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 인 레드 음악 들어'는 성정체성을 은유하는 밈(Meme)이다. 틱톡에서 'I wanna be your girlfriend'가 유행하며 레즈비언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노르웨이 출신 싱어송라이터는 누구나 자신의 음악을 즐길 수 있다며 다른 섹슈얼리티를 가진 사람들까지 포용한다. 데뷔 앨범 역시 이전처럼 퀴어 친화적이지만 더 넓은 팝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음반의 시작부터 빌리 아일리시의 오빠 피니어스 오코넬과 함께한 'Serotonin'으로 대중적인 감각을 앞세운다. 자기파괴적인 가사는 빌리 아일리시와 비슷하나 도입부의 빠른 기타 리프와 드럼, 청량한 신시사이저가 노랫말과 대조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며 이미지를 차별화한다. 인디 록 넘버 'Did you come?'도 빠른 전개와 선명한 멜로디로 그 기조를 이으며 로킹한 사운드를 고유의 특색으로 각인한다.
이전에 발매한 'Bad idea!', 'Summer depression' 등의 싱글로부터 이어진 노랫말은 우울, 강박, 사랑 등 Z세대의 핵심을 파고든다. '이 바보 같은 X아, 아직도 모르겠어?/ 네게 딱 맞는 사람이 나란 걸'이라며 장난스럽게 연인과 신경전을 펼치는 'Stupid bitch'도 매력적이지만 발랄한 곡조 위에서 대담한 관능미와 노골적인 성욕을 드러내는 'Hornylovesickness'는 발칙하기까지 하다.
몽환적 분위기를 강조한 후반부는 감정의 클라이맥스를 이끌어낸다. 'Midnight love'에서 짝사랑의 절망감이 일으킨 내면의 파동은 자신의 집을 제목으로 삼아 고독함을 토로하는 'Apartment 402'에서 고조된다. 무르익은 감정은 연주곡 'If would feel like this'까지 이어져 외로움을 형상화한 건반의 울림으로 여운을 남기며 앨범을 마무리한다.
홈 레코딩으로 만든 로파이 기조의 베드룸 팝으로 시작해 점차 영역을 확장해 나아가는 모습은 또래 뮤지션인 클레어 오나 비바두비와 비슷하다. 그러나 섬세한 감성과 트렌드에 맞는 그로테스크함으로 주조한 개성과 새로운 시도를 망설이지 않는 대범함은 걸 인 레드만의 동력을 형성한다. 예측 불가능한 힘을 가진 소녀의 세계가 감정의 가장 여린 틈을 파고들어 자리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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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