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으로 선을 긋듯이, 윤이상 “예악(1965)”
윤이상의 음악은 한국 근현대사와 분리할 수 없습니다. 윤이상은 동·서양을 잇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인간의 근원과 전통, 말이나 글로 전할 수 없었던 근현대사의 아픔과 슬픔을 기록하고 꽃피웠습니다.
글ㆍ사진 송은혜
2021.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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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컨택트(2016)〉 

영화 〈컨택트(2016)〉를 기억하시나요? 테드 창의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기반한 영화였지요. 지구에 도착한 외계인과 소통하기 위해 그들의 언어 체계를 해독하고 이해하며 상대와 자신을 알아가는 언어학자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분절된 기호를 사용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언어를 구사하는 인간은 이해하기 힘든 외계인의 표의(表意)문자는 붓으로 화선지에 원을 그리며 다양하게 번지는 모양으로 영화에서 표현되었습니다.

윤이상(1917-1995)의 음악을 처음으로 들었을 때, 어쩌면 서양인들은 〈컨택트〉의 지구인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알파벳으로 단어와 문장을 만들던 이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시간을 뛰어넘어 한 번에 붓으로 그려냈던 외계인의 생소한 표현법처럼, 유럽인에게 윤이상의 음악은 다른 세계의 이해할 수 없는 언어와 같았습니다. 기존 이론체계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음악, 전혀 손에 잡히지 않는 구조,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소리의 흐름을 접했을 때 유럽의 청중은 상상하지 못했던 음향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부정하거나 완전히 매료되거나, 새로움에 어떤 마음과 입장을 가졌는지에 따라 청중의 반응은 갈렸지요.   

20세기 근대 음악에서는 지난 삼백 년간 고전음악계를 지배하던 조성체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여러 시도가 있었습니다. 쇤베르크의 12음 기법, 메시앙의 새소리, 혹은 존 케이지의 우연성 음악이 그런 예였습니다. 신비로운 동방의 나라에서 온 작곡가는 이런 음악계의 흐름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음악은 관념에 기반해 또 다른 길을 내는 신선함으로 청중에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유럽의 음악에서는 음이 연결되면서 비로소 그 생명력을 얻게 된다. 이때 각 개별 음은 비교적 추상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음악에서는 각 개별 음이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한국 음악에서의 이러한 음들을 연필로 그려진(경직된)선과 대비시켜 붓으로 그린 운필과 비교하곤 한다. 각 음은 그것이 울리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울림이 사라질 때까지 변화를 하게 된다.

_(김용환 편저, 『윤이상 연구』, 시공사, 2001, 34쪽)


'예악(1965)'에 관해 윤이상이 쓴 내용입니다. 음과 음이 연결되면서 선율, 화성, 리듬, 형식을 통해 표현력을 갖게 되는 서양 음악과는 달리 윤이상의 음악은 먹이 화선지에 번지듯, 하나의 음이 생성, 확장, 소멸하는 변화를 그려냅니다. 그래서 악보에 서로 다르게 쓰여 있는 음일지라도 중심이 되는 음이 옆으로 번진, 일종의 파생음처럼 여겨집니다. 국악에서 창을 떠올려 봅시다. 처음에는 한 음이었다가 음을 떨면서 주변 음으로 음이 확장되는 것처럼 들리지만, 결국 한 음에 가해지는 힘의 변화를 통한 떨림일 뿐인 것과 같습니다. 떨림(비브라토)으로 하나의 음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한 음으로 얼마나 많은 표현이 가능한지 시조창을 통해 가늠해 보세요.


평시조 – 동창이 (노래 지민아, 대금 차송이)


윤이상은 일제 강점기 시절에 경남 산청에서 태어나 만 세 살 때부터 통영에서 성장합니다. 14세부터 작곡을 하기 시작했고, 1933년 서울로 올라와 일본에 처음으로 서양음악을 전한 프란츠 에케르트의 제자였던 바이올린 주자 최호영에게서 음악 수업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 일본을 오가며 첼로와 작곡, 음악 이론을 배웠습니다. 해방 전, 독립운동으로 투옥되기도 했으며, 해방 후에는 통영에 머물며 문화, 사회사업을 하는 음악 교사로서 사회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1956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고 파리 국립 고등음악원에서 수학 뒤, 1957년에 독일로 옮겨 1995년 사망할 때까지 그곳에 머물며 음악 활동을 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예악'은 유럽 음악계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한 윤이상이 1967년 ‘동백림사건’으로 납치, 투옥되기 전 해, 도나우에싱겐 음악제에서 초연(1966)되었던 음악입니다. 단순히 이국적인 소리를 서양 음악에 넣는 차원을 넘어 동양 철학을 바탕으로 음악을 근본적으로 성찰한, 수준 높은 동서양의 만남으로 '예악'은 유럽 음악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예악'은 우리나라 전통음악인 ‘종묘제례악’처럼, 박(拍)이라는 악기로 작품을 시작하고 끝을 맺습니다. 박달나무 여섯 조각 사이에 엽전을 끼워 서로 닿지 않게 만들어 한 번에 여섯 조각을 손뼉 치듯 모아 소리를 내는 ‘박’은 한국 전통 음악에서 시작과 바뀌는 부분에서 한 번씩, 그리고 마지막에 세 번 쳐서 끝을 알리는 악기입니다. '예악'도 ‘박’으로 음악을 시작하고 작품이 진행하는 중에 추임새를 넣듯 ‘박’을 치고, 마지막에 세 번 ‘박’을 쳐서 마치며 시작과 끝을 알립니다. 윤이상의 음악을 듣기 전, ‘종묘제례악’을 들으며 우리 음악이 끌어가는 밀도 높은 시간과 흐르는 힘의 예술에 익숙해져 보세요. 악단에서 떨어져 전체 구조를 그리는 지휘자의 진중하고 우아한 외침과 ‘박’의 역할, 악기 선율과 때로는 동일하게 때로는 다르게 노래하며 긴장과 이완을 만드는 악사의 노래, 한 선율을 연주하는 서로 다른 악기의 독특한 음색, 전통 리듬과 장식음, 느리고 경건한 속도와 연주자의 움직임에 주목하면 음악이 훨씬 풍성하고 다채롭게 들립니다.


