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 잠깐 놀러 온 외계인에게 자꾸 “남자야, 여자야?” 하고 묻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여자 놀이, 남자 놀이? 우리 같이 놀자』는 아이들이 놀이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유머러스하게 짚어 주는 그림책이다. 김이슬 번역가와 해설을 쓴 유지은 딱따구리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느낌이 어땠는지,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김이슬: 평소 관심 많은 ‘성평등’ 주제를 다룬 책을 번역하게 되어 무척 기뻤어요. 전하려는 메시지가 뚜렷하면 이야기가 딱딱하고 교조적으로 가기 쉬운데, 이 책은 어린이에게 친근한 ‘놀이’라는 소재를 통해 메시지를 위트있게 풀어냈다는 점이 좋았어요. 매우 영리한 책이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유지은: ‘성평등’을 주제로 잘 만들어진 그림책을 만나 반가웠어요. 성평등한 관점을 가르치려는 시도가 점점 늘고 있는데,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추기가 쉽지 않거든요. 이 책은 길지 않은 글과 어렵지 않은 이야기로 성평등 주제를 잘 풀어낸 것 같아요.
이 책은 비슷한 구조의 문장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요, 번역할 때 가장 신경 쓴 지점은 어떤 것일까요?
김이슬: 말씀하신 대로 구조가 반복되고, 텍스트도 많지 않아서 자칫하면 이야기가 너무 단조롭고 심심해 보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너무 수다스러운 것도 작품의 결과 맞지 않는 것 같아서 그 중간 지점을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본문 중 “근데…”로 옮긴 접속사 ‘but’도 많이 고민한 부분이에요. 접속사를 바꿔 가며 읽어 보고, 주변 사람들에게 의견을 묻기도 했어요. 편집자님과 의논해서 지금의 표현으로 정했어요.
어린이책 편집자이자 번역가이며, 현재 딱따구리에서 콘텐츠 디렉터로 일하고 있는데요, ‘이런 부분은 직업마다 정말 다르구나’ 하고 느끼는 지점이 있을까요?
김이슬: ‘책’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각각의 일이 정말 다르다고 느껴요. 종종 자아가 충돌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웃음) 편집자로 일할 때는 역자의 번역에 불만을 느낄 때도 많았지만 직접 번역 작업을 하면서 내 시야가 좁았구나, 깨달을 때가 많아요. 콘텐츠 디렉터로 일을 시작할 때는 주제에 맞는 책을 찾는 것뿐만 아니라 독자에게 잘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해요. 딱따구리 그림책 큐레이션 서비스 <우따따 북클럽>은 독자의 풍부한 독서 경험을 위해 워크북, 가이드 같은 부가 콘텐츠도 같이 보내드리거든요. 각각의 일에는 고충이 있지만, 책을 다양한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딱따구리는 성평등 그림책 큐레이션 서비스 ‘우따따 북클럽’으로 주목받아 왔는데요, 최근 어린이 교육 회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지은: 처음에는 차별적이고 잘못된 고정관념을 담고 있는 그림책을 걸러서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집중했어요. 그런데 영유아 콘텐츠 전반에 다음 세대를 살아갈 어린이들이 배워야 하는 태도나 관점에 대한 이야기가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다음 세대를 살아갈 어린이들은 우리보다 더 넓은 세상에서 당당하게 나답게 살아가는 법, 나와 다른 타인을 존중하는 법이 상식이 된 세상에서 살아갈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딱따구리는 새로운 시대의 상식을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는 수준과 형식의 콘텐츠로 제공하고 있어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면 아이들의 행동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여자 놀이, 남자 놀이? 우리 같이 놀자』는 이런 상황을 반영한 책인데요, 현실에서 아이가 성 역할 고정관념에 따른 말이나 행동을 할 때 교사나 양육자가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요?
유지은: 아이들은 자신의 성별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성별 고정관념을 함께 배우는 경우가 많아요. 아이가 성별 고정관념이 담긴 말을 하면 아래와 같이 상호작용 해주세요. 첫 번째, 왜 그런 생각을 갖게 됐는지 묻기. 두 번째, 아이의 발언 정정하기. 이때 아이의 말을 부정하기보다는 더 넓은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세요. 예를 들어, 아이가 “태권도는 남자애들만 하는 거야.”라는 말을 한다면 “그렇지 않아. 태권도를 좋아하는 여자애들도 있어.”라고 이야기해 줄 수 있어요. 세 번째. 반대로 질문하기. “태권도 말고 다른 놀이를 좋아하는 남자 친구는 없어? 태권도를 좋아하는 여자는 누가 있을까?”와 같이 아이가 스스로 자기 생각을 점검해볼 수 있도록 질문해주세요. 마지막으로 몸소 보여주기. 가정과 기관에서 성별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는 상황을 꾸준히 다양하게 보여주세요.
성평등은 모두를 위한 것임에도 특정 성별만을 위한 것이라는 편견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여자 놀이, 남자 놀이? 우리 같이 놀자』 해설에서 짚은 것처럼 성 고정관념, 성 역할에 갇히지 않는 것이 왜 아이들에게 중요한지 이야기해 주신다면?
김이슬: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은 타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이해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타인과 원만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갈등하는 사람이 된다고 생각해요.
유지은: 성 고정관념, 성 역할 고정관념은 단순히 ‘성별’에만 국한되지 않아요. 편견과 고정관념은 다양한 층위로 뻗어 나가고 스스로에게도 고정관념과 편견을 적용하게 되거든요. 타인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해로운 거죠.
아이들이 여자 놀이, 남자 놀이를 구분하지 않고 “우리 같이” 신나게 놀기 위해서 어른들이 일상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을 알려주신다면?
김이슬: 어린이에게 성별을 근거로 한 칭찬을 하지 않는 거예요. 칭찬은 막연하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지만 어떤 칭찬은 어린이에게 해가 될 수 있어요. 은연중에 성별 고정관념이 담긴 칭찬을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남자답고 씩씩하네’ ‘여성스러운 공주 드레스를 입었네’ 같은 칭찬을 들으면 어린이는 칭찬을 또 들으려고 그 행동을 반복하거든요. 칭찬하기 전에 그 말이 어린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김이슬 덕성여자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공부했습니다. 지금은 어린이 책 편집자로 일하며, 프랑스에서 거주한 경험을 바탕으로 프랑스 문화권의 좋은 어린이 책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옮긴 책으로 『범인은 고양이야!』, 『부리 동물 출입 금지!』, 『정말로 진짜로 엄청난 마르셀』 등이 있습니다. *유지은(딱따구리 대표) 딱따구리 새로운 시대의 상식을 전하는 어린이 콘텐츠 플랫폼입니다. 딱딱한 나무를 뚫어 안전한 둥지를 마련하는 딱따구리처럼 시야를 비좁게 만드는 낡은 상식과 고정관념을 뚫고, 어린이들에게 더 넓고 건강한 세상을 보여 주려 합니다. ‘우따따 TV’와 ‘우따따 북클럽’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www.wooddadd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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