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은 또다시 일상을 파괴하러 등장할 것이다. 지속 가능한 삶을 결정짓는 열쇠는 미래를 개척하는 데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저자 이병한 교수는 새로운 미래 지구사를 쓰기 위해 미래 기술의 최첨단을 달리는 기업인들을 직접 만났다. 바로 어스테크, 지구를 살리는 기술이다. 기존의 환경운동가들과는 차원이 다른 ‘비즈니스 액티비스트’의 발견이다.
이들은 생태계를 보존하고 환경을 살리는 세상을 만들고자 삶의 중심을 바꾸었다. 『어스테크, 지구가 허락할 때까지』는 지구를 망치는 하이테크(High Tech)에서 지구를 살리는 딥테크(Deep Tech)로 전향한 스타트업 CEO 4명의 무해한 도전에 관한 이야기다.
유시민 뒤를 이을 신지식인으로 가장 주목받는 인문역사학자이자 문명사학자로 평가받는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디에서 그런 평가를 하는지요? 금시초문입니다만… 굳이 유시민 작가를 거론하자면, 저도 대학생 시절부터 열심히 작가님 책을 읽으며 교양을 쌓았던 ‘선생님’이었습니다. 다만 이른바 ‘90년대 논객’의 대개가 그러했듯이 유럽을 방편으로 한국 및 세계를 이해하는 틀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서유견문』의 유길준 이래 면면했던 ‘개화파’ 지식인의 연장이었다고 생각해요. 상대적으로 저는 서구와는 다른 다양한 문명권의 집합적 굴기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결이 좀 다르지 않았을까 싶고요. 그런데 이제는 스스로 ‘문명사학자’라는 정체성도 희미해져 갑니다. 과거의 다양한 문명을 복기하기보다는 미래의 문명을 창조하는 쪽으로 훨씬 관심이 기울어지고 있어요. 『어스테크, 지구가 허락할 때까지』를 비롯해 올해 출간된 책들이 그 미래사 작업의 출발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책에 소개된 기업과 대표님들을 보면 일반 기술 회사들과는 분명히 달라 보여요. 테크를 기반한 비즈니스, 즉 어스테크라는 지구를 위한 기술인데 어떤 점이 특별한가요?
산업혁명 이래 기술과 기업은 늘 함께 진화해 왔습니다. 그 폭발적인 경제성장의 혜택을 두루 누려 왔고요. 그런데 지구와 기후와 환경 등등을 고려해 보자면 더 이상 일방적인 기업의 이윤 창출을 옹호할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하게 된 것이죠. 작년부터 온 세계의 인류가 동시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도 무관치 않을 것이고요. 이러한 산업문명의 부작용을 우려하면서 일각에서는 오래전부터 농본주의에 입각한 생태문명을 주장해 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과거지향적 전망이 꼭 합당한 방향인지 의문이 들어요. 지구만물과 인류 전체를 생각하면서 기술의 진화를 촉발하고 기업의 비전을 업그레이드하는 미래 지향적 기술기업에 관심이 커졌고, 기왕의 사회운동과 시장의 비즈니스를 접목하고 있는 일군의 CEO들을 목도하면서 ‘비즈니스 액티비스트’라는 말도 사용해 본 것입니다. 지난 30년 정보화 사회를 추동했던 IT 기술이 ‘하이테크’였다면, 앞으로 30년 생명문명 사회를 선도해갈 미래기술은 ‘딥테크’(deep tech)’, ‘어스테크’(earth-tech)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제안해 보는 것이고요.
한마디로 모든 일이 ‘지구를 살리는 기술’인 것이군요. 그런데 평생 공부한 지식으로 대기업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도 있었을 텐데. 이렇게 자기 삶을 걸면서까지 이 일에 열정을 쏟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개개인의 ‘회심’의 계기를 잘 살펴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대체로 ‘미래세대’라고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3-40대 CEO들의 자녀들은 22세기를 목도하며 살아가게 될 첫 번째 세대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대로 간다면 22세기의 지구라는 것이 살 만한 터전이 아닐 것이라는 점에서는 많은 분들이 동의하잖아요? 그래서 특히 MZ 세대들에게 제로웨이스트, 비건 등등이 주목받고 있고요. 이분들도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고 계시죠. 다만 이들에게 장착되어 있는 것은 ‘기술’입니다. 공학을 전공한 경영자로서 구체적인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해갈 수 있는 방법을 창안해 낼 수 있는 것이죠.
그린뉴딜이나 저탄소 정책 등 여러 가지가 시행되고 있습니다. 스마트팜 등 에코 관련 기술들도 꽤 발전하고 있고요. 향후 가장 주목해야 할 비즈니스는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생명산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동식물에 최대한 해로움을 가하지 않으면서도 100억 인류의 식생활을 해결해 줄 수 있는 푸드테크, 지하의 탄소를 굳이 지상으로 꺼내지 않더라도 인간의 문명을 가동시킬 수 있는 에너지테크, 100세 인생을 건강하게 날 수 있도록 조력해주는 헬스테크,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망라하여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공간을 창출하는 스마트한 생명도시 모델을 구축하는 게 21세기의 가장 큰 미래산업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건강하고 쾌적하게 살아갈 수 있는 미래도시의 인프라와 운영체제(os)를 만들어 내는 게 자동차-반도체-BTS를 잇는 한국의 차세대 산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업 대표들을 인터뷰하기 전 가진 생각과 그들을 만나고 난 이후 생각이 바뀐 점이 있나요?
