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상담심리학 박사이자, 아들러 심리학의 정수를 담은 베스트셀러 『항상 나를 가로막는 너에게』를 편저하며 아들러 심리학 돌풍의 서문을 열었던 변지영 작가의 첫 번째 자전적 에세이가 출간되었다.
지금껏 저명한 심리학자나 철학자들의 메시지를 주로 전해온 작가는, 이번 책에서는 자신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과 사람에 대한 감상을 담았다. 100편의 길고 짧은 운문과 5편의 산문,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을 묶어 펴낸 『좋은 것들은 우연히 온다』는, 생각대로 되지 않는 삶에 지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공감 에세이다.
그간 여러 권의 책을 써오셨는데, 이 책 『좋은 것들은 우연히 온다』를 작가님의 첫 번째 자전적 에세이라고 하셨어요. 어떤 의미에서 그런 것인지 소개해주세요.
지금까지 제 이름으로 출간된 책들은 모두 마음을 돌보는 책,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는 책들이에요. 그런데 너무 머리로만 써왔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더라고요. 이번엔 머리가 아닌 몸으로 쓰는 책을 써보자, 지식이 아닌 경험으로, 논리가 아닌 직관에 다가가는 책을 써보자 그런 생각이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제 경험에 좀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고,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들을 받아내듯 적어가게 되었습니다.
형식에 제한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 에세이라고 하면 산문을 떠올리는데요. 이 책은 운문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특별히 운문으로 쓰신 이유가 있을까요?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쓰다 보니 어떻게 해야 보편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적절한 문체와 형식을 고민하면서 원고의 상당 부분을 압축하고 덜어내는 작업이 계속되었는데요. 운문의 생략과 압축, 비약이 만들어내는 여백을 통해 독자분들이 더 자유롭게, 자신의 속도대로 읽을 수 있게 해드리고 싶었어요. 어떤 페이지에서는 천천히 머물러 개인적 경험을 돌아보는 기회를 마련할 수도 있고, 또 어떤 페이지에서는 ‘아 다른 사람들도 그렇겠구나!’ 하는 보편성을 확인하면서 위로를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모든 책은 독자가 읽는 순간 각각 새로운 책으로 탄생한다는 생각을 평소에 하고 있는데요, 이 책은 특히 더 그런 느낌으로 한 줄 한 줄 써나갔습니다. 읽는 분들은 그 한 줄 한 줄을 각각 다르게 새길 수 있도록요.
책에 5개의 테마가 존재하는데요, 3부의 ‘침묵’과 4부의 ‘결함’이라는 주제가 돋보입니다. 심리학자이자 작가로서 이 두 가지 테마를 담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말이라는 것은 참 흥미롭습니다. 드러냄이자 동시에 은폐이기도 하죠. 저는 상담을 하기 때문에 특히 ‘왜 지금 이 분이 이 말을 할까?’하는 그 맥락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말의 내용이 중요할 때도 있지만, 그 뒤의 맥락이 더 중요할 때도 있거든요. 우리는 A를 말함으로써 사실은 A가 아닌 B를 말하려고 하거나, C를 숨기기 위해 A를 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평소 드러난 말보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말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침묵도 여기에 포함되지요.
한편 결함은 제가 평소 매우 중시하는 주제인데요. 상담하고 명상을 안내하면서 ‘결함을 살아가자’고 자주 얘기하는 편입니다. 현대사회는 자신의 강점, 장점을 부각하기 바쁘잖아요. 어두운 것, 부족한 것, 잘 안 되는 것들은 뒤로 숨기고 드러낼 만한 것들만 전면에 내세우는 문화입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으로 필요한 정보들은 상당 부분 결함, 결핍에 들어 있습니다. 우리의 얼굴을 붉히거나 펄쩍 뛰게 하는 것들, 혐오하거나 집착하게 하는 것들을 피할 게 아니라 들여다봐야죠. 그런 불편한 경험들은 계속 들여다보아 자신을 이해하는 소중한 재료로 삼아야 합니다. 자기 이해의 핵심은 자신의 결함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 있거든요. 결함을 극복하는 게 아니라 결함을 꿰뚫어 들어가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겁니다. 그러면 결함이 자신의 가장 좋은 친구이자 무한한 동력이 됩니다.
『좋은 것들은 우연히 온다』의 100편의 짧고 긴 운문 중, 가장 짧은 시간에 쓰신 작품과 가장 긴 시간 동안 쓰신 작품은 무엇이었나요?
