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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 질문에 끝까지 가보는 것 (G. 한강 작가)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206회) 『작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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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제 옆에 “글쓰기는 내 삶의 기본값”이라고 말하는,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하신 한강 작가님 나오셨습니다. (2021.09.23)


길모퉁이를 돌 때마다 인적 없는 하얀 거리가 커다란 그림책처럼 펼쳐졌다. 우리 발이 눈을 밟는 소리, 파카에 소매 스치는 소리, 멀리 있는 가게에서 셔터 내리는 소리가 정적 속에 또렷했다. 우리 입과 코에서 흰 김이 흘러나왔다. 눈송이들이 콧잔등과 입술에 내려앉았다. 우리는 따뜻한 얼굴을 가졌으므로 그 눈송이들은 곧 녹았고, 그 젖은 자리 위로 다시 새로운 눈송이가 선득하게 내려앉았다.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한강 작가님의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한 대목을 읽어드렸습니다. ‘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로 시작하는 이 소설에는 내내 온갖 눈이 내립니다. 그 눈은 따뜻한 얼굴에도, 차가운 얼굴에도 내리는 눈. 무섭게도, 포근하게도 내리는 눈. 지금 우리에게도, 과거의 그들에게도 내리는 눈. 이 모든 눈 속에서, 같은 모양이라곤 하나도 없는 눈송이들을 보며 한강 작가님은 기억하고 애도하는 일과 끝내 작별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오늘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에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한 한강 작가님을 모셨습니다. 귀 기울이게 하는 가만하고도 묵직한 한강 작가님의 이야기에 청취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인터뷰 – 한강 편>

오은: 『작별하지 않는다』 출간이 일주일 정도 됐죠. 출간을 즈음해서 온라인 기자간담회도 하시고, 랜선 팬사인회도 하시고, 그밖에 온라인 강연이나 대담도 하고 계시잖아요. 낯선 경험이기도 하면서, 바쁜 시간 보내고 계실 것 같아요. 

한강: 어떻게 읽어주실까 궁금해하며 지내고 있어요. 예약 판매 기간이 길었거든요. 책이 나온 것도 아니고, 안 나온 것도 아닌(웃음) 시간이 한 열흘 정도 있었고요. 정말 책이 나온 지는 일주일 된 거라서요. 다들 어찌 읽으셨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이렇게 만나면 얘기를 들으니까 좋아요. 

오은: 흔히 ‘에고서치’라고 해서 본인의 이름을 검색해보기도 하는데 작가님은 그것은 잘 안 하시는 건가요?

한강: 출간 이후에 책 제목 검색 많이 했어요.(웃음)

오은: 작품을 쓰실 때는 일주일에 7일, 그러니까 매일매일을 쉬지 않고 쓰신다고 들었어요. 거의 작품과 같이 사는 느낌일 것 같아요. 

한강: 그렇긴 하지만 소설이 항상 잘 써지는 건 아니니까요. 잘 써지지 않을 때에는 한 달 쉴 때도 있고 그래요. 특히 이 소설을 쓸 때 그랬는데요. 1년을 쉬기도 하고 그러다가 써지기 시작해서 한참 쓸 때에는 일주일에 7일 썼어요. 

오은: 이제 작가님 소개를 해드리겠습니다. “답은 없고, 아주 많은 질문들을 갖고 서성인다고 말하는 소설가. 겨울의 광주에서 태어났다. 음악시간을 좋아하고, 리코더 불기를 좋아했던 명랑하고, 개구진 어린이였다. 가족이 이사를 많이 해서 초등학교를 다섯 군데나 다녔다. 집에서 유일하게 풍족했던 것은 책이었다. 한강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문예지를 읽었을 정도.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겠다는 결심을 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다. 대학 때는 "문학은, 인간과 인간의 대화가 아니라 인간과 신의 대화여야 한다"라는 유진 오닐의 말을 좋아했는데 지금까지도 언제나 내가 쓰는 글이 그런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출판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읽고 쓰느라 잠을 줄여가며 습작하던 시기다. 퇴근을 하면 쓰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혀 집까지 뛰어가곤 했다. 잘 쓸 수 있을까, 라는 회의가 올 때는 그보다 글을 쓰는 게 내게 너무나 절박하다는 사실을 먼저 기억하려고 애쓰며 계속 썼다. 1993년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시로 등단했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며 활동을 시작했다. 

꿈에서 발아한 것들이 많다. 2006년에는 꿈에서 들은 음악을 시작으로 몇 개의 곡을 만들어 음반을 내기도 했다. 꿈에서 시가 오는 경우도 많아 2013년에는 20년간 쓴 시들을 묶어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출간하기도 했다. 고등학생 때도 새벽 6시에 일어나 숙제를 했을 만큼 꾸준한 아침형 사람. 아우슈비츠를 다룬 영화만 봐도 며칠 아플 정도로 폭력적인 장면에 약하고, 고기를 불에 구울 때도 고통을 느낀다. 작품을 구상할 때는 얇은 두께의 작업노트를 사용한다. 특별한 취미는 없다. 그저 걷는 것을 좋아한다.” 처음에 아주 많은 질문들을 갖고 서성인다고 말하는 소설가, 라고 소개를 드렸는데요. 어쩌면 질문이 많기 때문에 소설을 쓰는 것 같기도 해요. 

