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종합선물세트 같은 책
‘책임’감을 가지고 ‘어떤 책’을 소개하는 시간이죠. ‘어떤,책임’ 시간입니다.
글ㆍ사진 신연선
2021.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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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오은): 오늘 주제를 ‘종합선물세트 같은 책’으로 고른 이유는 캘리님의 제안 때문이었죠. 

캘리: 지난 번 불현듯 님이 소개해주신 『절멸』을 포함해 진짜 멋있는 선물세트 같은 책들이 요즘 많은 것 같아요. 그런 책들을 떠올리면서 제안해봤습니다. 


프랑소와 엄이 추천하는 책

『놀림에 대처하는 슬기로운 방법』 

캐런 게딕 버넷 글 / 로리 배로즈 그림 / 노경실 역 | 고래이야기



작년부터 저희 아이가 친구 관계에 대해 슬쩍슬쩍 이야기할 때가 있더라고요. 고민까지는 아니지만 그럴 때 어떤 이야기를 해주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많이 읽어줬던 책이에요. 초등학교 저학년이나 유치원생들을 위한 책 가운데 이 책과 비슷하게 ‘무엇에 대처하는 방법’에 관한 그림책들이 많이 나와 있거든요. 그 중에서도 이 책은 어른이 읽어도 의미가 있고, 어떤 에피소드가 강하게 다가오는 장면이 있어서요. 저한테는 선물 같이 귀한 책이기도 했어요. 

주인공은 사이먼이라는 친구입니다. 어느 날 사이먼의 머리카락에 누나가 씹던 껌이 붙어버렸어요. 그래서 누나가 가위로 잘라줬는데요. 가위질이 너무 서툴러서 사이먼의 머리카락이 뭉텅 잘려 나가고 맙니다. 사이먼은 누가 볼까 봐 모자를 쓰고 밖으로 나가죠. 그러다 바람이 불어서 모자가 날아가 버리고요. 사이먼의 모습을 본 친구들은 사이먼을 놀려댔어요. “잔디 깎는 기계로 머리 깎았냐?”, “까치 둥지냐?” 이러면서 놀리니까 사이먼이 화가 잔뜩 나서 집으로 가요. 집에 가는 길에 사이먼은 노즈 할머니를 만나는데요. 할머니한테 놀림을 받았다고 이야기를 하니까 그 말을 들은 할머니가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정말 큰일이구나. 그런데 왜 덥썩 물어버린 게냐.”라고요. 사이먼이 할머니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할머니가 차고 안에 가서 낚싯대를 하나 가지고 오는데요. 그러면서 할머니는 사이먼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잘 보렴. 사이먼 너를 놀리는 아이들은 낚싯바늘을 던져 놓고 네가 그걸 덥석 물기를 바라는 낚싯꾼들이나 마찬가지야. 무슨 말인지 알겠니.”

가끔 나를 힘들게 하는 말들, 불편한 이야기들이 있잖아요. 그럴 때마다 저는 이 책을 떠올리면서 그 말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하거든요.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저희 아이와도 “그 친구가 또 미끼 던졌구나. 잡지 마.”라고 얘기할 수 있게 됐어요. 어른들도 마찬가지 같아요. 미끼를 잡을 수밖에 없는 마음도 있지만 나의 평안이나 행복을 위해서는 낚시에 걸려들지 않는 게 너무나 중요하죠. 책이 들려주는 다섯 가지를 청취자 분들도 잊지 않으시면 좋겠어요. 가만히 있기, 맞장구 치기, 딴 생각하게 만들기, 웃어 넘기거나 우스갯소리 하기, 미끼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상처받고 힘든 이야기들을 들을 때 ‘미끼가 던져졌구나, 잡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하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캘리가 추천하는 책

『팔꿈치를 주세요』 

황정은, 안윤, 박서련, 김멜라, 서수진, 김초엽 저 | 큐큐



큐큐 퀴어 단편선 시리즈의 네 번째 책입니다. 저도 이 시리즈를 쭉 따라서 읽어오고 있는데요. 이번 책은 너무 저를 위한 라인업이라 당장 구매해서 입지 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웃음) 종합선물세트에 똑같은 맛만 있으면 안 되잖아요. 또 색깔도 다양해야 되고, 담긴 제품의 모양이나 맛도 달라야 하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단편집이라는 것, 그리고 익숙한 작가도 낯선 작가도 있다는 것, 무엇보다 퀴어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것이 너무 알맞은 종합 선물세트인 책이었어요. 

