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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잠시 내려 두는 시간, 헨리 퍼셀의 “음악이 잠시 동안 Music for a while(1692)”

헨리 퍼셀의 “음악이 잠시 동안 Music for a while(1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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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러운 진실을 마주하는 주인공들의 심정과 윤리적으로 그들을 용서할 수 없는 분노를 퍼셀은 너무나도 간결하고 우아하게 표현합니다. (2021.09.16)

웨스트민스터 사원 내부 전경, 프랑스 국립 박물관 소장

헨리 퍼셀(1659-1695)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나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1685-1759)와 함께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입니다. 퍼셀은 1659년 런던에서 태어났습니다. 올리버 크롬웰(1599-1658)이 이끄는 청교도 공화국이 끝나고 찰스 2세(1630-1685)가 복귀해 왕정을 되돌리는 1660년, 혼돈의 시기에 태어난 것이죠. 크롬웰의 정치하에서 청교도 정신으로 억압받던 예술이 숨 쉴 틈을 얻고 새롭게 비상하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근처에 살면서 왕실 교회의 합창단원으로 일하던 퍼셀의 아버지와 삼촌은 곧바로 찰스 2세의 궁정 음악가가 되었습니다.

음악 가족 내에서 태어난 퍼셀은 어린 나이부터 왕실 음악가를 향한 길을 걸었습니다. 왕실 교회의 합창단원으로 노래하다가, 변성기가 오면서 악기 관리인이 되었고, 작곡에 두각을 드러내며 왕실 바이올린 앙상블의 상임 작곡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오르가니스트로 임명되어 평생 그 자리를 지키다가 사후에 자신이 연주하던 오르간 앞에 묻혔습니다. 

왕실 주변에서 훌륭한 음악 교육을 받은 퍼셀은 대표적인 영국 작곡가인 윌리엄 버드(1539/40-1623)와 올란도 기본스(1583-1625)의 전통 양식에 기반해 당시 대륙에서 유행하던 프랑스의 장 바티스트 륄리(1632-1687), 이탈리아의 아르칸젤로 코렐리(1653-1713)가 보여주는 최신 음악 기법을 접목해 유럽 양식을 집대성하는 완성도 높은 작곡법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언어에 관한 탁월한 감수성으로 훌륭한 합창곡과 오페라를 많이 남겼습니다.     

폐부를 찌르는 간결함으로 듣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퍼셀의 ‘음악이 잠시 동안(z.583)’을 통해 17-18세기 바로크 음악을 이해하는 주요 키워드를 짚어 봅시다.  


음악이 잠시 동안, 

당신의 근심을 달랜다. 

어떻게 고통이 사그라드는지 놀라며

만족하기를 경멸하며.

알렉토(분노의 여신)가 영원한 굴레에서 

죽은 자를 풀어줄 때까지

그의 머리에서 뱀이 떨어지고

그의 손에서 채찍이 떨어질 때까지


‘음악이 잠시 동안(Music for a while)’은 극작가이자 시인이었던 존 드라이든(1631-1700)과 나타니엘 리(1653?-1692)의 연극 “오이디푸스(1692)”에 삽입된 음악 네 곡 중 두 번째 곡입니다.


안드레아스 숄 노래, 아카데미아 비잔티나 연주, 스테파노 몬타나리 지휘


남성으로서 여성 음역을 노래하는 성악가를 카운터테너라 합니다. 바로크나 그 이전 시대에 왕성히 활동하던 음악가였는데 고전과 낭만시대를 거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20세기 초, 영국의 성악가이자 음악학자였던 알프레드 델러(1912-1979)가 카운터테너 창법을 연구하고 보급한 덕에 다시 무대에 올라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 활동하는 대표적인 성악가로는 르네 야콥스, 안드레아스 숄, 필립 자루스키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성을 가늠할 수 없는 신비한 목소리, 카운터테너의 노래는 바소 콘티누오를 연주하는 악기가 반주합니다. 악보를 한 번 볼까요?


퍼셀, "음악이 잠시 동안", 로버트 핀다 수고본(1765), 영국 왕립 음악원 도서관 소장

악보의 첫 줄은 성악이, 두 번째 줄은 악기가 연주합니다. 음악을 들으면 여러 악기 소리가 들리지만, 악보는 간결하지요. 이런 악보를 연주하기 위해서는 베이스 선율을 연주하는 첼로 혹은 비올라 다 감바와 같은 저음 악기와 화성을 채우는 하프시코드나 류트, 혹은 기타가 필요합니다. 바로크 음악에서 주로 쓰였던 반주 형태로 바소 콘티누오라 부릅니다. ‘바소’는 저음, ‘콘티누오’는 지속을 의미하지요. 바소 콘티누오의 등장은 바로크 음악에서 화성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전 시대에는 각 성부를 돌림노래처럼 엇갈려 겹치며 다성음악을 만들었지만, 바로크 시대에는 성부가 겹쳐지는 순간 동시에 들리는 화성이 중요한 역할을 맡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하프시코드나 류트, 기타는 음악적 맥락에 가장 적절한 화음으로 서로 다른 성부를 조화롭게 묶어 내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성악가의 노래에 맞추어 악기의 음량과 스타일을 즉흥적으로 유연하게 조절해 가사가 더욱 돋보이도록 연주합니다. 

