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우 “매일 출퇴근 하듯이 사랑하면 어떨까요”
불만족스럽고, 짜증스럽고, 화가 나고, 못마땅한 순간을 맞이할 때마다 ‘사랑이 없어서 그래’ 혹은 ‘이제 사랑이 끝났구나’라고 생각한다면 평생 사랑을 찾아다녀야 할 것 같아요.
글ㆍ사진 최진영
2021.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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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딘지 부담스러운 데가 있다.’ 정지우 작가의 새 책 『너는 나의 시절이다』는 이렇게 시작한다. 사랑을 이야기하는 부담을 고백하고 시작하는 사랑 에세이라니, 그 겸손함에 어쩐지 믿음이 갔다. 사랑을 말하는 화려한 이야기들과 달리 그가 말하는 사랑의 핵심은 다름 아닌 성실함. 사랑을 계속할 때만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사랑은 아주 특별하고 강렬한 무엇이 아니라 매일의 삶과 가까이 있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오래전부터 사랑에 대한 책을 쓰고 싶었다는 정지우 작가를 서면으로 만났다.  



이제 사랑을 이야기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사랑 에세이입니다. 전작들과는 다른 내용의 책인데요. 어떻게 쓰게 됐나요? 

사랑에 대한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해왔습니다. 다만, 내가 사랑을 이야기해도 되는 사람인지 계속 고민했어요. 청춘 시절에 하는 사랑은 실패하거나 이별로 귀결되기 마련이잖아요. 그래서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함부로 쓸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조금씩 사랑을 이야기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이제 써도 좋다고 제가 자신에게 허락해준 느낌이랄까요. 조금씩 사랑에 대해 고민하고 쓰기 시작했고, 그렇게 쓴 글을 모았습니다. 

책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다정함’ 아닐까 싶어요. 다정함을 중요하게 여기고, 오랜 기간 사유한 것 같은데요. “다정함이 왜 중요하냐”고 묻는다면요?  

살아갈수록 남는 건 다정함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끼리 만나서 누가 더 옳은지, 더 잘났는지, 더 매력적인지 은근히 경쟁하거나 다투잖아요. 이겼다 싶으면 기분이 좋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런 건 잠깐의 쾌감일 뿐 지나고 보면 의미도, 남는 것도 없는 것 같아요. 반면 다정했던 사람이나 기억은 인생 내내 우리를 지켜주는 느낌이 들고요. 그리고 사람은 피곤하거나, 힘들면 가장 먼저 다정함을 잃기도 하잖아요. 가까운 사람에게 짜증 내고 괜히 누군가를 미워하고요. 그런 걸 보면 다정함은 강한 힘이 있어야 가능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의식적인 태도 같아요. 그래서 삶에서 다정함을 지켜내는 일이 좋지 않나 싶고요. 

작가님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 중 하나는 성실함입니다. ‘사랑하는 일에 대한 충실함(162쪽)’, ‘사랑은 선언적인 것(130)’, ‘의지’, ‘의무감’, ‘노력’, ‘지향성’ 등 사랑을 설명하는 말들에서 사랑을 대하는 태도 역시 성실하다고 생각했어요.  

스무 살 무렵 때만 해도 성실한 인상이랄까 스타일을 싫어했어요. 섹시하지도, 매력적이지도 않다고 생각했거든요. 성실함보다는 어떤 영감이 쏟아지는 순간이라든지, 갑자기 찾아오는 창조의 경험이라든지, 다소 충동적인 마음을 쫓아가는 게 더 매력적이라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돌이켜 보면 저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성실한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노오오력'이나 하며 사는 재미없는 사람이었던 거죠. 아마 별수 없을 것 같아서 앞으로도 성실히, 노오력하며 사는 사람으로 살아가지 않을까 싶어요. 

사랑을 ‘달리기’에 비유하면서 별도의 실체가 있는 게 아닌, 말하고 반복함으로써 사랑이 되어가는 일만 있을 것(131쪽)이라고 했는데요. 더 설명한다면요? 

