔다. 이 책을 읽은 뒤, 현실 세계에서 차마 마스크를 벗고 다니지는 못했지만, 마음속에서는 이미 코로나를 극복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백신이 나와도 절대 맞지 않을 것이라고.

막상 잔여백신을 맞을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나는 한달음에 병원으로 가 팔을 내밀었다. 한쪽 팔에 백신을 맞은 뒤 보무당당하게 집으로 돌아와 백신 접종자가 되었음을 사방팔방 과시하고 다녔다. 이틀 간 오한과 두통에 시달리다 회복한 뒤, 나는 ‘나’라는 인간이 궁금해졌다. 대체 나는 생각이라는 걸 하는 인간일까? 왜 이렇게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걸까? 전염병 정국이 1년 하고도 6개월을 향해 달려가고 있던 때, 일관성이라고는 1도 찾아볼 수 없는 제 모습에 눈살을 찌푸리며, 나는 결심했다. 바이러스가 뭐고 항체가 무엇인지 알아보기로. 백신에 대한 나의 태도는 왜 이렇게 극단을 오가는지, 미칠 것 같은 이 고구마 백 개의 나날은 대체 언제 끝나는 것인지, 모두모두 알아보기로.

다행히 도움을 주는 책이 많이 출판되어 있었다. 『코로나 사이언스』, 『보이지 않는 침입자들의 세계』『팬데믹 시대를 위한 바이러스 면역 특강』 같은 책들을 읽으면서는 “바이러스가 뭐고 항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고, 무엇보다, 『코로나 미스터리』의 주장과 달리 코로나가 ‘매우 위험한’ 바이러스라는 걸 확신하게 되었다. 『두 얼굴의 백신』을 읽으면서는 “백신에 대한 나의 태도는 왜 이렇게 극단을 오가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앞의 3권의 책이 인체와 면역에 대해 알려주는 정통 면역학 책 혹은 면역학 입문서였다면, 『두 얼굴의 백신』 은 그런 인체와 면역에 관해 사람들이 그동안 어떻게 반응해왔는지 계보를 알려주는 사회학서였다. 

책 표지에 쓰인 부제가 알려주듯, 『두 얼굴의 백신』은 전염병과 백신에 대해 각 나라 정부가 어떻게 대응했으며, 그에 대해 국민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냉전시대부터 신자유주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시간 순으로 훑어나간다. 1796년 영국의 외과의사 에드워드 제너가 소의 두창을 인체에 접종하는 기법으로 후천적 면역 형성을 시도했던 것을 시발점으로, 각 나라 정부는 다양한 방식으로 전염병에 대처했다. 공적으로 직접 나서서 적극적으로 백신 개발에 뛰어들었던 국가가 있는가 하면, 민간 차원에서 백신을 개발하도록 기업을 장려하는 방식을 택하는 국가도 있었다. 그에 대해 각국의 국민들이 반응하는 방식은 천차만별이었는데, 강대국 국민들의 일부가 적극적으로 접종에 응했는가 하면, 식민 지배를 당한 경험이 있는 국민들의 일부는 백신접종을 그동안 경험했던 억압과 착취의 한 갈래로 받아들이고 완강하게 거부했다. 