‘음악이 잠시 동안’에는 그라운드 베이스라 불리는 특별한 작곡기법이 사용되었습니다. 음악의 처음부터 끝까지, 저음 선율, 즉, 베이스가 동일한 선율을 반복하지요. 벗어날 수 없는 숙명처럼 반복되는 베이스 위에서 퍼셀은 듣는 이의 예상을 뛰어넘는 복잡하고 섬세한 멜로디를 들려줍니다. 또한, 반복되는 베이스에 얽혀 해결되지 않는 불협화음은 다른 조성으로 옮겨가는 통로가 되는 동시에 단어의 미묘한 의미를 담아냅니다. 


퍼셀, "음악이 잠시 동안" 중 '영원 eternal' 부분 발췌,
로버트 핀다 수고본(1765), 영국 왕립 음악원 도서관 소장

‘영원한 굴레’를 노래할 때는 퍼셀은 그레고리오 성가처럼 한 음절로 여러 음을 노래하는 멜리스마 기법을 사용합니다. ‘영원 eternal’을 길게 늘이며 노래로 의미를 표현한 것이죠. ‘뱀이 떨어지고’, ‘채찍이 떨어질 때까지’에서는 ‘떨어짐 drop’을 노래하는 부분에서는 음표 사이에 쉼표를 넣어 무엇인가 땅에 툭 떨어져 끊어지는 이미지를 소리로 그려냅니다. 이처럼, 음악으로 그림을 그리는 기법을 음화법이라 합니다. 바로크 시대에 많이 사용되었던 작곡 기법이지요. 

그라운드 베이스로 반복되며 다른 조성으로 옮겨졌던 음악은 다시 처음 부분을 노래하며 마칩니다.  ‘A부분-B부분-A부분’ 형식으로 작곡된 아리아를 다 카포 아리아라고 부릅니다. ‘다 카포’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라는 이탈리아 지시어입니다. B부분이 끝나고 다시 A부분으로 돌아가기는 하지만, 성악가는 처음과 동일하게 노래하지 않고 자기의 개성을 담은 다양한 장식음으로 화려하게 음악을 확장합니다. 바소 콘티누오와 다 카포 아리아는 연주자가 창작에 참여하도록 틈을 열어 놓는 바로크 시대의 독특한 연주 기법입니다. 단순해 보이는 바로크 음악이 연주 때마다 달라지는 창의적 순간, 반짝이는 현재를 청자에게 선물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뱀을 머리카락으로 삼고, 손에 채찍을 든 분노의 여신, 알렉토가 등장하는 ‘음악이 잠시 동안’은 그저 아름답기만 한 노래일 수 없습니다. 아들의 손에 죽은 아버지, 라이어스 왕이 깊은 지옥으로부터 올라오는 모습을 묘사하듯, 저음부 선율은 급격한 도약과 반음계적 진행이 얽혀 그라운드 베이스로 끝없이 반복됩니다. 항상 그렇듯, 반복되는 음형은 우리의 생각을 멈추고 현재를 잊게 만듭니다. 마치 최면에 걸린 것처럼요. 음악으로는 아버지에게 버려진 아들의 상처도, 그 아들에게 살해당한 아버지의 고통도,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아들의 죄책감도 해결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잠시 동안’이나마 음악을 통해 예술로 승화된 고통을 관조할 여유가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고통스러운 진실을 마주하는 주인공들의 심정과 윤리적으로 그들을 용서할 수 없는 분노를 퍼셀은 너무나도 간결하고 우아하게 표현합니다. 드러날 듯 드러나지 않는 극단적 감정이 예술적으로 타고 넘는 영국 특유의 음악 색채에 주목해 보세요. 표면과 내면이 맞닿은 면에서 빚어지는 짜릿한 조화를 맛볼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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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송은혜

음악 선생. 한국, 미국, 프랑스에서 피아노, 오르간, 하프시코드, 반주, 음악학을 공부한 후 프랑스의 렌느 2대학, 렌느 시립 음악원에 재직 중이다. 음악 에세이 『음악의 언어』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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