종묘제례악, 국립 국악원 연주(2016)


윤이상의 '예악'은 서양 악기로 동양적 시간의 흐름을 표현합니다. 발전과 진보를 향한 목적론적 서양의 시간관념이 아니라 영원을 음악으로 끌어안는 ‘종묘제례악’과 같은 순환의 시간이 '예악' 안에서 무거운 액체처럼 흘러갑니다. 음이라기 보다 음향에 더 가깝게 들리는 음악은 파도처럼 한 방향으로 끌려가다 어딘가에 부딪히듯 파열하고, 풍경을 그리는 듯한 다양한 소리는 음향의 물결 속으로 하나가 되어 스며듭니다. 마디선을 넘어 굽이치며 흐르는 음악에서 들리는 한국 전통 악기의 음색이나 기법을 통해 우리는 윤이상의 기억 속에 살아있는 고향의 풍경, 삶에 배인 음악의 역동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미륵산에 오르며 바라보았던 연등 행렬, 어머니의 모심기 노래, 통영오광대놀이, 통제영의 제례음악, 외갓집 잔칫날 들었던 호궁과 거문고 연주 소리, 친척집 뒷산에서 밤새 구성진 목청을 뽑아 내던 한 남자의 노랫소리, 바다에 빠진 사람들을 위한 동네 굿판의 진혼굿, 무당들이 입은 화려한 복장…….   _(박선욱, 『거장의 귀환 윤이상 평전, 삼인, 2017 중 367쪽)


이해를 돕기 위해 MBC에서 제작했던 편집 영상을 소개합니다. 이 영상은 관현악단과 그와 비슷한 전통 음악 장면을 대조해 '예악'을 좀 더 쉽게 풀어 설명합니다. 


통영 페스티발 관현악단 연주, 크리스토프 포펜 지휘, 2015년 통영 국제 음악제 폐막공연


전곡은 2003년 베를린 도이치 심포니가 연주한 다음 음반으로 들어 보세요.


스테판 애즈버리 지휘, 베를린 도이치 심포니 관현악단 연주

(20th Century Portraits, 카프리치오, 2003)


여러 다른 제목이 많았을 텐데 왜 윤이상은 ‘예악禮樂’이라는 이름 붙였을까요? 질서(禮)와 즐거움(樂)을 뜻하는 예악은 공자의 사상입니다. 다름을 인정하고 질서를 지키는 ‘예’와 다름에 상관없이 즐거움으로 모두 하나가 되는 ‘악’은 이방인 윤이상이 세계를 향해 깊고 품격 있게 자신을 드러내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전할 수 있는 근간이었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윤이상의 부인인 이수자 여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작곡가는 비단 예술가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세계 속의 한 인간입니다. 그는 결코 그 세계를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세계 속에는 인간적인 고통과 억압, 고난과 부당함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그 모든 것이 내 생각 속에 들어옵니다. 고통과 부당함이 있는 곳에 나는 음악을 통해 더불어 얘기하고자 합니다.”  _(강태호·이용인 기자, “윤이상 음악은 고통이 있는 곳에”, 《한겨레》, 2006년 3월 23일)


음악에 세상과 자신을 향한 깊은 성찰을 담았던 윤이상의 음악은 한국 근현대사와 분리할 수 없습니다. 윤이상은 동·서양을 잇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인간의 근원과 전통, 말이나 글로 전할 수 없었던 근현대사의 아픔과 슬픔을 기록하고 꽃피웠습니다. 다가오는 11월 3일은 그의 기일입니다. 사후, 23년(2018년) 만에야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천재 작곡가의 음악을 들으며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어딘지 모르게 친밀한 한국인의 현대음악에 한 걸음 가까이 가는 기회가 되기를 빕니다. 한국인만 알아챌 수 있는 비밀을 숨긴 그의 음악을 통해 뼛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떨림과 짜릿함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윤이상의 베를린 집 서재(출처: 인터내셔널 윤이상 게젤샤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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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혜

음악 선생. 한국, 미국, 프랑스에서 피아노, 오르간, 하프시코드, 반주, 음악학을 공부한 후 프랑스의 렌느 2대학, 렌느 시립 음악원에 재직 중이다. 음악 에세이 『음악의 언어』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