여기 수록된 작품은 그 진폭도 아주 넓고요. 각 작품들이 저마다 독특하게 다르면서도 또 분명한 사랑의 이야기들을 하고 있어서 의미가 큰데요. 가령 황정은 작가님의 「올빼미와 개구리」에는 함께 오랜 시간을 같이 살아온 중년의 두 여성 천지영과 김지금이 등장하고요. 안윤 작가님의 「모린」에는 20대 아니면 한 30대로 짐작되는 콜센터 상담사 미란이라는 사람과 그가 사랑하는 후천적 시각 장애인 영은이라는 사람이 등장해요. 박서련 작가님의 「젤로의 변성기」에는 성우의 세계가 나와서 새롭고요. 김멜라 작가님의 「논리」에는 확고한 여성 취향을 가진 어린 딸을 바라보는 엄마의 목소리가 나오거든요. 김초엽 작가님의 환상적인 SF 「양면의 조개껍데기」는 말할 것도 없고, 서수진 작가님의 「외출 금지」는 코로나 상황을 되게 주요하게 다루고 있어요. 진짜 너무 다양한 맛을 느끼게 하는 책이었어요. 

오늘은 안윤 작가님의 「모린」이라는 작품을 소개하고 싶은데요. 먼저 안윤 작가님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요. 사실 저는 이 책으로 처음 알게 됐는데요. 찾아보니까 독립출판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신 분이더라고요. 수필집과 장편 소설이 하나 있는데 수필집은 동네 서점에서 중쇄까지도 찍으셨더라고요. 또 『팔꿈치를 주세요』라는 책의 제목은 안윤 작가님의 「모린」에 나오는 문장이거든요. 주인공 미란과 영은이 처음 만났을 때의 일이에요. 미란이 시각장애인과 함께 산책하는 학습을 하는 곳에서 영은과 짝이 되는데요. 영은이 미란의 목소리를 알아본 거죠. 그러면서 오른쪽 팔꿈치를 저한테 주세요, 나의 왼손을 당신 팔꿈치에 얹어주세요, 라고 말하고 나란히 걸어가요. 이들의 사랑이 어떻게 될지 꼭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안윤 작가님, 앞으로 더 많은 작품들이 더 많은 독자들과 만나시기를 진짜 응원할 거예요. 



불현듯(오은)이 추천하는 책

『마음도 번역이 되나요 두 번째』 

엘라 프랜시스 샌더스 저 / 김서령 역 | 시공사



『마음도 번역이 되나요 첫 번째』는 단어에 대한 이야기였죠. 이번 책은 표현에 대한 이야기예요. 속담이나 관용구를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나라 고유의 특징이 잘 드러난 표현들을 가려 모았다고 보시면 될 텐데요. 이번에도 엘라 프랜시스 샌더스가 글도 쓰고 그림도 그렸습니다. 첫 번째 책은 루시드 폴 님이 번역을 하셨죠. 이번에는 김서령 소설가께서 번역을 하셔서 말 맛도 느껴지고 이야기성이 도드라지게 번역이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 책에서 처음 보는 표현도 있었지만 ‘비슷한 표현이 우리나라에도 있었는데’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표현도 참 많이 있었거든요. 1권에서 ‘코모레비’라는 일본어 단어가 있잖아요. 나뭇잎 같은 틈 사이로 내리는 햇살을 가리키는 용어인데요. 한국어에도 ‘볕뉘’라는 단어가 있거든요. 이 말도 똑같이 틈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뜻해요. 그러니까 우리는 몰랐지만 각각의 나라에 비슷한 표현이 많다는 거고요. 속담 같은 경우는 더하겠죠. 그런 것들을 주목하면서 읽었습니다.

라트비아어로 ‘작은 오이 후후 불기’라는 표현이 있다고 해요. 터무니없는 말을 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사람한테 “너 지금 작은 오이 후후 불고 있구나”라고 이야기를 하면 거짓말쟁이 속을 훤히 꿰뚫고 있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스페인어에는 ‘너는 나의 오렌지 반쪽’이란 표현이 있는데요. “너는 나의 소울메이트”라는 의미예요. 다른 과일도 아니고 왜 하필 오렌지일까 생각을 하면서 읽어 내려갔는데요. 오렌지를 자르면 과육이 보이잖아요. 그런데 이 과육이 다 다르게 생겼어요. 또 오렌지를 다시 합치면 다시 또 그 모양이 완성이 되죠. 그래서 뭔가 따로 떨어져 있지만 함께 했을 때 꼭 맞아 떨어지는 그 상황을 가리켜서 생긴 말이 아닐까 싶었어요. 

제가 이 책을 통틀어서 가장 기발하다고 생각했던 표현은 ‘우체부 양말처럼 남김없이’라는 콜롬비아 스페인어 표현이었어요. 우체부들이 많이 돌아다니잖아요. 그래서 아무리 튼튼한 양말을 신어도 금방 구멍이 뚫려버리죠. 그러니까 이 표현은 진짜 강조할 때 쓰는 표현인 거예요. 정신없이 사랑에 빠진 분들은 이 말을 기억하셨다가 “나 너를 우체국 양말처럼 남김없이 사랑해”라고 고백해보시면 어떨까 싶어요.(웃음) 그 나라의 어떤 고유한 특성과 언어의 즐거움을 모두 다 만끽할 수 있다는 책이라는 점에서 이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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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라 프랜시스 샌더스 저 | 김서령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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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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