흔히 사랑을 생겼다가 없어지고, 왔다가 떠나가는 것으로 생각하잖아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랑이 왔어'라든지 '이제 사랑이 없어졌어'와 같은 표현을 쓰면서요. 그런데 사랑은 그런 실체가 아닌 것 같아요. 오늘 사랑하면 사랑하는 것이고, 오늘 사랑하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은 것뿐이죠. 우리가 숨 쉬고 있어야 살아있는 사람인 것처럼, 사랑을 계속할 때만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사랑이라는 명사를 붙일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게 아니라 사랑하고 있다는 동사, 그런 동사만이 존재하는 거죠.



완전한 사랑이 있을 거라는 착각 

관계에서 중요한 것 진심으로 좋아하느냐 아니냐보다, 서로 좋아한다고 상상하고 믿느냐 아니냐일 수도 있다(123p)는 말이 좋았습니다. 이 문장 다음에 누군가가 나를 미워한다고 믿는 습관이 있었다고 했는데요. 부정적이었던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이유도 없이 사람들이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날 만나면 서로 호의를 확인하게 되고, 먼저 연락받고 하면서 사람들이 나를 미워할 거라는 막연한 믿음에 근거가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결국 내가 '미움받는다'라는 게 일종의 머릿속 문제였다면, 내가 '미움받지 않는다'라는 건 경험과 감각, 생활의 문제였던 셈이죠. 제 삶이 관념에서 실생활로 조금씩 이동했던 게 아닐까 싶어요. 인간 내면이 치유되는 과정이 대개 이렇게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요. 

지난 사랑을 돌이켜볼 때 후회되는 것이나 아쉬운 게 있다면요?  

지난 사랑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을 것 같아요. 하나는 과거 연인에 대한 것, 또 다른 하나는 현재 사랑하는 사람과의 과거인데요. 과거 연인에 대해서 아쉬운 건 없어요. 지나간 인연과 시절일 뿐이죠.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의 과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요. 당시에는 몰랐거나 이해하지 못했거나 부족한 면들이 있었겠죠. 이제는 이해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든지 고치지 못한 문제도 있을 텐데 그런 것들은 평생의 과제로 계속 주어지는 것 같아요. 완벽한 시절은 없을 테죠. 계속 나아지려고 애썼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사랑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는 무엇인가요? 

완전한 사랑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요. 사랑 혹은 사랑의 관계란 ‘모든 것’에 가깝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속에는 당연히 완전한 순간도 있겠지만, 반대로 결핍된 순간도 있겠죠. 불완전하고, 불만족스럽고, 짜증스럽고, 화가 나고, 미움이 들어차고, 못마땅한 순간들도 있을 거고요. 그런데 이런 순간을 맞이할 때마다 ‘사랑이 없어서 그래’ 혹은 ‘이제 사랑이 끝났구나’라고 생각한다면, 평생 사랑을 찾아다녀야 할 것 같아요. 

과거와 지금 사랑에 관한 생각이 변한 게 있다면요?  

사랑이 아주 특별하고 강렬한 무언가라기보다는, 매일의 삶과 가까운 것 같아요. 해외 여행지보다 동네 산책에 더 가깝다고 할까요. 물론 사랑이 인생의 특별한 이벤트로 다가올 때도 있지만, 그보다는 매일 사서 꽃병에 넣는 생화 같은 느낌에 더 가깝고, 그게 더 좋다고 생각해요. 매일 출퇴근 하듯이 사랑해야 하는 것 같아요. 



첫 문장이 떠오르면 간절히 쓰고 싶어져요

예리하지만 예민하지 않고, 차분하고 다정한 것이 작가님 글의 특징이 아닐까 싶은데요. 글 쓰는 사람으로서 지향하는 바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칭찬 감사합니다. 사실 제 글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읽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냉소적인 글을 쓴 것 같은데, 읽는 사람은 따뜻하다고 할 때가 있죠. 혹은 날카롭게 쓴 것 같은데, 다정하다는 말을 들을 때도 있고요. 그렇게 보면 글쓰기에서 내가 지향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은 생각이 들어요. 쓰는 마음과 읽히는 느낌은 다른 것 같아서요. 그런데도 지향하는 바가 있다면 삶에 이로운 글쓰기예요. 글쓰기 때문에 삶이 파괴되거나 증오에 사로잡히거나 나쁜 욕망에 더 집착하게 된다면, 관두는 게 낫죠. 삶과 내 곁의 사람을 더 사랑하고, 긍정하게 하는 글쓰기를 하고 싶어요. 