한강: 사춘기 이후로 늘 질문이 많았어요. 나는 누구인가부터 왜 태어나서 왜 죽는 걸까, 고통은 왜 있나, 나는 뭐 할 수 있지, 인간이란 건 뭐지, 이런 질문들이 늘 괴로웠고요. 그걸 질문을 하는 방식이 글을 쓰는 것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글을 쓰게 되었죠. 하나의 소설, 특히 장편 소설은 그 시기에 저에게 중요한 질문을 끝까지 완성해 보는 그런 거예요. 질문의 끝에 어떻게든 도달을 하면 그 다음 질문이 생겨나고요. 그러면 다음 소설에서 그 질문을 이어가고 그래요. 질문을 완성한다고 해서 답이 나오는 건 아닌데요. 그 질문에 끝까지 가보는 것, 그 자체가 답인 것 같아요. 

오은: 한강 작가님은 장편 소설이 단편집보다 더 많은 작가님이잖아요. 어쩌면 그 질문을 완성하기 위해서 장편이라는 포맷을 선호하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한강: 네, 장편이 큰 마디들로써 제 삶 자체를 구성한다고 할까요. 하나의 소설을 쓰는 데 최소한 1년은 걸리고, 장편은 길게는 4년 반, 5년도 걸리니까요. 그 소설을 쓰면서 제 삶도 변화하고요. 질문도 완성을 해본 다음 또 이어가잖아요.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장편이에요. 

오은: 작가님께서 신작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을 처음 순서로 준비했거든요. 작가님의 육성으로 소개를 해주세요.

한강: 이 소설을 쓰는 동안이나 쓰고 나서 어떤 소설인지 질문을 받았을 때 몇 가지 대답을 했어요. 하나는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는 거였고요. 하나는 죽음에서 삶으로 건너오는 소설이라는 얘기였어요. 또 제주 4.3 이야기가 들어가는 소설이라고 답한 적도 있고, 바다 아래에서 촛불을 켜는 이야기라고 말한 적도 있어요. 그리고 또 한 번은 어떤 소설인지, 그걸 알고 싶어서 320페이지를 썼는데 잘 모르겠다고 답을 피한 적도 있는데요. 아마 그 답을 다 합하면 이 소설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오은: 작가의 말에 보니 2014년 6월에 책의 첫 두 페이지를 쓰신 다음에 한동안 휴지 기간이 있었어요. 다시 작품을 쓰게 될 때까지 시간이 길었고요. 그 사이에 『흰』도 쓰시고, 「눈 한송이가 녹는 동안」과 「작별」을 쓰셨잖아요. 이 세 가지 작품의 공통점은 눈이 등장한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역시나 『작별하지 않는다』에도 처음 등장하는 게 눈입니다. 눈이 작가님의 작품들에서는 무엇과 무엇을 연결시켜주는, 존재와 존재를 맺어주는 역할도 하는 것 같더라고요. 

한강: 이 소설에서의 눈을 그냥 한마디로 말하긴 좀 어려워요. 소설 속에 ‘결속’이라는 말도 있는데요. 아주 많은 결정들이 결속을 해서 눈송이를 이루죠. 또 눈은 하늘과 땅을 잇기도 하고요. 이 소설에는 실이라는 이미지도 있는데 인물들이 다 연결이 되어 있잖아요. 경하와 인선이 실로 이어져 있고, 인선과 어머니 정심이 이어져 있고, 정심은 그가 잃어버린 사람들과 이어져 있어요. 그리고 실에 전류가 통하고 생명이 흐르고 그런 거죠. 또 눈은 하늘과 땅을 이으면서 내리고 눈송이들이 서로를 껴안으면서 결속하고 있고 한편으로는 아주 느리게 떨어져서 마치 영원 같은데 사실은 녹아서 사라지는 것이기도 해요. 눈을 떠올리며 그런 생각들을 했어요. 

오은: 이 소설은 처음에 경하의 시점으로 시작을 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무게 중심이 살짝 인선 쪽으로 오더니 2부 마지막부터 3부 들어갈 때쯤에는 정심이 주인공 같더라고요. 극중에서 인물의 무게 중심이 계속 변화하는데요. 이것도 다 염두에 두시고 쓰신 것 같았어요. 

한강: 네. 말씀하신 것처럼 정확히 그렇게 생각했어요. 처음 들어갈 때는 경하의 이야기인 듯 시작이 되었다가 인선으로 가서 나중에 정심의 이야기가 되는데요. 제일 중요한, 끝까지 생각했던 사람은 정심이었어요. 특히 후반부를 쓸 때에는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밤에 잠들 때까지 계속 정심의 마음이 되려고 노력했어요.

오은: <오은의 옹기종기> 공식 질문을 드릴게요. <책읽아웃> 청취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한강: 단 한 권 추천하기 너무 어렵고요. 너무 너무 어려운 과제예요.(웃음) 그냥 지금 언뜻 떠오른 것을 얘기할게요. 상반기에 읽었던 한국 소설 중에 좋았던 작품인데요. 박솔뫼 작가의 『미래 산책 연습』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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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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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연선

읽고 씁니다.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저12,6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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