‘백신’이라는 물질이 인류가 전에 만들어본 적이 없던 신개념 품목이었기에, 만드는 과정에서 희생자가 나오거나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소아마비 백신 개발 과정에서는 임상 실험 대상이 되었던 어린이들 중 일부가 소아마비에 걸리기도 했다. 이런 사건을 지켜보았던 이들은 당연히 백신에 거부감을 갖게 되었고, 그런 과정에서 형성된 어떤 기피 경향, 어떤 공포심이 지금까지 죽 백신 거부 움직임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한 마디로, 백신에 대한 반응은 그 백신을 권장하는 정부가 국민과 어떤 관계를 맺었는가에 따라, 그 국가가 어떤 역사를 갖고 어떤 사회적 관습을 형성했는가에 따라 달라졌다. 과학적 사실 자체보다 이미 맺어져 있던 사회 문화적 맥락이 백신을 대하는 태도에 더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내가 백신을 위험물질이라 생각했다가, 막상 기회가 오자 두 팔을 벌리고 환영하며 맞았던 것은 이런 백신의 발전 역사 속에 내포되어 있던 상반된 태도가 여러 경로를 통해 내면으로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백신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어떤 사람이 거부하게 되는가? 길게 늘어지는 이번 팬데믹 국면 속에서 사람들은 대부분 코로나 백신을 맞자고 소리 높여 외치지만, 일부는 코로나 백신은 검증되지 않은 위험물질이고 오히려 백신으로 인해 사태가 더 악화될 거라 강력하게 주장한다. 어제는 전자에 동의했다가 오늘은 후자의 말에 귀가 커다래지는 나 같은 사람은 시종일관 같은 태도를 유지하는 양쪽 모두에게 경외감을 느낀다. 특히 다수와 반대되는 주장을 펼치고, 그로 인해 여기저기서 매서운 비판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코로나가 과장된 것이며 위험한 것은 오히려 백신이라고 외치는 이들을 보면 도대체 어떻게 저런 믿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일까, 궁금해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에 대한 답 비슷한 것을 『두 얼굴의 백신』 의 파생으로 읽은 『백신 거부자들』을 읽으면서 찾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반권위적인 욕구’였다. 『백신 거부자들』 에 따르면, 백신을 거부하겠다고 외치는 것은 거대한 체계와 믿음에 도전장을 던지는 행위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옳다 믿고 따르는 일에 혼자서 반기를 드는 행위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지배당하거나 통제받고 있지 않으며, 주체적으로 사고해 누구도 알지 못하는 진리에 다가갔다는 남다른 충족감을 준다. 전염병과 면역에 관한 인류 역사를 훑으며 어떤 사람들이 백신 거부자가 되는지를 짚는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는데, 책 속에 나오는 백신 거부자들의 특성 중 많은 부분이, 독감 백신을 맞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시절의 내게 내재되어 있던 특성이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인터넷을 통해 독감백신을 맞은 이들 중 몇 명에게 나타났다는 부작용에 대한 정보를 얻었고, 그에 대한 호기심이 일어 『예방접종이 오히려 병을 부른다』는 책 한 권을 읽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남들이 모르는 정보를 나만이 알고 있다는 만족감에 젖어, 남들이 다 맞는다는 이유로 나까지 맞지는 않겠다는 결기를 다지며, 비장하게 접종 거부를 결심했다.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소소한 정보 몇 개를 조합한 뒤 ‘나는 누구의 말에도 영향 받지 않는 주체적인 인간이다!’라고 읊조리며 자존감 고양 운동을 벌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지금은 백신을 백 프로 신뢰하는가? 곰곰 생각해보면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여전히 백신에는 미심쩍은 점이 있고, 역사적으로 봤을 때 백신으로 인한 부작용 피해자는 극소수이긴 해도 분명히 있었으며, 일부 백신은 제약사의 상업적 목적 때문에 필요성이 과장되어 필수백신처럼 과대포장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저런 예외적인 경우를 고려한다 해도, 백신이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치명적인 질병들에서 손쉽게 벗어날 수 있게 해준 인류 수명 연장의 일등 공신이며,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지구상에, 사스 코로나 바이러스-2의 실체를 통째로 볼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커다란 코끼리라서, 우리네 인간들은 한 마리 개미가 되어 코끼리의 지극히 일부만을, 제가 올라 타 있는 지점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면역학과 백신에 대한 책들을 읽는 것은 코끼리의 한쪽 발에 올라 타 있다가 다른 쪽 발로 옮겨가 본 듯한 경험이었다. 어라, 이 커다란 생물에게 발이 또 하나 있었네? 하며 다른 쪽 발 위에서 조금 전까지 올라타 있었던 발을 쳐다본 느낌. 아무래도 한동안은 이 코끼리의 엉덩이와 꼬리, 눈과 코를 보기 위해 이 책 저 책 기웃거리게 될 것 같다. 내 삶 구석구석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대형 코끼리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아내기 위해.



두 얼굴의 백신
두 얼굴의 백신
스튜어트 블룸 저 | 추선영 역
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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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아은(소설가)

장편 소설『잠실동 사람들』등과 에세이 『엄마의 독서』,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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