작가님의 글을 읽다 보면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사건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거나 감정적 격동이 느껴지기보다는 한 발짝 떨어져 자신과 자기 일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이런 태도를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제가 좋아했던 작가들과 관련 있지 않을까 싶어요. 처음 빠져들었던 작가가 헤르만 헤세였는데, 헤세의 글을 보면 대개 삶을 관조하고자 하는 태도가 드러나죠. 장 그르니에, 알베르 카뮈, 필립 로스 등 삶을 정제된 자세로 바라보는 작가들을 좋아했고,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하고 싶은 많은 말들을 글쓰기로 해결하고 있다(152쪽)고요. 작가님처럼 하고 싶은 말을 글로 해결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조언한다면요?  

생각해보면 우리가 자연스럽게 하는 많은 일이 처음에는 어색했던 것들이잖아요. 가령 저는 처음 연애할 때 여자친구랑 무슨 이야기를 해야 좋을지 몰랐어요. 혹은 친구를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하며 몇 시간씩 수다를 떨어야 하는지 몰랐죠. 그런데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면서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아야 서로 즐거운지 알게 되고 수다 떠는 일이 좋아졌거든요. 글쓰기도 마찬가지겠죠. 무슨 이야기이든 친구와 수다 떨듯 매일 쓰다 보면 어느 순간 웬만한 친구보다 백지가 더 가깝고 친근해질 것 같아요. 

거의 매일 페이스북에 글을 쓰시는데 주로 어떨 때, 어떤 상황에서 글을 쓰고, 글이 쓰고 싶어지는지 궁금해요.  

대개 첫 문장이 떠오르면 간절히 쓰고 싶어져요. 첫 문장 다음에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하거든요. 하루에 그런 문장이 하나둘 떠오르는데 그러면 묵혀두었다가 시간이 있을 때 재빨리 써요. 각자 일하거나 공부하느라고 떨어져 있던 두 연인이 밤에 전화기를 붙잡으면,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이나 했던 생각을 이야기하기 바쁘잖아요. 비슷한 것 같아요. 저에게 글쓰기란 밤에 연인에게 전화 걸기 위해 붙잡는 휴대폰 같아요. 

김혼비 작가가 추천사를 썼어요. 어떤 인연인가요? 

김혼비 작가님과는 ‘에세이 배송’으로 처음 인연을 맺었어요. 7명의 작가가 모여 ‘책장 위 고양이’라는 이름의 에세이 배송 프로젝트를 했는데, 당시 함께 글을 쓰면서 알게 됐죠. 멋진 글을 쓰는 분이라 생각했는데, 제 글을 호의적으로 생각하는 걸 알고 무척 기뻤던 기억이 나요. 

최근에 변호사로 새 출발을 하셨다고요. 일상을 어떻게 보내고 계시나요? 

완전히 새로운 영역이다 보니 신입사원처럼 지내고 있어요. 어디에서든 한 사람 몫을 하며, 제가 속한 곳에 누를 끼치지 않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애쓰고 있고요. 출퇴근과 육아로 정신없는 나날이지만, 새로운 일을 알아가고 배워간다는 기쁨이 있습니다. 출퇴근 시간 지하철에서 글을 쓰게 되는데, 이것도 나름 새로운 경험인 것 같아요. 

특별히 어떤 독자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나요? 

사랑에 무심한 사람을 설득할 재주는 없고, 이미 잘 사랑하고 있는 분에 비하면 부족하다고 느껴요. 다만 저처럼 매일 바쁘게 살면서 ‘어떻게 더 잘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왜 사랑해야 할까’와 같은 고민의 소용돌이 속에서 하루하루 나아가는 분들과 함께 고민해보고 싶어요. 그런 분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작은 모임 공간 같은 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지우

87년생. 밀레니얼 세대의 작가이자 문화평론가. 고려대학교 및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대학생이던 때, 당시 기성세대가 주도하던 ‘청춘 담론’이 정작 청춘의 실제 삶을 겉돌고 있다는 생각에서 『청춘인문학』을 출간하며 집필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삶으로부터의 혁명』(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에서 청춘, 사랑, 죽음의 문제를 다루며 우리 사회문화 전반으로 담론을 확장했다. 특히 한국 사회의 특징을 분노로 규정하고 이를 철학적으로 탐구한 『분노사회』를 내놓으며 독창적인 신예 저술가로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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