마음에 뭔가가 일어나고, 그것을 마치 사진 찍듯 포착해서 언어로 옮기는 작업이었는데요. 그러니까 먼저 몸에 어떤 느낌이 있고, 그런 뒤 그 느낌, 그 경험을 이 단어로 표현하는 게 맞나, 아니 이 단어일까? 이런 과정이었습니다. 경험을 그대로 언어화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단어를 찾아가며 정교화하였습니다. 가장 오래 걸린 건 ‘감’인데요. 언어 유희를 통해 너무 무겁지 않게, 누군가와의 가슴 아픈 이별을 이야기해보고 싶었어요. ‘아무 말 없이 감’에는 가버린 사람에 대한 애석함이 담겨 있죠. ‘감의 자리는 겨울 봄, 그리고 여름만큼 깊어 감잡을 수도 없지’에서 ‘감의 자리’는 과일 감이 대표하는 가을의 자리이기도 하고요, 가버린 사람의 빈 자리이기도 해요. ‘감잡을 수 없다’, 그리고 마지막 행의 ‘실감이 나지’ 역시 유희입니다. 너무 무겁지 않게, 그러나 너무 가볍지도 않게 이별을 얘기해보고 싶어서 많은 실험을 거치다 보니 오래 걸렸어요.
가장 짧은 시간에 쓴 것은 ‘겨울 새벽’입니다. 어느 겨울날 새벽, 창 밖을 보았는데 거리에 편의점 하나만 불이 켜져 있더라고요. 누군가는 이 새벽에 출근하면서 저 가게의 도움을 받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불빛을 바라보며 한 호흡으로 써내려 갔습니다.
책 속 글도 좋지만 사진들이 모두 감성적입니다. 직접 찍으신 작품이라고 들었는데요. 사진을 따로 배우신 건지, 그리고 사진을 찍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대학 때 전공이 영어였는데 제가 한 것은 영화밖에 없었어요. 사진과 영화를 공부하면서 단편영화를 찍기도 했었는데요. 사진 수업 때 과제를 제출하기 위해 가장 친한 친구가 누드 모델이 되어 주기도 했답니다. 아이 낳고 키우고 공부하고 일하면서 한동안 사진을 잊어버리고 있다가 최근 그 친구의 권유로 다시 찍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을 작업하면서 글을 먼저 쓰고 어울리는 사진을 찾은 경우가 많았지만, 사진을 보면서 글이 떠오른 경우도 있었어요.
작가의 말에서 이 책을 “생각대로 되지 않는 삶에 지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쓴 편지”라고 소개하셨는데요, 독자들에게 이 책이 어떤 의미와 가치로 읽히길 희망하시는지요?
“생각만큼 생각대로 되는 것 없고, 생각대로 안 되어도 생각보다 괜찮고.”라고 1부가 시작되는데요, 제 경험에서 그대로 퍼 올린 문장입니다. 제 삶을 돌아보면 기대하지 않았던 일들이 좋은 것을 많이 가져다줬고, 계획은 여러 번 어긋났습니다. 경험은 때론 그 의미를 이해하는 데 몇 년이 걸리기도 하지요. 지금의 일들에 대해 우리가 좋다, 싫다 판단해도 시간의 흐름 위에서는 또 달라질 수 있는 게 우리 삶입니다. 지치고 힘들더라도 지금의 이 일들이,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고 그런 여지를 좀 남겨둔다면, 그 무게가 좀 덜어지지 않을까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작가님의 근황과 앞으로의 집필 계획 등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좋은 것들은 우연히 온다』는 제 경험을 토대로 쓴 첫 책이었는데요. 집필 과정이 제게 매우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저 개인의 심리 분석 작업이기도 했고요, 어디까지 보편화가 가능할까, 어떻게 해야 공감이 가능할까, 고민하면서 언어의 기능에 대해 원점에서 생각해보는 귀한 기회였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작업을 꾸준히 해나갈 생각입니다.
*변지영 작가, 임상·상담심리학 박사. 차 의과학대학교 의학과에서 조절초점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간 저명한 심리학자나 철학자들의 메시지를 주로 전해온 작가는, 이번에는 작가 자신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과 사람에 대한 감상을 담았다. "우리는 자기 경험치 안에서만 타인을 위로할 수 있다. 각자 경험한 것을 토대로 이해하고 공감하고 위로한다. 그래서 온전한 이해와 완벽한 공감은 불가능에 가깝다. 위로하는 일은 언제나 어설프고 서투르다. 힘들어하는 사람을 위해 막상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어떻게 대하는 것이 좋을지 살피는 것 정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것이 위로의 전부이고, 관계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 삶에 지쳐 있는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쓴 편지들을 묶어 펴낸다."며 오롯이 자신의 시선으로 쓴 책을 내놓는 소회를 밝혔다. 지은 책으로 『내가 좋은 날보다 싫은 날이 많았습니다』, 『내 마음을 읽는 시간』, 『내 감정을 읽는 시간』, 『항상 나를 가로막는 나에게』,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당신에게』, 『아직 나를 만나지 못한 나에게』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나는 죽었다고 말하는 남자The Man Who Wasn’t There: Investigations into the Strange New Science of the Self』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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