‘공돌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엔지니어에 대한 비하적 표현인데요. 저는 이분들의 비즈니스 모델을 보면서 공학이야말로 과학과 예술을 결합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과학적 원리를 객관적으로 터득하는 한편으로 예술적인 창조성이 융합이 되어야 비로소 공학적 솔루션이 창출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시장과 접목되었을 때 실질적이고 실리적이면서 창의적인 비즈니스로 성장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고 보면 ‘인문학이 중요하다.’는 일각의 주장도 편향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발화권이 주로 인문사회 쪽 분들에게만 집중되어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공학적 창의성과 접목되지 않는 인문학은 공허한 원론의 반복에 그치기 일쑤 거든요. 세계 최고의 공과대학이라고 하는 MIT의 상징이 책과 망치입니다. 기후재난시대를 극복해 가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게는 더 많은 말과 글 못지 않은 더더욱 많은 도구와 망치가, 기술의 폭발적인 진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술과 비스니스, 그리고 이병한의 인문, 철학적인 통찰이 잘 묻어나는 결과물이 담긴 것 같습니다. 이 책을 통해 꼭 말하고 싶었던 점이 있다면?
저도 학계의 기준으로는 ‘인문학자’이죠. 그런데 더 이상 인문학에 안주해서는 미래를 열어갈 수 없다고 생각해요. 당면한 기후위기와 디지털사회와 우주시대 모두가 그 이전의 인류가 경험해 보지 못한 전대미문의 사태이거든요. 즉 과거의 인류가 남긴 문화적 유산의 유효성이 그렇게 크지 않은 시대에 진입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감하게 과학과 공학과의 적극적인 대화와 융합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생태(에콜로지)와 기술(테크놀로지)이 물과 기름이 아니라 반드시 함께 해 가야할 파트너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생명문명을 염원하는 ‘생각하는 사람’들과 ‘생활하는 사람’들과 ‘생산하는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플랫폼이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컸어요. 환경운동, 생태운동, 기후운동을 하시는 분부터 새로운 테크 비즈니스를 시작하려는 창업가들까지 이 책을 통해서 서로 간의 접점을 찾을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쁠 것 같습니다.
이런 기업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대기업이나 정부, 단체들의 지원이나 관심이 높아져야 할 것 같습니다. 일반 시민들의 관심도 필요할 텐데. 그러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어스테크, 지구가 허락할 때까지』를 함께 읽기부터 시작하시면 어떨까 싶고요. 사상가/영성가와 활동가/예술가와 경영가/기술자가 함께 만날 수 있는 장을 다양하게 자주 만들어 가야 하지 싶습니다. 올해 춘천에서 생명문명 써밋을 열고 이 책에서 인터뷰한 CEO들도 모두 모시려고 했는데요. 결국 코로나가 잦아들지 않으면서 행사가 취소되었습니다. 내년에는 꼭 이런 장을 펼쳐 보이고 싶어요. 생각과 생활과 생산이 선순환하는 생명문명의 연결고리를 각자가 머물고 있는 가족과 직장과 마을 등의 현장에서부터 꾸려가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병한 1978년에 태어났다. 1998년 대학생이 되었다. 2018년에는 대학 교수가 되었다. ‘개화 대학’ 연세대학교에서 수학하고, ‘개벽 대학’ 원광대학교에서 첫 직을 구했다. 20대, 서학(西學)의 첨단을 달렸다. 사회학에 근간을 두고 구미의 현대 사상을 탐닉했다. 30대, 유학(儒學)의 아취에 젖어들었다. 역사학에 바탕하여 중화 세계의 오래된 지혜를 탐구했다. 40대, 동학(東學)에 귀의한다. 이 땅의 민초들이 펼쳐낸 토착적 근대화, 내재적 민주화의 장기적 이행을 탐사한다. 마침내 개화와 개벽의 대합장/대합창이 빚어낼 동/서 문명의 회통, ‘신문명론의 개략’을 천착한다. 마흔 번째 생일날, 산통이 시작되었다. 꼬박 하루가 더 지난 2018년 11월 27일, 새 생명이 왕림하셨다. 2100년 22세기를 목도할 미래인의 선전포고가 우렁차다.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쥐고 제 어미의 젖무덤을 맹렬하게 파고든다. 물끄러미 아들에서 아비로, 인생의 후반전을 다짐한다. 아비 또한 ‘젖 먹던 힘’까지 다하여 ‘동학의 세계화’, ‘개벽의 지구화’에 매진할게. 원광대학교 동북아인문사회연구소 교수. 연세대학교 학부에서 사회학을,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 「중화세계의 재편과 동아시아 냉전: 1945~1991」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 상하이 자오퉁(交通)대학교 국제학대학원, UCLA 한국학연구소, 베트남 하노이 사회과학원, 인도 네루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등에서 공부하고 연구했다. 월간 [말] 편집위원, 창비 인문사회 기획위원, 세교연구소 상근연구원 등을 지냈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프레시안] 기획위원으로 3년 여정의 ‘유라시아 견문’을 진행했으며, ‘한반도의 통일’과 ‘동방 문명의 중흥’을 견인하는 ‘Digital-東學’ 운동을 궁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반전의 시대』(2016, 서해문집)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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