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삶에 대한 긍정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를 선보이는 작가 윤성희의 여섯번째 소설집 『날마다 만우절』이 출간됐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5권의 소설집과 2권의 장편소설 그리고 1 권의 중편소설을 출간하며 기복 없이 고른 작품 활동을 이어온 그이지만, 2016년 봄부터 2020년 겨울까지 쓰인 열한 편의 단편이 묶인 이번 소설집은 그전과는 또다른 아우라를 내뿜으며 윤성희 소설세계의 새로운 챕터를 열어젖히고 있다는 점에서 그에게 ‘단편소설의 마에스트로’라는 수식을 붙이는 데 주저함이 없게 한다.
작가님의 여섯번째 소설집 『날마다 만우절』이 출간되었습니다. 이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오셨고, 이번 소설집에는 2016년 봄부터 2020년 겨울까지 5년 동안 집필하신 작품들이 한데 묶였습니다. 『날마다 만우절』을 출간하신 감회가 궁금합니다.
소설집을 출간한다는 것은 그동안 쓴 단편들을 모아 집을 지어주는 것과 같은 것 아닐까요. 막상 집을 짓다보면 재료들이 서로 어울리지 않기도 하고, 설계도대로 완성되지 않기도 하죠. 소설집을 만든다는 것은 그 실패의 과정을 지켜보는 거예요. 제 자신과 가장 많은 대화를 하는 시기가 소설집을 묶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책이 나오면 홀가분하게 이별할 수 있는 기분까지 들어요. 아마 지금이 그런 시기인 것 같습니다. 그러다 새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 언제 책을 냈는지 금방 잊게 됩니다. 아마 곧 그런 시기가 오겠지요.
2019년 김승옥문학상 대상작인 「어느 밤」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겠습니다. ‘놀이터에 세워진 분홍색 킥보드를 훔쳐 타고 달리다가 넘어진 할머니’가 주인공인데, 킥보드를 훔치는 할머니가 유쾌해 읽으면서 소리 내 웃었습니다. 넘어진 뒤 구조를 기다리며 가족과의 기억을 회상하는 장면에서는 코끝이 시큰해졌고요. 소설집을 완독한 후에도 여운이 깊게 남더라고요. 어떻게 하다 이 할머니를 떠올리게 됐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어느 날 늦게 귀가를 한 날이 있었습니다. 그때 아파트 길 한복판에 킥보드가 있었어요. 그걸 보고 저걸 내가 훔치면 잃어버린 아이는 얼마나 슬플까, 하고 짓궂은 생각을 조금 했습니다. 그랬는데 그날 밤에 이상하게도 그 생각이 사라지지 않는 거예요. 나는 킥보드를 훔쳤다. 어떤 글이 되었든 이런 식의 첫 문장을 쓰고 싶었죠. 그 문장을 자꾸 생각하다보니 동요를 부르며 새벽마다 킥보드를 몰래 타는 할머니가 떠올랐고 그래서 쓰게 되었습니다.
「눈꺼풀」과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밤」의 화자는 굉장히 어립니다. 미성년을 통과하는 아이들의 사소하면서도 큰 고충을 섬세하게 표현하셔서 놀랐어요. 잊고 살던 제 학창시절 속 어떤 장면들이 떠오르기도 했고, 작가님은 기억력이 무척 좋지 않을까 추측해보기도 했습니다. 어린 소년들의 감정을 세심하게 다룰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요?
제가 십대 아이들의 감정을 세심하게 다룬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사십대가 생각하는 십대를 그리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계속 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그저 이 아이들을 오래 생각하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어떤 아이돌을 좋아하는지 생각하고, 어떤 과목을 싫어하는지 생각합니다. 언제 혼자 울고 싶은지, 언제 친구랑 싸웠는지, 부모님이 모르는 비밀은 있는지, 힘들 때면 어떤 음식을 먹고 싶은지, 뭐 그런 것들을 많이 생각하려 노력합니다. 그리고 내가 되고 싶은 십대의 모습을 조금씩 넣어주기도 했습니다.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팍팍한 요즘 세상에서 윤성희 작가님의 글은 틈틈이 챙겨 먹어야 하는 영양제다!’라고 소개하기도 했는데요, 인간을 바라보는 작가님의 따듯한 시선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어떻게 그 시선을 오래도록 유지해올 수 있는지 궁금해요.
모든 작가들은 다 인간을 따뜻하게 바라봅니다. 다만 저는 그 따뜻함을 조금 더 많이 드러내는 것이겠지요. 저는 주로 사소하고 시시한 이야기를 씁니다. 이야기 자체가 빛나지 않으니 그 안에 반드시 반짝이는 작은 별들을 숨겨두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내 소설을 읽은 독자들이 각자의 별을 찾고 그 별의 반짝임을 볼 수 있도록. 그런 생각이 오늘날 제 소설을 만든 것 같아요.
「네모난 기억」에는 ‘네모네모’라는 만화 동아리에서 만난 인물들이 등장하지요. 그중 한 인물은 네 컷 만화를 그릴 때 한 칸에는 반드시 웃는 얼굴을 그려야겠다고 결심을 해요. 최근에 작가님께서 쓰신 한 에세이에서 작가님은 소설을 쓸 때 ‘괜찮다’라는 말을 한 번 이상은 넣으려 한다는 이야기를 접하기도 했는데요, 요즘 작가님께서 스스로에게 의식적으로 해주려는 말이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요.
괜찮다는 말은 제 자신에게도 자주 해주는 말입니다. 그것 말고는…… 아침마다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볼 때 ‘오늘도 잘’이라고 중얼거립니다.
이번 작품을 읽는 동안 슬쩍슬쩍 웃음이 나오기도 했어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좋은 농담 또는 좋은 거짓말에 대해 듣고 싶어요.
듣는 사람의 기분이 좋아야 좋은 농담이겠지요. 그리고 농담을 들었던 사람이 혼자 있을 때 그 농담을 자주 떠올리고 실없이 피식 피식 웃게 되면 더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한마디를 부탁드립니다.
이번 소설집 ‘작가의 말’에도 썼는데요. 소설은 독자의 삶과 만난 후에야 비로소 완성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 소설을 읽으신 독자분들은 이 책을 읽는 순간이 아니라 이 책을 덮고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순간이 더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윤성희 1973년 경기도 수원 출생으로 청주대 철학과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였다.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레고로 만든 집」이 당선되어 등단했고, 「서른세 개의 단추가 달린 코트」가 2001년 「계단」이 연이어 『현장 비평가가 뽑은 올해의 좋은 소설 2001』에 실렸으며, 「모자」는 『2001년 현대문학상 수상 작품집』에, 「그림자들」은 『2001년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에 수록되었다. 「유턴지점에 보물지도를 묻다」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부메랑」으로 2011년 11회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밖에 이수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한국일보문학상, 김승옥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레고로 만든 집』, 『거기, 당신?』, 『감기』, 『웃는 동안』, 『베개를 베다』, 『날마다 만우절』 등이 있고, 중편소설 『첫 문장』, 장편소설 『구경꾼들』, 『상냥한 사람』, 중편소설 『첫 문장』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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